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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났던 '야신'에게 바치는 弔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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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났던 '야신'에게 바치는 弔辭 김재명의 뉴욕통신 <29> 저항운동과 공동체 재건에 바친 뜨거운 삶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팔레스타인 강점 정책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왔다. 이미 보도된 바대로, 3월22일 새벽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67)이 이스라엘군 헬기가 쏜 미사일 3발에 맞아 사망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브라 지역 알-무자마아 이슬람 사원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중이었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야신의 죽음을 맞아 "이스라엘에 복수를!"을 외치고 있다. 야신이 암살 당한 사건은 가뜩이나 휘발성 강한 중동위기에 불을 당긴 모습이다.

필자는 2001년 5월말, 그리고 2002년 5월말 두차례에 걸쳐 가자지구 자택에서 야신을 인터뷰했었다. 하반신 불구로 휠체어에 앉은 그는 "살고 죽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의지라기보다는 알라(신)의 뜻에 달려 있다"고 목쉰 소리였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그는 하마스의 주요전술로 알려진 '자살 폭탄테러'라는 용어가 잘못됐고 '순교'(殉敎)라 주장했다. "이슬람은 자살을 금기시한다. 순교다. 당신 나라 한국도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저항 운동가들을 한국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야신은 하마스의 저항이 '테러'라 일컫는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국가테러'에 맞선 '테러의 균형'이라는 논리를 폈다. 아래는 야신의 죽음을 기리며 그에게 바치는 조사(弔辭)다.

(사진설명)1. 하마스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 (사진@ 김재명)

***"야신 암살은 국제법 위반"**

중동 유혈분쟁은 야신 당신의 죽음을 전환점으로 드디어 대폭발로 치닫는 것입니까. 새벽기도를 드린 뒤 휠체어에 탄 채 집으로 돌아가던 당신을 향해 내리꽂힌 미사일 3발은 말 그대로 '피의 미사일'입니까. 많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당신의 급작스런 죽음에 비통한 나머지 가슴을 치며 복수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오랜 고난에 시달려온 팔레스타인 사람들뿐 아닙니다. 지구촌 사람들에게 당신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유엔, 유럽연합(EU), 로마 교황청 등에서도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한 것도 국제사회가 받은 충격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행위는 국제법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평화적 해결방안을 찾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지요. 그러나 미 부시행정부는 이스라엘 강골파이자 야신 암살의 주역인 아리엘 샤론 수상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야신 당신도 잘 알듯, 부시 미 대통령은 중동사태에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던 전임자인 클린턴 대통령과는 달리,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테러리즘'이라 몰아부치면서 이스라엘 강골파인 아리엘 샤론을 편들어왔지요. 그런 분위기를 되비추듯, 부시의 '입' 구실을 하는 백악관 대변인 스코트 맥클레인은 당신이 죽음을 맞던 날 이스라엘을 비난하기는커녕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테러 단체인 하마스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다"(Israel has the right to defend herself)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상징적 존재'라고 여깁니다. 저는 세 번에 걸친 현지 취재과정에서 그 같은 말이 전혀 부풀려진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일찍이 지난 1987년 1차 인티파다(intifada, 봉기, 1987-1993년) 무렵 교사 출신인 당신은 '팔레스타인을 지키는 회교운동'의 아랍어 머릿글자를 합성한 하마스(HAMAS)를 창립,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쳐왔지요. 아랍권을 비롯한 전세계 자선단체들의 지원, 그리고 수만명에 이르는 해외 지지자들이 각자 수입의 2.5%를 쪼개 보내오는 성금을 바탕으로 하마스는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굶주리는 팔레스타인 빈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어 왔습니다.

사진2. 인티파다가 3년을 넘기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하마스 지지도는 매우 높아졌다. 가자 시내의 야신 벽화.(사진@ 김재명)

당신의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공동체 지원에 적극 나서 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이제디네 알 카삼' 여단으로 알려진 하마스 군사부문은 하마스 조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현지 취재과정에서 유엔 팔레스타인난민 구호기관(UNRWA)의 한 실무자로부터 들은 얘기가 잊혀지지 않는군요. "하마스는 부패하고 세속적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리들과는 다르다. 이슬람 형제주의(brotherhood) 정신에 바탕, 국제사회의 구호물품들을 이른바 '삥땅'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분배한다"고 말입니다. 정치권의 부패는 지구촌 어딜 가나 문제이지만, 하마스에 그런 문제가 없다는 걸 듣고 참 기뻤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당신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당신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친미국가이고, 따라서 학교교육도 이스라엘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쪽입니다. 그래서 저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스라엘 하면, '키부츠'니 뭐니 해서 불모의 사막지대를 유대인들이 피땀 흘려 옥토로 바꾼 존경스런 국가란 이미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현지를 돌아보면서, "그게 아닌 것 같은데..."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중동 현지에서 머무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그동안 제가 지녀왔던 잘못된 고정관념이 깨뜨려지는 걸 느꼈지요. 어느 한순간엔 "그동안 한국의 친이스라엘 교육에 속았고, 이스라엘 정부의 홍보에 속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300볼트 전구가 켜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천동설을 뒤엎는 그런 순간과 같았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West Bank), 그리고 요르단과 이집트를 취재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곳곳에 난민촌들이 들어차 있더군요. 그들이 대대로 살던 집과 땅을 빼앗긴 채 쫓겨나 고달픈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일부 난민들은 아직도 예전에 살던 집과 땅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빛 바랜 문서를 보여주면서,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20세기 전반기 일제 침략의 선봉인 동척(동양척식회사)이나 지금의 유대인 정착민과 같은 일본 이주민들에게 농토를 빼앗기고 만주 벌판으로 떠나갔던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팔레스타인 고난사 속의 야신**

돌이켜 보면, 당신이 걸어온 가시밭길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고난사(史)와 궤를 같이합니다. 하마스 창립 다음해 여름 이스라엘 군은 당신을 레바논으로 추방하겠다고 위협했었고, 결국 1989년 봄 당신은 수백명의 하마스 대원들과 함께 붙잡혔지요. 9가지 죄목으로 기소된 당신은 무기징역에 15년 유기징역을 더 얹은, 사실상의 장기수 처지가 됐었습니다. 이스라엘 수사기관에서의 엄한 심문 탓에 당신은 오른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고, 15살 때 운동을 하다 목을 다쳐 몸이 온전하지 못했던 당신은 그때의 옥고 탓에 손과 하반신이 마비됐었지요.


사진3.가자지구에서 벌어진 한 하마스 대원의 장례식(@김재명)

이스라엘 당국으로선 하마스 창립자로서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당신이 옥사할 경우 불어닥칠 회오리를 피하기 위해서도 조기석방할 것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런 궁리를 하던 중 한 사건이 터졌지요. 1997년 이스라엘 정보부(모사드)의 두 요원이 옥중의 당신을 대신해서 하마스를 이끌던 칼리드 미샤알을 요르단에서 암살하려다, 오히려 요르단 당국에 붙잡혔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곤경에 몰리자, 당신은 풀려나 가자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오슬로 평화협정(1993년)에 따라 그 무렵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갓 출범시켰던 야세르 아라파트는 당신의 귀환을 축하하면서 이마에 키스를 퍼부었다지요.

그러나 이미 그때도 아라파트 세력과 당신의 하마스 세력은 정치적 노선을 둘러싸고 갈등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하마스는 1차 인티파다 첫해인 1987년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산하 저항조직으로 출범했으나, 1993년 야세르 아라파트가 오슬로 평화협정에 서명하자, 이를 비판하며 PLO를 탈퇴했었지요. 그때 이래로 당신의 하마스는 아라파트 노선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독립이 아닌, 일부지역에서의 자치에 합의한 평화협정을 반대했고, 이에 따른 1996년 팔레스타인 선거를 보이콧했었지요. 결과적으로 파타(Fatah)를 중심으로 한 친 아라파트 세력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의회를 지배하도록 만들었습니다만....

하마스 내부에서도 강경파들은 이스라엘과의 공존이란 불가능하다는 생각들을 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땅"(Historical Palestine)이 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속에는 이스라엘도 들어있다지요. 이스라엘 극우파 지식인의 한사람인 제랄드 스타인버그 교수(바르 일란 대학, 정치학)를 예루살렘에서 만났더니, 이렇게 주장하더군요. "그들(아랍인들)이 우리 이스라엘을 지중해 바닷속으로 수장(水葬)시키려는 음모를 차단하고 이스라엘이 생존하려면, 전략적으로 67년 6일전쟁 점령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무단통치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제게 밝혔듯, 하마스 지도부의 공식적 노선은 "1967년 국경선으로의 복귀"라 알고 있습니다.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당신을 비롯한 하마스의 요구사항이지요.

***하마스는 평화 훼방꾼인가**

국제정치학자들은 내전이든 전쟁이든 간에 한바탕 싸움으로 피를 흘린 뒤 평화협상을 하는 단계에서 이를 가로막는 세력을 '훼방꾼'(spoiler)이라 일컫습니다. 미 부시행정부는 당신의 하마스가 중동평화의 걸림돌이라 주장해왔습니다. 말하자면, 자살폭탄공격으로 중동의 정치적 긴장을 높여, 팔레스타인 온건세력과 이스라엘 당국의 평화협상을 가로막는 '훼방꾼'이란 비판이지요. 그러나 당신의 하마스에 대한 그 같은 부정적인 시각은 부시행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과 유대인 압력단체들의 막강 로비 결과일 것입니다.

사진 4.가자지구 자발리야 난민수용소의 하마스 벽화(사진 @김재명)

당신도 잘 아시듯, 미국내 유대인들은 미국의 안보를 구실로 이스라엘에 유리한 정책을 펴왔습니다. 이른바 '이스라엘 우선의 독트린'(Israel-First Doctrine)이라 하는 것이지요. 미 펜타곤 서열 2위인 폴 월포위츠(미 국방부장관), 서열 3위인 더글러스 페이스(정책담당 국방차관), 리처드 펄(전 국방자문위원장), 루이스 리비(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 켄 멜만(백악관 정치담당관), 엘리오트 에이브럼스(백악관 중동정책 책임자) 등 유대인 네오콘들은 '태생적 모국'인 이스라엘을 위해 일합니다. 오죽하면 9.11 사건이 터지자, 이들이(아울러 이들의 영향권 아래 있는 럼스펠드 국방이) "오사마 빈 라덴이 있는 아프간은 별로 폭격할 게 없으니 이라크를 치자"고 나섰겠습니까. 사담 후세인은 9.11 유탄(流彈)을 맞은 셈이지요. 중동 군사강국 이라크가 무너진 뒤 이스라엘을 위협할 나라는 없어졌습니다. 이란은 거리가 멀고...

당신이 제게 개탄했듯이, 미국은 해마다 약 20억 달러 규모의 군사원조와 10억 달러 규모의 경제원조를 이스라엘에 제공해왔습니다. 이스라엘 헬기가 당신을 향해 쏜 미사일도 십중팔구 미국 군사원조 물품이 아닐는지요. 2001년5월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북부도시 나블러스에 갔더니, 미국이 제공한 F-16 전폭기가 무지막지한 폭탄을 떨어뜨려 팔레스타인 보안건물로 쓰이던 콘크리트 건물들이 박살 났더군요. 미국의 대외원조법엔 그런 군수 원조물자를 침략행위에 쓰지 못하도록 돼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미국 의회에서 그런 문제를 제기한 정치인들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반이스라엘 정책발언을 했다간 벌떼처럼 유대인들이 달라붙는 바람에 다들 몸을 사린다는군요.

***제2, 제3의 야신이 줄 섰다**

사진 5.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정치중심도시 라말라에서 벌어진 하마스 정치집회(사진 @김재명)

이스라엘 현지에서 만난 유대인들은 당신을 가리켜 야세르 아라파트와 마찬가지로 '테러리스트 왕초'라 하더군요. 어떤 이들은 당신을 '독사'(毒蛇)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암살 당하던 날,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뱀의 머리를 잘라냈다"며 기뻐하더군요. 역사(力士) 헤라클레스가 아홉 개 머리를 가진 괴물 히드라(hydra)의 머리 하나를 베자, 거기서 다시 머리 두 개가 생겨났다는 그리스 신화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당신을 괴물 히드라에 빗대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총칼로 저항운동의 대의(大義)를 자를 수는 없다는 진리가 고난의 땅 팔레스타인에서 확인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히드라 얘길 꺼낸 것입니다.

하마스 정치위원회 간부 출신인 압델 아지즈 알 란티시(57)가 당신을 이어 하마스 지도자로 뽑혔습니다. 2002년 가자지구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샤론과 유대인들은 우리 팔레스타인 저항운동가들을 암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매말려 죽이려 들고 있다. 자살폭탄 공격은 우리가 지닌 유일한 저항 수단이다. 이스라엘 군이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하는 잔혹행위를 보라. 걸핏하면 탱크와 아파치 헬기를 앞세워 팔레스타인 난민촌들을 파괴하고 부녀자들을 포함한 비무장 민간인들을 거의 날마다 죽이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예루살렘이나 텔아비브에서 벌이는 이른바 자살폭탄공격은 이스라엘이 벌이는 잔혹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일 뿐이다" 자살폭탄은 다름 아닌 약자의 무기란 논리입니다.

이스라엘 쪽에선 부시 행정부 흉내를 내 "우리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당신에 이어 하마스 간부들을 모두 표적 사살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새로 하마스를 이끌게 된 란티시도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지난해 봄 이스라엘 헬기 미사일 공격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그였지만, 그런 기적이 자주 일어나진 못하겠지요. 그러나 한가지 당신에게 위안이 되는 말씀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대의(大義)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저항의 근본원인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정책이 바뀌어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야신이 등장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벌써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던져 당신의 대의를 따라 순교자가 되겠다고 맹세를 했다는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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