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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 폄하 '정동영 발언' 결코 간과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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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년층 폄하 '정동영 발언' 결코 간과해선 안돼 <시론> 노년층, 잉여인간 아닌 복지사회 실현의 주체세력
열린우리당 당의장 정동영은 청년세대의 투표 독려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그만 의도치 않게 "60-70대 퇴장론"을 거론하고 말았다고 해명했다. 그가 지금 다급한 마음으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으나, 그것이 과연 그가 주장하듯 우연한 실수였을까?

그는 이 대목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사실 대단히 장황하게 자신의 논지를 전개했었다."미래는 이들 60-70대의 것이 아니다, 굳이 투표하러 나오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그냥 쉬라, 왜 자기들이 새로운 세대의 운명을 결정하느냐?"그가 인간과 정치를 어떻게 사고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적극적인 논리가 담겨 있다.

***노년층 폄하, 우연한 실수 아닌 그의 인간관 드러내**

선거는 자라나는 젊은 세대의 미래만 결정하는 정치적 절차가 아니다. 40-50대에게는 당장 매일같이 현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경제생활의 중심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를 놓고 고뇌하게 하며, 60-70대 이상의 노년층에게는 후손들에게 물려줄 이 나라의 장래와 함께 스스로의 열악한 노후생활을 극복해야 할 절박한 과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는 기회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정동영은 정치를 특정세대의 독점물인 양 취급했고, 미래 역시 어느 한 세대의 독자적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호도했다. 신세대에게 특별한 친화력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점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경박하게도 노년세대를 졸지에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이미 역할이 다 끝나 사라져야 할 불필요한 "잉여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청년세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노년세대를 능멸하는 반인륜적 논리를 합리화한 것이다.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3자를 모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어찌 그리도 닮았는가. 이 또한 이른바 "코드 정치"의 연장인가.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정치지도자와 집단의 논리 앞에서 누가 또 희생제물이 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의 정당성 강조 위해 제3자를 모멸의 대상 삼는 논리**

노년층은 역사의 무대에서 이제 적당히 퇴장당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 연령차별로 불이익을 당하기 쉬운 현실과 마주한 역사의 한 엄연한 주체이다. 이들 대부분이 겪는 고통과 소외감은 그보다 나이가 젊은 세대들이 짐작하기 어려운 깊이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선거 때만 표로 계산되는 익명의 동원 가능한 군중이라기보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가는 것이 무섭게 느껴지는 실존적 존재이며 이제 무언가 의미 있는 족적을 그래도 남겨야 되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주체의식을 지닌 세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년층의 남모를 아픔을 껴안고, 함께 역사의 발전을 위해 나설 수 있는 능동적 주체로 이들을 인식하기보다는 역사의 진보에 걸림이 되는 <퇴물>처럼 대한 정동영의 인간인식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런 점에서 노년층은 자신들을 역사에서 한물 간 수구적 세대로 취급하는 정치인과 정당도 단호히 거부해야 하고, 자신들을 수구적 근거로 삼아 결집시키려는 과거지향으로 화석화된 정당 역시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단지 정책적 적선을 하면 되는, 말하자면 선거철마다 급한 김에 내세우는 복지정책의 동정과 수혜의 대상으로만 보는 자세를 가진 정치인들도 위엄 있게 배격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바가 있다. 그것은 "노년층이 복지사회 실현의 주체세력"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의 주동적 요구에 따른 노후생활 보장과 복지정책의 확대는 자녀 교육을 포함한 고강도의 경제적 압박 아래 놓인 40-50대의 부담을 덜고 이들 장년세대 자신의 노년에 닥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사회에 희망을 불어넣는 매우 중대한 작업이다.

***노년층, 복지사회 실현의 엄연한 주체세력**

그러므로 노년층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과거의 수고와 영광을 내세우는 보수적 세대로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 도리어 노년층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세대적 이해만이 아니라 모두의 장래를 위해서, 복지사회를 앞당기는 주체세력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이러한 문제에 남다른 구상과 입장을 가진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치세력의 비약적 성장에 역사적 책무를 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민주노동당에 대하여 비판적 충고를 하나 하자면, 자신을 집권 여당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하는 야당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자세는 대단히 비주체적임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진보세력 초유의 의회 진출이라는 현실을 앞두고 여타 야당을 제치고 국정의 중심세력으로 좌표를 규정하려는 뜻은 알겠으나, 진보 정당의 지위를 이런 식으로 미리부터 제한하는 것은 스스로를 정국의 종속변수로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 이후를 조만간 집권여당의 가능성과 그 면모를 과시할 수 있는 역사의 기회로 대하고 있음을 대중들에게 수시로 알려야 한다. 현실이 그렇다 할지라도 야당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미래의 집권여당으로서의 길목에 서 있는 정치세력이라는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정국을 대해 나갈 때 사안마다의 발언과 전망 제시의 수준은 달라지게 되어 있다.

***노년층도 진보정치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어**

노년층의 문제도, 바로 그런 관점에 서서 이들이 복지사회의 주체세력으로서 진보정치의 중심에 서 있음을 일깨워 나갈 때 그 해결의 길은 열리는 것이다. 지금의 민주노동당은 자신을, 거대 여당이 될 것 같은 열린우리당에 대한 견제세력 정도로 사고하는 한계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자성해볼 일이다. 끊임없이 크게 구상하고 무한히 넓게 바라보려는 자에게 역사는 기필코 장악되는 법이다.

한편, 그런데 정동영의 발언은 오로지 노년층 비하에만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문제의 본질을 그렇게만 파악하면 사태의 진상이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은 지금 "팔루자 충격"으로 온통 경악하고 있다. 점령자 미군에 저항하는 이라크 게릴라에 의한 차량폭파로 사망한 네 명의 미군(또는 군 관련 민간인) 시체가, 난도질당한 채 교각에 걸린 사진은 미국 부시 정권의 이른바 "이라크 해방전쟁"의 기만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바로 그러한 비극적 현실에 우리의 청년들을 파병이라는 이름으로 투입하려는 찰나에 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이 직면하게 될 미래의 한 모습이다.

***팔루자의 충격과 젊은 세대의 미래적 현실**

열린우리당 당의장 정동영은 다름 아닌 이 죽음과 살육, 점령과 진압의 야만적 현실 이외에는 들어설 자리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이 나라 청년세대를 몰아넣는 데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 선 인물이다. 그런 그가 청년 세대의 투표를 독려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전장(戰場)에 죽으러 가라고 떠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의 주역이라고 치켜세운다. 이런 모순된 논리를 구사하는 그가 진정 젊은 세대의 미래를 위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동영, 그가 내심 열린우리당 지지 세력으로 기대하면서 역사의 무대에 중심세력이라고 올려 세운 각성된 20-30대는, 이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파병책임 심판>으로 확고하게 답할 일이다. 그것이 장차 새로운 역사의 주체세력으로서 자라나야 할 세대의 책임감 있는 선택이다.

***20-30대 파병책임 심판으로 총선 임해야**

침략전쟁에 동원될지도 모를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벗과 형제들의 운명 앞에서 이 나라의 장래가 올바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침략파병추진세력이 주류가 되는 현실을 절대로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 더군다나 침략공조 파병을 선두에 서서 옹호하고 정당화한 열린우리당 당의장 정동영의 경우 파병책임 심판의 일차적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팔루자 충격"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찬/반만을 기준으로 하는 선택 속에 파병책임심판은 실종된다. 이것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을 청년세대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 역량을 탄핵 폭풍의 와중에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다. 침략파병으로 인한 세대적 상처를 받게 되는 직접적인 대상은 바로 이들 청년세대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고 평화를 위한 세계적 연대를 도모하는 <진보정치>의 대안을 통해서만이 돌파할 수 있는 과제이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의장이 인간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투철하게 각성하고, 각 세대마다 겪는 고통의 깊이를 아는 지도자라면 이번에 문제된 발언과 같은 이야기는 꿈에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거를 표로만 인식하고 국가의 진정한 장래와 관련된 구체적인 주제의식을 갖지 못한 것을 드러내고 말았다. 집권여당의 수장이 서 있는 인식의 자리가 이렇다면 우리의 우려는 날이 갈수록 보다 깊어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총선의 탄핵정국화 연장 기도는 민중의 진정한 이익에 도움 되지 않는다**

이번 4.15 총선이 탄핵정국의 반사이익과 그 공방 위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된다면 이는 망국 선거가 된다. 이에 더하여 "총선의 탄핵정국화"는 당연히 민중진영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보다 중요한 논제와 기준들을 매장시키는 사태이며, 식민지 정치를 극복할 의지가 전혀 없는 기존 정치권의 특정 정파에게 선거를 헌납하는 반민주적 결과에 봉착하게 한다. "정동영 발언"도 이러한 정국의 현실 속에서 여타 주요 주제들이 사라지고 만 자리에서 나온 것이다.

정치인 개개인을 살펴 누가 진정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이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 그리고 민족적 처지에 대하여 고뇌하면서 국민들에게 힘과 희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분명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지 판가름해야 한다. 그래서 각 세대가 그 세대만이 독특하게 가지고 있는 나름의 가장 아름다운 열정과 지혜, 그리고 역사에 대한 헌신으로 이 나라를 구할 일이다.

표를 찍는 것만으로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여 필요에 따라 동원될 수 있는 비주체적 우중(愚衆)으로 만들려고 하는 정치권력의 끊임없는 음모적 기도에 맞서서, 모두가 "깨어나는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탄핵 찬반으로만 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일이 아니다. 탄핵정국 뒤에 숨어서 어느새 꼬리를 감추고 있는 권력의 부패와 비리, 반민주적/반민족적 처신, 그리고 반민중적 정책의 정체를 분명하게 직시하여 진보정치의 무대를 활짝 열어나갈 일이다. 그것이 이 나라 역사의 참된 발전에 감격스러운 출발을 만들어가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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