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국제정치의 화두(話頭)는 ‘테러와의 전쟁’이다. 국제정치의 주요부분이 이 테러와의 전쟁을 축으로 돌아간다. 9.11 테러사건 뒤 ‘테러와의 전쟁’은 우리 시대의 주요 시사용어가 됐다. 테러와의 전쟁은 9.11 뒤 미국이 알 카에다 조직과 그 동조세력들을 상대로 벌이는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이다. 프랑스의 지성 레이몽 아론은 일찍이 그의 “평화와 전쟁, 국제관계의 한 이론”(1966년판)의 서문에서 “어지러운 시절은 생각을 깊이 하도록 만든다”(troubled times encourage meditation)고 말했다. 부시 미 대통령의 주장대로 우리가 ‘테러와의 전쟁’ 시대를 살고 있다면, 도대체 테러리즘이란 무엇인가. 테러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올바른 것인가(이 글은 시사월간지 <신동아> 5월호에 실린 글을 다시 정리한 것임).
***“테러전쟁은 미 패권 확장의 구실일 뿐”**
(사진)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봉기)에서 숨진 사망자는 이스라엘 주장대로 테러리스트인가, 아니면 순교자인가?(사진 @김재명)
부시 대통령은 테러리스트의 뿌리를 뽑을 때까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거듭 말해왔다. 미 국무부 웹사이트의 테러 관련자료(//www.state.gov/coalition/terr/)를 들여다 보면, ‘테러와의 전쟁’은 금새 끝날 전쟁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웹사이트에서 미 국무부는 “전세계적으로 연결망을 지닌 테러조직을 모두 찾아내 없애버릴 때까지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 밝힌다.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미 MIT대 교수)를 비롯, 부시 행정부의 대외 강공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비판자들은 ‘테러와의 전쟁’이 21세기 미국의 패권을 확장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명분 또는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테러의 개념정의는 그러나 간단하지 않다. 테러 관련기사를 다루는 언론보도들도 용어가 제각각이다. 일부 언론사들은, 특히 중립적인 위치에 서려고 노력하는 유럽의 언론사들은 ‘테러리스트’ 대신에 ‘극단주의자’(extremist), ‘근본주의자’(또는 원리주의자), ‘무장 게릴라’ 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테러리즘이란 용어는 1 더하기 1은 2라는 자연과학의 공리(公理)처럼 단순명쾌하지 못하다.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용어인 탓이다. 미국의 이름난 테러 이론가로 꼽히는 월터 라쿠어(조지타운대 교수)는 그의 책 『테러리즘의 시대』(1988년판)에서 “비록 테러리즘에 관한 객관적인 정의를 내린다 한들,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또다른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것”이라 분석했다.
1980년대 민주화투쟁에 큰 동력을 마련해주었던 “부천서 성고문사건”은 당사자인 문귀동 경장과 전두환정권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그저 “부천서사건” 또는 “부천서 권양사건”이 적당한 걸로 여겼을 것이다. 이렇듯 같은 현상을 어떻게 이름 짓느냐에 따라 성격이 확 달라진다. 테러를 둘러싼 명칭 논쟁도 마찬가지다. 공격을 받는 자의 눈에는 분명히 ‘테러’이지만, 죽음을 마다 않고 자살폭탄 공격을 무릅쓰는 무장세력들의 시각에선, 그들의 투쟁은 정치적 존립을 위한 ‘성전(聖戰)'이고, 그런 공격의 와중에서 죽는 사람은 ‘순교자’다.
***평화시대의 전쟁범죄인가, 정치폭력인가**
‘테러’의 역사적 뿌리를 캐보면 그것이 처음부터 부정적인 뜻을 지닌 폭력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긍정적인 뜻이 강했다. 18세기말 프랑스의 ‘테러의 체제’(regime de la terreur, 1793-4년)는 프랑스혁명(1789년) 뒤 과도기의 사회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때의 ‘테러’는 왕정이 무너진 뒤 혁명정부가 ‘인민의 적’인 반혁명세력을 위협함으로써 권력을 다져나가는 일종의 통치수단이었다. 혁명정부 지도자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절대 왕정의 잔재를 쓸어내 버리고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려면 ‘테러’라는 수단을 써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는 단언했다. “테러는 정의이자 덕(virtue)이다”(로버트 팔머,『민주혁명의 시대』, 2000년판에서 옮김).
테러리즘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오래 전부터 하나의 과제였다. 국제사회는 테러가 일어나선 안 된다는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인 개념규정에선 합의점에 이르지 못해왔다. 그런 사정으로 A국가에게 테러리스트는 B국가의 자유전사(freedom fighter)다.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활동하는 무장 게릴라는 인도 쪽으로 보면 ‘테러리스트’, 파키스탄 쪽에서 보면 ‘자유전사’다. 이같은 논쟁은 비전투원을 공격하는 것만 ‘테러’로 볼 것인가, 다시 말해 비정규 무장세력이 한 국가의 군사시설과 정규군을 공격하는 것은 ‘테러’로 여기지 않을 것인가와 맞물린다.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하마스 게릴라가 서안지구나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스라엘 군을 공격하는 것이 테러로 볼 것인가는 논란거리다.
테러의 정의를 규명한 자료들을 들여다보면, 테러가 뭔지 한마디로 정의 내리는 것은 섣부르다는 걸 깨닫게 된다. 네델란드 정치학자인 알렉스 슈미트는 70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 『정치 테러리즘』(1999년판)에서 1백가지가 넘는 정의를 내렸다. 슈미트는 지난 1992년 유엔 범죄분과위 패널에서 테러에 대한 개념규정을 전쟁범죄에 적용되는 규정에서 빌려오자는 제안을 했다. 1949년에 만들어진 제네바협정의 ‘전쟁범죄’란 비전투원에 대한 의도적인 공격, 민간인을 인질로 삼는 행위, 포로를 죽이는 행위 등이다. 이 전쟁범죄 개념에 바탕, 슈미트는 테러리즘을 ‘평화시의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 당사자는 전시상황에 놓여 있다고 여기며 따라서 스스로를 전투원으로 여긴다.
***‘정치적 요구 실현’이 목적**
대부분의 테러 분석가들은 테러가 ‘정치적 폭력’이란 특성을 지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각자 서있는 자리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린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용어 자체도 미국(대 이슬람 과격파), 영국(대 IRA), 이스라엘(대 팔레스타인), 러시아(대 체첸분리주의) 쪽의 용어다. 그 반대편에 선 세력의 시각에선 ‘민족독립투쟁’이자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 흔히 테러는 ‘약자의 무기(weapon of the weak)'라 일컬어진다.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이 지닌 저항수단은 ‘테러’말고는 마땅한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무장력에서 압도적인 국가조직(정규군과 경찰)에 맞서려면 테러는 불가피한 폭력“이라는 논리다. 결국 테러리즘이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담긴 상대적인 용어다.
19세기 초 나폴레온 전쟁을 겪었던 프러시아의 전쟁이론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유명한 『전쟁론』에서 전쟁을 가리켜 ‘다른 (물리적) 수단들을 동원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으로 정의 내렸다. 테러리즘도 마찬가지다. 폭탄 테러라는 폭력적인 현상은 그 행위자들의 열정과 분노라는 정치적 동기에 비롯되었다. 이 부분은 미국의 테러리즘 연구가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월터 라쿠어와 더불어 테러리즘 전문가로 이름 난 브루스 호프만(미 RAND 연구소장)도 그의 책 『테러리즘의 내부』(1998년판)에서 “테러리즘은 근본적으로, 그리고 원래부터 정치적”이란 정의를 내렸다.
CIA 부설 대(對)테러리즘센터(Counter-terrorism Center) 부소장 출신인 폴 필라도 그의 『테러리즘과 미 외교정책』(2001년판)에서 “범죄행위가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적 요구 실현이 테러리즘의 기본요건”이라고 말했다. 이런 테러리즘 개념규정이 미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테러 연구자들은 정치적 동기보다는 테러로 인한 피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다. 이같은 접근방식은 문제가 있다. 테러행위 자체가 곧 범죄라는 틀 속에서만 테러를 평가하려든다.
테러 연구자들은 정치적 동기를 지닌 테러의 궁극적인 목적이 “공포를 확산시켜 국가로부터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려는 것”이라 입을 모은다. 따라서 테러는 잔인하게 벌어진다. “테러가 온건하게 벌어졌다”는 말은 어법상 모순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 파급효과를 넓히려면, 시각효과와 아울러 심리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테러는 결국 잔인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9.11 동시다발 테러공격이 한 보기다.
테러연구자 브리안 젠킨스는 일찍이 『국제테러리즘과 국제안보』(1975년판)에서 “테러리즘은 극장(terrorism is theater)"이란 짧고도 명확한 정의를 내렸다. 테러리스트들은 언론이란 공간을 거쳐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테러의 동기를 알리려든다. 테러의 공포를 확산시키는 데는 언론매체가 매우 중요한 기능을 맡는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폭력행위가 가능한 한 널리 보도되길 원한다. 테러리즘과 언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共生) 관계다. 그래서 “테러리스트의 가장 친한 친구는 언론”이란 말도 나왔다.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오른팔 알 자와히리가 잊을 만하면 아랍계 언론매체를 통해 대미 지하드를 부르짖는 녹화 테이프를 내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치독일과 이스라엘의 국가테러**
미 국무부는 지난 1983년부터 해마다 봄에 <글로벌 테러리즘의 유형들>(Patterns of Global Terrorism)이란 이름의 보고서를 발표해왔다. 미국이 꼽는 ‘테러조직’은 중동지역의 이슬람계 조직이 대부분이다. 하마스를 비롯, 이스라엘의 억압에 맞서온 팔레스타인계 조직은 대부분 ‘테러단체’로 낙인 찍혔다. 미 국무부가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지목한 이스라엘 쪽 무장조직은 ‘카하네 하이’ 하나뿐이다. 이 조직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헤브론의 이스라엘정착촌에 근거지를 두고 팔레스타인들은 물론 온건한 이스라엘 관리들을 위협해왔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 동조자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마스를 테러조직이라 낙인 찍어온 이스라엘도 지난날 건국과정에선 테러행위로 많은 사람들의 생목숨을 앗아왔다. 그 단적인 보기가 메나헴 베긴 전 이스라엘 총리(1977-83년)다. 1978년 미국의 대중동정책 일환으로 이스라엘이 시나이반도를 돌려주면서 맺은 평화협상은 베긴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겨주었다. 이스라엘이 여전히 팔레스타인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마당에 베긴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것은 (1973년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논란거리로 남았다.
그런 베긴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뒤밟아보면 그는 적어도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한 직후까지도 테러리스트로서의 삶을 살아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극한 테러 명분은 “하느님의 선민(選民)인 유대인이 하느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땅을 되찾기 위한 거룩한 투쟁‘이었다. 베긴은 그가 테러리스트로서 몸담았던 시기에 대해 쓴 『반역』(Revolt, 1977년판)이라는 회고록을 남겼다. 이 책은 1944년에서 1948년까지 베긴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영국통치권자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대로 벌인 테러활동 기록이다.
테러리즘을 흔히 ‘정치적 폭력(political violence)'이라 규정하지만, 모든 정치폭력이 테러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전쟁도 따지고 보면 정치적 폭력의 형식을 띤다. 흔히 전쟁과 테러의 차이점으로 꼽는 것은 전쟁을 이끌어 가는 주체(主體)가 국가인 데 비해, ‘테러’의 주체는 일반적으로 비국가 조직(non-state actor)이란 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국가도 테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치 히틀러의 국가폭력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암살정책은 ‘국가 테러리즘’이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앞 글에 나온 브루스 호프만, 월터 라쿠어 같은 미국 테러 연구자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한계는 테러의 개념을 국가가 아닌 정치적 무장집단들이 저지르는 폭력으로 좁혀 본다는 점이다. 그들은 테러의 결과보다는 무엇 때문에 테러가 일어나는가, 테러의 근본 원인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정치적 변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폭력적 방법이 아닌, 이를테면 선거혁명 같은 합법적인 장치들이 마련돼 있다. 따라서 국가를 상대로 한 정치폭력은 당연히 ‘테러’다. 이런 접근방식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된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분석이다. 정치적 욕구불만을 폭력적으로밖에 풀기 어려운 제3세계에 그런 테러 개념이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가 없다.
미국 연구자들의 시각에선 국가테러리즘이란 개념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약하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들은 국가가 테러를 폭력도구로서 흔히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나치 독일, 군국주의 일본, 스탈린 치하의 옛소련, 그리고 중남미의 1970-80년대 군사독재국가들은 테러를 통치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한참 뒤인 1960년대까지 아프리카 지역을 식민지로 거느리던 서구 열강들은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민족해방운동을 ‘테러리즘’으로 몰아붙여 탄압했었다. 민족해방운동가들의 눈으로 보면, 그런 압제는 다름 아닌 기독교 문명국가들의 ‘국가테러’였다.
***What Went Wrong?**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선 테러가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도 현재진행형이다. 글 맨 앞에서도 살펴보았듯, 금새 끝날 전쟁이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영구(永久) 평화는 무덤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부시가 말하는 ‘테러와의 전쟁’은 영구 전쟁이나 다름없다. 정치적 폭력은 왜 일어나는가, 무엇이 테러리스트들로 하여금 분노와 좌절을 안겨주었고, 끝내는 죽음을 마다 않는 자살폭탄을 터트리는가를 헤아리지 않으면 테러는 끝이 없다.
지난 4월 미 워싱턴 의회 9.11 진상조사위(委)에선 9.11 테러가 왜 일어났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오갔다. 결정적인 문제점은 그 논의의 초점이 순전히 기술적인 부분들에 그쳤다는 점이다. 미국의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로 요약되는 대중동정책을 비롯, 미 대외정책에서 잘못된 점들이 무엇이었기에 9.11을 당했나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인들이 말하는 “What went wrong?"은 ”CIA나 FBI가 테러를 미리 기술적으로 막아야 했는데, 왜 못 막았느냐“는 것이다. 이래선 근본적으로 테러를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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