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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나침반'을 버리면 기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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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나침반'을 버리면 기회가 보인다 [데스크 칼럼] 통합진보당, 마지막 비상구를 열어라
2006년 터진 '일심회' 사건은 2년 뒤인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의 기폭제였다. 민노당 진로의 변곡점이 된 2008년 2.3 임시당대회.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제명안이 부결되면서 민노당은 분당의 외길로 치닫게 된다. 수년간 곪아있던 '종북주의', '패권주의' 논란이 일심회 사건을 통해 분출돼 결국 당을 조각내기에 이른 것이다.

'종북주의 청산' 논쟁은 보수언론이 끌어올렸다. 2007년 대선 직후 비당권파인 조승수 의원의 조선일보 인터뷰가 시발이었다. 제 손으로 보수에게 먹잇감을 던져줬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권파의 상당수는 비당권파가 대선기간에 이미 분당 시나리오를 써놓았다가 대선이 끝나기 무섭게 캠페인에 돌입했다고 의심했다. 심지어 조선일보와 짰다는 얘기까지 공공연했다.

그 즈음 이덕우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심회 사건의 변호인단을 이끌었던 그는 법정에서 국가보안법이 옭아맨 이 부실한 간첩사건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논박했다. 또한 창당 때부터 민노당의 부침을 함께한 당원이되, 정파 대립의 문제에선 한발 비껴있던 사람이기에 그의 말엔 진정성과 객관성이 담겨있음을 신뢰할만 했다. 그런 그가 대뜸 당권파의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부터 입에 올렸다. 당권파가 '고장난 나침반'을 들고 겨울산을 헤매고 있다는 거다. 탈당계까지 써놓았다는 그에게선 절박함이 여실했다.

"창당초기부터 미뤄둔 그 문제는 당직·공직 선거 때 패권주의로 나타났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자는 진보정당 민노당에서 수구 꼴통이라고 비판했던 기성 정당도 하지 않는 짓을 한 거다. (…) 종북주의가 명확하게 있는데 그것을 없다고 하면 안 된다. 누군가 자주파를 향해 마치 유령하고 싸우는 것 같다고 했다. 그 표현이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왜 있는데 없다고 그러나."

그리곤 자신이 변호했던 일심회 사건 관계자들의 출당 조치를 촉구했다. 국보법에 맞서 일심회 피의자들을 변호했던 것과는 별개로, 당원들의 신상정보를 유출시킨 '해당행위자들'을 당규에 의해 징계하자는 공당의 상식에 바탕을 둔 요구였다. 물론 이런 주장 역시 '당원 동지에 대한 믿음'을 갈파하는 당권파의 주장 앞에선 무기력했다.

ⓒ연합뉴스
그때나 지금이나 '종북'이란 용어를 적절한 표현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저 대결적 남북관계의 전향을 바라는 다수의 합리적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종북주의'는 모욕적인 딱지붙이기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종북주의 논쟁으로 쇄신의 입구를 틀어막은 건 시작부터 파괴적 결말을 잉태한 비당권파의 오류였다고 지금도 판단한다.

최근 통합진보당에서 부각된 '경기동부연합' 역시 보수언론이 발굴한 종북주의의 변종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쓰임새는 대동소이하다. 설령 종북 노선을 신주단지로 모시는 경기동부연합이 실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사상의 자유를 엄호하는 진보정당이 마녀사냥에 나서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에 대한 당권파의 무비판적 태도로 인해 진보정당과 국민들의 거리가 멀어진 사실마저 가려주지는 않는다. 당권파가 2007년 권영길 대선후보를 통해 미래비전으로 내놓은 '코리아연방공화국'은 3.01%라는 처참한 득표율로 돌아왔다. 북한 핵실험이라는 초미의 사건에 대해 당 정책위의장이 "북핵은 자위적 측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고 한 발언도 대중정당이 취할 태도는 아니었다.

굳이 이 시점에 북한에 대한 당권파의 태도를 되짚는 까닭은 그들의 정치·조직 노선이 패권주의와 상당히 긴밀한 상호작용을 해왔기 때문이다. 4년 전 일심회 사건을 정점으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논란이 결부됐던 것처럼, 현재의 통합진보당의 논란도 경기동부연합의 정체 논란과 선거부정 문제가 결합해 파열음을 크게 만들고 있지 않나.

또한 2001년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이라는 이른바 '9월 테제'가 제출된 이후 "자주·민주·통일이라는 거룩한 대강령"을 실천하기 위한 정파적 목적으로 진보정당에 결합,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갖은 불법·편법을 자행한 당권파의 과거를 '용산 사태'가 대표하지 않나. 패권주의란 결국 당권파가 자신의 정파 노선을 무리하게 관철시키려다 빚은 크고 작은 패악의 종합적 표현 아닌가.

그들이 지금 "총체적 부정"을 저지르면서까지 비례대표 경선에 사활을 걸었던 맥락, 온통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사퇴 요구를 거부하는 맥락에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 전략이 깔려있다는 분석을 비단 음모론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껏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온 그들이 오로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국회의원직에 연연한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정치의 위기가 시작되고 악화된 원인과 결과를 모두 당권파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부당하다. 당권파의 행태가 싫다고 독자적으로 당을 차린 진보신당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지었다면 모를까. 그러나 당권파가 불변적으로 채택한 노선과 그로인한 불·편법적 행태의 상호 관계를 드러내 치유하고 이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면 지난 10년간 진보정당의 발전을 가로막은 문제의 근원이 해결될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역설적으로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가 '고장난 나침반'을 버리려는 변화의 징후 또한 보여줬다는 점에서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비례1번 윤금순 당선자가 선도적으로 사퇴했다. 민노당 대표를 지낸 강기갑 의원도 이정희 대표를 향해 "야욕과 집착을 끊고 버려야 할 땐 정말 버려야 한다. 그것이 진보정당의 새로운 싹을 틔울 결단"이라고 했다. 모두 상식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당권파들의 목소리다.

12일 열릴 예정인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는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비상구다. 논란이 되고 있는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중앙위가 비례대표 당선자들에 대한 사퇴 결정과 부정선거 관련자들을 당기위원회에 회부해 이번 사태에 정치적 종지부를 찍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의결하는 건 전환의 첫 단추다.

그 뒤 통합진보당이 사력을 다해 집중해야 할 건 '노동 없는 진보정치'라는 가장 깊고 끈적한 늪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일이다. 노동자 벨트에서 단 한명의 당선자를 내지 못한 진보정당이 무슨 염치로 이전투구인가. 호사가들의 숱한 '한말씀'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현장이 무너진 자리, 종파만 독버섯처럼 자란다. 대의를 거스르는 어떤 계파나 분파적 행위도 대중들의 신뢰를 잃을 뿐"이라고 트위터에 거칠게 올린 글이 가슴에 닿는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정당사의 첫 장을 돌아보길 바란다. 단순하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 해보자던 것 아니었나? 위기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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