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 상 수상자인 시무어 허시는 올 들어 아부 그라이브 감옥 학대사건을 심층보도, 폭로전문기자로 이름을 드높였다. 그의 최신간 ‘지휘계통: 9.11에서 아부 그라이브까지’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둘러싼 비화들을 다뤘다.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 자이툰 부대가 주둔중인 쿠르드 지역에서 이스라엘 정보요원들이 은밀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부분이다. 아래는 시사월간지 <신동아> 11월호에 실린 필자의 요약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필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이스라엘 샤론 정권은 2003년 7월, 부시 행정부에게 이런 경고를 전했다.
“올 여름철이 지나면서 이라크 주둔 미군은 차량폭탄 공격을 비롯해 아주 극렬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이라크에서 활동 중인 이스라엘 첩보원들은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이란 정보요원들과 아랍 무자헤딘들의 은밀한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이들은 경비가 허술한 이란-이라크 국경을 제집 드나들 듯 넘나들고 있다’고 알려왔다. 이런 정보에 따라 이스라엘은 부시 행정부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9백마일에 이르는 이란-이라크 국경선을 봉쇄해야 한다”고 강력히 건의했다.
(사진) 시무어 허시의 신간 ‘지휘계통’ 표지(@프레시안)
***바라크 전 총리, “미국은 이길 수 없다”**
부시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던 미국의 한 전직 고위관리는 지난해 가을 이라크에 가서 그곳 상황을 살피고 크게 실망했었다. 그 바로 뒤 이스라엘로 갔던 그는 이스라엘 고위 정치인들, 정보 관계자들과 만나 볼멘 소리를 들어야 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잘못하고 있다. 우리 이스라엘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짜서, 그런 상황에 대비를 해야만 하는가?” 전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바라크는 딕 체니 미 부통령을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이길 수 없다고 봅니다. 남은 문제는 이라크에서 미국이 얼마나 체면을 구기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아리엘 샤론 정권은 2003년 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부시행정부는 이라크에 안정이나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는 데 실패할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라크의 혼란스런 상황을 미국이 안정 쪽으로 돌리는 것은 틀렸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이라크에서 패배하지는 않겠지만, 정치적으로 패배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따른 혼란이 이스라엘에 끼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라크 쿠르드족과의 관계를 보다 밀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2004년 여름부터 이스라엘 정보요원들은 쿠르드 지역에서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쿠르드 특공대원들을 훈련시키는 한편으로 이스라엘로서 보다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 임무란 이란과 시리아의 쿠르드족 밀집 지역에서 비밀작전들을 벌이는 것이다. 쿠르드 지역에 파견된 이스라엘 요원들 가운데는 해외정보 수집과 분석기능을 맡아온 모사드 요원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업가로 행세하거나, 아예 이스라엘 여권을 몸에 지니고 않고 다니기도 한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한 고위간부는 이스라엘 요원들이 쿠르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이 그곳(쿠르드 지역)에 머물러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당국으로부터 허락을 받았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어느 누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뭘 해라 말라 말하는 걸 봤는가? 그들은 언제나 국가이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쪽으로 움직일 뿐이다”
***플랜 B에 따라 모사드 요원 파견**
한 이스라엘의 전직 정보요원은 이스라엘 공작원들을 쿠르드 지역으로 보내기로 한 샤론 정권의 결정은 모사드에선 ‘플랜 B'라고 일컫는다고 귀띔했다. 터키 정부는 ’플랜 B' 때문에 이스라엘과 긴장관계에 있다. 터키의 정치인들은 플랜 B를 아주 못 마땅하게 여긴다. 터키뿐 아니라 이란, 시리아에도 한결같이 제법 많은 쿠르드 족이 살고 있다. 따라서 이란과 시리아도 이스라엘의 플랜 B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2004년 6월, ‘정보 요약’(Intel Brief)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실렸다.(‘정보 요약’은 전 CIA 대(對)테러 부서 책임자였던 빈센트 캐니스트라로, 그리고 1980년대 후반 CIA 이스탄불 부지부장을 지낸 필립 지랄디가 펴내는 정보 소식지다.) “터키의 정보소식통들은 ‘터키정부가 쿠르드 지역에서의 이스라엘 요원들이 독립국가를 이루려는 쿠르드 족들의 야망을 부추길지 모른다는 점을 점점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알려왔다. 터키인들은 이스라엘의 대규모 정보활동이 이라크 북부 지역뿐 아니라 시리아와 이란의 이라크 접경지역 일대에 사는 쿠르드 족들로 하여금 반(反) 시리아-반이란 행위를 부추길 것이라 판단한다”
이스라엘이 쿠르드 지역에 개입한 역사는 오래 전부터다. 1960년대와 70년대 이스라엘은 적극적으로 쿠르드족의 봉기를 도왔다. 중동지역의 비(非)아랍 세력과 연합을 하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적 정책 목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75년 쿠르드족은 미국에 배신을 당했다. 워싱턴의 포드 행정부는 이란의 팔레비 왕정이 자치를 열망하는 이라크 쿠르드 족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결정을 지지했다. 배신과 폭력은 그 다음 20년 동안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 됐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지금 이라크에서는 쿠르드 족이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의 중심도시인 키르쿠크를 차지하려들 것이란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 키르쿠크의 다수 주민은 아랍계 이라크 인들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1970년대 사담 후세인이 키르쿠크 일대를 ‘아랍화(Arabize)’하려는 계획에 따라 옮겨온 사람들이다. 쿠르드족은 키르쿠크와 그 일대의 유전지대를 그들의 역사적인 고향으로 여긴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키르쿠크를 차지한다 해도 석유를 제대로 수출하기가 어렵다. 송유관이 수니파 이라크인들이 지배하는 지역을 지나기 때문이다”
만일 쿠르드 족이 독립국가를 이룬다면 지정학적으로 봐 이스라엘과 앙숙인 이란과 시리아를 견제할 수 있다. 독일 정부의 안보분야에서 일하는 한 고위관리의 증언. “부시행정부 안의 일부 사람들, 특히 (유대인 네오콘 출신으로 이스라엘의 국가이익에 큰 관심을 갖고 챙겨온) 국방 부(副)장관 폴 월포위츠와 그의 측근들은 쿠르드족이 독립국가를 세워도 나쁠 것 없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풍부한 석유자원을 지닌 쿠르드 독립국가의 출현은 이웃나라인 이란, 터키, 시리아의 안보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친다”
***쿠르드 특공대, “미 특수부대 못하는 역할 맡아“**
미 정보관계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2004년 6월 이라크 주권 이양 뒤 쿠르드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스라엘 요원들의 단기적 활동 목표는 이라크 시아파 무장세력들과 군사적 균형을 이루도록 쿠르드족 특공대를 양성하는 것이다. 한 정보관계자는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시아파 바트당(후세인 정권 당시 집권당) 무장세력이 반미저항의 주도권을 잡는다면, 이스라엘은 그 특공대를 적극 활용할 것이다” '페슈메르가'(Peshmerga)라 일컬어지는 쿠르드족 민병대 규모는 7만5천명. 이라크 수니파와 시아파 민병대를 합친 숫자보다 많다.
이스라엘의 한 전직 정보요원의 증언. “2003년 말부터 이스라엘 요원들은 쿠르드 특공대를 훈련시켜왔다. 군사훈련의 수준은 매우 높아서, 이스라엘의 비밀 특공대 미스타라빔(Mistaravim)의 훈련과 똑 같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미군 특수부대가 규정상 수행하기 어려운 작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아파와 수니파 저항세력 내부에 침투, 정보수집과 지도자를 죽이는 임무 따위다. 이런 임무들은 저항세력을 제압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 여겨진다”
한 전직 정보요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마키아벨리 같은 수법으로 쿠르드 족을 지원해왔다. 사담 후세인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게 바로 현실정치(Realpolitik)라고 봐야 할 것이다. 쿠르드족과 손을 잡음으로써 이스라엘은 이라크는 물론 적대국가인 이란, 시리아를 견제하고 정보를 챙기는 눈과 귀를 얻게 된다. 바로 그런 이유로 미 부시행정부는 이스라엘이 쿠르드 지역에 근거지를 마련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지 않았다. 문제는 터키다. 이라크 아랍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훈련시킨 쿠르드 특공대가 터키 안으로 침투 공격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터키 관리들 “좌시하지 않겠다”**
패트릭 클로슨(워싱턴 중근동정책연구소 부소장)의 증언. “이스라엘 안보에 관한 한 이란이 가장 골치거리다. 쿠르드 지역에 이스라엘이 근거지를 마련한다는 것은 이란의 동향, 이를테면 핵무기 개발 움직임 따위를 감시할 수가 있다” 다른 전직 미 고위 정보요원은 “이스라엘이 쿠르드족과 유착관계를 맺는 것은 터키와 유대관계를 맺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길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터키에게 “우리 이스라엘은 터키를 사랑하지만, 이란에 압력을 가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걸로 추정한다.
2004년 여름 터키 앙카라에서 만난 고위 관리는 이렇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에 이스라엘 요원들은 쿠르드 지역에서 활동했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그들은 다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터키는 이라크 영토가 쪼개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되도록 좌시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벼룩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담요를 태워버린다’는 터키 속담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못을 박았다. “현재의 이라크 영토가 보존되는 한 터키는 참을 수 있지만, 그 말고 다른 대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스라엘과 쿠르드족은 잊지 말아야 한다”
또다른 터키 고위관리의 음울한 전망. “이라크가 쿠르드와 아랍 이라크(시아, 수니)로 나뉘어진다면 지금보다 더한 유혈사태와 고통이 중근동지역을 몰아칠 것이다. 그때 누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겠는가. 멕시코에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비밀스런 목적이 있다고 여긴다. 만약 이라크가 쪼개지고 쿠르드족이 석유산지인 키르쿠크를 차지하려 든다면, 키르쿠크는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의 사라예보처럼 유혈사태를 겪을 것이다. 그런 사태의 근본적 책임을 져야할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세계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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