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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이강국의 '격동, 세계경제' <13> 연대와 공화주의의 회복
푸른 공 같은 지구 위로 떨어지는 화염병이 온 화면을 불태우며 시작되는 영화. 마티유 카소비츠의 <증오(La Haine)>는 레게와 랩 음악을 배경으로 다큐멘터리처럼 파리 밑바닥 이민청년들의 분노의 폭발을 그린다. 24시간 동안 카메라는 파리 교외 방리유의 빈민가, 차별과 빈곤으로 억눌린 이민청년들의 발자취를 따라 불타는 파리의 거리와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흑백 톤으로 담는다.

한 아랍소년이 경찰의 고문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후 발생한 소요와 폭력, 계엄령이 선포된 거리에서 파멸해가는 그들. 형사의 실수로 총에 맞아 쓰러진 친구 곁에서 경찰과 서로 총으로 머리를 겨눈 다른 청년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은 괜찮아… 우리는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착륙하는 거야." 그 직후, 폭발하는 총성 그리고 암전.

10년 전 프랑스를 강타한 이 영화를 학교 캠퍼스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보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저 그 폭발하는 감정만은 왠지 이해가 되던 철없던 시절. 며칠 전 터져 나온 파리 이민청년들의 소요사태로 불타는 파리의 거리를 보고 새삼 그 영화가 떠올랐다.

***불타는 프랑스**

지난 달 27일부터 시작된 파리 교외의 이슬람계 이민자들의 폭동 사태가 10여 일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수천 대의 차량이 불타고 사태는 급기야 파리 시내와 다른 도시로까지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아프리카계 청소년들이 경찰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 감전사한 뒤 발생한 이 사태는 많은 이민 2, 3세대 빈민 청년들의 폭동과 파출소 습격 그리고 경찰의 진압과 시위대의 총격 등 극한상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비상사태법을 발동하고 부분적으로 통행금지를 실시하기도 했다.

10년 전의 영화가 예언이나 했던 것 같은 이 사태는 갈라진 현재 프랑스 사회의 아픈 단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영화가 차별받는 이민 청년들의 소외와 분노를 생생히 그려냈던 것처럼 프랑스에서 이들의 빈곤과 열악한 현실은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심각한 갈등의 도화선이 되어 왔다.

식민지 해방 이래로 많은 아랍계와 아프리카계의 이민자들이 프랑스 등 유럽의 선진국에 진출했다. 이들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유럽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지만 생활과 소득수준은 열악해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반면 유럽인들의 반감도 높아지고 있다. 70년대 파리 교외에 이들을 위한 빈민촌이 형성될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지만, 80년대 불황으로 실업률이 높아지자 이제 모자라는 일자리를 이민청년들이 빼앗아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배경으로 국수주의에 호소하는 반동적 극우파의 기세도 높아지고 있는데, 2000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는 극우파 후보 르펜이 사회당의 조스팽을 꺾고 2위를 차지하여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실제로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과 질시는 이번 사태를 촉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은 이슬람계의 감정을 더욱 자극했고, 특히 2007년 대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그 자신도 이민 2세인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시위자들을 '쓰레기'로 표현한 것도 불타는 소요 사태에 기름을 끼얹었다. 게다가 가난한 이민자들을 주로 교외에 수용한 정부의 도시정책도 이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유럽의 고민과 갈라지는 프랑스 사회**

빈곤과 이민 문제는 경제적으로는 또한 80년대 불황과 함께 더욱 거세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그리고 세계경쟁의 물결이 가져다준 충격과도 관련이 크다. 그나마 사회통합을 지켜내고 있는 유럽의 선진국들도 이러한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그래도 미국과는 천지 차이지만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의 북구 국가들의 복지체제는 약화되었고, 불황과 높은 실업률을 배경으로 독일도 시장주의적 개혁을 도입하며 제3의 길로 나서려다 정치적인 혼란을 겪고 있다. 프랑스도 저성장과 경쟁력 약화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똘레랑스와 솔리다리떼를 지켜가고 있지만 상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현실은 유럽의 가난한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실업률이 높은 유럽에서 고통의 부담은 부분적으로 밑바닥 이민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들의 경제적 조건은 유럽인들과의 피부색 차이만큼이나 크게 차이가 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프랑스의 경우 전체 국민의 약 8퍼센트가 넘는 비중이 이슬람계인데, 소요가 시작된, 가난한 이민자가 밀집한 센-생-드니의 저소득 지역의 실업률은 프랑스 평균의 두 배가 넘고 소득은 반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25세 미만 무슬림 청년 이민자들의 실업률은 평균의 3배에 이르는 36%에 이르러 사회적 소외감과 불만이 극도로 높아져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번 폭동의 뿌리에는 빈곤, 이민, 계급갈등 그리고 민족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세계화와 기술적으로 급속하게 변화하는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서 더욱 심각해져 가는 빈부격차의 모순이 이민자와 인종 문제의 탈을 쓰고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서양 건너편 태풍으로 드러났던 추악한 빈부와 인종 문제가 미국만의 것은 아닌 것일까. 이제 샹젤리제 거리의 불빛 뒤 어두운 뒷골목에 숨어 있던 이런 모순과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연대와 사회통합, 그리고 유럽의 미래**

68혁명 때보다도 재산피해가 더 클 것으로 추정되는 이번 사태에 대해 프랑스의 빌팽 총리는 평등이라는 이상을 위한 이민자 통합 정책이 실패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회에 출석한 총리는 교외지역의 차별이 심각하며 새로운 통합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그리고 폭력사태의 진정과 함께 소외된 지역과 빈민들을 공화국에 통합시키기 위해 반차별기구의 설치,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 창출, 사화단체에 대한 재정지원, 감세로 지원되는 특별 경제구역 설치 등을 제시했다. 또한 불법적인 이민에 대한 강력한 통제도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모두 동등한 시민이라는'공화국' 프랑스에서는 인종별의 인구나 취업통계조차 내지 않으며 소수민족에 특혜를 주는 제도도 금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슬람계나 아프리카계의 진학률이나 실업률에 대한 자세한 통계나 이들을 위해 특별한 대책을 마련할 근거도 취약한 사정이다. 미국과 같은 소수자 우대정책은 오히려 '반공화주의자'라는 이름으로 비판받아서 정작 평등과 연대는 이념뿐이라는 비판도 높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랍 이름으로는 취직도 어려운 슬픈 현실은 '공화주의'라는 앙상한 관념을 넘어서서 얼굴에서부터 시작되는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이렇게 이민자 문제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유럽사회의 양극화는 이제 유럽통합을 위한 대장정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EU 헌법의 비준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프랑스 국민들은 비준을 반대하여 통합유럽의 앞날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는 역시 어려워지는 경제와 사회안전망의 퇴보 등으로 민심이 시라크 정부에 대해 등을 돌린 탓이었다. 또한 프랑스 국민의 민족주의와 가난한 유럽 나라들의 값싼 노동자들이 국내로 밀려올 수 있다는 불안, 그리고 이슬람 국가 터키의 EU가입 반대 등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좌파와 노동자들은 특히 이 헌법이 미국식의 신자유주의를 강화시켜 프랑스의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약화시키고 연대와 사회통합을 깨뜨린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자율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유럽통합의 가속화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노동자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 우려했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유럽통합을 위해서도 국내적인 사회통합의 노력이 필요함을 잘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많은 이들은 진정한 유럽사회의 통합을 위해서는 유럽 전체 인구의 5%에 이르는 이슬람계를 포함한 이민자들을 진정한 유럽인으로 흡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실패한다면 유럽합중국은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은 작년 유럽에 살고 있는 수십 명의 이슬람계 테러리스트들이 일으킨 마드리드 열차 테러 등에서 잘 나타난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영화 <증오>는 엄청난 흥행을 일으키며 프랑스를 강타하고 결국엔 28세의 그에게 칸느의 감독상을 안겨줬다. 스스로도 헝가리 출신 이민 2세인 이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사회전복을 이야기하며 '부르주아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충분히 놀라거나 걱정하지 않았는지, 현실에서 터져 나온 오늘의 사태는 다시금 어둡고 소외된 이들의 눌린 분노에 주목하게 만든다.

물론 프랑스에 오랜 자유, 평등, 박애의 전통과 훌륭한 민주주의가 있었기에 그나마 이렇게 불만이 소요로 터져 나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며, 이는 어쩌면 사회의 역동성과 건강함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떻든 이번 사태는 연대를 위한 프랑스인, 아니 유럽인들의 반성과 새로운 통합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며, 이는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도 아메리칸 드림보다 뛰어날 수 있는 유러피안 드림의 기초는 이민자도 포용하는 관용과 사회공동체의 통합이라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불타는 파리의 시가지를 보고 다른 영화도 문득 떠올랐다. 1966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는 2차대전 당시의 일화에 기초하고 있다. 1944년 8월 파리를 점령하고 있던 독일군 중장 콜티츠는 히틀러로부터 연합군이 파리를 수복하면 파리 전역을 방화, 폭파하라고 명령했지만 그 명령을 듣지 않아서 노틀담 성당, 루브르 등 아름다운 파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의 항복 이틀 후 드골이 파리에 입성했고 그는 파리 시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히틀러가 그에게 전화로 다그치던 대사가 바로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Is Paris Burning)'였다.

아름다운 파리를 구해낸 것은 한 독일 장군의 문화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민들의 아름다운 연대와 공화주의는 문화재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를 분노의 불길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는 차별과 억압을 넘어서는 인간애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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