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황우석 사태의 진실, 그리고 기술경쟁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황우석 사태의 진실, 그리고 기술경쟁 이강국의 '격동, 세계경제' 〈14〉 한 경제학자의 시각
***세계화, 무한경쟁, 그리고 첨단기술**

스위스의 노바티스 사는 2001년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개발하여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독점적인 특허와 너무 높은 가격 책정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외면한다고 전 세계 시민들의 비판을 받고도 있지만, 아무튼 세계 5대 제약회사가 된 노바티스는 글리벡 하나로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린다.

CDMA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퀄컴에게 한국 업체들이 지불한 로얄티는 1995년 이후 2조 원에 달한다. 휴대폰 하나가 50만 원이면 2만6000원은 그저 퀄컴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사실 CDMA는 한국 덕분에 상용화되어 빛을 본 기술이지만 퀄컴이 한국 업체에게 부리는 횡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계화된 무한경쟁 시대에 경쟁력은 역시 기술, 특히 원천기술에서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한 양질의 교육과 인적자본 육성, 그리고 연구개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각국은 미래의 첨단기술을 확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시장과 민간 부문에 모든 것을 맡기고 정부는 그저 손을 떼야 한다는 논리가 득세하고 있지만, 첨단기술 경쟁은 사뭇 다르다. 막대한 자금과 장기적 지원이 필요한 기초기술 분야는 예외 없이 정부 등 공적인 지원이 있어 왔다. 실제로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인터넷 기술조차 미국 국방부 연구센터(DARPA) 내부의 네트워크 기술에서 시작되었고, 컴퓨터 산업도 정부 지원에 기초한 미국의 군수산업 발전과 함께 성장해 오지 않았던가.

유럽연합은 100조 원에 달하는 연구개발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일본도 최근 국가적 차원의 7대 성장산업 육성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중국도 이미 1986년도부터 5년 단위의 신기술 개발 계획인 소위 863 계획을 정부주도로 추진 중인데, 최근의 육성 프로젝트로는 정보기술과 생명, 농업기술이 대표적이다.

미국 정부도 민간주도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기술개발에 공격적이다. 2000년대 이후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크게 늘어나 2006년 연방정부 예산에서 기초과학 연구예산만 260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미 국립보건원은 정부의 적극적 지원에 기초하여 휴먼게놈 프로젝트 등 세계의 생명공학 연구를 주도하고 있으며,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은 2004년 나노테크놀로지 이니셔티브를 통해 매년 10억 달러를 이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생명공학 그리고 바이오기술**

돌아보면 90년대부터는 정보통신기술의 시대였다. 이상과열로 인한 버블도 없지 않았고 생산성에 미치지 못하는 효과 등 그 기여에 대해서 논란도 없지 않지만 어떻든 미국의 신경제는 압도적인 IT 기술 발전에 부분적으로 기초한 것이었다.

이제 많은 이들은 미래를 주도할 다음 기술로서 생명공학을 지목한다. 그 위험성과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바이오기술은 정보통신 기술 이상의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 신기술이라는 것이다. 미국 신경제의 대두를 최초로 예측한 '인터넷공황'의 저자인 마이클 만델은 신경제가 단기적인 불황을 겪더라도 바이오기술 등 더욱 엄청난 기술혁신이 다음 번의 호황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0년까지 수백조 원대의 바이오산업의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속속 제시되고 있다. 굳이 공상과학영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실험실에서 개발된 첨단기술만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제약과 의료산업을 생각해보면 그 잠재력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최근에는 한국 정부도 바이오 신약, 장기 산업을 차세대 10대 성장동력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기술수준과 지원의 규모도 세계적인 수준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황우석 사태**

언젠가부터 그 바이오기술이 한국경제의 희망이 되기 시작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복제는 한국의 바이오기술을 일약 세계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았고, 아니 적어도 그랬다고 믿어졌다. 2005년 바이오 관련주들은 몇 배씩 폭등하며 시장을 달궈놓았고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관련 특허 그리고 세포치료제 개발 등의 소식은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서 바이오기술에 엄청난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12월. 황교수의 논문조작이 드러났고 온 나라가 경악과 혼란에 빠져 있다. 이제 사태는 온갖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진실게임으로 비화되고 있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언론플레이에 능했던 황교수의 업적 전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반면, 다른 편에서는 공동연구자 내부의 갈등과 배신도 운운되고 있다.

한 가지는 명확하다. 2005년 논문조작으로 인해 황교수는 학계의 신뢰를 잃었으며 연구의 주도자로서 누구보다도 큰 책임이 있다. 그리고 윤리문제에 관해서도 몇백 배 더 조심하고 신중했어야 할 일이며 역시 사회 전체의 합의를 위한 노력이 선행했어야 할 것이다.

애국주의에 기대서 황교수를 무조건 지지하며 비판을 억누르던 이들도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 또한 항상 냄비같은 언론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진실을 고발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이겠지만, 스타 만들기에 앞장섰던 언론들이 반대로 스타 끌어내리기에도 앞장서는 듯한 모습을 보는 것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더욱이 황교수 사태로 갈라져서 치고받는 국론의 분열은 정말 안타깝고 우려할 일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철한 분석과 이해타산 없는 진실에 대한 추구가 아닐까.

***풀리지 않는 의혹**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의혹들은 여전히 많아 보인다.

먼저 기술의 존재 여부.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로 핵치환에 기초한 배반포까지의 복제기술은 있는데 배양기술이 모자란 것인가, 아니면 복제의 능력조차 의문스러운 것인가. 그 모두가 가짜라면 서울대와 섀튼, 그리고 미즈메디가 신청한 여러 특허와 지금도 등록 분양되어 있는 줄기세포들은, 그리고 영장류를 대상으로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실험은 또 무엇인가.

이보다 더 기가 찰 일은 보고했던 줄기세포가 2004년과 2005년 논문 모두 바뀌었다고 한다면 도대체 누가 저지른 일인가 하는 것이다. 황교수 주도의 자작극? 미즈메디 병원? 아니면 양측 다 모두 알고 있던 공범이었는데 이제 와서 서로에게 책임 떠넘기기일까.

어찌 되었건 황 교수에게는 자신의 연구 결과 조작 혹은 관리의 책임을 엄정하게 물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의혹의 눈초리는 이제 황우석 교수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도대체 누가 먼저 속이고 누가 당했는지를 명백히 밝혀내고, 심지어 연구의 주도권 다툼이나 기술유출 가능성을 둘러싼 막후까지 캐라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진실의 규명 그리고 과학기술**

때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욱 드라마틱하다지만 이쯤 되면 극장에서도 대히트를 칠 만한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 추리극이다. 그 결론은 과연 무엇일까.

누가 진짜 범인이건간에 국민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오로지 진실일 것이다. 곧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가 예정되어 있고, 참담한 일이긴 하지만 공은 이미 검찰로도 넘어가 있다. 황우석 교수든 노성일 이사장이든 문신용 교수든 그 아래의 연구원이든 관련자라면 그 누구든 철저히 조사할 일이다. 나아가 재연이든 그 무엇이든, 어떤 이해와 편견도 배제한, 공명정대하고 지혜로운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줄기세포 연구가 정말 중요한 국가적인 원천기술의 문제라면 정부로서도 손발 걷어부치고 진실은 규명하고, 충격에 빠진 이 부문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국내기술 보호와 촉진이라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학자들의 연구조건을 개선하고 기초과학 연구에 대해 더욱 투명하고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 힘쓸 필요가 있다.

이미 논문의 책임에서 발뺌하던 피츠버그대의 섀튼 교수도 황 교수의 연구와 유사한 특허를 신청해 놓은 상태라고 보도되고 있다. 반발도 있지만 캘리포니아주는 2004년 말 이미 향후 10년간 약 30억 달러 규모의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대대적 지원을 결의했다. 이들은 특히 한국 과학자들을 유치하려 노력하는 등, 황우석 사태로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갈 길이 많이 바쁜데 우리는 어쩌면 자중지란에 빠져 버린 것은 아닌지.

황우석 교수 파문으로 혼란만이 가중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해외에서 바라보는 마음은 무척이나 무겁다. 금융위기라는 쇼크와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먹고살기 힘들어진 살림과 희망을 잃어버린 세태가 어쩌면 황우석이라는 스타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만들었던 것일까.

이 사태로 우려스러운 점은 역시 한국경제의 미래가 달린 기초과학 기술발전이 위축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하루속히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열악한 조건 하에서도 밤새 실험실의 불을 밝히고 있을 현장의 연구자들과 혼란에 빠진 국민들, 그리고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가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