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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도시와 주거생활, 어떻게 바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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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도시와 주거생활, 어떻게 바뀌고 있나? '2006년 북한은 어디로?' 사회문화편 <2>
최근 들어 평양을 비롯한 원산, 함흥 등 북한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낡은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색색의 보도블록을 새로 까는가 하면, 우중충한 아파트와 건물 벽면을 개칠해서 새롭게 단장하고, 지은 지 수십 년 된 허름한 건물들을 헐어내 현대식 주택과 건물을 짓는 등, 도시 곳곳을 꽃단장하고 있다. 이처럼 도시가 생기를 되찾아가는 모습은 건물 신축이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해서 '유령 도시', '죽음의 도시'를 연상시켰던 '고난의 행군' 시절의 북한 도시와 비교한다면, 괄목할 만한 변화상이다.

이러한 변화가 과연 북한의 도시가 오랜 정체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징표일까? 또 이를 통해 기아선상을 헤매던 도시 주민의 일상생활이 크게 나아질 수 있을까? 이하에서 이러한 북한 도시의 변화 양상을 살피고, 그 의미를 따져보자.

최근 북한 도시의 변화는 체제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인데,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되고 있다. 그 한 줄기는 국가가 도시 공간의 개발 및 정비를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움직임이고, 다른 한 줄기는 도시 주민들이 도시의 기능과 위상을 변모시키면서 도시 공간 구조를 재편하려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다.

무력한 '위로부터의 도시화' 흐름
▲ 평양 시내의 아파트 외부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보수하고 있는 북한의 노동자들. ⓒ연합뉴스

'위로부터의 움직임은 경제난으로 인한 체제 위기를 수습할 목적으로 국가가 주도해서 계획적으로 도시화를 추진하는 흐름을 가리킨다. 이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하나는 도로, 대중교통수단, 상·하수도, 에너지 공급 등 도시의 기반시설 및 생활편익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도시의 활력을 잃었다고 판단해서, 국가가 취약한 도시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시가지를 정비하려는 방안이다. 이는 기업소의 가동률 저하로 남아도는 유휴인력을 활용하는 '군중 동원'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 결과 평양 시내 곳곳에서 보도블록 교체, 상·하수도 개·보수, 건물 개건(改建, 리모델링) 사업이 잇따르고, 청진, 함흥, 원산, 강계, 회령, 평산 등 지방 곳곳에서도 건설 사업이 제법 활기를 띠고 있다.

다른 하나는 현지교시 방식으로 무질서하게 이루어지던 도시 개발 사업을 조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도시 개발 관련 법규를 정비하려는 방안이다. 법제적 근거 없이 다소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던 도시개발 사업의 법률적 골격을 제공할 목적으로 2003년 제정된 '도시계획법'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변경지역 도시에 경제특구를 지정해서 개혁·개방의 견인차로 활용하려는 방안이 전개되고 있다. 중국의 경험에 비추어 라진·선봉 지구, 신의주 특구, 개성 공단 등을 조성하는 사업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 같은 시도들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우선 기성 시가지의 재정비 방안은 국가 배급제가 복원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중 동원이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 평양, 함흥, 회령 등지에서는 도시 외관이 크게 바뀌었지만, 이들은 김정일의 '현지지도' 사업 또는 대외 과시용 사업으로 추진된 극소수 성공 사례일 뿐이다.

또 '도시계획법'의 경우에도 도시계획의 기본 방침만 규정한 채 구체적인 시행지침을 갖추지 못해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특구 지정 및 개방 사업도 신의주 특구 조성 사업의 중단에서 보이듯이, 대외 관계에 민감한 까닭에 지속 가능한 도시 개발 모델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주도적인 도시화의 흐름은 평양을 위시한 소수 '전시용 도시(展示用 都市)'들의 외관만 일부 바꿔놓았을 뿐, 주민 생활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지속적인 도시화 흐름

아래로부터의 도시화는 도시 주민들이 체제의 위기 상황에서 각자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는 과정에서 도시의 원래 기능이나 공간구조가 바뀌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록 느리지만 꾸준히 이어지면서, 도시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한편으로 식량 및 에너지의 절대적 부족으로 도시의 생산 기능이 크게 위축되어 생존에 위협을 느낀 주민들이 상거래 활동에 적극 나서면서, 청진 등과 같은 공업도시들조차 유통 기능이 강화된 교역도시로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 아래로부터의 도시화에 따라 도시의 무게중심이 정치·행정의 중심지인 '광장'에서 사적인 경제활동의 중심지인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따라 도시 공간의 무게중심도 공적인 정치·행정의 중심지인 '광장'에서 사적인 경제활동의 중심지인 '시장'(장마당)으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이 같은 장마당에서의 상거래 활동은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유통망에서 벗어난 까닭에 정부의 단속과 규제가 이어졌지만, 2002년의 '7.1 조치'를 통해 양성화되면서, 크게 활성화되었다.

이에 따라 최근 평양, 청진, 신의주, 혜산 등지의 주요 대도시에서는 외지와 연결된 도심의 대규모 종합시장, 시 외곽에 입지한 그 하위의 주변적 장마당, 그리고 주거지역의 골목 장마당으로 도시 시장이 분화되고 체계화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일부 도시 주민들은 이미 1990년대부터 주거 이주를 엄격히 제한해 온 국가의 규제를 뚫고 멀리는 국경을 넘나들고, 가깝게는 인근 도·농 지역을 드나들며 불법적인 상거래 활동에 나섰다. 특히 신의주, 혜산 등과 같은 변경 도시에서는 중국과의 교역이나 밀무역으로 물산이 상대적으로 풍부했기 때문에, 외지 상인이 흘러들거나 지역 주민이 봇짐을 지고 주변 농촌으로 장사를 떠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배급 중단으로 생계가 막막해지자 꽃제비 등의 유랑인구 형태로 각처를 떠돌던 기민(饑民)들까지 이에 가세했다.

이 같은 인구 유동화와 교역 기능의 강화는 도시 주민들 간의 빈부 격차와 도시 공간에서의 새로운 주거지 분화라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빚었다. 물론 경제난 이전에도 당·정 간부들이 도심의 행정구역 인근이나 시 외곽의 쾌적한 주거지역에 자신들만의 집단 주거지를 조성하며 주거지 분화 양상을 보여준 바 있었다. 그렇지만 이는 당·정 간부들의 고급 주거지와 저급한 일반 주거지라는 이원적 주거지 분화였을 뿐이었는데, 비공식적 경제활동을 통해 도시 주민 간의 경제력 격차가 벌어져 정치·행정 권력에 근거한 기존의 주거지 분화에 경제력을 기반한 새로운 주거지 분화가 겹쳐지면서, 북한의 대도시들에서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주거지 분화가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평양과 일부 변경 대도시들에 국한된 현상으로 폄하할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북한 당국의 '7.1조치' 등에 힘입어 점차 변경지역의 중소도시로, 또 북한의 내륙 및 '앞동네'(북한의 남부 지방)로 확산되면서, 북한 도시화의 새로운 흐름으로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도시 주민의 주거생활
▲ 지난 2005년 3월 촬영된 평양 시내의 공사중인 아파트 모습. 최근 북한 도시에서는 주택 건설 및 도시 개건 활동이 국지적이나마 전개되고 일부 신축 건물도 들어서고 있다 .ⓒEPA

그렇다면 이러한 도시 기능 및 공간구조의 변화는 도시 주민의 일상생활, 특히 주거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고난의 행군' 시절과 달리 최근 북한 도시에서는 주택 건설 및 도시 개건 활동이 국지적이나마 전개되고, 일부 신축 건물도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개건 사업은 기존 주택의 리모델링으로, 주택 공급을 늘리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신축 및 개축 주택은 부유한 개인이나 힘 있는 사업소가 주택 입주권을 구입하거나 행정상의 특권을 얻어 지은 것으로, 생계유지에 급급한 일반 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도시 주민들은 주택을 구하지 못해 한 집에 서너 세대가 살거나 한 가족 여러 세대가 방 한두 칸짜리 집에 모여 사는 것은 다반사이다.

따라서 북한 당국의 도시 개건 사업은 '잿빛 도시'를 '장밋빛 도시'로 그 외관만 바꾸는 데 그칠 뿐이고, 극소수 주택 공급은 엄청난 주택 수요에 비한다면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일 따름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가 도시 주민의 주거생활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도시화 흐름을 바탕으로 주택의 의미나 위상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감지된다. 우선 도시 주민들이 주택을 '국가 소유', '공적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 소유물인 '내 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당장의 생계유지를 위해 주택 규모를 줄이거나 주택(입주권)을 팔려는 가구들이 등장하는 한편으로, 신흥 부유층이 주택 수요를 창출하면서, 주택(입주권)이 공공연하게 거래되는 현실이 이러한 인식 전환을 부추기고 있다. 그 결과 못 가진 자들의 주거 불안은 더욱 심각해지고, 주택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주거공간이 아니라 사고파는 상품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주택의 위상도 크게 바뀌고 있다. 전후 복구 및 사회주의적 도시화 단계에서 북한 당국은 집합주택을 건설해서 주민들간의 상호감시 체제 구축과 사회주의적 공동체 건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몫에 잡으려 했고, 강력한 국가가 통제하던 시기에 이는 비교적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경제난 이후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자가소유 의식이 뿌리내리면서, 주택은 점차 공적 규율이 가해지는 사회생활에서 벗어난 사생활 공간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웃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감시의 눈초리나 콩 한 쪽이라도 나눠먹는 상부상조의 미덕은 도시 주민의 일상생활에서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다.

북한의 도시는 어떻게 변모할까?

그럼 앞으로 북한의 도시화는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 적어도 현 단계 북한의 도시는 '고난의 행군'기에 보였던 도시화의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1970-80년대의 북한식 도시화, 이른바 '주체형 도시화' 경로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거의 없다.

따라서 향후 북한의 도시화 방향은 위로부터의 도시화 흐름과 아래로부터의 도시화 흐름 간의 힘 겨루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강력한 국가가 주도해서 계획적으로 점-선-면의 단계를 밟아 도시를 개혁·개방시킨 중국의 경험은 전자의 흐름이 주도한 경우이고, 혹심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도시 주민들이 도시농업, 재생에너지 개발 등을 통해 생태사회주의적 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쿠바의 경험은 후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경우에는 중국형 도시화 경로를 밟기에는 국가가 체제 위기에 대처할 만한 역량이 크게 부족하다. 또 북한을 둘러싼 주변 정세가 엄혹해서 쿠바형 경로를 밟아가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대외 정세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두 갈래의 도시화 흐름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기보다는 서로 견제하면서 북한의 도시를 서서히 바꿔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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