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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의 가치의식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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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의 가치의식변화 '2006년 북한은 어디로?' 사회문화편 <5>
가치의식이란 인간 욕구의 인식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대상이나 행위에 대해 어떤 한 상태보다 다른 상태를 선호하는(가치 있다고 여기는) 포괄적인 경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행위의 본질이라고 본다면 그 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사회 성원들이 추구하는 행동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1. 개인주의

북한은 1990년대 이전까지 기본적으로 집단주의에 기초한 통제사회였다. 모든 주민은 자기 직장에서 행정경제적으로 조직생활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속된 당이나 근로단체에 가서도 정치적으로 조직생활을 해야 했다.

당원은 당 조직생활을, 청년은 청년동맹 조직생활을, 노동자는 직업동맹 조직생활을, 가정주부는 여성동맹 조직생활을 해야 했다. 이러한 중층의 통제구조와 내가 잘못을 범했을 때 그 책임이 나한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척, 더 나아가서는 내가 속한 조직에까지 피해를 끼치는 집단적 연대책임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설사 불만이 있더라도 국가와 체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집단주의를 북한에서는 '개인적 이익을 사회적 이익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인 개인주의와 대비시켜 전자를 장려하고 후자를 배격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 '배급중단 사태'는 집단주의에 기초한 통제사회였던 북한에 개인주의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EPA

김일성도 "당원들과 근로자들 속에서 집단주의 교양을 더욱 강화하여 그들이 조직과 집단을 사랑하며 사회와 인민의 이익, 당과 혁명의 이익을 위하여 몸 바쳐 투쟁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라며 집단주의 교양의 강화를 역설하였다.

이러한 집단주의 가치의식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집단적 평준화'에 집중적으로 구현되어 있는데, 국가에서 배급이 정상적으로 지급될 때에는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고 작동되었다.

그러나 배급이 중단되고 개인들이 각자 능력대로, 수단대로 장사, 부업, 돈벌이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이 되자 지금은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한다(자력갱생)'는 현실 인식이 확산되면서 집단주의가 많이 무너지고 개인주의가 성행하고 있다. 북한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듯이, 이러한 개인주의 가치의식은 주민들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신념과 집단주의에 기초한 '건전한 사회주의 의식'을 침식하면서 점차 부정적인 영향과 일탈을 배태하고 있다.

2. 화폐-물신주의

북한주민들은 정상적인 국가배급제, 균질화된 무상치료와 무상교육, 그리고 철저한 사상교육과 외부세계와의 단절 등으로 인해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 주체사상, 당 등에 대한 신뢰감과 자긍심이 매우 높았다. 그러므로 당원이 되는 것이 최고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결국 북한주민은 가치의식 측면에서 물질은 2차적이고 사상이 1차적인 것으로 인식되도록 교육을 받고 사회화되었으며 그렇게 믿고 행동하면 문제가 없는 체제에 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 원칙을 견지하려던 당원들의 아사가 속출하고 또한 '올해 목표는 얼마이고 배급도, 기름도, 아이들 교복도 곧 주겠다'는 당의 장밋빛 공약(空約)이 수 년간 반복되기만 할 뿐 실현되지 못하면서 당과 국가에 대한 일반주민들의 불신이 대단해졌다.

당의 유일사상 체계에 입각하여 수십 년 살아 왔던 주민들이 미공급 때문에 '나와 내 가족만이라도 살아보자'는 개인주의에 젖어들어 사상의식 수준이 퇴조하였고, 이는 철저한 사상교육도 생존본능에는 무력하다는 것을 현실로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입당보다는 경제적 부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정치적 생명보다 경제적 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상의식 보다는 화폐물신주의가 팽배해져 배금주의, 소유의식, 비법적 상행위, 뇌물 등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1970~80년대만 해도 북한주민은 설사 돈이 있더라도 해 볼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돈에 대한 개념이나 인식이 없었다면, 지금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돈이 최고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돈에 대한 주민들의 가치의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돈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돈을 중심으로 사람까지 평가하는 경향이 생겼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월남자, 화교, 재포(재일교포)가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출신성분(토대)에 따라 부정적 평가와 홀대를 받았는데 이제는 토대나 출신이나 직위보다는 경제능력이 어떠 하느냐에 따라 대인관계와 친구관계가 바뀌고 있다. 과거 장사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바뀌었고, 너도 나도 장사를 오래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겨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물건 값을 정해 팔고 있으며 감가상각에 대한 생각, 돈의 회전율에 대한 생각들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이러한 화폐-물신주의 현상은 취학이나 취직, 결혼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입당하는 것이 가장 명예롭고 출세할 수 있는 관문으로 인식되었으나 이제는 당원 자격이 별 보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입당에 별 관심이 없다.

과거 직업을 선택하는 주요한 기준은 교원, 의사, 지도원 같은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갖는, 직위 있는 직업이었으나 최근에 이르러 사람들은 이러한 기준들보다 보수나 수입 안정성, 기술과 같은 요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물질적 보상을 중시하면서 직업을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가치의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도 성분과 당원, 군복무 여부가 최우선이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재산과 돈이 더 큰 가치 기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토대가 불온시 되었던 재포가 이제는 최고의 신랑감으로 부상하였고, 생필품과 현금을 구하기 용이한 작업반장, 직장장 등 생산 기업소 행정일꾼들도 여성들이 선호하고 있다.

가치의식 변화로 나타난 제도변화의 전형적인 예의 하나로 군대기피 풍조를 들 수 있다. 북한 청년이 군복무를 선택하는 기본 동기는 입당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는 당원이 되어도 큰 혜택이 없기 때문에 길고 고생스런 군 생활을 하기보다는 돈을 쉽게 버는 길을 선택하는 추세라고 한다. 따라서 북한 당국도 식량난과 군대기피 현상에 대응하여 2003년 3월 제10기 6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군사복무법을 제정하고 복무기간을 남자 13년에서 10년, 여자 10년에서 7년으로 단축하는 대신 전민군사복무제를 채택하였다.

3. 차별화된 소비주의
▲ 현물배급을 통한 사회주의적 균등주의가 깨지면서 북한주민들의 소비욕구가 폭증하고 있다. 사진은 평양백화점의 '바겐세일'을 알리는 문구ⓒ재팬포커스

1990대까지 북한주민은 성분과 서열에 의한 정치적 불평등체계에 놓여 있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사회주의적 균등주의가 낳은 평준화된 제도나 조직들 속에서 '동무'라는 평등한 인간집단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보장, 교육기회가 제한된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시장을 매개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밖에 없는 시장화(화폐경제)가 자리잡혀 감에 따라 개인이나 가족단위 행위자들 간의 경제적 불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현물 배급을 통한 사회주의적 균등주의가 깨지면서 돈을 번 사람들 사이에 일차적으로 억제되었던 물질적 소비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차적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경쟁적 '소비'주의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행위의 내면에는 차별화된 '소비'를 통해 다른 부류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가치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과 대비해서 누구 집에 더 멋있게 차려 놨다 하면 그것보다 더 멋있는 것을 사다 놓는다'. '대부분 옷이 좋다고 할 때는 같은 경우에도 일본제를 많이 사서 입었고 일본 중고 옷들을 많이 사서 입는 게 잘 사는 사람들의 추세다'. '남새 정도 먹는 집과 물고기나 명란 같은 비싼 것이나 고급적인 것을 먹는 집과는 비교대상이 안된다'식으로 '경쟁적'인 소비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집 꾸미기 등 시장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물질적 재화의 차별화된 경쟁적 소비주의가 앞으로 성분이나 토대와는 다른 의미에서 개인이나 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새로운 수단이 되리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과거 정치적 성분 때문에 차별받았던 개인이나 가족들이 돈을 번 경우에는 일종의 이에 대한 보상심리마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의식적으로 고급소비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현재 북한에서는 과거 사회주의 하에서의 지배적인 가치의식들이 심각하게 침식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와 같이 시장이 생존의 결정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새로운 가치의식의 형성이 앞으로 북한주민들이 추구하는 행동의 방향과 속도를 직접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사회 변화의 필연성과 긴박성을 예측하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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