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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보다는 위신 중시…외교도 전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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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보다는 위신 중시…외교도 전투하듯 '2006년 북한은 어디로?' 정치편 <7> 북한의 외교스타일
보통 외교정책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국가마다 나름의 스타일이 있기 마련이다. 개별국가들이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정치·경제·사회구조를 갖는다는 사실은 각국의 외교정책의 선호, 목적, 전략이 상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특히, 이러한 요소들 중 지정학적 환경, 역사적 경험, 정치 문화 등은 한 국가의 외교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그러한 영향요소들은 한 국가의 안보에 관한 사고와 행동의 양식인 '전략문화'(strategic culture)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전략문화는 외교정책의 국내적 기반인 사회적 선택(social choice)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핵심 외교정책결정자의 국익에 대한 인식과 국익을 달성하기 위한 외교정책 선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문화에 대한 이해는 그 나라 외교정책의 독특한 스타일을 이해하기 위한 첩경이 된다. 일반적 국익의 지속성의 측면과 마찬가지로 전략문화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보자. 미국 외교의 독특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미국적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는 미국만의 특이한 역사적 경험, 지리적 환경, 그리고 정치문화전통에서 기원한다. 억압을 피해 자유를 찾아 나선 이민자들에 의한 국가건설의 특이한 역사적 경험, 외부위협으로부터의 안전한 지리적 환경, 그리고 평등의 이념보다는 자유의 절대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정치문화 전통 등이 미국의 전략문화를 구성한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문화는 오늘날 미국의 대외행태의 기조인 자유의 확산을 위한 '구세주적 간섭주의'에 잘 투영되고 있다.

북한도 특수한 지정학적 환경, 정치문화, 그리고 역사적 경험에서 나오는 나름의 전략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전략문화에 기초한 독특한 외교스타일을 갖고 있다.

강대국간의 갈등을 최대한 활용

첫째, 북한외교는 대(對) 강대국 외교와 관련해서 줄타기 외교, 준(準)유착외교의 특징을 갖는다. 냉전기의 대 중·소외교가 그러했다. 어느 일방에도 편승하지 않고, 교묘히 중-소의 대국간 갈등을 십분 활용하고자 했다. 냉전기에 지속되었던 이러한 북한의 강대국간 갈등활용외교의 특징은 변함없이 지금의 미-중-일-러 등을 상대로 한 대강대국 외교에서도 포착되고 있다.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압박공세에서 미-중간의 전략적 갈등영역을 교묘히 활용하는 북한의 외교행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 미국의 대북 압박공세가 거세지자, 북한은 한층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화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 2000년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이 베이징에서 장쩌민 중국 국가 주석을 만난 모습. ⓒ연합뉴스

미국의 대북 압박공세가 거세지자, 북한은 한층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화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나토의 동진, 상하이협력기구의 출범, 그리고 미-일동맹 강화 등 일련의 국제안보질서의 대변환에서 미-중 패권경쟁의 전조를 읽고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 북부지역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충분히 활용하고자 한다. 북한의 특수한 지정학적 환경을 타산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가들에게 미-중 패권경쟁의 그림자는 갈등활용외교 공간의 확장 기회로 다가선다.

북한은 인구 2300만에 석유자원도 없는 조그마한 국가다. 만성적인 식량부족 사태에 시달리고 있으며, 국민소득 900달러 미만에 연간 무역규모는 40억 달러에 불과하다. 기형의 몰락한 변방 사회주의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을 중동의 거대 산유국인 이란, 이라크와 동일 선상에서 미국체제에 도전하는 "악의 축"으로 간주했다. 국가발전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이 한계상황에 처하자 식량, 원유 등 전략자원을 지원했다. 오늘날 북한의 전략가들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과 유엔군의 교전은 한반도 북부지역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의 충돌에 다름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할 것이다.

군사자원을 활용한 게릴라 외교

둘째, 북한외교는 군사자원을 활용한 게릴라 외교스타일의 특징을 갖고 있다. 북한외교에서 군사자원의 활용 비중은 매우 높다. 북한외교의 핵심지역은 대부분 군사적으로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가 잘 보여주듯이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핵심적 수단으로 군사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제3세계 외교에서는 북한은 군사적 지원을 통해서 이들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북한은 외교수단으로서 군사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외교행태에 있어서도 군사적인 방식을 취한다. 외교행태에 있어서 엄청난 힘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대 강대국 외교에서 북한은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는 기습, 매복 외교를 전개하는 특징을 보인다. 외교 협상 시에도 전사적 협상태도를 취한다. 일종의 게릴라 외교스타일인 셈이다. 이번 미사일 사태도 북한의 군사자원을 활용한 대미 군사 게릴라 외교에 해당한다. 바로 이러한 북한의 군사자원을 활용한 게릴라 외교스타일의 특징은 과도하게 군사화된 북한의 정치문화와 직결된다.

실리보다는 위신 중시
▲ 지난 2005년 11월 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아리랑 공연에서 펼쳐진 후 주석 방북 환영 카드섹션. ⓒ연합뉴스

셋째, 북한외교는 위신 손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징을 보인다. 북한에게 '자주'의 의미는 독특하다. 단지 형식적인 대외적 주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조선 없는 지구는 필요 없다"는 북한 지도자의 일화적 언급은 이 '자주'의 의미가 국제정치에서 강대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매우 도전적인 국제정세관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하며 대국주의에 대한 반대를 뜻한다.

북한은 강대국과의 외교에서 비현실적일 만큼 위신의 보장에 신경을 쓴다. 이러한 외교스타일은 대미외교에서뿐만 아니라 대 중-러 외교에서도 동일하다. 비록 외교·경제적으로 중국의 큰 도움을 받고 있지만, 북한은 중국의 간섭으로 인한 위신손상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의 체면을 살리는 외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북한의 '위신 중시' 외교는 북한의 독특한 역사경험과 관련된다. 일제 식민통치의 경험과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의 권력공고화 과정에서의 수치스런 중-소의 대국주의적 간섭의 경험은 북한의 전략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전략문화에 대한 밑그림은 북한의 독특한 외교스타일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외교협상 시 어떠한 접근법이 효과적일 것인지에 대해 적잖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북한은 실리를 취할 수 있는 '체면손상 외교'에 익숙하지 않다. 이 점이 바로 북한 주민들의 엄청난 희생을 수반하는 고비용의 북한외교의 한계이기도 하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긴장과 갈등의 해소의 출발점은 아마도 상대방의 전략문화에 대한 서로의 이해 노력이 아닐까?

(이 시리즈는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의 공동기획으로서 정치편은 이번 회로 마치고 14일부터는 사회·문화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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