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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오기싸움…결국 '작은 엿장수'가 양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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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北-美 오기싸움…결국 '작은 엿장수'가 양보해야" [인터뷰]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 동북아사무소장
"북한이 미국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부시 행정부에게는 (국제사회를 동원하여 대북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지금 이 상태가 아주 좋다. 부시는 자기를 '엿장수'라고 생각한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김정일도 제 생각에는 자기가 엿장수다. 하지만 부시가 '큰 엿장수'라면 김정일은 '작은 엿장수'다. 그렇다면 더 작은 엿장수가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ICG) 동북아사무소장은 답답해 했다. 북한과 미국 모두 물러서지 않을 거라며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금융제재를 풀기 전에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없다는 북한, '지금 이대로가 좋은' 미국은 마주보고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면 이제는 북한이 물러서야 할 때라고 단호히, 하지만 회의적으로 말했다.

미사일 발사 이후 한반도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마무리한 피터 벡 소장을 지난 2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 보고서는 ICG의 최종 승인을 얻어 미 행정부와 의회, 각종 연구소에 보내질 예정이다.
▲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ICG) 동북아사무소장 ⓒ프레시안

벡 소장은 "차베스도 북한 방문을 취소했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반미정권의 행동대장격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애초 계획했던 평양 방문을 취소한 것은 미사일 발사에 따른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와 관련해 벡 소장 역시 중국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중국이 북한을 버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북한을 보는 태도가 크게 변한 것 같다"는 게 결론이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 말라는 중국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하는 중국으로서도 모종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벡 소장은 또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북한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런 중국과 한국을 향해 북한은 '인질범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게 그의 독특한 주장이었다.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을 인질 삼아 '나를 돕지 않으면 너희들도 편치 못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잘못 따지는 게 의미 없어진 현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이나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는 여당 내 목소리마저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부시 행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하고 일본과 함께 강력한 대북 압박에 나서는 지금 이대로가 딱 좋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엿장수'가 되어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거듭 강조했다.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금융제제 해제에 대해서도 미국은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있는 돈이 '깨끗한 돈'인지 '더러운 돈'인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벡 소장은 또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중 하나라도 장악한다면, 혹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에서 나온다면 미국의 대북정책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사항'도 일축했다. 9.11 테러 이후 민주당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민주당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민주당 인사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제기했던 북한 미사일 기지 선제공격론은 민주당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미국에 대해 '부시 정권 2년 반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북한은 크나큰 오산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를 누가 먼저 깼는지, 한반도 위기의 근원은 북한인지 미국인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힘이 미국에 있고,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게 뻔한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행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입장이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논박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물론 벡 소장에게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외 정책을 비판하라고 하면 책을 한 권 써도 모자랄 지경인 듯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옳고 그름의 논리싸움과 함께 힘의 강약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인 듯했다. 그는 한때 클린턴 행정부의 북한정책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를 비롯해 리언 시걸 미 사회과학연구원 박사, 셀리그 해리슨 미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등 미국의 진보적 한반도 전문가들의 주장은 이제 부시행정부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는 현재의 워싱턴 분위기를 전하면서 "결국은 북한이 유연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역시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에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결국 당분간은 일본 등을 동원한 미국의 지속적인 대북 압박에 북한은 추가 미사일 발사 등으로 대응하는 '위기의 고조', 즉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의 한국학 제자로 잘 알려진 벡 소장은 미국에 있는 한국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을 역임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다. 현재 ICG 동북아사무소장으로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고 지난해 3월부터는 통일부 정책평가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2일 그의 서울 사무실에서 있었던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차베스도 방북 취소할 정도로 '국제 왕따' 된 북한"

- 1998년 북한의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는 '페리 프로세스'로 상징되는 북미간 건설적 협상의 계기가 됐다. 그런데 이번 대포동 2호 발사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로 이어지고 있다. 어떤 차이가 있나.

"두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미국 행정부가 전혀 다른 세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을 찬성하는 자유주의 정권이었다. 그러나 조지 부시 행정부는 강경파다. 그들은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포용보다 고립을 선호한다. 리처드 루가 상원 외교위원장 같은 공화당 내 몇몇 실용파들이 북한과 직접대화를 해야 한다고 압력을 넣었지만 부시 행정부는 그것을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북한은 미국이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사태를 잘못 파악한 것이다.

둘째, 국제사회도 북한의 악행(惡行)에 대한 참을성을 잃어버렸다. 1998년에는 유엔 의장성명도 없었다. 대포동 1호는 일본 열도를 넘어 날아가면서 이번보다 훨씬 도발적이었는데 국제사회에서는 아무런 행동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북한을 봐줄 나라가 없다. 중국까지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찬성하는 아주 놀라운 행동을 했다. (반미라면 누구 못지않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방북을 취소했다.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국내외적인 계산을 했을 텐데, 국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국제적으로는 틀린 계산이었다. 중국을 소외시키고 당황케 했으며, 한국을 소외시키고 모욕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국제사회의 왕따가 된 것 같다.

상황을 진전시키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단해야 한다. 회담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 지렛대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유연해져야 한다.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 있어서도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는 것은 매우 놀랍다. 부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고 서로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은 북한이 얘기하는 '우리민족끼리'를 실현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우리민족끼리'는 무조건 돈을 달라는 것에 불과했다. 사람은 안중에 없는 것같다. 그래도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게 남한인데 (이번 미사일 발사를 통해) 남한의 기대를 그토록 쉽사리 저버리는 것을 보고 나도 놀랐다. 최소한 남한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됐다.

북한이 미국의 변화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비현실적이다. 미사일 발사와 유엔 안보리 결의안 통과는 미국 강경파들의 힘만 더 강화시켰다. 북한에 대해서는 협상이 아닌 강력한 압박만이 해결책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게 했다."

"북한, 한국·중국에 '인질범 전략' 쓰고 있다"

- 미사일 사태를 계기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과연 무엇이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국내 보수언론에서는 중국이 북한을 버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국통' 인사가 평양 주재 중국 대사로 임명된 것을 보고도 중국이 대북정책에서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미사일 발사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는가.

"버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북한을 보는 태도가 크게 변화한 게 아닌가 한다. 지난 6월 중국이 북한을 향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그건 어찌 보면 중국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분명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언제나 동북아 지역의 안정이 유지되길 원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강경한 접근을 자제했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는 이 지역의 안정을 흔든 것이었다. 미사일을 발사하자 일본은 미사일방어망(MD)을 조기에 구축한다거나 선제공격을 거론하는 등 더 공격적으로 변했는데 중국은 그런 사태를 우려한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해쳤다고 보고,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첫번째 조치가 안보리 결의안에 대한 찬성이다. 중국은 93년 북한의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비난하는 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하지 않았었다. 그랬던 중국이 이번 결의안에 찬성한 것은 북한에 매우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을 버릴 수 없다. 중국이 북한을 버린다면 북한이 붕괴할 수 있고, 이 지역은 더 크게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 군대 현지지도를 하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EPA

이런 사정을 아는 북한이 중국과 한국에게 취할 향후 정책은 '인질범 전략'이 될 것이다. '너희들이 나를 돕지 않는다면 나는 인질(북한 주민들)을 죽이고 나도 죽을 것이며, 그것은 너희들에게 큰 문제가 될 것이다'라고 협박하는 전략이다. 기근과 홍수로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은 일종의 인질이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을 돕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이 북한을 좋아한다거나, 북한의 행태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중국은 2003년처럼 북한으로 가는 송유관 밸브를 잠근다거나 원조량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완전히 북한과 결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입장도 중국과 같다. 개성은 북한의 생명줄(lifeline)이다. 현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성을 통해 수백만 달러가 들어간다는 것은 큰 문제다.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실제 노동자들에게는 얼마가 지급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다.

이렇게 북한은 중국과 한국에게 매우 어려운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북한이 더 도발적이 되면 될수록 중국과 한국의 입장은 매우 어려워진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무리 도발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중국과 한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큰 엿장수'와 '작은 엿장수'가 만났을 때

- 미사일 발사를 전후한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도 많다. 어떤 점을 지적할 수 있겠는가.

"미사일 발사 전에 한국 정부가 미사일이 아니라 인공위성일지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미사일의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던 것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를 미사일과 연계시킨 것도 잘못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쌀, 비료 등 인도주의적 지원과 미사일 등 다른 문제들은 별개로 대응했어야 했다. 또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도 북한에 현금이 들어가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현물지원은 사용처가 분명한 반면 현금지원은 군용으로의 전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 지급을 당분간 현금이 아닌 차용증으로 준다거나 하는 방법을 쓰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성공단으로 현금이 가는 것을 막는 대신, 주민들에게 가는 식량은 막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의 행동을 바꾼다는 명목으로 잘못된 신호와 잘못된 도구를 사용했다."

- 이 위기를 풀기 위해 북한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한국 속담을 제일 좋아한다. 통일부 정책평가위원으로서 지난달 말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점심을 같이 먹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구멍 좀 꼭 찾아달라'고 했다.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 대해 '좀 더 유연해지고, 창조적으로 대응하고, 힐 차관보가 북한과 양자접촉을 가질 수 있게 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그러나 힐에게는 여전히 자율성이 없다. 미국이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루가 위원장 같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동결된 돈의 일부라도 풀어 북한의 행동 변화를 시험해 봐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과 중국도 북한을 설득할 명분을 갖게 되고, 미국도 '우리는 대화를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그렇게 변화할 것으로 결코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금의 이 상태가 너무 좋다. 중동 사태 때문에 바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유엔 안보리에 의해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또 가할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그 역시 비관적이다. 북한이 벼랑 끝으로 가고 미국도 물러서지 않는 '치킨게임'의 상황에서는 충돌만 있을 뿐이다. 어느 쪽도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북한은 미사일을 추가로 발사한다거나 핵실험을 재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고집센(stubborn) 지도자다. 지금 상황을 타개할 현실적인 방안은 없다. 나 역시도 미국에 몇가지 정책제안을 하긴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그것을 따를지는 회의적이다."

- 부시 행정부가 안 바뀔 테니 북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강대국 위주의 생각 아닌가?

"그렇다. 부시 대통령은 자기를 엿장수라고 생각한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도 자기 생각에 자기가 엿장수이다. 서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더 작은 엿장수인 북한이 양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형제라 할 수 있는 중국이나 한국도 그걸 원하는 게 아닌가. 서로 자기가 왕인 줄 알고 착각하고 대결로 나가면 큰 문제다."

'깨끗한 돈'과 '더러운 돈' 구분 원치 않는 미국

- BDA 문제를 언급했는데, 미국은 아직도 북한이 만들었다는 위조 달러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걸 두고 '북한 옥죄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위폐 문제는 고농축우라늄(HEU) 문제와 닮아 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민감한 정보를 말해줄 수 없지만 우리만 믿어라'고만 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제기했던 북한의 금창리 핵시설 의혹과 부시 행정부가 제기했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에서 보듯 '우리만 믿어라'는 말을 수긍하기는 어렵다. 한국 정부도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를 포함한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은 나에게 '내가 말하는 것을 봐라. 나를 믿어라'라고 말한다.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나오는 그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는 위폐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지 못한 게 사실이다. 나 역시도 한국 관리들을 만났을 때 '중국이 만든 위폐일 수 있다. 중국은 위폐를 아주 잘 만든다. 북한이 만든 것보다 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이치적으로 따져볼 때 북한이 위폐를 만들었다고 본다. 정황상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본다."
▲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 ⓒEPA

-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가 북한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는가? 그런 압박이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보는가?

"북한이 금융제재에 대해 반발하면 할수록 부시 행정부는 제재 조치가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드디어 북한을 때릴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환호하는 것이다. 금강산·개성공단과 관련해 들어오는 돈에 비한다면 BDA에 묶여 있는 2400만 달러는 매우 적다. 따라서 북한은 의도적으로 과잉 반응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역시 미국이 금융제재의 효과를 확신케 하고 있다.

금융제재란 말은 정확하지 않다. 마카오의 한 은행에 대한 집중단속(crackdown)이란 말이 맞다. 미국은 그것을 'smart sanction(제재)'라고 부른다. 특정 계좌의 현금을 집중적으로 추적하기 때문이다. BDA 계좌는 현대아산을 비롯해 북한과 거래하는 많은 외국 기업들의 돈도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런 돈들은 '깨끗한 돈'이라고 확신하지만, 다른 일부 돈들은 위폐 등 불법활동에 따른 '더러운 돈'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일부 돈에 대해서는 봉쇄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좌 동결은 북한을 때리기 위해 무조건 하는 것이다. 어떤 현금인지 중요하지 않다. 얼마 전에 부시 행정부의 고위 관리를 만났는데 '우리는 깨끗한 돈인지 더러운 돈인지 구분 못한다'고 말했다. 그걸 구분하고 해결할 마음이 없는 거다. 세계 모든 은행의 거래 내역을 알 수 있는 '세계 은행간 금융통신협의회(SWIFT)'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깨끗한 돈과 더러운 돈을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그걸 원하지 않는다. 북한을 때리고 상처 줄 수 있는 채찍을 찾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해외 은행에서의 현금을 막는다고 해서 북한의 일반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금을 좋아하는 북한 지도부에만 타격을 주고, 제재를 계속해서 결국 포기하고 회담장에 나오거나 붕괴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다."

- BDA 북한 계좌에 대한 조사가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미국이 조사하고 미국이 발표하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금융전문가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다."

- 최근 스튜어트 레비 미 국무부 차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금강산과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었다.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결국 미국은 그걸 원하지 않을까 한다.

"힐 차관보가 아주 외교적인 말을 했다. '남한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고. 레비 차관은 직접적으로, 공식적으로 그런 요구를 할 필요가 없다. 안 그래도 한국이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9.11 후 미국 민주당은 변했다"

- 부시 행정부가 중동에서 곤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길지도 모르고, 그렇게 된다면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사람도 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있었다. 그해 중간선거에서 누가 이겼나? (제네바합의를 타결한 민주당이 아니라 야당인) 공화당이 이겼다. 2004년 이라크에서 수많은 미군들이 죽었다. 그해 대선에서 누가 이겼나? (이라크 침공으로 곤경에 빠져 있던 공화당의 부시가 이겼다.) 대외 정책이 미국 선거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은 틀렸다. 또 선거가 100여 일 남은 지금 이 순간도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긴다고 예상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군사적인 충돌이 없다면 북한 문제와 선거는 더더욱 상관없다. 이라크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문제가 미국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은 레바논, 시리아, 이란 문제 때문에 이라크사태가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잊혀져 가고 있다. 만에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외정책 사안이 있다면 그것은 레바논 문제가 될 것이다."

- 대북정책에 있어 민주당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은 클린턴 시절을 생각하기 때문 아닌가.

"설령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 하더라도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시의 선제공격론을 누가 지지했나. 민주당이다. (이번 북한 미사일사태와 관련하여) 월터 먼데일, 윌리엄 페리, 애쉬톤 카터 모두 민주당 인사들이 선제공격을 요구했다. 오히려 딕 체니 부통령이 '선제공격은 좋은 대안이 아니'라고 말했다. 9.11 테러 이후 민주당은 변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북한은 엄청난 기회를 잃었다. 앞으로 그런 기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차기 대통령이 한나라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북한에게 최고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김정일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6자회담 진전과 남북경협 연계' 전략도 고려해 볼만"

- 한국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나 설득력은 사실 그렇게 강하지 않다.

"없다. 이제는 개성과 금강산밖에 없다. 중국과 비교해도 크지 않다. 작년에 10억 달러 정도 갔다는데 그래도 중국에서 간 돈의 반도 안 된다. 예를 들어 수해 지원 같은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현금이 아니라 쌀, 라면 같은 걸 보내야 한다. 모든 독재자들은 현금을 좋아하지만 현금을 보내서는 안된다."

- 한국 정부에 정책 제안을 한다면 어떤 것이 있겠나.

"첫째, 6자회담과 남북경제협력을 연계시켜, 회담이 재개될 때까지는 개성공단 확장 등 경협 확대 조치를 하지 말 것. 둘째, 인도주의적 지원과 다른 이슈(미사일, 6자회담, 철도연결)들은 철저히 분리할 것. 셋째, 확산방지구상(PSI)에 참가할 것. PSI는 단순히 비확산을 추구하는 것이지 대북제재가 아니다. 넷째, 미국이나 일본 등 6자회담 참가국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판하지 말 것. 북한이 한국과 미·일간의 의견차이를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게는 BDA에 있는 '깨끗한 돈'은 풀어라, 대북전담특사를 임명하고 평양에 보내라, 북한을 욕하거나 협박하지 말라는 등의 말을 하고 싶지만, 미국 행정부만 비판하면 내 비판의 힘이 떨어진다."
▲ 피터 벡 ⓒ프레시안

-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교수)나 리언 시걸(미 사회과학연구원 박사) 같은, 한반도와 북핵문제에 정통한 사람들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런 시각들이 워싱턴에서 거의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약하고, 공화당과 부시 대통령은 센 상황에서 이들 좌파적인 전문가들의 분석을 주의깊게 듣는 정책결정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북정책에 영향력을 가진 부시행정부 인사 중) 셀리그 해리슨(미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의 말을 듣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걸도 그렇다. 물론 그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탄탄하다. 지난 4월 시걸과 데이비드 애셔(전 미 국무부 선임자문관)가 북한문제를 놓고 논쟁하는 걸 봤는데 시걸이 이겼다. 그러나 무조건 부시 행정부를 비판만 해서는 현실적인 힘을 얻을 수 없다.

나도 그들처럼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아무도 듣지 않아 무의미해진다. 통렬한 비판을 가하면 속이 시원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조금이라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다들 태도를 조금씩 바꾸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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