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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논란과 갈등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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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논란과 갈등을 넘어서 [한미FTA 뜯어보기 76]이강국의 '격동, 세계경제'〈18> 관리되는 개방을
한미 FTA 찬반 양론

장마도 끝나고 불볕더위가 기승이지만, 한국사회는 한미 FTA를 둘러싸고 계절보다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미 연초부터 정태인 씨의 비판을 비롯해 온갖 비판이 터져나왔고 마침내 7월의 2차 협상 때는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정면돌파를 할 태세여서 다시금 갈등과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말에 진행된 2차 한미 FTA 협상은 의약품의 포지티브 리스트 도입을 둘러싼 갈등과 함께 일단 파행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갈등은 아니며 여론의 눈치를 보며 막후에서 주고받기를 위한 포석인 듯하다. 몇몇 언론은 이미 미국과 한국 간에 물밑에서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국민들은 정부의 정보공개 거부로 그 내용마저 제대로 알 길이 없어 불안해 하고 있는 가운데 한미 FTA 협상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한미 FTA에 관한 우려는 여전히 크고 이에 관한 국민적 합의는 부재한 게 현실이다. 한편에서는 한미 FTA가 성장을 촉진하고 양극화도 해결해주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장밋빛 기대가 있는 반면, 반대편에서는 IMF 위기 몇 개가 동시에 터지는 쇼크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비관론이 높다. 한미 FTA에 관한 찬반양론을 다시 한번 원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장밋빛 기대

우선 정부의 주장부터 꼼꼼히 따져보자. 정부의 논리는 간단하다. 한미 FTA를 통한 경제개방 -> 수출과 경쟁의 확대, 외국자본의 투자증가 ->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상승 ->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 그리고 양극화의 해소.

문제는 이 논리 하나하나가 얼마나 현실적인가 하는 것이다. 먼저 한미 FTA에 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GDP가 장기적으로 몇 퍼센트 상승할 것이라는, 일반균형모델이라 불리는 시뮬레이션 연구의 결과가 흔히 인용되지만, 그 가정은 상당히 자의적이며 가정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 민노당에서는 똑같은 모델을 사용해 마이너스의 결과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민노당의 공개검증 요구를 정부 연구소 측이 회피하고 있다고 하니, 경제학자가 보기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첫 번째 고리부터 살펴보면, 우선 한국경제가 충분히 개방되지 않았다는 전제는 정확하지 않으며 한미 FTA가 개방의 유일한 길도 아니다. 이미 IMF 위기 이후 대외의존도는 더욱 높아졌고 외국인의 국내 금융부문 장악은 멕시코만큼 심각할 정도다. 개방이 필요하다면 다자적인 틀도 가능하고, 지역협력의 강화나 다른 나라와의 무역협정도 가능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며 FTA 체결 상대국이 될 경우 외교안보적인 효과도 큰 나라라고 주장되지만, 동시에 협상 파트너에게 냉혹한 세계 최강의 상대이며 안보효과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미국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수출점유율 하락이 우려된다지만 그 또한 중국 등 해외생산을 통한 우회수출이 늘어난 것과 관련이 크다.

수출 증가 혹은 무역적자의 증가?

어찌 되었건, 한미 FTA가 성사되면 온갖 장밋빛 기대효과들을 정말로 얻을 수 있을까.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미 미국 측과 한국 측의 연구 모두가 한국의 관세율이 미국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대미무역에서 적자가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미국시장은 무척 크고 경쟁이 치열하므로 약간의 가격하락도 도움이 될 거라고 이야기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수도 있다. 가격이 몇 퍼센트 싸진다고 해서 한국산 제품이 선뜻 선택될 수 있을까.

게다가 섬유 등은 관세가 제로가 되더라도 중국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요구대로 원사의 생산지에 따라 제조국이 결정되는 얀 포워드 조항이 도입된다면 대부분 실을 수입해 쓰는 우리 업계로서는 그나마 관세하락의 이득조차 없어지게 된다. 미국이 현재 엄청난 무역적자로 인해 세계경제의 불균형만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에 비추면 미국의 수입이 결국에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대미무역은 적자가 늘어나도 정부의 기대대로 다른 나라들로부터의 수입이 줄어들고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어 미국 이외의 다른 지역과의 무역에서 큰 흑자를 본다면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으로부터 수입되던 기계부품이 관세가 싸졌다고 해서 갑자기 미국으로부터 수입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대미무역에서는 흑자가 늘어났지만 다른 지역들과의 무역에서 적자가 크게 늘어나 전체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했다.

외국인 투자와 서비스업에 미치는 효과?

정부도 무역흑자보다는 외국인투자나 서비스업에서 얻는 이득을 더 강조하고 있다. 경제를 개방하고 규제를 풀면 아무래도 외국인투자는 증가하기 쉬울 것이다. 멕시코에서도 그랬고, 경제위기 이후 엄청나게 유입된 외국자본을 생각해도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외국자본이 밀려들어온다 할지라도 그것이 별로 생산적이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IMF 위기 이후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 중 압도적인 부분이 기업인수 등을 통한 광범위한 의미의 M&A 투자였지, 새로 공장을 세우는 그린필드 투자가 아니었음은 유엔의 통계를 봐도 명확하다. 이러한 투자확대가 동아시아의 경제회복에 별로 도움이 안 됐다는 점은 세계은행의 연구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뉴브리지나 론스타 같은 투기성 펀드가 초래한 부작용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멕시코도 NAFTA 이후 외국인투자가 늘어났지만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와 비교해 보면 특별히 그 증가율이 높지 않았다. 멕시코의 외국인투자는 그나마 생산기지를 세우는 데 사용돼 수출증가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각종 규제완화로 자국산 부품 사용률이 3%에 불과해서 그러한 수출증가가 정작 국내산업의 성장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높다.

서비스업에 대한 효과는 어떨까. 제조업은 중국이 쫓아오니까 우리는 금융, 법률, 컨설팅 등 서비스 산업에서 경제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낙후된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FTA를 통해 급속히 높아지고 산업구조가 쉽사리 고도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제조업 기반을 포기하고 서비스업만으로 먹고 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고급 서비스 부문은 오히려 미국기업들이 장악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영어도 잘 하고 교육도 잘 받은 몇몇 이들에게는 한미 FTA가 더욱 큰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만, 한미 FTA가 체결되면 서비스업에서 국민들을 먹여 살릴 만큼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척 순진한 상상으로 보인다.

우려와 비판

이제 반대쪽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비판적인 이들은 아래와 같은 논리가 더욱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한미 FTA -> 제조업 적자 확대와 농업, 서비스업 몰락, 공공성의 약화, 금융불안정 -> 국내산업 정체와 양극화 심화.

이들의 우려에 따르면 농업의 몰락은 명약관화한 일이고 제조업과 서비스업도 부분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며 교육, 의료 등에서 시장논리가 더욱 강화되어 공공의 이익이 침해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미국자본이 무한한 자유를 제공받으면 정부의 경제관리 기능이 침해되고 국내산업은 정체하며 금융부문은 더욱 불안정해질 수 있다. 그 결과는 정부의 기대와는 정반대인 성장의 약화와 부문별, 소득계층별 양극화의 심화다.

즉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이후 나타난 구조적인 저성장과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이러한 비판은 너무 과장된 것이며 협상과정에서 악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쇄국을 해서는 성공한 나라가 없다고 하기도 하고, 개방을 통한 성장이 양극화도 해결할 수 있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진실은 단순한 찬반양론보다는 훨씬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설사 반대쪽의 걱정이 과도하다 하더라도 정부의 기대가 근거가 약하다면 비판적인 목소리에도 충분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준비 없이 무조건 개방만 밀어붙이다 심각한 타격을 받은 나라가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한미 FTA의 성장 유발효과도 불확실하지만 미국과의 경제통합으로 양극화도 해소될 것이라는 주장은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미 국제기구도 미국식 FTA는 가장 강력한 무역협정의 형태로 상대국에 미치는 쇼크가 가장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설픈 금융개방으로 한국경제가 IMF 위기와 구조조정의 쇼크를 겪은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정부는 한미 FTA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협상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이 협정은 돌이킬 수 없도록 경제의 빗장을 열어서 국민의 삶을 더욱 바꿔놓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과정에서 여러 의견이 함께 하는 열린 논의가 꼭 필요할 것이다. 최고의 통상전문가라 불리는 통상교섭본부장의 이야기와 토론을 직접 듣고 싶은 사람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참여정부와 효과적인 협상전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미 FTA의 추진과 협상 과정에서 국민의 합의와 효과적인 협상을 위한 전략적인 고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나 정부 내의 충분한 협의, 게다가 심층적인 연구와 토론도 별로 없이 이 중요한 협상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성공적인 대외협상을 위해서는 내부협상이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한미 FTA로 피해가 우려되는 부문과의 협의도 지원책도 모자랄 뿐이다. 참여정부에서 진정한 '참여'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게다가 이제 대통령도 인정한 4대 선결조건이라는 카드를 미리 써 버렸고, 투자 등의 부문에서 우리 정부가 미국에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우려도 높다. 한국의 협상단은 국내의 이해관계자나 국회에조차 양허계획을 공개하지 않아, 긴밀한 국내 의견조정을 병행하며 협상을 진행하는 미국 측과 대조된다. 국회의원들조차 미국과의 협정이고 개방이니까 찬성해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내용을 몰라서 찬성발언을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옛말에 '미국놈 믿지 말라'고 했지만, 이쯤 되면 오히려 국민들은 우리 정부를 믿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국익을 위하는 정부라면 한미 FTA에 관한 홍보용 언론광고에 돈을 쓰기보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더 경청해야 할 것이다. 시위를 벌이며 반발하는 한국인의 우려와 분노를 미국에 전하며 협상에서 미국 측을 압박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미 협상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다시 한번 원점에서부터 한미 FTA에 관한 철저한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 협상내용은 가능한 공개해야 할 것이며, 정부의 전략을 둘러싸고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해 긴밀한 협의와 조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까지 포함한 최대한의 마지노선을 제시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협상을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내년 상반기까지의 시한에 한국이 얽매일 필요는 없으며, 대외협상과 동시에 피해계층에 대한 지원과 내부적인 제도개혁, 그리고 산업구조조정 등에 관한 국내적인 준비 노력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본의 시각

어지러운 찬반양론과 급박한 대치 등 한미 FTA를 둘러싼 국내의 상황에서 잠시 눈을 돌려 외국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미 한국과의 FTA 협상을 중단한 일본의 경우 FTA에 대해 느긋한 입장으로 보인다. 미일의 밀월관계를 고려하면 진작부터 일미 FTA를 추진할 수도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그것이 일본에 주는 실익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미 관세율은 서로 낮아 시장이 충분히 개방되어 있고, 미국시장에서 일본제품의 경쟁력은 여전한 반면 일본시장을 열었을 때 닥칠 충격이 클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기업가 단체들은 일미 FTA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역시 이들의 목소리보다는 농업 등의 몰락과 국내적인 제도 변화에 대한 걱정과 정치적인 고려가 훨씬 더 큰 실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의 미국시장 점유율도 1995년 약 17%에서 2004년 약 9%로 상당히 하락했지만 한국처럼 미국과 FTA를 추진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미국시장 점유율 하락은 세계화 등으로 인한 생산기지 이전의 영향이 컸고, 저기술 제품의 경우 후발국가들에게 따라잡혔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은 여전히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대의 후카가와 교수가 지적했듯이 오히려 일본에게 한미 FTA는 미국이 무엇을 바라는지, 미국과 어떻게 협상해야 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실험의 장인 듯하다. 이렇게 느긋한 일본의 입장은 미국의 관세 하락으로 기계부품 등의 대일의존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한국정부의 주장도 머쓱하게 만들고 있다.

전략적인, 그리고 관리되는 개방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반대만을 부르짖는 것도 능사는 아닐 것이다. 한미 FTA를 비판하는 쪽도 국내 산업의 고도화와 경제발전, 그리고 사회통합의 개선을 위한 진지한 대안들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경제관리 기능 회복과 혁신에 기초한 산업의 발전, 사회통합에 기반한 성장과 분배의 동시 개선 등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가 전개돼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략적이고 관리되는 개방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개방과 전면적인 세계화가 경제성장으로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최근의 경제학 연구들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금융세계화는 성장을 촉진하는 대신 경제적 불안정만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IMF의 연구도 인정하는 바이다. 중장기적으로 개방을 지향한다고 할지라도, 대책 없이 경제를 여는 것이 아니라 개방의 과정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보여주듯 이러한 과정은 국민들의 참여와 합의에 기초할 때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미 FTA를 둘러싼 국민적 논란과 갈등은 우리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현재의 혼란이 국민의 참여에 기초한 대외개방의 관리와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의 모색을 시작하는 데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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