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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발사 후 '정중동'…북한은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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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사일 발사 후 '정중동'…북한은 어디로 가나 <프레시안>-북한연구학회 '2006 북한은 어디로' 마무리 좌담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 공동기획 '2006, 북한은 어디로'가 광복과 분단 61주년이 되는 8월 15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지난 4월 24일 시작한 '북한은 어디로' 시리즈는 경제(10편), 정치(7편), 사회문화(10편)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북한전문가들이 참여해 '변하고 있는 북한'과 '변하지 않는 북한'의 양면을 살펴봤다. 이는 북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데 기여함과 동시에 남북간 상호 이해를 위한 또 하나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

지난 1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북한의 경제개혁·개방이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에 따라 북한 사회 역시 변화의 바람이 거셀 것이며, 한반도 정세에도 극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었다.

그러나 정작 한반도 정세가 요동친 것은 북한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7월 4일 미사일 시험발사 때문이었다. 미사일 발사는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켰고, 뒤이은 홍수 피해는 북한을 또다시 침전시키고 있다. 북한의 변화는 여전히 먼 길처럼 느껴진다.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는 공동기획 마무리를 계기로 미사일 발사 이후의 북한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조망해보는 좌담을 마련했다.

좌담에 참가한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 이후의 정세 변화를 관망하면서 돌파구를 모색할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의 전략과 그 득실에 대해서는 일정한 견해차를 보이며 갑론을박을 펼쳤다.

지난 8일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는 북한연구학회 회장인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사회를 맡았고,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 이상만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및 민족통일연구소장,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는 앞으로도 일반 대중들과 독자들의 북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의 협력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음은 이날 좌담 전문이다. <편집자>

▲ '2006 북한은 어디로' 마무리 좌담 ⓒ프레시안

경제제재와 수해의 영향은?

전현준 : 오늘 좌담은 현재 북한의 내부 사정과 전망, 그리고 우리의 대응 방향의 순서로 진행하겠다.

<프레시안>과 북한연구학회가 '2006 북한은 어디로' 연재를 시작한 것은 미사일 발사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북한이 어떤 획기적인 개혁 방안, 특히 경제 분야에서의 개혁 방안을 내놓지 않겠나 하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전망이 현실화하는 데에는 지난 7월 미사일 발사로 시간이 다소 걸릴 것 같다. 북한은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위해 뭉치자며 반미 분위기를 고취하고 내부 통합에 주력하고 있다. 수해까지 입었기 때문에 정치 통합 운동의 필요성은 더 커지게 됐다. 먼저 지금 북한의 군부나 권력 엘리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 고유환 교수가 말해 줘야 할 것 같다.

고유환 : 북한은 한마디로 위기 심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미사일 시험발사는 충격 요법을 통한 국면전환용이었다. 북한은 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미국과의 관계개선 전략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가, 그걸 이루지 못하고 미국이 조지 부시 행정부로 넘어오면서 9.11테러 이후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2002년 하반기부터 한차례 경제개혁과 개방을 시도했지만, 역시 미국과의 관계가 트이지 않아 어려웠다.

미사일 발사는 그간의 개혁개방이 성과를 내지 못한 데 대한 강경 군부의 불만 표출로 볼 수 있고, 그런 내부 갈등이 지속될 경우 체제 유지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무력시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전현준 : 경제난도 말할 수 없이 심화될 것 같다. 우리의 지원도 중단됐고, 홍수로 작황도 말할 수 없이 나빠졌을 것이다. 2002년 이후 경제정책 방향에서 현재의 상황까지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상만 : 2002년 이후 식량과 생필품 공급이 다소 늘어났는데, 최근 위폐 제조 등을 이유로 한 미국의 금융제재는 북한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특히 외환 거래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송금이 제한되고 외화 자금의 인출이 불가능하게 되면 북한의 대외부분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다.

북한으로서 특히 치명적인 것은 금융제재에 중국이 동참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경우 중국과의 교류가 생필품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중국이 금융제재에 동참해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악영향을 받는다면 생필품 공급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해외에서의 지원과 작황 호전으로 식량난이 완화될 것으로 예측됐었는데, 이번 수해로 말미암아 식량공급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는 산에 나무가 없어 물난리가 나면 작황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도로가 파괴되어 배급도 어려워질 것이다. 심각한 경우 2000년 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전현준 : 일부 전문가들은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서의 계좌 동결이 북한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북한 경제 전체로 볼 때 BDA에 묶인 2400만 달러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단지 미국과의 정치적 대결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상만 : 2400만 달러는 돈의 크고 작음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 중국은행의 계좌 동결은 미사일 발사 전에 이루어졌다. 북한의 불법 외환거래에 대해서는 중국의 금융기관도 상당히 경각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2400만 달러가 묶이면 타 금융기관도 거래제한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파급효과가 굉장히 크다. 스위스나 싱가포르에서도 북한과 거래하는데 제한이 많을 것이다.

한편 중국과의 변경무역은 현찰로 하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체제 유지를 위한 자금 조달은 어려워질 것이다. 남북간 경상 거래 중 일부도 중국을 통해 돈이 들어가는데 그 송금이 불가능해지면 정상적인 거래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경제제재에 대한 내구력은 강해졌을까

전현준 : 미국은 북한에 대해 그간 정치군사적인 압박을 주로 해왔다. 그런데 작년 9월부터 금융제재를 통해 북한의 체제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게 만약 효과가 없다면 미국은 전략을 또 바꿔야 한다. 따라서 금융제재의 효과를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생필품은 중국에서 보따리 상인들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관리하는 경제나 군경제·당경제 등 소위 상층부 경제나 체제 유지 비용 등에 영향을 받아야 6자회담에 복귀할 텐데, 그것조차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6자회담 복귀는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금융제재가 파워 엘리트 차원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인민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은 앞으로 전망과 관련해 중요하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제재라면 이력이 나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선 미국 국방부나 국무부가 아닌 재무부가 나서서 금융제재를 하는 전략적 변화를 취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검토해 보자.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9.19공동성명이 채택된 직후 강한 어조로 북한에 대한 선(先) 핵폐기를 촉구했고, 북한은 바로 다음날 외무성 대변인이 성명을 발표해 경수로를 먼저 지원해야 한다며 반발하면서 6자회담과 공동성명 이행은 곧바로 교착에 빠졌다. 경제재재, 금융제재가 나온 것은 그 즈음이다. 거기에서 어떤 전략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백학순 : 작년 제4차 6자회담에서 도출한 9.19공동성명에는 북미 양국이 북핵문제 등 양국간의 주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 미국이 '1 대 3 주고받기'를 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국은 북한에 대해 안전보장, 관계정상화, 경제 및 에너지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북미 양국이 신의를 갖고 충실히 이행만 한다면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북미간의 주요 현안도 모두 포괄적으로 해결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까지 구축할 수 있는 길을 열었을 터였다.

그러나 미국이 9.19공동성명에서 했던 주고받기 약속은 '악의 축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부시 행정부의 근본적인 생각이 변하지 않고서는, 또 북한의 정권을 교체하고 체제를 변경하겠다는 숨은 목표가 변하지 않고서는 이행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대북 적대시정책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9.19공동성명은 미국이 2005년 2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에 의해 본격화된 북핵 위기를 국제사회를 동원해 일단 통제·관리하기 위한 목적의 느슨한 정치적 합의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사회자도 말씀하셨지만, 미국이 9.19공동성명에 합의하면서 동시에 대북 금융제재로 나아가는 조치를 취했다. 결국 미국은 이라크 침공 후 이라크 늪에 빠지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제대로 신경을 쓸 처지도 못되고, 또 군사력을 사용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도 불가능한 처지에서 9.19공동성명이라는 정치적 틀에 북핵문제를 일단 묶어 놓고 비(非)군사적인 수단인 금융제재로써 북한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 북한 문제에 대한 '문제해결적인 관점'을 강조한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 ⓒ프레시안

일반적으로 대외 제재에는 군사적 제재, 경제적 제재(금융, 교통·통신 제재 포함), 외교적 제재가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느냐? 이는 워싱턴 정치상황 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러시아의 국가이익과 입장을 고려할 때 지금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unthinkable) 것이다. 중동에서 이라크는 말할 것도 없고,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전쟁까지 번져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대북 군사제재가 북한과의 전쟁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은 한반도에 투입할 군사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외교적 제재도 북미간에 국교가 수립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 큰 의미가 없다. 결국 남은 유일한 제재가 경제제재인 셈이다. 그래서 미국이 금융·경제제재를 시작한 것이다. 특히 7월 4일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한 이후에 대북 경제제재는 더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금융·경제제재로 북한의 정권을 교체하고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을까? 만일 북한이 정권교체도 되지 않고 체제붕괴도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하고 나온다면―지난 4년간 실제 그랬듯이―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결국 실패하는 것 아닌가? 지금 워싱턴에서는 비록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가 대외정책을 장악하고 북한과 양자협상을 하지 않는 정책을 지속해 오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이 과연 '문제해결적 관점에서 실효성이 있느냐'의 여부에 대해 논쟁 중이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역사적으로, 경험적으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지도자와 체제를 좋아 하지는 않았지만,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도 위협이 되고 있다는 '상호위협'을 인정하고 '상호위협감소(mutual threat reduction)'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직접 양자현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했고, 북한 미사일 문제도 해결해 나가던 와중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지도자와 체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이를 교체시키고 붕괴시키겠다는 목표 하에 북한과 직접 양자대화를 하지 않고 다자간 틀―그것도 법적인 틀이 아닌 '정치적 틀'―에 북한을 묶어 두고, 국제사회를 동원해 압박을 가함으로써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도록 기대하는 정책을 써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과연 어땠나? 부시 행정부 5년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더 악화됐다. 클린턴 행정부와 부시 행정부가 취한 대북정책의 문제해결적 실효성이 이렇게 대비되는 데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기존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나? 부시 행정부 강경파들이 갖고 있는 '악의 축'에 대한 '과도한 이데올로기적인 철학과 성향'이 국제관계에서 현실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크게 저하시켜왔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현준 : 결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금융·경제제재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인가.

백학순 : 단기적으로 제재의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고 이야기들 하지만, 결국은 그런 방식을 통해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경제제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국가들이 적극 동참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리 쉽지 않다. 미국은 6자회담 참여국들이 북한에 대해 한 목소리로 공동압력을 가하길 바라지만, 대북정책에서 중국과 한국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과 같을 수는 없다. 중국이 대북 금융제재에 일부 동참을 하고는 있지만, 미국이 북한 정권교체·체제붕괴를 본격화한다면 미국을 적극 도울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결국 북한의 안정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찬성했지만, 그걸 두고 중국이 북한에 등을 돌렸다고 분석하는 것은 과장이다. 안보리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은 중국이 미국과의 협조 차원에서 나름대로 모양새를 갖춘 것에 불과하다. 중국이 대북 결의안에 유엔헌장 7장의 41조와 42조(유엔안보리 제재 조항)의 적용을 끝까지 배제하고 이를 통과시킨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겠는가?

북한에 대한 1993년 안보리 결의안(825호)과 이번 결의안(1695호)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결의안의 마지막 조항을 보면, 1993년 결의안은 "(유엔 안보리가) 이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관여하고,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안보리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당시 중국은 기권) 그러나 이번 결의안에는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안보리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는 표현이 빠져 있다. 결국 이번 미사일 발사는 1993년 북핵 문제, 그리고 북한의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 문제와 그 성격이 다를 뿐 아니라, 중국이 앞으로도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에는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백히 밝힌 것이다.

둘째, 북한에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가 도입된 이후 북한 주민들이 정부에 의지하지 않고 나름대로 먹고 사는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7.1조치로 시장주의적 요소가 들어온 이후 정부 차원에서 생필품을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다하더라도, 주민들은 과거에 비해 알아서 먹고살면서 버티는 정도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시장주의적 경제생활이 정착돼 사회전체로 볼 때 생산과 분배가 과거보다 효율적이 됐고, 생산 자체도 증가됐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오는 제재에 버티는 내구력이 그만큼 커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들어온 중국산 제품이 북한 생필품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입장으로서도 북한과 상품 교역을 지속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고 또 북한 주민들로서는 값이 비싸다고 해도 꼭 필요한 생필품은 어찌됐든 중국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 예전처럼 아예 물건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금융제재 해제는 북미 신뢰의 징표

고유환 : 미사일 시험발사 사태까지 오게 된 것은 BDA에 있는 북한 계좌를 동결한 데서 직접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시작했지만 북한으로서는 '정권의 목을 물렸다'고 본다. 미국에는 '날카로운 제재(smart sanction)'라는 개념이 있는데 포괄적인 제재를 하면 일반 주민에게까지 피해가 가니 정권과 지도자의 급소만을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BDA 계좌에서 동결된 자금은 2400만 달러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다른 관련 자금이 BDA를 통해 세탁된 과정도 꽤 있는 것 같고, 또 계좌 동결의 여파가 다른 은행에도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을 두렵게 하는 것 같다. 북한과 불법 거래를 할 경우 정상적인 금융 거래가 어려워진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도 불리하다.

중국 관할에 있는 마카오에서 계좌를 동결했는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못하는 것은 중국도 그 문제가 자신들의 경제와 국가 신인도에 영향을 준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 BDA와 북한 간의 문제이지 자신들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방관하고 있다.
▲ 고유환 동국대 교수 "지금은 북한 군부가 국제사회의 규범을 학습하는 시간" ⓒ프레시안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군부는 금융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6자회담에 나가지 않겠다는 엄명을 내린 듯하다. 금융제재 해제가 곧 북미 신뢰의 징표라는 식이다. 미사일 시험발사도 결국 미국이 북한의 목을 물고 놓지 않으니 미국 꼬리에 불을 붙여 새 판을 짜보겠다는 충격요법이다.

중국 등 관련 국가들이 발사 중지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위험을 감수하고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한 이유는 '날카로운 제재'가 북한 정권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방증이다. 북한은 미국의 제재를 김정일 정권의 전복을 꾀하는 조치로 인식하고 있고, 이 국면이 지속되면 미국의 뜻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심각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상만 : 금융제재의 효과가 북한의 인민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그리 크다고 보지 않는다. 물론 북중 교역이 가로막힌다면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지만, 그 가능성은 많지 않다. 최근 중국의 금융기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철저히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금융기관보다 더 국제화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다. 이번 금융제재에 중국이 동참한 것은 금융기관의 대외신용을 고려한 자체적인 조처일지도 모른다.

백학순 : BDA 2400만 달러 동결이 북한에 갖는 의미는 액수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다. 2400만 달러도 물론 적은 돈이 아니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이 2400만 달러의 동결 문제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의 표지(標識), 증거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제1차 핵 위기를 통해서 미국에게 '속았다',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에너지를 위한 경수로가 필요했지만, '혹시나' 믿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미국이 '역시나' 믿을 수 없는 국가라는 인식을 또 한 번 새롭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제2차 핵 위기를 맞아서 북한은 절대로 미국에 다시 속지 않는 것, 이왕에 협상을 하기로 한 이상 핵무기가 없더라도 자신의 안보가 보장되고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보장책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손해 보지 않도록 철저히 '동시행동적 원칙'에 바탕을 둔 주고받기를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욕을 얻어먹더라도 자신이 필요한 것을 미국으로부터 받아 내는 것이 중요하지, 그 과정에서 북한의 행동이 국제적 비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리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미국이 한편에서는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6자회담에 나오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금융·경제제재로 목을 조르는 '게임의 규칙'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그런 규칙의 틀을 받아들이면 자신은 미국에 말려들게 되고, 또 나중에 속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 말려들어 속게 되면, 이번에는 단순히 속는 게 아니라 정권교체를 당하고 체제붕괴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6자회담을 재개해 북한의 핵을 없애고 싶다면, 북한의 정권교체와 체제붕괴를 기도하지 않겠다는 대북정책 전환의 표지로서 2400만 달러에 대한 금융제재를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6자회담에 나가서 북한의 비핵화에 협조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리더십 손상?

전현준 : 금융제재의 배경과 효과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들어봤다. 이제는 북한의 정책이나 판단이 실패했는지에 대한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보자. 김정일 위원장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게 된 과정에서 군부에 휘둘리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많았다.

고유환 : 김정일 위원장의 리더십은 2002년 하반기 경제와 관련한 일련의 정책을 결정했지만 대외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해 실행이 어려워지면서 손상을 입기 시작했다. 신의주 특구를 설치했지만 중국의 견제로 잘 되지 못했고, 개성과 금강산에 공업지구와 관광지구를 설치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별 성과가 나지 않았다. 2002년 하반기부터 야심차게 추진했던 전환의 움직임들이 이렇게 오류로 드러나면서 리더십에 큰 상처를 받았다.

또 김 위원장은 당, 군부, 내각, 대남라인과 대외라인을 각각 두고 라인별로 직할 통치를 하고 있는데, 이들 라인 간 수평적 의사소통이 잘 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미사일 발사 때도 대남라인에서는 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쐈다. 직할 통치 체제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강온파의 갈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개혁개방에 대비해 혁명 4세대를 전문 기술 관료로 양성해 전진배치 했는데 그들이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이로 인한 군부의 불만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게 아닌가 추측한다.

북한 당국의 전략적 판단은 무력시위를 통해 협상을 유도하는 것이었지만 이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오산이었다. 국제 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재가 예상되던 상황에서도 발사를 강행한 것으로 보아 북한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져보게 하는 점이다.

전현준 : 북중관계의 변화를 두고도 말이 많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중국이 찬성한 후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정상들끼리 얘기도 안한다는 설도 있다.

백학순 : 요사이 북중관계가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결코 없을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북한이 중국에게 어떤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역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혹은 북한에 대해 경제적 가치보다는 전략적 가치를 중시했다. 이는 이들 국가가 강대국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강대국 외교를 하고 있고 또 그동안 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북중관계가 크게 나빠졌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안 통과를 이야기하면서 이미 앞서 설명했지만, 중국은 결코 북한을 본격적으로 정권교체하고 체제붕괴시키는 미국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았다. 결국 중장기적으로 북중 양국이 상대방으로부터 확보해야할 정책목표와 국가이익을 생각한다면 양국은 앞으로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지속시켜 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북한의 '미사일 카드'는 결국 오판이었나?

전현준 : 내부적으로는 김정일 리더십이 훼손됐고, 대외적으로는 북미관계가 최악이고 북중관계도 냉랭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이상만 : 북한의 경제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 최근 북한의 홍수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홍수 복구가 우선과제가 될 것이다. 복구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대외 경제관계를 닫을 가능성은 없다. 홍수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북 지원은 북한이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난 해소를 위해서는 경제개혁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경제개혁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며 남북경협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금융제재로 인해 외국의 투자 유치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이상만 중앙대 교수 "북한 경제난 해소를 위해서는 경제개혁 외에 길이 없다" ⓒ프레시안

백학순 : 북한은 선군정치를 하고 있다. 군이 실제 힘을 가지고 있는 정치다. 혁명의 주력군이 노동자에서 군(軍)으로 바뀐 것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외부에서 오는 위협 속에서 국가안보의 최후의 보루로서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군이 중심에 서있는 선군정치는 미국의 위협이 계속되는 한 더 강화되리라 본다.

바로 그런 토대 위에서 북한이 '의식적'으로 '미국과의 전략적 대결'이라는 카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북한이 맘먹고 실행한 미사일 발사를 단순히 '오판'이라고 할 수 있는지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만나 소위 납치자 문제에 대한 '고백외교'를 했는데, 이것이 일본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그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북일관계 개선을 위한 선의의 제스처였다. 단지 그것을 일본 여론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런 경우, 북한의 고백외교가 결과적으로 역효과가 났다고 해서 단순히 '오판'이라고만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미사일 발사도 미국이 북한을 정권교체 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대북 압박정책을 쓰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북한 지도부가 무엇보다도 미국을 북미 양자회담에 끌어내기 위해 의식적이고 전략적으로 카드를 사용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를 단순한 '오판'이라고만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뜻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아무리 그것이 미국과 일본을 겨냥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역시 심각한 안보위협이 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단순한 북한 지도부의 '판단 착오'로 보는 것도 좋으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문제해결적 관점에서 북한의 의도를 분석하고 또 우리의 대응책, 해결책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지금 대미 대결국면을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끝까지 6자회담에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일 미국의 정책이 절대 변할 것 같지 않고, 국제사회의 금융제재가 더욱 강화돼 북한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면 6자회담의 복귀라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북한이 이를 통해 남한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식으로 6자회담에 복귀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물론 6자회담에 돌아와 북미간에 협력이 잘 이루어질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해서도 '미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우리도 협조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고이즈미처럼 우리도 부시 대통령에게 양자 대화 촉구했어야 한다"

고유환 : 2002년 하반기 이후 북한의 정책결정에 나름대로의 선의가 있었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문제는 그 결과가 오류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정책의 상대가 그걸 선의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왜곡시키거나 활용했다는 것이다.

과거 북한의 기본 정책은 북미관계를 먼저 개선하고 그 후에 개혁·개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 압박만 계속하니까 개혁·개방을 먼저 하는 쪽으로 바꾸기까지 했는데 미국과 일본이 그것마저 왜곡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오류가 됐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미사일 발사는 분명한 오산이었다. 북한의 정책 합리성과 우리의 합리성이 같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래도 분명 오산이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경고를 무시했다는 점이 그렇다. 한국과 중국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에 일종의 '압력 조절장치' 역할을 해 왔는데, 그런 나라들이 미사일을 발사해서는 안 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사를 감행했다. 이것은 김정일 정권 내 의사결정구조에 문제가 있었고, 정세를 세밀하게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미래 국제사회의 중심국가로 부상하려고 했는데, 북한이 중국의 외교적 위신을 실추시켰다. 중국이 이번 안보리 수정 결의안에 주도적으로 임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고, 북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여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지난 7월 11일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몇 가지 얘기를 했다고 한다. 비핵화를 실현하고, 6자회담에 복귀하고, 한국과 긴장관계 만들지 말고 신뢰를 구축하라, 그러면 중국이 에너지와 생필품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최근의 중국 입장은 한국의 입장과 거의 비슷하다. 기존의 우호협력은 유지하겠지만 추가 지원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원유는 기존 송유관으로 공급하는 범위만큼은 지원하겠지만 추가 지원은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 변경무역은 허용해서 북한이 버텨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이미 쌀·비료 지원을 지렛대로 걸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아무 일 없었던 듯 이를 풀고 당국 차원의 지원을 재개할 수는 없다. 북한의 또다른 '잘못된 행동'을 억지하는 차원에서 이번에는 다소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도적 차원의 긴급구호는 민간 차원의 지원에 정부가 매칭 펀드 형식으로 지원금을 부담하거나, 적십자 차원에서 대북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백학순 : 고 교수가 북한의 행위를 '오판'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물론 충분히 이해한다. 고 교수의 이야기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어떤 정책이 오류냐 아니냐를 판단하고 비난할 때는 '문제해결적 관점'에 서서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뿐이다.

다시 말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와 같은 엄중한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 미국이 '북한의 이익'과 현재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능력'을 깡그리 무시하고 압박만 한다면 어떻게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온갖 수사학적인 표현을 다 빼고 이야기하면, 북한 핵문제와 미사일 문제는 북한이 그것을 포기하겠다는 정치적인 결정을 할 때만 해결이 가능한 것 아닌가?

또 북한이 중국과 한국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미사일 발사가 패착이었다고 비난만 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한국과 중국의 입장에서만 판단하는 것이고, 이러한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과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당연히 비난할 수 있는 것이지만, 미국에 대해서도 대북정책을 전환하도록 강력히 압박해 대북 적대시정책을 전환함으로써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구실을 없애도록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최소한 그런 노력을 끊임없이, 강력하게 했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면 그 때 중국과 한국은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도 좋다는 뜻이다. 즉, 한국과 중국의 지도자들도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처럼 부시 대통령에게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실효성 없는 대북정책을 더 이상 끌고 가지 말고 북한과의 양자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한다고 명확히 얘기했어야 옳았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 6월 미일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과 직접 대화하라고 얘기했는데,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외국 정상으로 나한테 직접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말했다고 보도됐다. 이 이야기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후진타오 주석이 여태껏 미국에게 그런 얘기를 직접 하지 않았었다는 뜻 아닌가. 그런 노력도 없이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고 오판이라고 비난만 하고 미국의 대북제재에 동참한다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문제해결적 태도가 아니다.

"북한 강경 군부가 국제사회의 규범을 학습하는 기간"

고유환 : 백 박사 말씀 충분히 이해한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체제전환 혹은 '화학변화'(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를 얘기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복합적인 목표를 가지고 국면전환을 위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그 자체는 북한식 계산법으로 볼 때 합리적이다.

그런데 그건 북한식 합리성이다. 결국 중국을 잘 못 본 건 확실하다. 미사일 발사 전에 북측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일본과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면 떨어지는 건 중국이다. 미사일을 쏘면 미국의 덫에 걸려드는 거다'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한 적이 있다.

실제로 안보리 결의안이 나오면서 북한문제는 북미 양자구도에서 6자구도를 넘어, 결국 '북한 대 유엔 구도'로 갔다. 이것은 북한이 결코 원하지 않는 구도다. 또 관련국들이 북한에 취하는 제재 조치들을 고려할 때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강행은 거의 총체적 실패에 가깝게 됐다. 결과론적인 설명이긴 하지만 이건 예상됐던 결과다. 남북관계와 북중관계가 냉각되고 북한은 그야말로 국제사회의 왕따가 된 것이다.

북한은 일단 선군정치에 따르는 준전시적 위기관리체제를 운영하면서 정세를 관망할 것이다. 남북관계도 냉각기를 가질 수밖에 없고 중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기간은 북한의 지도부와 강경 군부들에게 국제사회의 규범을 학습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다. 당분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국제사회가 움직일 수 없다면 북한이 먼저 풀고 나와야 하는데 미사일 발사 유예나 NPT 복귀 같은 '주동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가 먼저 움직이기 어렵다. 물론 당분간 이런 정세가 계속되겠지만, 상황을 악화시킬 추가적인 행동을 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그때는 정말로 체제나 정권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학순 : 고 교수가 북한의 정책에 대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북한 핵과 미사일로 인해 일본과 미국의 강경파들이 일본의 보통국가화·군사국가화, 미사일방어체제(MD)의 조속한 구축, 군산복합체 이익 보호 등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일이 잘못되면 동북아에서의 본격적인 핵무기 경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카드의 유효성을 믿는 한,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환되기 전에는 버티기로 일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6자회담 재개는 쉽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미국이 핵을 가진 나라를 공격할 수도 없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잘못돼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한국마저 북한을 코너로 몰아붙이는 식으로만 가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아예 굳어져 버릴 것이라는 우려다. 그런 상황이 전개되면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과 번영에도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든 북한과 대화·협상하면서 문제해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우리는 북한이나 미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북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에 있어서 결코 제3자가 아닌 '당사자'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할 것이다.
▲ 북한연구학회장인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이날 좌담의 사회를 맡았다. ⓒ프레시안

남북관계,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것인가

전현준 : 미사일 발사 당시에는 굉장히 강한 톤으로 비판했던 일본 언론이 이제는 좀 완화되는 기류다. 북한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습국면으로 가려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한도 뭔가 해야 하는게 아닐까.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우리의 대응책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상만 : 미사일 문제만큼은 국제 시각에 맞춰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남북관계나 한반도 문제로 보기보다는 9.11 테러의 연장선에서 보고 있고, 북한을 하나의 국가라기 보다는 테러집단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우리와는 기본적으로 다른 시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미 의회에서 증언하는 것을 보면, 남한이 민주국가라는 점을 굉장히 강조한다. 남과 북을 '민주'와 '테러 국가'로 차별화하고, 같은 민주국가인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며 민주 절차에 따라 결정되는 한국의 대북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도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남북경협의 지속적 확대를 위해서는 금융제재가 남북간의 정상 거래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즉 남북경협의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

백학순 : 미사일 발사 후 북한에 대한 워싱턴의 분위기는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설사 북한이 뭘 한다고 해도 믿지 않는 분위기고, 무조건 6자 회담에 돌아오는 것이 모든 대화와 협상의 출발점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되도록 국제적으로 노력함과 동시에 북한에 특사를 보내 남북정상회담의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북귀하도록 설득하고, 6자회담에 돌아와 북미간에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동시에 미사일 문제와 금융제재 문제는 6자회담 밖에서 북미간에 양자대화와 협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남북관계에 큰 훼손을 가져온 우리 정부의 쌀과 비료 추가 지원 유보결정은 '정치적' 결정이었기 때문에, 이번 수해 복구 지원을 계기로 쌀과 비료 지원을 예전 수준으로 전면 회복하는 또한번의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쌀과 비료는 남북간의 '신뢰' 조성의 기초가 되는 인도적인 지원 품목이기 때문이다.

고유환 : 북한 문제는 미중 문제와 미일 문제의 하부 구조 안에 있다고 본다.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가 얽혀 있는데 이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 틀이 만들어졌지만, 북미, 북일, 남북, 북중 등 다시 양자 구도로 돌아가고 있다. 대응 자체가 종합적으로 논의되고 종합적으로 해결돼야 하는데 논의는 다자가 하면서도 해결은 양자가 하는 방식이니, 현안이 있을 때마다 현안 해결에만 치중하게 되고 위기관리 체제에 위기가 찾아오게 된 것이다.

원상 복구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고 추가적 사건이 발생해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인도적 지원과 관련해서는 지금은 정경분리라는 원칙이 훼손돼 있다. 우회적인 통로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전현준 : 북미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복잡한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은 또 당장이라도 대화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두 가지가 얽혀있으니 미국이 갖는 전략적 이익과 우리가 갖는 전략적 이익이 다르고 해법을 모색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이런 고민을 끝으로 오늘 좌담을 마치겠다.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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