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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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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김민웅의 세상읽기 <262> 꽁트
어느 숲 속에 여우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우는 다른 여우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우선 일어서면 몸이 거의 곰만한 크기였고, 힘도 꽤나 센 여우였습니다. 사자와 곰이 없는 이 숲에서 이 여우는 왕처럼 굴었습니다. 이 숲에서 사자와 곰은 아주 오래 전 멸종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한때 이 숲을 지배한 군주들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숲 속의 현자(賢者) 부엉이는 여우도 언젠가는 멸종할지 모른다고 아주 낮은 소리로 말하고 있었고 여우도 그 소리를 듣고 부엉이를 매섭게 째려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멸종"이라는 단어가 언제나 마음에 캥기는 것은 스스로에게야 숨길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숲 바로 옆에는 호수가 있었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이 호수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었습니다. 숲과 호수가 어우러져 있는 이곳은 이 여우가 왕 노릇을 하기 전까지는 매우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여우는 숲과 호수를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건 모두의 숲이었지만, 이 여우는 너무나 탐욕스러워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몰랐습니다. 이 여우는 날이 갈수록 점점 몸이 더 커져갔고 성격도 더욱 포악해져갔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은 이런 여우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힘이 약해 어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자꾸 지나면서 이 여우도 근력이 점점 달려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여우는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이러다간 어느 날인가는 내가 여기서 더 이상 왕 노릇을 하지 못하겠구나." 말 잘 듣는 부하들을 특별히 골라야했습니다.
  
  그래서 이 여우는 너구리를 불렀습니다. 너구리는 그간 하도 못된 짓을 많이 하고 다녀 숲 속의 동물들과 호수의 새와 물고기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우의 신임만큼은 대단했습니다. 너구리는 여우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너구리에게 여우가 말했습니다. "너구리야, 내가 너를 내 직속 대장군으로 임명하겠노라." 여우는 너구리를 자기 집에 초대한 날, 커다란 상을 차려놓고 너구리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너구리도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여우 앞에서 여우 춤을 마구 추었습니다. 여우 춤을 열심히 추고 있던 너구리는 이 춤을 더욱 열심히 추면 언젠가는 자기도 여우가 될지 모른다고 속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여우는 이런 너구리가 너무너무 귀여웠습니다. 여우는 숲과 호수를 잇는 작은 밤섬에 살고 있는 황(凰)새도 따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황새는 이름 그대로의 봉황(鳳凰)과 같은 위엄 있는 황새라기보다는 여우 앞에만 가면 기이하게도 얼굴이 누렇게 되는 황(黃)새였습니다. 사실 본래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그랬는데 다른 새들이 잘 알아보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 하기도 하고 아직 똑 부러지는 정설은 없다고 합니다.
  
  황새를 초대한 여우는 너구리에게보다는 좀 못하지만 보기에는 그럴 듯한 식탁을 차려 내왔습니다. 황새는 상차림이 근사한 것에 눈이 돌 지경이었습니다. 여우는 황새에게 말했습니다. "천천히 들게나, 내 자네한테 할 말이 있네." 황새는 긴장했습니다. 그 말에 먹을 것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우가 말했습니다. "밤섬의 일부를 내가 좀 써야겠어. 아주 자유롭게 말일쎄. 너구리 부대를 창설했는데 아무래도 그곳이 훈련장으로는 딱 제격이야." 황새는 그 말에 저절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여우가 말하는 곳은 분명 "황새울"*이었습니다. (*"황새울"은 평택의 대추리, 도두리의 들판이름이라고 합니다.)
  
  황새울에는 밤섬의 늙고 착한 새들이 진지하게 땀흘리며 여생을 보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여우의 이야기대로면 황새울은 이제 황폐해질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황새울을 너구리에게 내주는 대신 무언가 자신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여우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내가 자네에게 밤섬의 주인자리는 확실하게 보장해주지." 황새의 입가에 미소가, 아니 부리 근처에 은근히 웃음이 배어 나왔습니다. 그 말을 마친 여우는 황새에게 먹을 것을 권했습니다.
  
  여우가 차려놓은 식탁에는 그릇마다 F.T.A.라고 무슨 꽃무늬처럼 크게 적혀 있었습니다. F.T.A.는 여우가 운영하는 접시공장의 이름이었습니다. 여기서 F는 Fox(여우)를 의미하는 글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릇은 모두 넓적했습니다. 황새의 부리가 그 그릇에 닿기만 하면 음식은 모두 그릇 밖으로 삐져나오는 바람에 황새는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여우 집에서의 초대만찬은 어느새 끝났습니다.
  
  황새는 밤섬으로 돌아오자 밤섬의 동물들 앞에서 "끄윽"하고 평소 별로 하지 않던 트림을 아주 크게 했습니다. 이쑤시개로 부리를 살살 문질러댔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그래, 음식은 역시 좋은 그릇에 담아야해." 황새를 따라온 F.T.A. 공장의 여직원도 그릇 선전을 했습니다. 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으면 모두 황새처럼 트림을 멋있게 할 수 있다고 그 긴 여우코를 가진 여직원이 밤섬의 동물들에게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다소 위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모든 것이 여우가 바라던 대로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여우는 이 모든 일을 다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어느 날 혼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언젠가 아득한 옛날에 들었나말았나 하던 동요 하나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그 노랫소리에 여우는 자기도 모르게 "밥 먹~는~다"하고 대답했습니다. 뒤이어 노래 가락은 "무슨 바~안찬?" 하고 이어졌습니다. 여우는 이번에도 자기도 모르게 "개구리 바~안찬"하고 대답했습니다.
  
  바람이 창문을 스치며 여우의 식탁으로 휙 하고 불어왔습니다. "개구리 바~안찬" 하는 소리와 함께 황새들의 깃털이 여기 저기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여우의 그릇에 개구리는 없었습니다. 밤섬에는 신참 너구리들이 작대기를 들고 열심히 여우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늙은 여우는 "끄윽"하고 트림을 하며 황새울의 어느 집 대들보로 만들었다는 이쑤시개를 두리번두리번 찾고 있었습니다.
  
  *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동물들은 특정한 사건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리며 각 동물들의 명예를 의도치 않게 훼손하게 된 대목은 심심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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