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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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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길 위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김민웅의 세상읽기 <265>
2007년 1월 17일 장충체육관에서 신라호텔로 들어가는 길 위에는 이 나라 국회의원,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 노동당 의원들이 난데없는 풍찬노숙과 단식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변을 둘러싼, 24시간 엔진을 틀어놓은 경찰 버스에서 뿜어 나오는 매연을 들이마시면서 민노당 의원들이 버티고 있는 겁니다.
  
  건너편에는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촛불시위가 있게 됩니다. 노무현 정부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그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미 FTA 협상의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이 나라 정부에 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길바닥 위에 내동댕이쳐진 채 협상은 진행되고 있고 있는 겁니다.
  
  어떤 신념과 목표와 전략이 있기에 이런 협상을 밀고 나가려는 것인지, 국제정세와 그 역사를 젊은 시절 이후 지금까지 공부해 온 저로서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과정과 결과가 이 나라에 재앙이 된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민생은 극심한 양극화의 칼날 위에 서게 될 겁니다. 우리 제품이 미국 시장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다는 선전공세는 거짓으로 판명될 것이며, 미국이 이 나라의 경제를 점령하는 사태로 귀착될 겁니다.
  
  정말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협상이라면, 저렇게 경찰력으로 협상장을 둘러싸고 숨어서 하듯 하지는 않을 겁니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할 겁니다. 반대시위가 있는 것도 협상력의 배경으로 삼는 지혜를 발휘할 겁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일체 볼 수가 없습니다.
  
  구린 데가 있어서, 내놓고 공개할 수가 없어서, 비판이 두려워서, 어느새 올라탄 호랑이 등에서 내리는 것이 체면을 구길까봐, 라는 의혹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현장입니다. 정부는 일방적인 홍보만 하고, 격의 없는 토론을 하지 않습니다. 반대의견은 묵살해버립니다. 미국과 FTA를 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폐쇄된 국가가 되어 낙오할 것처럼 주장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논리가 옳은가요? 개방이냐 쇄국이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개방은 당연한 선택이고 그래야 이 나라에는 문명사적 합류가 활발하게 일어나 나라는 발전하고, 우리의 현실은 국제적 수준의 역량을 갖게 됩니다. 누가 개방을 반대합니까? 저 머나먼 옛날에도 우린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한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FTA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는 개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 무장해제를 경계하는 겁니다. 개방은 곧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개방은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개방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한국의 종속적 개방과 미국의 보호주의 지속과 강화"라는 모순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협상이란,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게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손해 보게 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지금은 손해이나 장래에는 이익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거래를 하고 협상을 하는 한, 이런 현실은 반복적으로 있게 됩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현장에서의 협상력을 문제 삼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치명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목은 그 이상의 문제입니다. 실무진의 협상력이 아무리 좋다 해도 기본적인 발상과 방향이 잘못되어 있으면 그 협상력이라는 것도 그 수준에서 발휘되게 마련입니다. 협상팀의 진정성이 있다 해도 결과는 국가적으로 폐해만 낳을 뿐입니다.
  
  장기적인 국가 발전의 구상과 전망, 그리고 전략은 없는 채로 우리 자신의 안전망을 해체하고 상대의 요구를 담아내는 제도의 변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건 국가 경영의 주도적 책임을 포기하는 자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고 이러는 것인지 설명이 없습니다. 교육, 문화, 산업, 언론, 농업, 일체의 영역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정치적 책임감을 가진 대답과 성실한 논쟁을 철저하게 회피하고 있는 것이 지금 정부의 태도입니다. 아니라고 한다면, 온갖 도전적인 질문과 논쟁에 대해 진지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은 동북아시아 지역을 자신의 세계체제에 보다 깊숙하게 통합하려 합니다. 전략적 유연성이라고 하는 미국의 군사력 이동의 자유를 확보하는 문제와, FTA라고 하는 경제적 지배력은 바로 그 전략의 두 날개입니다. 한국은 지금 미국에게 그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안달하는 나라가 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미국과 함께 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요?
  
  아시아적 지역공동체를 건설하는 노력은 배제된 채, 미국과의 FTA에 주력하는 이러한 자세는 이후 일본과 FTA를 한다 해도 미국에게 양보해준 수준에서 해야 하는 궁지에 스스로를 몰아넣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시아적 기반 위에서 미국과의 FTA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일본이 왜 미국과 FTA를 하지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늘날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을 일회용 도구로 만들고 있습니다. 극소수만 살아남는 체제로 야만화 시키고 있습니다.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강자의 논리를 피할 수 없는 현실주의라고 착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약자들의 살 길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효율이 우선되면서 사회적 안전망은 낭비라고 여기게 하고 있습니다. 권력은 잔혹해지고 자본은 몰인정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지쳐가고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하루살이 삶이 됩니다. 저항하고 싶어도 저항할 기력조차 잃게 됩니다. 정부가 이런 걸 노리고 이토록 막무가내로 막 나가는 듯이 FTA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사회는 공동체적 성찰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사회과학적 예지가 결합된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는 의지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절망하고 있는 자들은 죽음을 매일 떠올리고 있습니다.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소박한 꿈이 짓밟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힘이 없다고 무시당하고, 가난하다고 천대받고 약자라고 계속 배제되는 그런 현실은 분노만 키울 뿐입니다. 좌절을 깊게 할 뿐입니다.
  
  한-미 FTA. 이쯤해서 손 털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를 통해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미국의 과도한 요구와 한국경제 통합전략에 우리가 손을 들어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니다 싶으면 그만 두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금은 많아야 몇 천이나 몇 만 명이 길에 나와 항의하지만, 한-미 FTA 체결은 그보다 수 배 또는 수십 배의 사람들이 갈 곳을 잃고 길에서 헤매는 사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반대론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했는데, 한-미 FTA 이후의 사태에 대해 누가 책임을 끝까지 추궁 당하게 될까요?
  
  우리는 행복한 미래를 원합니다. 서로 더불어 즐겁게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랍니다. 누구도 멸시하면서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사회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한-미 FTA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은, 반미도 아니고 정치적 시비걸기도 아닙니다. 절박한 생존의 문제요,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해서 심히 걱정하는 목소리입니다. 그걸 적대시하는 것은 결국 무수한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이자, 이 나라 장래를 망가뜨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길 위의 저 목소리를 묵살하면, 돌들이 소리를 칠 겁니다. 2000년 전 팔레스타인의 한 목수의 아들 예수가 했던 이야기입니다. 누구든 귀담아 들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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