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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수달을 위한 진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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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미 수달을 위한 진혼곡 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42> 신주편 '혜통항룡(惠通降龍)'조
왜 사는가?
  살다보면 이런 물음과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 물음을 외면 못하고 자칫 발목이라도 잡히게 되면 우리는 속절없이 그 포로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삶을 돌아보게 되고 그 삶의 뜻을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왜 사는가? 신라 시대의 밀교승 혜통의 경우, 그 물음은 수달 한 마리에서 비롯되었다. "혜통이 용을 항복시키다"라는 뜻의, 『삼국유사』 신주편 '혜통항룡'조는 이렇게 시작된다.
  
  중 혜통은 가문이 자세치 않다. 속인으로 있을 때 집이 남산 서쪽 기슭 은천동 어귀에 있었다. 하루는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죽이고 뼈를 뒷동산에 버렸더니 이튿날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가니 뼈가 예전에 살던 구멍으로 돌아가서 새끼 다섯 마리를 안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혜통이 바라보고 한참이나 놀라고 이상히 여기면서 감탄하고 망설이다가, 그만 속세를 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혜통이라 하였다.
  
  "한참이나 놀라고[驚], 이상히 여기면서[異], 감탄[感嘆]하고, 망설이다가[躊躇]……" 일연이 쓴 표현이다. 새끼 다섯 마리를 안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어미 수달의 형해(形骸) 모습에 충격 받은 혜통의 심리상태를 표현해 주고 있는 말이다. 혜통은 그렇게 출가를 결심하는 것이다.
  
  출가한 혜통은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난다. 유명한 중 무외삼장(無畏三藏)을 찾아가서 배우기를 청했다. 무외삼장은 "동쪽 변방 사람이 어찌 불법(佛法)을 담을 만한 그릇이 되겠는가?"라고 하면서 가르쳐 주지를 않았다. 그러나 혜통은 물러서지 않고 3년 동안이나 부지런히 섬겼다. 그래도 삼장이 허락하지 않자 혜통은 분개하여 뜰에서 불화로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 조금 후에 정수리가 터지는데 소리가 천둥과 같았다. 삼장이 소리를 듣고 와서 보고는 화로를 내리고 손가락으로 터진 곳을 만지면서 신주(神呪)를 외니 상처는 이내 아물었는데 '임금 왕'자 모양으로 흉터가 생겨서 왕화상(王和尙)이라 불리웠고 삼장도 그를 인정하여 비결(秘訣)을 전했다.
  
  이때 당나라 황실에서는 공주가 병이 있어 고종(高宗)이 삼장에게 치료를 부탁하자 삼장은 자기 대신 혜통을 천거했다. 혜통이 명을 받고 별실에 거처하면서 횐 콩 한 말을 은그릇 속에 넣고 주문을 외니, 그 콩이 변해서 횐 갑옷을 입은 신병(神兵)이 되어 병마(病魔)들을 쫓았으나 이기지 못했다. 이에 다시 검은 콩 한 말을 금그릇에 넣고 주문을 외니, 콩이 변해서 검은 갑옷 입은 신병이 되었다. 두 빛깔 신병이 함께 병마를 쫓으니 갑자기 교룡(蛟龍)이 나와 달아나고 공주의 병이 나았다. 용은 혜통이 자기를 쫓은 것을 원망하여 신라 문잉림(文仍林)에 와서 인명을 몹시 해쳤다. 당시 정공(鄭恭)이 당에 사신으로 갔다가 혜통에게 말했다.
  
  "스님이 쫓아낸 독룡(毒龍)이 본국에 와서 해(害)가 심하니 빨리 가서 없애도록 하시오."
  
  혜통은 이에 정공과 함께 인덕(麟德) 2년 을축(665년)에 본국에 돌아와 용을 쫓아 버렸다. 용이 정공을 원망하여 이번에는 정공의 문밖 버드나무에 의탁하고 있었다. 정공은 이를 알지 못하고 다만 버드나무가 무성한 것을 좋아하여 무척 사랑했다.
  
  그 무렵 신문왕(神文王)이 등창이 나서 혜통에게 치료해 주기를 청하므로 혜통이 와서 주문을 외었더니, 그 자리에서 병이 나았다. 이에 혜통이 말했다.
  
  "폐하께서 예전에 재상의 몸으로 양인(良人) 신충(信忠)이란 사람을 잘못 판결하여 종으로 삼으셨으므로 신충의 원한이 맺혀 두고두고 보복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등창도 역시 신충의 탈이오니, 신충을 위해서 절을 세워 그 명복을 빌어서 원한을 풀게 하십시오."
  
  왕이 옳게 여겨 절을 세워 이름을 신충봉성사(信忠奉聖寺)라고 했다. 절이 다 이루어지자 공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났다.
  
  "왕이 절을 지어 주셨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났으니, 원한은 이미 풀렸습니다."
  
  신문왕이 죽고 효소왕(孝昭王)이 즉위하게 되매, 산릉(山陵)을 닦고 장의 행렬이 지나갈 길을 닦는데, 정공의 집 버드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 유사(有司)가 베어 버리려 하자 정공이 노해서 말했다.
  
  "차라리 내 머리를 벨지언정 이 나무는 베지 못한다."
  
  유사가 이 말을 왕에게 아뢰니 왕은 몹시 노해서 법관(法官)에게 명령했다.
  
  "정공이 왕화상의 신술(神術)만 믿고 장차 불손한 일을 도모하려 하여 왕명을 업신여기고 거역하여, 차라리 제 머리를 베라고 하니 마땅히 제 좋아하는 대로 하리라."
  
  이리하여 정공을 베어 죽이고 그 집을 흙으로 묻어 버리고 나서 조정에서 의론했다.
  
  "왕화상이 정공과 매우 친하여 필시 원망하고 있을 것이니 마땅히 먼저 없애야 할 것입니다."
  
  이에 군사를 시켜 혜통을 잡게 했다. 혜통이 왕망사(王望寺)에 있다가 군사가 오는 것을 보고 지붕에 올라가서 사기 병과 붉은 먹을 찍은 붓을 가지고 그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하는 것을 보라"
  
  혜통이 병목에 한 획을 그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너희들의 목을 보라."
  병사들이 서로를 돌아보니 각자의 목에 모두 붉은 획이 그어져 있으므로 깜짝 놀랐다. 혜통이 또 소리쳤다.
  
  "내가 만일 이 병의 목을 자르면 너희들의 목도 잘려질 것이다. 어찌 하려느냐."
  
  병사들이 몰려달아나 붉은 획이 그어진 자기네 목을 왕에게 보이니 왕이,
  
  "화상의 신통력을 어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느냐."하고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후, 왕녀(王女)가 갑자기 병이 나서, 왕이 혜통을 불러서 치료하게 했더니 병이 나았으므로 왕은 크게 기뻐했다. 혜통은 이것을 보고 말했다.
  
  "정공은 독룡의 해를 입어서 죄없이 나라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 속으로 후회하여, 정공의 처자에게는 죄를 면하게 하고 혜통을 국사(國師)로 삼았다.
  
  정공에게 원수를 갚은 용은 기장산(機張山)으로 가서 웅신(熊神)이 되어 해독을 끼치는 것이 더욱 심하여 백성들이 몹시 괴로워했다. 혜통은 산속에 이르러 용을 달래어 불살계(不殺戒)를 주니 그제서야 웅신의 해독이 그쳤다.
  
  학자들은 혜통이 당나라에 갔던 연도가 스승 무외삼장이 중국에 온 연도보다 몇 십년 빠르다는 데에서 혜통의 스승이 무외삼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혜통이 중대 신라가 출범하는 시기에 당나라에서 돌아와 국사라는 중책을 맡은 후 총지종(總持宗)이라는 밀교 종파를 창립했다고 밝혀내고 있다. 나는 그러나 혜통을 신라 불교사 내지는 정치사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수달 한 마리에서 새롭게 시작된 그의 인생 행로를, 그 파란만장을 더듬어보았던 편이다.
  
  혜통이 출가를 결심하고, 당나라에 유학 가서 스승에게 박대를 받으면서도 결국은 비결까지 받고, 당나라 공주를 치료하게 되고, 공주를 괴롭히던 용을 따라 신라로 돌아오고, 정공을 해꼬지한 용을 끝까지 따라가 타이르고……. 한편으로 신충의 원한을 풀어주고, 죽음을 자초한 정공을 사후에나마 신원(伸寃)해 주기 위해서 효소왕까지 설득하고……. 그 과정에서 흰 콩, 검은 콩으로 주술도 부리고, 자기를 죽이려온 군사들의 목을 자르려는 도술도 보여주고…… 하는 이런 모습 속에서 나는 혜통의 인간성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글은 『삼국유사』'혜통항룡'조의 글을 재구성하여 옮겨적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러나 이러한 옮겨적음을 통하여 혜통의 삶의 가닥을 짚어보려고 노력했다. 그 삶을 관통하는 어떤 정신을 읽으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혜통의 삶은 그 전체가, 소싯적에 생각 없이 죽였던 한 마리 수달, 그 작은 목숨 하나를 위하여 바쳐진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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