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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을 다시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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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6.15공동선언을 다시 읽어보라" 한반도 브리핑 <39> 반보수대연합 운운하는 北에게
6자회담이 재개되면서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었던 북핵문제가 협상국면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북미관계를 가로막던 위폐문제를 둘러싸고도 타협의 조짐이 역력하다. 북한과 미국은 적어도 북한의 핵시설을 동결시키는 초기 단계의 이행조치에서 잠적적인 타결을 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핵무기의 철폐에 이르는 최종적인 타결까지는 아직 기나긴 협상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 수많은 불신이 쌓여 있는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반도평화체제가 수립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북미관계가 적어도 악화만 되지 않고 협상국면이 지속된다면 남북대화가 재개되어 지속될 공간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일단 남측이 북측의 핵실험으로 중단된 인도주의 지원 문제에서 유연한 자세를 보인다면 대화는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둘러싸고 북측이 내세우는 몇 가지 조건에 대해서도 남측이 부분적이나마 타협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개선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북측은 그간 당국간 회담을 통해 무력증강과 합동군사연습의 중단, 동족을 적대시하며 대결을 추구하는 법· 제도적 장치의 철폐 등을 줄기차게 제기해 왔다. 이러한 요구들은 설사 남측의 입장과 상반되고 받아들이는 데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해도, 북측의 논리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남북회담이 개최되고 진전되면 일정한 타협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선군정치를 '민족의 생명선'이라는 北
▲ 남측의 '반(反)보수대연합'을 촉구한 신년 공동사설의 관철을 다짐하는 평양시민 군중대회 ⓒ연합뉴스

문제는 북측이 1월 1일 신년 공동사설에 이어 1월 17일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에서 적극적으로 남측 선거에 대한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야당의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며 드러내놓고 정치적 입장을 밝혔다. 연합성명에서도 '반(反)보수대연합'을 또 다시 촉구하며, 핵보유에 대해 "6.15 자주통일시대를 계속 빛내어 갈 수 있는 위력한 담보"라고까지 주장했다. 나아가 성명은 북측 정치체제의 핵심을 이루는 선군정치에 대해 "조국통일운동을 백승의 한길로 추동하는 만능의 보검이며 불멸의 기치"라고 규정하고, "해내외의 정치조직, 사회단체들과 동포들은 민족의 생명선인 선군정치를 적극 지지하고 받들어 나가야 한다"고까지 촉구했다.

이처럼 북측은 선군정치가 북의 체제뿐만 아니라 한(조선)반도 전체를 지키는 담보라고 상정하며, 핵무기에까지 이 논리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북측 스스로도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에 내부 인민의 지지만이 아니라, 외부의 지지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측의 체제는 폐쇄적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상당히 개방됐으며, 식량 같은 인도주의 지원을 외부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주민에 대한 사상·여론 통제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게 됐고, 체제에 대한 외부세계의 인식이나 정보가 내부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인 것이다.

특히 6.15시대를 김정일 통치의 주요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 통일운동의 견해는 북측 인민들의 '여론'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되고 있을 것이다.

기복은 있지만 남북은 매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통일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남측의 통일운동, 사회운동,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수백 명의 인사들이 북측 단체 대표들과 교류를 지속해 오고 있다. 이밖에도 작년 한 해만 해도 금강산 관광을 제외하고도 경제협력 및 지원활동을 중심으로 한 교류·협력 분야에서 연인원 8만 명 이상이 북측을 방문했다.

이같은 사정 말고도 북측이 남측 선거에서 '평화세력'의 승리를 원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반도 평화라는 객관적 상황은 물론이고 남북 교류·협력이 지속되면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다는 측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교역규모만 보아도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남측과의 교류·협력은 북측 내부의 경제순환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만성적인 식량부족 상황에 놓여 있는 처지에서 식량, 비료 등의 지원이 지속되는 것만 해도 인민들의 소비생활에 불가결한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내부 정치에서도 6.15시대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는 세력이 집권해야 남북관계와 통일 분야를 김정일 통치의 치적으로 계속 내세울 수 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다.

평화세력의 승리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그러나 남측 '평화세력'의 입장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이라고 해서 그같은 북측의 대남 발언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남측 정치에서 특정세력의 승리나 패배를 북측이 공식적으로 주장하거나 선동하는 행태는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으로 이어지는 내정불간섭의 정신과 어긋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6.15공동선언의 핵심은 남북이 서로의 체제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다. 서로 이질적인 두 체제가 공존해 가며 통일을 향해 접점을 찾아간다는 데 합의한 것이 6.15공동선언 제2항의 정신이다. 이는 2005년 8.15행사에 참가한 북측 대표가 국립현충원 참배라는 극적이고 상징적인 행위를 했던 데에서도 확인됐다.

북측이 진정 평화세력의 승리를 바란다면 말로 표현하기에 앞서 남북 간의 합의 내지 약속을 행동으로 실천해 갈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 남측 정치체제의 성격에 대한 고려없이 일방적인 바람을 밝히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의 2005년 현충원 참배는 이질적인 두 체제의 공존을 합의한 6.15공동선언의 실천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연합뉴스

이미 선거를 앞두고 개최되는 남북대화나 행사는 그것이 아무리 진정성을 지닌 것이더라도 남측 국민의 눈에 정략적으로 비친다면 선거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2000년 4월 남북정상회담 발표의 선례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남측 내부정치에 대한 발언 못지않게 북측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은 선군정치나 핵무기와 관련된 담론이다. 선군정치는 일종의 위기관리체제로 남측의 정치사를 돌아 볼 때도 그리 생소한 게 아니다. 성격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남측도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래 오랜 군부통치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을 통해 민주화를 달성한 남측 국민들이 북측의 선군정치를 좋아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핵문제만 해도 그렇다. 북측이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을 타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데 대해 일정한 이해를 보이는 남측의 여론이 있지만, 다수 여론은 핵무장은 해결되어야 할 '문제상황'이지, 지지해야 할 정당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지는 않다.

북측이 자신들의 체제나 핵무기와 관련해 대외적으로 취해야 할 담론의 자세는 절제되고 억제되어야 하며, 대외관계에서의 체제안전보장 혹은 외교협상 카드의 차원에 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남측 내부의 정치상황과 관련해 북측에 필요한 자세는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남측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과 민주적 역량에 신뢰를 갖고 그 결과를 존중하는 것이다. 남측 국민들의 북측 체제에 대한 존중은 그럴 때에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동질성의 확대가 아닌 이질성의 공존

나아가 북측이 소중히 해야 할 것은 남측 통일운동의 내부적인 위상과 역량이다. 현재 남측 사회에서 통일운동이 직면한 과제는 일상적인 시민 참여와 실천을 통해 대중성을 확대함으로써 남북의 화해·협력에 기여하는 것이다.

통일운동이 대북관계에서도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남측 내부의 국민적 지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 이 때 통일운동이 망라할 세력의 범위는 진보에 한정되지 않으며 중도, 심지어는 보수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층이 되어야 한다.

특히 통일운동은 북측 체제에 대한 입장과 관련해 상호 체제 인정 및 내정불간섭 원칙을 견지하는 차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인권문제에서도 드러나듯 북측 체제가 대외관계에서 직면한 어려움은 국제적 기준을 수용하라는 압박이다.

그러나 북미·북일관계가 정상화되지 않고 한반도 평화체제도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객관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북측 체제에 대해 무차별하게 '동질성의 확대'를 요구하기 이전에 외부세계와의 사이에 '이질성의 공존'을 확고히 자리 잡게 하는 노력이다.

남측 통일운동의 역할은 이 언저리에 있지 직접적으로 북측 체제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데 있지 않다. 이는 북측의 상응한 노력과 맞물릴 때 서로 선순환의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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