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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를 보는 불순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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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를 보는 불순한 생각' [전태일통신 63]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만난 두 청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은 고 윤장호 하사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어느 단체로부터 추모문화제를 하는데 추모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승낙은 선뜻 하였는데, 좀체 써지지가 않는다. 한 청년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다. 누가 윤장호를 죽였는가? 명백한 살인자가 있는데, 나는 살인의 또 다른 추적을 하고 있다. 어떤 테러리스트의 삶을 알기 때문이다.
  
  한 청년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에서 취직을 했다. 그는 병역의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군에 입대했다. 미국에서 배운 '평화의 약속'을 굳게 믿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자원하여 분쟁지역으로 떠났다.
  
  또 한 청년이 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가난한 농사꾼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일자무식인 농사꾼이다. 가난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가족과 이웃이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았다. 하지만 평화는 멈추고 말았다. 탈레반을 몰아내기 위해 왔다는 '평화의 사신' 미국은, 최신식 전투기로 이 청년의 마을을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부모형제도, 이웃, 친구도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혈혈단신이 되었다.
  
  2007년 2월 27일. 두 청년은 미국이 만든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만난다. 미국의 평화를 굳게 믿은 청년과 미국에게 평화를 빼앗긴 청년. 미국에서 경영학을 배운 청년과 미국으로부터 분노를 배운 청년.
  
  한 청년은 이제 한 달 뒤에는 고국으로 돌아가 정든 부모형제를 만날 꿈에 부푼 한국 군인이고, 또 한 청년은 부모형제를 잃은 분노로 가슴에 폭탄을 품은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리스트다.
  
  너무도 다른 삶을 걸어온 두 청년이지만 한날 한시 같은 장소에서 죽음을 함께 한다. 한 청년의 주검 위에는 미국에서 보낸 무공훈장이 놓여 있다. 또 한 청년의 주검 위에는 무지막지한 테러리스트란 이름이 주홍글씨처럼 새겨져 있다.
  
  미국은 한 청년의 죽음에 훈장을 주어 영웅을 만들었다. 물론 이 청년을 죽인 테러리스트도 미국이 만들었다.
  20세기 내내,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 내내 미국은 전 세계 숱한 지역과 국가에 최신식 무기를 든 채 평화의 이름을 나부끼며 개입한다. 불행히도 미국이 개입한 지역과 국가에 분쟁이 끝나고 평화가 깃들었다는 승전보는 받아보지 못했다. 평화보다는 숱한 테러리스트가 태어났고, 독재가 자리 잡아갔다. 더 많은 지역을, 더 많은 생명을 한순간에 잡아먹는 미국 군수산업이 쏟아내는 신식 전쟁 장난감의 위력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랄 뿐이었다. 전쟁영화를 보듯.
  
  9ㆍ11 이후 미국이 선언한 '테러와의 전쟁'은 더 많은 테러를 양산하였을 뿐이다. 세계의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의 이름으로 벌이는 미국의 전쟁놀이를 먼저 멈춰야 한다. 최신식 전쟁 장난감 선전을 위해 무고한 민간인이 죽어가고, 테러리스트가 되어가는 악순환은 이제 끝나야 한다.
  
  고 윤장호 하사의 죽음 앞에 불순하게도 테러리스트의 삶을 이야기하고 말았다. 제2의 김선일, 제2의 윤장호를 막는 길은 더 많은 파병과 복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위장군복'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의 청년, 그리고 전 세계 청년의 생명이 이제는 더이상 희생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리고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무공훈장을 준 미국은 생각하길 바란다. 평화의 이름으로 죽어간 당신 나라의 수천 수만의 청년들, 그리고 그 부모의 마음을.
  
  고 윤장호 하사의 가는 길에 바치는 추모시의 마지막 연은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름도 시신도 없이 사라져간
  또 다른 청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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