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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중도 전략', 레이코프 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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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중도 전략', 레이코프 눈에는… [김제완의 '좌우간에']<20> 중도공략의 핵심은 자기 언어의 설득력
정치이념 이야기를 TV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10월30일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킹 메이커' 제2부 "중도파는 중도에 있지 않다"는 이같은 과제에 도전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 현지에서 생생한 사례를 찾아 소개했으며 다양한 그래픽과 여러 실험을 통해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거기에다 손석희 교수에게 나레이션을 맡겨서 신뢰효과를 높였다.

이 다큐는 크게 보면 두개의 메시지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중도파에 대한 개념규정이고 다른 하나는 중도파 공략 방법이다. 모두 버클리대학 교수 조지 레이코프의 이론에 입각해 있다. 그래서 손석희 다음으로 그의 얼굴이 자주 비친다. 중도에 대한 레이코프의 개념규정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흔든다. 이 프로그램은 그런 혼돈을 거쳐 새로운 인식에 이르게 해준다. 그런데 중도공략 방법은 절반만 맞는 것 같다. 그의 이론이 미국 국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적하려고 한다.

이 다큐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만약 레이코프가 한국대선을 들여다본다면 어떤 평가를 할까. 필자가 보기에 박근혜 후보의 중도전략에 가장 우려를 표할 것이 분명하다. 왜 그런가를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읽으면 덜 지루할 것 같다. 먼저 쟁점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다.

진보 아니면 보수이지 중간은 없다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제2부는 전반부에서 중도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중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여러 실험과 취재를 통해 "중도파는 중간에 있지 않다"는 놀라운 사실을 입증한다. 먼저 오바마의 중도화 전략 실패 사례를 소개한다. 오바마는 공화당이 요구한 감세정책을 받아들임으로서 보수층의 지지까지 얻으려 했다. 그러나 지지자의 이탈과 지지율의 하락이라는 쓴맛을 봤을 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손석희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중도유권자들은 때로는 진보정당 때로는 보수정당에 투표한다. 어정쩡하게 중간쯤되는 인식을 갖는 사람이 아니다. 이쪽저쪽을 주관도 없이 부유하는 사람이어서 잡아당기면 쉽게 끌려오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다큐 프로그램은 자체 실험을 통해 이 사실을 입증해 보여준다. 실험을 위해 진보 보수 중도라고 스스로 확신하는 사람들 99명을 선택해서 모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20개의 첨예한 현안을 질문으로 만들어서 던지고 답을 요구한다. 이런 식이다.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현행대로 실시해야 한다." "한미FTA를 현행대로 실시해야 한다." 이런 예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찬성은 1, 반대는 5이며 정도에 따라 1-5 중에서 답을 선택하도록 했다. 찬성은 보수 반대는 진보에 맞춰져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 강원택 교수가 작성한 나머지 설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사회의 현안문제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주므로 모두 소개한다. (3) 대기업규제 (4) 중소기업 적합업종 (5) 경제성장과 환경 보호 (6) 반값 등록금 (7)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 (8) 노동자 문제 (9) 의료민영화 (10) 부자증세 (11) 제주해군기지 (12) KTX 노선 민영화 (13) 휴전협정 (14) 한미군사관계 (15) 국가보안법 (16) 대북전단 살포 (17) 인터넷 실명제 (18) 양심적 병역거부자 (19) 신규원전 확대정책 (20) 사형제도

실험의 결과 어떤 답이 나왔을까. 보수 집단은 2.4 진보집단은 4.0 그리고 중도성향의 참가자들은 3.2의 값을 보여주었다. 이중에 중도의 값이 연구대상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중도값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개개인들은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 중도가 아닌 보수라든지 진보 의견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다는 거죠."

중도성향의 실험 참가자들이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 중간값인 3을 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실험을 통해서 그런 경우는 매우 적었음을 밝혀냈다. 그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보수적 입장을 표했다. 즉 1-2나 4-5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그램 제작자는 중도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왜 중간의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린다. 여기서 막히면 다음 문제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메시지를 일반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중에 레이코프를 인터뷰해서 얻은 그의 육성이 인상적이다.

"(낙태에 대해서 찬성 반대가 있을 뿐 중도는 없다면서) 절반만 낙태할 수는 없어요. 절반만 죽일 수도 없고요. 여기엔 절충안이 없어요. 중도의 이념은 존재하지 않아요." 이것을 다른 비유로 말하면 사형제에 대해서 중도적인 입장이라고 해서 사형수를 절반만 죽이는 데에 찬성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어떤 사안에 중도의 입장인 경우가 있다면 대부분 정보부족이나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결정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의식에 깊이 침윤돼 있는 동양 철학의 중용정신의 영향도 있다. 이쪽이나 저쪽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 않은 자세가 올바르다는 학습효과이다. 이같은 관성적인 저항을 넘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낸 시청자가 얼마나 될까. 어쨌든 이들을 데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중도전략의 핵심은 자기의 언어로 말하라는 것

본격적인 주제는 선거에서 이들 중도표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렇게 말한다. 선거에서 다수당이 되기 위해서 중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중간에는 유권자가 없고 설득할 대상도 없다. 추상적인 개념상으로는 중간의 관점이 존재할 수 있지만 사회과학의 세계에서 중간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중간한 자리에 걸터있거나 중간에 서서 상대편을 끌어안으려다가는 자기편마저 떨어져나간다. 즉 자신의 언어로 신념을 명확히 밝히고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중도파도 늘 선택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관점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조명해보자. 12월 대선을 한달여 남겨두고 세 후보 진영은 지금 중도표를 얻기 위해 뛰고 있다. 그들은 중원을 누가 장악하느냐가 승패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가운데에 중도표가 없다니 이게 웬 말인가. 대선캠프의 전략가들이 밤을 세워 토론해야 할 문제다. 이 프로그램의 시의성은 여기서 얻어진다. 세명의 후보 중에서 어느 쪽이 중도화 전략을 취하고 있을까. 중도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안철수 후보를 제외하고 문재인 박근혜 후보가 가운데를 기웃거리고 있다. 이 두사람 중에 박근혜의 좌클릭 행보의 보폭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경제민주화 복지 등은 전통적으로 진보의 가치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레이코프가 한국 대선을 들여다본다면 박근혜의 행보에 가장 큰 우려를 표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레이코프의 결론은 이것이다. 두 개의 도덕체계를 가진 중도파를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답은 자기의 언어를 보다 설득력 있게 말하는 것 즉 자신이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을 효과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언어전략을 집요하게 주장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서 답은 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 제작자는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이런 실험을 한다.

"KTX 일부노선을 사기업에 매각하는 것을 찬성하십니까" "고속철도 경쟁체제 도입에 찬성하십니까"라는 두가지 문제를 내놓고 강남과 인천의 거리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같은 뜻을 담은 말인데도 표현의 차이에 따라 전혀 상반된 결과가 나타났다. 그래서 유리한 선거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언어선택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94년 미국 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했을 때도 언어의 승리였다. 감세를 세금구제로, 상속세를 사망세로, 유전발굴을 에너지 탐사로, 범죄퇴치를 공공안전으로 표현해서 보수의 가치가 중도 유권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도록 했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이것이 바로 언어를 통해 나타난 프레임의 효과이다.

레이코프의 논리는 미국 국내용이다

언어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은 레이코프의 성과이자 동시에 한계인 듯이 보인다. 여기서 그가 정치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언어적인 측면이 과연 이 문제의 핵심인가. 그가 언어학자로서 주관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곳이 필자의 문제 제기 지점이다.

언어 전략은 우파끼리의 경쟁구도에서 효력이 극대화된다.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은 '더 우'와 '덜 우'의 차이를 보일뿐 같은 우파이다. 이념이 비슷한 사람들이므로 말의 내용보다 형식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좌파 우파의 경우는 어떤가. 이들은 세계관이 상반된 사람들이다. 이들에겐 레이코프가 강조하는 메타포만으로 안 된다. 좌우대립의 전선에 서있는 사람들은 그런 "말장난"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조갑제나 이정희 등 좌우 양측인사들에게 문의해 보면 곧바로 확인될 문제다.

KTX 실험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좌파 유권자라면 설문의 어감 차이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들의 머리에는 철도의 국유화냐 민영화냐라는 틀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사기업에 매각"하거나 "경쟁체제 도입" 등의 말이 별다름 없다는 것을 곧 알아챈다.

레이코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유럽도 생각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념을 말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좌우 이념의 나라 유럽이 들어있지 않다. 레이코프의 이론이 유럽에서 관심을 끌었다는 말도 들리지 않는다. 그의 책에는 좌파나 우파, 중도좌파나 중도우파라는 용어를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200년 동안 통용되어온 좌우라는 강력한 메타포를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중도좌파 중도우파 또는 중도진보 중도보수라고 부르면 될 것을 그는 굳이 "부분적 진보주의자" "부분적 보수주의자"라는 어색한 조어를 사용한다. 좌파 우파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의도적으로 회피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파악된다. 미국의 정치상황을 설명하면서 굳이 좌우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다 같이 우파의 영역 안에 놓여있으므로.

레이코프의 논리는 미국의 영토 안에서만 통용될 수밖에 없는 반쪽짜리이다. 미국외에는 좌파가 법으로 금지됐던 한국 같은 나라에나 적용될 만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10석의 의석으로 국회에 진출한 2004년 이후 한국에는 제한된 범위내에서지만 제대로 된 좌우 이념갈등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점차 그의 언어 만능 논리가 힘을 잃고 있다. 그의 이론을 한국사회분석에 적용할 때에는 적어도 이만큼의 오차는 인정돼야 한다. 한때 레이코프의 책은 의원 보좌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어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대출 순위의 상위를 점했었다. 그러나 지금 각 대선 캠프의 전략가들이 레이코프의 중도 공략 방법을 얼마나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두 해 전 이맘때 강연을 위해 광주에서 서울에 올라온 나익주 선생을 만났다. 그는 '프레임 전쟁' 등 레이코프의 주요저서를 번역해 소개한 사람이다. 필자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레이코프 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학자가 왜 절반의 세계 안에 갇혀있나. 왜 우파의 세계 안에 머물러 있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말에 나익주 선생도 일부분 공감을 했다. 그리고는 레이코프 문하에 유학중인 지인이 있으니 직접 물어봐야겠다고 말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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