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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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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인가? [김제완의 '좌우간에'] 고비용 재외선거의 해법은 우편투표
2009년 1월 한파가 몰아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작은 방은 열기로 가득 찼다. 외교통상통일위원장실 옆 소회의실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렸다. 1월15일부터 일주일마다 세 차례에 걸쳐 열린 회의에서 재외선거와 해외부재자투표 관련조항이 규정된 공직선거법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음달인 2월5일 재외국민투표 관련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됨에 따라 230만에 이르는 국민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72년 유신과 함께 해외부재자투표가 중단된 이래 37년 만에 주권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때 통과된 법은 여러 가지 미비점 때문에 반쪽짜리 법이라는 평을 들었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투표방법이 어려워 여우 집에 초대받은 두루미의 우화에 비유됐다. 이 문제를 해결할 최선의 방법은 우편투표였다. 우편투표는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실시하고 있는 제도이다. 실시방법이 간편해서 재외국민은 누구나 원하고 있으며 투표 참여율도 크게 늘릴 수 있다. 투표관리 비용도 가장 적게 먹힌다. 그러나 정치권과 관련 부처는 국가의 미래나 재외국민의 편의가 아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갈렸다.

정치권의 목표는 재외선거 무력화

먼저 정치권의 입장을 살펴보자. 재외국민이 보수적일 거라고 보았던 한나라당이 재외선거에 적극적이었고 민주당은 소극적이었다. 이들은 우편투표와 선거참여자의 범위 등 몇가지 쟁점을 두고 여러해 동안 대립해왔다. 그런데 줄곧 우편투표 추진을 공언했던 한나라당이 정개특위가 시작되고나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회의석상에서는 고성도 삿대질도 없었다. 여야 간사는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과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었다. 권 의원은 육사 장교에서 특채된 유신 사무관 출신이고 강 의원은 전남대 삼민투위원장 출신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은 예상외로 호흡이 잘 맞았다. 쟁점사항에 대해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이 타협을 해나갔다.

오랫동안 국회에서 서로 견원지간으로 대립해온 그들이 막판에 쉽사리 합의에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 세 차례의 특위 회의를 지켜봤던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처음 실시하는 선거에서 새로이 진입하는 230만의 유권자들이 어디로 튈 것인가. 재외국민의 성향이 보수적일 것이라고 예상은 됐지만 투표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일이다. 실제로 지난 4.11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민주당 표가 더 많이 나왔다. 이러한 불가측성을 내다보고 미리 두려움을 느꼈던 양당은 재외선거인들의 참여를 최소한으로 하자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지난 15대 대선은 39만 표차, 16대 대선은 57만 표 차로 결정났다. 그런데 재외선거와 해외부재자투표 유권자의 숫자를 보면 경상북도만한 선거구가 새로 생기는 셈이다. 전략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야 정당은 재외유권자가 선거에서 캐스팅보터가 되지 않을 만큼 무력화하기 위해 그 방법으로 우편투표 도입을 배제키로 했다. 재외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에 대한 정치권의 배신행위이고 공작정치에 다름없다.

법 통과직후 재외선거법이 "홍준표법"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어이없게 했던 홍준표 의원은 미국의 주요도시를 순회하며 우편투표 반대를 공언하고 다녔다. 선거의 3원칙중 하나인 비밀투표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우편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법안심사소위원회에는 외교부와 중앙선관위의 고위 관리들이 참고인으로 참석했다. 그들에겐 의원들의 자문에 응하는 것보다 소속 부처의 입장을 전달하고 관철하는 일이 더 중요한 임무였다. 그러면 외교부와 선관위의 입장은 무엇이었을까.

외교부는 우편투표를 주장했지만

외교부는 업무적으로 재외국민을 관할하고 있어 재외선거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역선관위 위원장을 "공관장이 맡는다"는 조문을 "맡을 수 있다"로 바꾸기 위해서도 집요하게 매달렸다. 이 한 줄의 법조문의 차이가 현장에서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에서 나온 재외동포대사는 이때 적극적으로 우편투표를 주장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영국의 사례를 회심의 카드로 꺼내들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경영하느라 일찍이 자국민이 해외에 진출했고 재외선거에 대한 노하우가 많았다. 프랑스는 우편투표를 실시하다가 부정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70년대에 중단했었다. 영국은 이런 부정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간단하면서도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유권자등록을 할 때 ABCD중 하나에 체크를 한 뒤에 그 문자를 기억하고 있다가 집에서 투표할 때 다시 그 문자에 체크하도록 했다. 개표시에 두 가지 문자가 맞는지 대조하여 우편투표의 최대 약점인 대리투표 등 부정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방지한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의원들이 그만 하라고 눈치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외교부 대사는 끈질기게 우편투표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정개특위 위원들의 선의는 그의 말을 들어준 것까지였다. 이 시점에는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우편투표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외교부가 나서서 우편투표 제도 도입을 주장한 것은 재외국민을 어여삐 여겨서가 아니었다. 재외선거가 실시되면 각 공관에 설치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은 공관장이 맡고 외교관들이 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선거업무에 문외한인 그들은 이 업무를 부담스러워했으며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우편투표는 해외유권자와 국내 선관위가 직거래하는 방식이어서 외교부는 손 안대고 코풀 수 있게 된다.

최대의 경사를 맞은 선관위

중앙선관위는 사업시행 예산을 한푼이라도 더 받는 일이 목표였다. 차관급인 사무차장이 나서서 자리를 지켰으며 회의장 밖에는 국과장급 직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선관위는 창립 이래 최대의 경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업무특성상 해외 근무의 기회가 거의 없었던 선관위 직원들에게 해외주재관 50여개의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인사적체도 일거에 해결될 것이다. 재외선거 문제의 야전지휘관 격이었던 선거국장은 국회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의원들 뿐 아니라 동포단체 대표들을 만나며 상황을 주도해나갔다. 그는 선거법 통과 뒤에 선관위 역사상 최대의 경사를 이뤄낸 공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의 길을 달렸다.

선관위의 입장은 지난 9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 기회인 이 회의에서 추가투표소 설치에 올인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재외국민은 50개주에 걸쳐 살고 있지만 투표소는 공관이 있는 10개 도시에만 설치돼 있다. 비행기 타고 와서 투표를 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주요도시에 추가투표소를 설치하자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더 많은 해외파견 직원 배정과 함께 추가예산을 얻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이메일을 통한 유권자등록이 허용됐을 뿐 추가투표소는 통과되지 않았다.

우편투표에 대한 선관위의 입장은 이중적이었다. 우편투표가 세계적인 대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해외업무가 적어지므로 내부적으로 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놓고 속셈을 발설하지는 못했다. 우편투표를 하게 되면 유권자들 본인이 적지 않은 국제우편요금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를 좋아하겠느냐는 초치는 말이 흘러나왔다.

2009년 1월의 정개특위 법안심사소위는 이처럼 정치권과 유관 부처들간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하나라도 더 유리한 법안을 얻어내기 위해 각부처가 기를 쓰고 매달렸다.

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인가

재외국민의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극성맞게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던 미주한인 단체장들은 이때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소위에서는 왜 재외국민 대표들을 부르지 않은 것일까. 여야가 이미 결론을 내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소리 큰 당사자가 불편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해서 유신 사무관 출신의 노회한 여당 간사와 삼민투위원장 출신 야당 간사가 역사에 남을 작품을 무사히 만들어낸 것이다.

법이 통과된 직후 필자는 "이런 법이 어디 있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사후약방문이었다. 우편투표, 추가투표소, 선상투표, 재외선거에 국회의원 지역구투표, 국민투표 등 다섯가지가 법안에 빠진 것을 지적했다. 이 당시 재외선거를 주제로 KBS 라디오 열린토론이 방송됐다. 권경석 의원과 강기정 의원 대학교수 한사람과 함께 필자도 재외국민참정권연대 사무국장의 자격으로 출연했다. 이날 토론에서 여야 의원은 한목소리로 통과된 법을 옹호하고 나섰다. 쟁점 법안이 통과되면 야당이 미진한 사항에 아쉬움을 표하는 전례와 사뭇 달랐다. 야당을 영어로 하면 오포지션 파티 즉 반대당이다. 반대를 하지 않는 야당에 맞서 반대토론을 해야 하는 구도였다.

재외선거를 둘러싸고 정부 부처들과 정치권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따지는 동안 재외국민의 주권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재외국민은 "제외국민"이 됐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낮은 투표율과 고비용 선거이다.

반쪽짜리 법의 결과는 낮은 투표율과 고비용 선거

10월 20일 재외국민 유권자등록을 마감한 결과, 전체 재외 유권자 223만 3695명 가운데 22만 3557명이 참여해 10.01%의 등록률을 기록했다. 지난 4월 총선 때의 등록률 5.57%보다 두배가량 늘었다지만 여전히 저조한 수치다. 언론은 사설과 기사 칼럼 등을 동원해서 낭비성 투표라고 질타했다. 연합뉴스는 10월21일자 기사에서 재외선거 등록율이 낮아서 "실효성 논란이 재점화"됐다고 썼다. 서울신문 10월23일자 사설은 "고비용 재외국민선거 이대론 안 된다"는 제목을 붙였다. 동아일보는 "재외국민선거,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박명호 동국대 교수의 기고를 게재했다.

서울신문 사설은 지난 총선 때의 전례를 볼 때 이번 대선에서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는 10만 명을 웃도는 선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대선이 초박빙 승부로 가더라도 변수가 될 수 없는 숫자이다. 재외유권자 표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이번 선거에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자는 여야 정치권의 의도는 성공했다.

선관위는 파리 날리는 해외투표소를 운영하면서 많은 예산을 챙겼다. 해외 각지에 파견된 재외선거관 55명의 인건비를 포함해 대선 관리비용으로 책정된 예산은 265억원이다. 투표자 수를 기준으로 내국인 1표 행사에 드는 비용이 1만원가량인 반면 재외국민 1표에 드는 비용은 어림잡아 30만원 남짓된다.

재외선거를 둘러싼 게임에서 정치권도 승리했고 선관위도 승리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냈다. 패한 쪽은 재외국민이다. 재외국민들은 국내동포들 앞에만 서면 자꾸만 작아진다. 면목이 서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세금도 내지 않는 사람들이 권리만 주장한다는 지탄을 받아왔다. 왜 이런 법이 만들어진 것인지를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어 답답해한다.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기대를 걸었지만...

지금 세 명의 대선 후보들이 재외국민을 위한 공약을 앞다투어 발표하고 있다. 각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복수국적을 위한 국적법 개정, 주민등록증 또는 재외국민증 발급, 재외국민보호법 제정 등 현안문제들이 망라돼 있어서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것은 재외선거법에 대한 이들 후보들의 입장이다. 정치권이 재외국민들을 만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바로 공직선거법 개정인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첫 번째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한 것이 된다. 선거법 재개정이 공약의 첫 번째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재외국민 공약 여섯 개중에는 선거법 개정이 보이지도 않는다. 박근혜 캠프 인사들이 재외국민 문제에 대한 몰이해를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안철수 후보는 재외국민 공약 중 하나로 "실질적 참정권 행사를 위한 투표 인프라 개선"을 명시했다. 우편투표가 키워드인데 엉뚱한 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지난달 "우편 또는 인터넷 등록 및 투표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개선"을 약속했다. 이것이 정답이다. 과거에 자신들의 손으로 지은 죄업을 스스로 씻어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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