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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 고마워, 우리가 덜 멍청해 보이게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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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 고마워, 우리가 덜 멍청해 보이게 해줘서" [민들레 교육 칼럼] 진화론과 과학 교과서 "기독교, 한국 교육을 퇴화시키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이하 교진추)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과하 교과서에서 진화의 증거로 나오는 시조새 관련 부분 등을 삭제하라는 청원을 냈다. 교진추는 2009년 창조과학회 교과서위원회와 한국진화론실상연구회가 통합한 기독교 단체로,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진화론의 실체를 학술적 견지에서 밝혀 궁극적으로 진화론 교과서를 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다.

5월 16일 교육과학기술부는 고교 과학 교과서를 출판하는 인정교과서 업체 7곳 중 교학사·천재교육·상상아카데미 세 곳이 지난 3월 교진추가 교과부에 제출한 '말의 진화 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라는 청원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천재교육은 '말의 진화'를 '고래의 진화'로 대체하기로 했고 나머지 출판사는 삭제할 예정이었다. 교진추는 지난해 12월에도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라는 청원서는 제출해 금성·천재교육·교학사 등 6개 출판사가 관련 부분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로 했다.

▲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들은 지난 9월 5일 "시조새는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 화석"이라며 논란이 된 고등학교 교과서 진화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논란이 커지나 과학기술분야 석학 모임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지난 9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진화론은 가설 수준의 이론이 아니라 과학적 반증을 통해 정립된 현대 과학의 매우 중요한 핵심 이론의 하나로 모든 학생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완이 필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일부 과학 교과서가 시조새를 조류 및 파충류와 가까운 유일한 중간종으로 오해하기 쉽게 서술해 다른 원시 조류도 있었다는 보충 설명이 필요한 점은 인정하지만 시조새 관련 내용을 삭제해서는 안 된다"며 "말 역시 진화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지만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점진적 직선형 경로가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따라 복잡하게 진행됐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보수적 성향의 기독교계의 주장에 과학 교과서가 수정되기에 이르렀다는 기사가 뜨자 미국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조롱 섞인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그들은 교과서에 퇴화를 넣어야 해. 왜냐면 그들 나라에서 방금 일어난 일이거든." "한국인들 고마워. 우리가 덜 멍청해 보이게 해줘서."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된 이 사건은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수적인 기독교계의 비이성적인 행태에 대해 여타 기독교계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이 도매금으로 평가절하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기독교계에는 진화론과 충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만한 지성을 갖춘 교인들이 별로 없는 걸까. 성경의 양식사학의 관점은 한국의 교계나 신학계에서 거의 통용되지 않고 있다. 연애편지와 논문을 헷갈려하면 지성인이라고 볼 수 없다. 수메르 신화를 비롯해 고대 문화의 수많은 창조 신화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은 오늘날 문화 상식에 가깝다.

구약성서의 창세기는 불가사의하고 위험하게 보이는 이 세계가 아버지 같은 신의 손길로 창조된 것이고 따라서 인간에게 결코 적대적이지 않다는 믿음이 담긴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인류의 지적 수준을 5000년 전의 수준으로 묶어놓으려 드는 보수 기독교계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셈이다. 신앙은 어떤 신념 체계가 아니라 '신뢰'다. "믿습니다!" 하는 믿음이 아니라 아이가 부모를 믿듯이 신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보다 헌법이 우선하는 공교육 시스템에서 자신의 교육관을 관철하기 어렵게 된 기독교계는 원하는 종교 교육을 하고자 공교육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사립학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른바 기독교 대안학교라는 이름으로 이미 100개가 넘는 학교들이 생겨났으며, 지금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보수적인 대형 교회를 배경으로 된 학교들이 생겨났으며, 지금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보수적인 대형 교회를 배경으로 한 학교들의 경우 예배를 필수 교육과정으로 넣고 있으며, 창조과학회의 주장에 근거해 심지어 지구의 역사가 6000년이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있는 이들 학교는 다양한 교파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최근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그 흐름을 짚어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에서 펴낸 <기독교 대안학교의 교육성과를 말한다>와 <기독교 대안학교 가이드>는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좀 더 깊이 있는 성찰과 바람직한 종교교육의 방향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 위의 글은 <민들레>83호 특집 "교육 풍향계"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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