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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 본때를 보여주면 말 듣는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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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 본때를 보여주면 말 듣는다? 노!" [인터뷰] 이명박 시대를 묻는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명박 당선자의 통일·외교정책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이 당선자는 지난 20일 기자회견 및 미·일·중·러 대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북한 핵 폐기 우선 △한·미·일 3각동맹 강화 △북한 인권문제 제기 등을 골자로 하는 대북정책을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실용외교라고 명명된 그같은 정책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즉각 나왔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한·미·일 3각동맹을 강조하면 중국의 견제를 받을 수 있다는 등의 지적이 그것이다.

포용정책의 10년을 돌아보고 새 정부의 통일·외교정책을 점검하기 위해 만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현재까지 나온 이 당선자의 정책 기조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혼을 내면 말을 듣는다고? 결코 그렇지 않다" ⓒ프레시안

정세현 전 장관은 22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북한의 핵 폐기를 한국의 새 정부가 취할 대북정책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며 이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그같은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 전 장관은 "17년이 되도록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핵 문제가 1~2년 내에 폐기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쉽게 보는 것"이라며 핵 폐기를 남북관계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을 거듭 비판했다.

"핵을 폐기하라는 대북 설득도 남북관계를 통해 신뢰를 구축한 토대에서 하는 것이지 '내가 너 잘해주려고 이러는 거야'라고 훈계부터 하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北, 南 보수정부 등장에 '촉각'

정 전 장관은 북한에 소위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식의 발상을 극도로 경계했다. 북한은 압박을 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이고, 그렇게 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남한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는 또한 이 당선자 측이 한·미·일 3각공조를 강조하는 것에도 우려의 시각을 나타냈다. 한·미·일 협력은 당연한 것이지만 3각동맹으로 노골적으로 가 버리면 북-중-러 '북방 3각동맹'의 부활을 가져와 6자회담이 표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 북한, 미국이 모두 '한국은 우리편'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야 그나마 우리가 할 일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정 전 장관은 '줄탁동기(□卒啄同機)'라는 한자성어를 인용, 북한의 먹고사는 문제가 완화되기 이전에 서구식 인권 기준을 들이댄다는 것은 반발만 가져올 뿐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인권문제를 진정으로 풀고자 한다면 북한 주민 스스로 인권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경제적인 환경을 개선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말 통일부의 전신인 국토통일원에 들어간 후 30여년간 남북관계의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통일부 장관을 지내며 대북 포용정책이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게 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대통령 선거일 다음 날 개성공단을 방문한 그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새로 들어설 보수주의 정부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이더라며 북한이 최소한 6개월간 관망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지난 22일 서울 역삼동의 한 호텔에서 가진 인터뷰 전문이다. 이날 인터뷰는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가 진행했다.
▲ "국민들은 남북관계 개선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프레시안

"미국이 안 따지면 우리도 못 따진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성과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그 얘기가 쟁점이 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 이명박 후보는 경제 문제를 이슈화함으로써 국민 정서나 여론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러나 햇볕정책-평화번영정책을 10년 동안 추진한 결과 지금은 손에 잡히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평화무드가 조성되어 있어 안보불안이란 게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58%라고 한다. 그건 뒤집어서 말하자면 남북관계가 이미 국민적 관심사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국민의 관심은 잘못된 것을 좋게 만들겠다고 하는 쪽으로 가게 마련이다. 국민들은 잘 되는 걸 더 잘되게 하겠다고 하는 데에는 별 호감을 보내지 않는다.

국민들은 금강산과 개성을 언제나 갈 수 있고 남북관계가 상전벽해 수준으로 변화된 상황을 그냥 자기 생활의 일부로 생각한다. 핵 문제 때문에 약간의 불안감이 없진 않지만, 그건 남북이 풀 문제가 아니라 6자회담에서 풀어야 한다는 걸 국민들은 다 안다.

박인규 : 자신을 성공시킨 방법을 성공 후에도 계속 사용하면 실패한다는 소위 '성공의 역설'이 평화 문제에도 적용된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잘 될 정도로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잘 되는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정세현 : 이명박 당선자가 레토릭(修辭) 차원에서 대북정책을 보완·재검토 하겠다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이뤄 놓은 성과를 0으로 돌리는 조취를 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방법을 조금 달리하겠다는 얘기는 할 수 있을 텐데,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그런 말을 했다. 화해협력정책은 계승·발전시키되 추진 방법은 개선하겠다고. 그러나 지금까지 이뤄온 성과를 방법이 잘못됐으니 없었던 걸로 하고 새로 판을 짤 수는 없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을 중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쌀 지원 때문에 퍼주기를 했다는 비난이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북미관계 진전 상황에서 우리가 쌀을 끊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핵 신고 문제 때문에 약간의 속도조절이 있을지 모르지만,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북한에 갈 정도로 북미간에는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 문제에서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핵 폐기 까지는 못가더라도 최소한 해결의 디딤돌을 놓겠다는 생각으로 내년에 상당량의 식량을 지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지원을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 따질 때 한국이 안 따지는 건 동포애라는 명분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미국이 안 따지는데 우리가 따지는 건 설명이 어렵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현 정부와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단기간 북핵 폐기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박인규 : 이명박 당선자 측에서는 '북핵 해결 없이 이뤄진 남북합의는 사상누각'이라는 인식을 보이기도 한다.

정세현 : 선거운동을 하면서, 그것도 교수들한테 들었던 말을 가지고 밖에서 얘기했던 건 정책이 될 수 없다. 미국은 북핵 불능화-신고-폐기를 단계적으로 이룬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폐기는 다음 정부로 미뤄 놨다. 미국이 다음 정부로까지 미뤄놓으며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을 한국의 새 정부가 취할 대북정책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나중에 가면 자가당착에 빠진다.

이명박 당선자는 당선 후 기자회견에서 '핵 폐기 안 하면 아무것도 안 한다는 말이냐'라는 질문을 받고 "북한에게 핵을 폐기하도록 설득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맨 입으로 설득이 되나. 2002년 북핵 문제가 다시 터졌을 때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해결을 병행하기로 한 것은 고육지계였다. 북한은 다른 나라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압박을 하면 절대 안 된다. 딴 데로 튄다. 그러면 우리 경제에 즉각 영향을 미쳐 손해는 우리가 본다.

또 한편에서는 북한이 벼랑끝 전술이나 하고 약속 안 지키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그런 버릇을 내버려두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끌려 다녔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 저런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 "북한의 '버릇'은 중국과 소련이 만든 것" ⓒ프레시안

그러나 그런 버릇은 남한이 아니라 중국과 소련 때문에 생겼다. 과거 30년간 지속됐던 중소분쟁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은 소련에 가서는 중국 카드를 내밀고, 중국에 가서는 자기네 요구 안 들어주면 소련편을 들겠다면서 물밑으로 이득을 챙겼다. 양대 공산 대국이 어쩌질 못했다. 그러면서 그게 북한의 체질이 됐다.

지금도 미국과 중국을 그런 식으로 가지고 노는 측면이 있다. 부시 행정부도 결국 6년간 압박하다가 소용없으니까, 작년 11월 중간선거 이후로 달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북한의 버릇을 고쳐 남북관계 끌어가겠다는 게 과연 남북관계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먹을 것 가지고 혼을 내면 말을 들을 것이다? 노(No). 그게 가능하다면 중국이나 소련이 벌써 그랬을 것이다. 중국은 소련이 없어진 지금도 북한에 대해 어쩌질 못한다. 왜?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지난 10년간 북한의 버릇을 잘 못 들였다, 끌려 다녔다고 비판하면서 자기들은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데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미국도 북핵 폐기를 비확산·반확산의 종착점으로 설정해 놓고 있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1990년대 초에 시작된 북핵 문제가 17년이 되어도 사실상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데 앞으로 1~2년 내에 폐기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핵 문제의 속성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생각하는 것이다.

1993년부터 3년 8개월 동안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으면서 94년 북미 제네바합의가 체결되고 케도(KEDO.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한에 경수로 원전을 지어주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 협상이 시작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2002년까지 6~7년 조용했다. 그러나 그 문제가 다시 터지는 걸 보면서 간단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했다. 새로운 10년을 끌겠다 싶었다. 그러면 2012년 끝난다는 건데 그 때는 이명박 정권 말기다. 그런데도 핵 폐기를 남북관계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대북 설득도 남북관계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그 토대에서 충고를 해야 북이 받아들이지, 먹을 것도 주지 않으면서 '내가 너 잘해주려고 이러는 거야'라고 훈계부터 하면 통하지 않게 되어 있다.

특히 남북관계는 서로 정통성을 쟁취하려는 문제가 있어서 끝까지 경쟁관계다. 중국 같은 강국이 찍어 누르는 식으로 할 수 없다. 같은 동포끼리 잘 해보자고 충고하면 받아들일까? 절대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우리가 미국하고 협상할 테니 당신들(南)도 차라리 미국을 설득하라'고 나올 것이다.

"북핵 문제에서 한국의 운신폭은 원래부터 좁았다"

박인규 : 북핵 문제에 있어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느 정도인가?

정세현 : 북핵 문제를 우리가 왜 해결하지 못하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북핵을 둘러싼 북미간의 줄다리기는 고도의 심리전·모략전·정보전이 개입된 국제정치이다. 국제정치에서 힘의 원천은 정보다. 정보 질서를 장악한 나라가 다 쥐고 흔드는 것이다. 정보의 해석, 그리고 경우에 따라 조작까지 하는 게 오늘날 국제정치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미국의 심부름 밖에 더 있나. 물론 그거라도 해야 한다. 북한한테 미국말을 들으라는 식으로. 지금까지 그렇게 했다.

적어도 내가 남북대화에 참여하던 시절엔 그랬다. 북한 사람들한테 '미국이란 나라 간단히 보지 마라. 맞서서 살아남은 나라 없다. 실리 챙겨라. 적절한 선에서 미국 요구 들어주고 살 길 찾아라'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했다.

'내가 너 잘해주려고 하니까 내 말 들어라'라고만 하면 안 된다. '쌀·비료는 해결해 주마. 대신 지원해 주면서 따귀 맞는다는 소리는 안 나왔으면 좋겠고 가능한 빨리 결단을 내려라. 대미 요구 수준을 낮춰라. 100% 만족 못 한다. 80%에서 만족하고 살 길 찾자'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에는 미국 말 잘 들으라고 하고, 중국에는 북을 잘 설득해 보라는 정도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남북장관급회담이나 대북 지원 과정에서 형성된 작은 신뢰를 가지고 북을 설득하고, 미국에게도 대북 압박을 너무 강하게 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또 중국에 쫒아가서 최종적으로 북한을 끌어내서 풀자고 하는 것이다. 9.19공동성명이란 게 바로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박인규 : 이명박 당선자는 한미일 3각공조를 강조하는데…

정세현 : 당선자가 미국·일본과 손잡고 북핵 문제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대해 중국이 일절 반응을 안 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에서 이명박 당선을 환영한다는 논평이 나오긴 했지만 6자회담과 관련해 의미있는 발언은 안 나왔다. 한국의 새 정부가 완전히 미국 쪽으로 경도되고 한미일 3각공조로 나오면 중국은 심부름꾼 역할 밖에 못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할 것 같다. 따라서 중국은 한국의 새 정부를 상당히 민감하게 주시할 것이다.

한미일 협력은 당연한 것이지만 북핵 문제와 관련해 너무 노골적으로 3각동맹으로 가 버리면 북-중-러 북방 3각동맹이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럼 패싸움이 되고 6자회담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이나 북한, 미국이 모두 '한국은 우리편'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야 그나마 우리가 할 일이 생긴다. 한 쪽으로 딱 줄을 서버리면 그런 역할은 없어진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北 인권, 줄탁동기의 지혜로 풀어야"

박인규 :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하겠다는 이명박 당선자 측의 입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정세현 :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북은 인민들이 선택한 체제에서 행복하게 사는데 인권문제가 있다는 건 모략이라고 잡아떼다가, 진지하게 얘기하기 시작하면 내부문제라고 반발할 것이다. 그러면 끝없는 입씨름이 계속될 것이고 남북관계는 상당기간 좋아질 수 없을 것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인권 얘기를 없었던 걸로 하기도 어렵다. 한 번 얘기를 꺼내면 어떻게든 풀어야 다시 만날 수 있는 조건이 생기는 것이다.

인권은 정치적 인권이 있고 경제적 인권이 있다. 빈곤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권은 어쩌면 사치스런 문제일 수 있다. 우리나라도 60~70년대 인권문제 때문에 밖으로부터 압력을 많이 받았는데 국민들이 정치적 인권에 눈을 뜨고 정치적 자유를 요구한 것은 80년대가 되어서였다.

북한도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가 되어야 인권, 정치적 자유와 권리에 대해 눈을 뜰 것이다.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행사하는 권리를 나눠 갖자고 요구하는 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 북한 경제가 저렇게 어려운 상태에서 구미(歐美)적 의미의 인권을 얘기한 다는 것은 어렵다. 프랑스혁명이나 미국 독립전쟁, 유엔 세계인권선언에 언급된 인권은 개인주의를 전제로 정치적 권리를 얘기하는 건데 북은 현재 그런 단계에 와 있지 않다.

중국의 인권문제도 천안문 사태 이후 경제가 살아나면서 개선됐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수출이 살아나면서 미국은 인권과 무역에서의 최혜국대우 문제를 연계시켰다. 그러자 중국은 먹고살기 위해 인권 탄압을 줄였다. 인권문제는 그렇게 푸는 것이다. 무턱대고 찍어 눌러서 고치라고 한다면 안 된다.

줄탁동기라는 말이 있다. 계란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면 변형이 돼서 병아리 모양을 갖추고 부리가 나와 안에서 쪼아댄다. 그럴 때 밖에서 어미도 쪼아주는 것이다. 내부적인 요건과 외부의 요구가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 병아리의 모습도 갖추지 못하고 노른자가 썩을지도 모르는 상태다. 그런데 빨리 병아리가 되라고 밖에서 쪼아준다고 해서 부화가 되겠나.

박인규 : 이명박 당선자를 보는 북한의 시각은 어떨까?

정세현 : 대선 다음날 개성에서 북한 사람들을 잠깐 만났다. 나한테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는데, 개성공단 현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상당히 긴장해 있고 관심이 많다고 한다.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얘기를 자주 묻는 모양이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예의주시하면서 상당기간 조정기를 둘 것이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고강도 알미늄 튜브에서 우라늄이 검출된 문제가 불거져서 미북관계 진전 속도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 문제가 잘 석명(釋明)이 되고 BDA 해결 이후 속도대로 나가면서 가속도가 붙으면 내년에는 미북관계가 상당히 개선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남북이 서로 관망하느라 6개월을 허비하면 그 손해는 우리 경제가 입을 것이다.

"남북관계의 결을 무시해선 안 된다"

박인규 :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또 다른 조언을 하자면?

정세현 : 외교·대북정책은 상대가 있기는 것이기 때문에 개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없다. 국내적인 개혁은 권력으로 찍어 눌러 할 수도 있겠지만, 외교는 군사작전을 하기 전에는 대국도 소국을 찍어 누를 수 없다. 따라서 현장·실무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면 안 된다.

조각가들도 무턱대고 자기 머릿속에 있는 대로만 형상화를 못 시킨다. 나무나 대리석에도 결이 있기 때문에 그걸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기 머릿속에 있는 걸 구현하는 것이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남북관계의 결, 북한이란 상대의 결을 활용해 가면서 자기 페이스로 끌고 와야 한다. 그렇다면 현장경험을 가진 실무자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외교부 장관은 경험이 중요하다며 외교관 출신을 세우는데, 남북관계는 이론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남북협상을 하다 보면 협상문화를 바꿨다고 하면서 밤새운 적이 없다는 얘길 하는데 막판에는 다 밤새운다. 총리회담 준비 다 했다고 했지만 막판에는 진통 겪었다. 북한이 챙길 것을 못 챙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합의문 문안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명분 문제 때문에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가진 실무자들이 꼭 필요한 게 남북관계다.
▲ ⓒ프레시안

박인규: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했는데, 아쉬웠던 점을 들자면 어떤 것이 있나?

정세현 : 퍼블릭 디플로머시(Public Diplomacy)라는 게 있다. 외교도 국민들한테 알려가면서 하자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외교라고 하긴 좀 뭐하지만, 두 정부 동안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높이고 동의를 구하는 프로세스가 약했다. 특히 2000년 정상회담을 전후로 남남갈등이 강하게 불거졌을 때, 그 작업을 확실히 했어야 했다.

남북관계가 담론 차원에서 생활 차원으로 바뀌면서 이념적 혼란이 생기고 실제로 기득권이 허물어지니까 저항이 나올 수박에 없었는데, 저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설득력이 없다는 걸 정부가 입증해 줬어야 했다.

통일부 장·차관들이 나와서 직접 국민들에게 설명을 하면 국민들은 성의를 봐서도 동의해 준다. 2002년 통일부 장관이 되면서 '열린통일포럼'이란 걸 만들어서 월 평균 두 번씩 전국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예컨대 남북장관급회담이 한번 열리면 내가 나서거나 차관, 회담대표를 보내서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다. 학교도 가고 지방도 갔다. 보수 언론의 선동적인 제목만 본 지방 유지들을 300명이고 600명이고 불러다 놓고 애기하면 '어, 신문하고 다르네' 하다가 '신문은 왜 그렇게 쓰는 거야'라고 현장에서 바로 반응이 나온다. 이해해 주는 것이다.

통일문제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 보면 우리 국민 70~80%는 그냥 중도다. 극단적인 진보나 보수는 각각 10% 정도다. 그 70~80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바로 정책이다. 그게 약해서 일을 많이 해 놓고도 평가를 제대로 못 받은 게 아닌가 싶다.

박인규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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