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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는 이야기 읽기, 또는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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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는 이야기 읽기, 또는 만들기 김민웅의 세상읽기 <269> <토끼전>의 경우
어느 바닷가 저녁 무렵, 늙은 할머니가 된 심청이 허리가 굽고 눈이 먼 채 아이들에게 자신이 용궁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녀를 놀린다. "청 청, 미친 청, 청 청 늙은 청." 아이들이 놀리며 달아나자 심청은 이렇게 혼자 뇌까린다. "녀석들, 거짓말인 줄 알구." 최인훈의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는 심청이 이야기를, 매춘부로 청에 팔려간 한 여인의 이야기로 각색해서, 우리의 근대사가 겪었던 오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청에 팔려간 조선의 꽃, 심청이
  
  심청이는 "조선에서 온 꽃"이 되어 이리 저리 몸을 짓밟혔다가, 청나라에서 장사하던 김 서방의 도움으로 먼저 배를 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구 해적에게 유린당하고(일제 식민지 시대에 정신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결국 조선 땅에 돌아오지만 이제는 갈 곳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최인훈은 심청이의 이야기 속에서 민중의 고난과 민족의 운명까지 읽어낸다. 그녀의 아버지가 심 봉사였던 것을 떠올리면, 그녀가 훗날 눈먼 할머니가 되고 마는 것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희망의 부재", 그것이 장님이 된 심청이의 현실이다. 그녀는 어찌 된 일인지 소식 없는 김 서방을 기다리며 내일의 행복을 꿈꾸지만, 그건 이미 허무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
  
  현실은 그녀가 버림받고 있는 것으로 귀결되고, 아이들은 그녀를 미친 여자로 단정하고 놀린다. 희생자들이 다시 희생되는 것이다. 최인훈의 심청이 이야기 재해석은, 효심으로 자기를 던지고 아버지의 눈까지 뜨게 하는 용궁의 신부 심청이가 아니라, 그런 희생을 강요한 역사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를 희생시켜 자기 안전을 도모하는 자들의 이기심과 잔혹함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의 민담에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고 고개를 넘는 엄마를 계속 기만하다가, 결국 잡아먹어버린 호랑이는 학정의 주역 탐관오리이기도 하고, 침략적 외세이기도 하다. 떡을 먹는 호랑이가 어디 있는가? 그건 처음부터 거짓이었고, 엄마는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자기 탐욕의 대상으로 삼는 자의 위장이었다. 그래서 호랑이는 아이들을 속이기 위해 여러 가지로 위장하지만, 결국 들통이 나고 아이들을 추격하면서 하늘로 오르려다가 죽고 만다.
  
  호랑이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아이들을 속이려 들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은 호랑이가 하는 말의 진실을 꼼꼼히 검증한다. 아이들은 힘이 없었지만 지혜만큼은 뛰어났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호랑이와 주체적으로 대치하여 호랑이를 굴복시키거나 패퇴시키는 장면을 어디에서도 목격하지 못한다. 호랑이가 출몰하는 고개를 떡 파는 엄마 혼자서 위험하게 지나야 하는 현실, 아이들은 외진 곳에 남겨져 있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 이런 상황에서 동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토끼전> 또는 <토생전>으로 알려진 우리 민담은 용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별주부 거북이 토끼를 용궁 구경으로 현혹시킨 뒤 그 간을 빼내려다가 실패한 사건을 보여준다. 용궁은 심청이 이야기를 포함해서 수많은 민담에서 지상의 세계와는 다른 유토피아적 이상향처럼 그려지지만, 여기서는 민중의 목숨을 노리는 기만의 현장이 된다. 이 이야기는 아시아 각처의 고대민담에서 "원숭이와 악어", "자라와 원숭이" 등의 변형으로 유사한 내용이 존재한다. 그 핵심은 물속의 최고 권력자가 물 밖의 동물을 유인해서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려 하지만, 희생될 지경에 놓였던 원숭이 또는 토끼가 기지를 발휘해서 살아난다는 점이다.
  
  벼룩의 간, 토끼의 간
  
  "벼룩의 간을 빼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용왕의 병환을 구하기 위해서는 토끼의 간을 빼먹어야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궁의 백관대신 가운데 수륙양용의 기능을 가진 거북이가 토끼를 꼬이는 임무를 맡게 된다. 토끼는 그것이 자신을 겨냥하는 덫인 줄 모르고 용궁을 구경시켜준다는 거북이의 말에 넘어가고, 막상 용궁에 당도하자 목적이 자기 간임을 알게 되면서 간을 두고 왔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용궁 전체를 속인다. 자신을 속인 자들을 거꾸로 속이는 토끼는 권력의 지능을 뛰어넘는 민중의 지혜를 의미한다. "용궁구경"은 권력의 단맛이기도 하며, 재물로 잠시 그 욕망을 채우는 일이기도 하다. 토끼는 제아무리 기막힌 용궁구경이라도 그걸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주지 않는다. 권력의 이기적 욕망을 위해 희생제물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존재의 용기와 슬기로움이 여기에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발휘된 토끼의 지혜는 자신의 꾀가 높다고 여긴 상대를 역으로 기만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건 단순히 "기만"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겪어온 토끼의 생존투쟁의 과정이 만들어낸 "내공"이다. 우리말에 간덩이가 부었다느니, 간이 배 밖에 나왔다느니, 쓸개는 어디다 두고 그러는가 하는 식의 표현은 모두 현실의 강도 높은 압박 앞에서 택하게 되는 삶의 모습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겁도 없이 버티거나, 그와는 반대로 비굴하기 짝이 없는 처신을 하게 되는 상황은 토끼로 상징되는 민중에게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따라서 토끼가 간을 따로 어디 두고 왔다는 식의 발상은, 생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민중의 삶 자체가 간이든 쓸개든 제대로 갖춰가면서 살게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토끼 자신에게는 무슨 특별한 영감이 따로 요구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토록 간과 쓸개를 몸밖에 두고 살아야 하는 고단한 민중의 삶이, 생각지도 않은 위기의 순간에 도리어 그를 살리는 지혜를 일으키는 힘으로 변모한다. 고난을 겪어왔던 것이 능력이 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용왕은 어찌해서 병이 들었을까? 용궁은 무엇 때문에 근심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하필이면 토끼의 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이 질문이야말로 민담을 근거로 한 토생전의 발생기원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것이 된다.
  
  용궁의 근심, 배신자의 물색, 반전의 통쾌함
  
  거의 모든 민담이 권력의 요구와 기만 앞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민중의 지혜가 만들어 낸 소산이라면 그 답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만일 이 이야기가 권력의 압제에 견디지 못한 민중의 정치적 반란과 봉기를 은밀한 전제로 삼는 이야기가 된다면? 그래서 용궁은 위기의식에 휩싸여 있었고 그 돌파구를 반란세력 가운데 배신자가 될 후보를 물색하려는 것이었다면?
  
  노련한 거북이는 권력이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용궁 구경이라는 미끼로 간이든 쓸개든 내놓을 자를 반란의 진영 내부에서 찾아 나선 셈이 된다. 용궁을 보여주겠다는 소리에 쉽게 넘어가 깡충깡충 경박한 처신을 할 것으로 보인 토끼는 처음에는 유혹당해 거의 넘어갈 듯 했으나 민중의 목숨이 달린 일에 간을 내줄 수 없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는다.
  
  의식의 성장이 있다. 그리고는 용궁의 권력 전체를 상대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통쾌함이 이 이야기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권력이 이런 저런 미끼로 눈 뜨고 코 베어가고 간 빼 먹으려는 세상에 자기를 지켜내려 한 민중의 치열한 고투가 남긴 이 이야기는 그래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역사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지략이 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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