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 눈이 올지도 모르잖아."
우리는 그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 며칠 먹을 빵과 치즈, 홈무스*, 차, 커피, 설탕, 그리고 양초를 준비해두라고, 들르는 이들마다 말했다. 우리는 외국인인 우리를 놀리는 줄만 알았다. 그런 충고를 하면서 이들이 실실 웃어서 더욱 그랬다. 눈이 온다 치자. 그런데 웬 빵? 우리가 머무르는 까딴 재단* 게스트하우스는 설악산 심심산골이 아니라 라말라 시내 한가운데에 있단 말이다. 게다가 웬 양초?
"눈과 전기의 관계를 말해봐. 눈이 오면 왔지 대체 전기는 왜 안 들어온다는 거야?"
우리가 추궁하자 한 친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무도 몰라. 하여튼 눈이 오면 정전이야."
난민촌이 집인 친구가 덧붙였다.
"우리 난민촌은 눈이 안 와도 지난 일년 동안 하루 서너 시간은 전기가 안 들어왔는데, 전기 회사에 일년 동안 그 이유를 물어도 아직 답변이 없어."
"눈이 오면 고생이라면서, 너희는 왜 눈을 기다려?"
둘은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눈이 오면, 너희도 알게 될 거야."
그 날, 일기예보에서 눈이 온다고 했는데 비가 내렸다. 벌써 여러 번 그랬던 터라 나는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길을 나서 얼마 걷지 않아 비가 폭풍우로 변했다. 내 우산은 발랑 뒤집어지더니 우산살이 엿가락처럼 휘어버렸다. 행인들은 저마다 가까운 담장이나 벽 아래로 숨어들었다. 나는 하필 공터 부근에 있어 숨을 데가 없었다. 주먹만한 빗방울들이 위에서가 아니라 앞에서 날아와 얼굴을 난타했다. 우산을 버리고 양팔을 감쌌건만 내 발이 강풍에 찻길로 밀려갔다. 저 멀리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나를 향해 열렬히 손짓했다. 나는 간신히 도서관에 당도하여 문가에 몰려서있는 흠뻑 젖은 사람들과 합류했다. 쏟아지던 비가 우박으로 변했다. 우박 알갱이들이 길바닥에서 튀고, 구르고, 눈 깜짝할 새 십여 미터씩 공간이동을 했다. 누군가 말했다. 이제 시작이라고. 순간 도서관의 형광등이 일제히 나갔다. 아직 눈도 안 왔는데.
"우리 팔레스타인에 와 있는 거 맞아?"
그날 밤 게스트하우스 거실 탁자에 양초 밝혀두고, 복태와 나는 각자 이불 둘둘 감은 누에의 형상으로 마주앉았다. 정전으로 침실의 전기난로는 쓸모가 없었으며,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잠도 오지 않았다. 인근에 불빛 한 점 없는데도 창밖이 환했다. 퍼붓는 흰눈이 스스로 빛을 발했다. 바람결에 눈발이 천사의 날개처럼 반짝이며 휘날릴 때면 에스키모 영화나 남극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앞 건물의 경사진 지붕에 눈이 20센티미터쯤 쌓였다가 서서히 미끄러져 풀썩 떨어지고, 다시 쌓여갔다. 호리호리한 맵시를 자랑하던 싸이프러스 나무들은 눈을 이고 제 각기 우스꽝스럽게 휘어져버렸다. 거실 가스난로에 가스를 채운 지 얼마 안 됐지만 눈이 며칠이나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난로의 불꽃을 가장 낮게 해두었다. 배터리를 아끼려고 노트북 컴퓨터도 켜지 않았다. 어차피 인터넷도 끊겼다. 바람 소리는 깊었다. 바람이 아주 먼 데서 불어오는 것 같았다. 혹은 우리가 아주 먼 데로 옮겨가 있든지. 다음날 새벽, 와지끈 하더니 마당의 커다란 소나무가 꿈틀거렸다. 눈의 무게를 못 이겨 굵은 가지 두 개가 차례로 부러져 몸서리치며 떨어졌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졌다.
나흘 뒤, 전날 눈이 그쳤는데도 하루 지나서야 까딴 재단 직원들이 비로소 출근했다. 마주치는 이들마다 그동안 우리가 보고 싶었다고 했다. 라말라 시내 한가운데서 나흘이나 고립됐던 우리야말로 그들이 보고 싶었다. 라말라는 신기루였다. 팔레스타인의 행정 도시, 모든 돈이 몰리는 소비 도시, 자유와 문화와 지성의 도시라는 라말라가 눈이 오자 완전히 마비되었다. 눈을 치울 장비가 없어 도로가 막히고, 시민들이 오갈 수 없으므로 관공서, 학교, 직장이 닫히고, 문화시설과 음식점, 술집이야 물론 닫히고, 물자의 유통도 차단되어 상점과 시장 또한 열리지 않았다. 송전소, 송전탑, 송전선이 죄다 낡아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총체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수돗물 또한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고 수압이 낮아 집집마다 모터를 돌려 옥상의 물탱크를 채워야 하니, 전기가 오래 끊어지면 수돗물 또한 나오지 않았다. 허술하기 그지없는 인프라스트럭처로 가까스로 명색을 유지하던 라말라는, 한 번 눈 오자 맨 얼굴을 드러냈다. 2007년 초부터 이스라엘이 숨통을 죄어 밤이면 암흑으로 변하고 병원에서 환자들이 죽어간다는 가자 지구하고 별 다를 바도 없었다. 몇 년 전에는 눈 때문에 라말라가 한 달 반이나 마비되었다고 했다.
"그렇게들 즐거워?"
복태가 물었다. 그는 눈보라 치는 동안 거리 진출을 감행한 적이 있는데, 어른이건 아이건 신이 나서 눈싸움하다가는 지나가는 복태에게 눈 뭉치를 던졌다고 했다. "헬로!"하고 웃으면서 던졌다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너나없이 던지니 맞는 입장에서는 아프기도 하더라고 했다. 얼마나 맞았는지 눈사람이 되어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눈에 덮이면 어디나 똑같잖아."
"세상이 깨끗해지잖아."
"아름답잖아."
그렇다, 아름다웠다. 며칠 동안 얼굴을 드러냈던 건 자연이기도 했다. 장벽과 검문소로 둘러싸인 라말라에 잠시 자연의 신비가 강림하여 시민들을 딴 세상으로 들어올렸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라말라조차 일렁이는 신기루처럼 무력하게 만든 이 현실 이 차라리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팔레스타인에 사람들이 살아 있고 살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이 비현실적인 꿈이 되는, 이 실제 상황이 과연 현실일까? 잠시 딴 세상으로 들어올려졌던 지난 며칠간이 도리어 생시고, 그 이전과 이후는 꿈인데 그중에서도 나쁜 꿈......... 꿈이든 생시든, 나는 눈 온 기념으로 친구들과 눈밭에서 멋진 자세로 사진 찍던 그 순간이 좋았다. 현실이든 비현실이든, 그들이 있는 쪽에 같이 멋진 자세로 서있고 싶었다.
"저 눈이 땅에 쌓여있는 한 우리 거잖아."
이스라엘이 제안하는 평화안은,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가 될지라도 그 땅 밑의 지하수는 자기들 관할이라는 것이다. 그 눈이 녹아 땅으로 스며들면 이스라엘의 물이 된다.
*홈무스: 병아리콩을 갈아 레몬즙 섞어 만든 소스. 빵에 찍어 먹는다.
*까딴 재단: 팔레스타인의 문화재단으로 교육과 예술을 지원한다. 동행인 복태와 필자는 이 재단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다.
글:오수연(소설가/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회원)
사진: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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