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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변화는 성공…혁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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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오바마, 변화는 성공…혁신은?" [인터뷰] 임원혁 "오바마 대북정책, '실사구시' 기조 취할 듯"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줄을 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오바마 당선인과 사소한 인연만 있어도 언론과 정치권의 주목을 받는다. 미국 민주당이 대통령과 상하 양원을 모두 거머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파국적인 경제난을 맞은 미국이 어디로 움직일지를 정하는 방향타를 쥐고 있다.

그럼에도, 오마바 당선인과 같은 학교를 나왔다거나 안면이 있다는 이들의 목소리에 너무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학교 동문이라는 이유로, 어쩌다 한번 악수한 사이라는 이유로 '오바마가 이끌 미국'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 오히려 미국진보센터(CAP)나 브루킹스 연구소 등 민주당 주변의 정책 연구소에 문의하는 게 더 빠른 방법일 수 있다.

2007년 초반까지 브루킹스 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은 뒤 지난 1년간 미국을 드나들며 오바마 캠프의 정책 형성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만났다. 물리학과 역사학을 공부한 뒤,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임 위원은 폭넓은 시야로 한반도 주변 정세를 살피는 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바마, 보호 무역 가능성 낮다"
▲ 임원혁 KDI 연구위원 ⓒ프레시안

11일 오후 KDI 연구실에서 만난 임 위원은 오바마 시대의 미국은 재정 적자를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회안전망을 강조하는 당선인으로서는 위험 수위를 넘어 버린 재정 적자 역시 부담이 될 것이다.

무역에서는 보호주의적인 성향을 띨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개별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새로 추진할 가능성은 낮지만, 기존 다자간 무역 체제를 허물지도 않으리라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하에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노동 및 환경 관련 기준은 지금보다 높아질 게 거의 확실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부시나 오바마나 결국 마찬가지"라는 견해를 보인 건 아니었다. 임 위원은 오바마가 이끌 미국은 지금보다 더 혁신 지향적인 사회가 되리라고 예상했다.

"'신경제' 환상 깨진 자리에서, 창업과 혁신 장려하려면…"

금융, 석유 산업에 치중했던 공화당 정부와 달리, 민주당 정부는 정보통신 및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 적극적이다. 오바마 차기 행정부는 기술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장려하는 방향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흑인 대통령 당선을 가능케 했던 '변화'에 대한 열망이, '혁신'을 이뤄내는 동력이 되게끔 유도하리라는 전망인 셈이다.

오바마 당선인이 지난 7일 소집한 경제자문회의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로버트 라이히 전 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참석한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보탠다. 실제로 오바마를 후원한 경제인들 중에는 정보통신 벤처기업 경영자가 대거 포함돼 있다.

오바마 당선인이 신규 창업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경제 위기를 돌파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자칫 '신경제'에 대한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클린턴 정부 시기인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미국 경제에는 정보기술 산업 활황으로 인한 거품이 잔뜩 끼었었다.

이런 거품이 영원히 꺼지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이들은 세계는 이제 '신경제'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했고,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이런 주장에 동조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의 최대 실책이라고 평가받는 대목이다.

거품이 무너지면서 '신경제'의 환상에서 깨어난 지금, 다시 '혁신'을 장려하는 일은 그래서 쉽지 않은 숙제다. 오바마 당선인이 이런 숙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점쟁이가 아니고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임 위원 역시 조심스런 입장을 취했다.

대북관계, 북한을 아는 사람들이 주도한다

한편,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임 위원은 오바마 당선인 측의 성향을 '실사구시'라고 규정했다. 실제 북한과 협상을 해보거나 평양을 방문했던 경험을 가진 인사들이 추축이 되어 앞으로도 실무적으로 일을 풀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도 그와 맥을 같이 한다. 임 위원은 "'북한에 인권문제 있는 거 다 아는데, 실질적으로 어떻게 개선할까 생각해 보자'는 식으로 접근한다"라며 "결국 접촉을 통한 변화 쪽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임 위원과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자동차 산업은 제조업의 척추…"대체 차종 개발 지원할 듯"

프레시안 : 오바마 당선인이 미국 자동차 산업 살리기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임원혁 : GM은 현금 자산이 160억 달러 정도다. 그런데 3/4분기 현금 흐름은 -69억 달러다. 현금 소각 상황이라서 내년 1/4분기를 지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릭 와그너 GM 회장이 직접 <NBC> 방송에 출연해서 한 이야기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 제조업의 척추에 해당한다. 이런 중요성을 정치권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 산업이 단기간에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도요타를 비롯한 경쟁사들이 에너지 효율이 높은 차를 개발할 때,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SUV(스포츠형 다목적 차량)에만 집착했다. 당장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 안주하는 동안,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기술 경쟁력을 잃었다. 미국 업체들이 비교 우위를 갖고 있는 차종은 곧 사라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자동차 산업을 살리려면, 대체 기술과 대체 차종을 얼마나 빨리 개발하느냐가 관건이다. 오바마 당선인 측 역시 이 부분에 관심을 쏟고 있다. 오바마가 취임하면, 국가 차원에서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다.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하면, 엄청난 힘을 내는 게 미국 사회의 저력이다. 전망이 꼭 나쁘다고만 하기 힘든 것도 그래서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버린 이유를 하나 더 꼽으라면, 의료 보험 문제를 들 수 있다. 미국은 기업이 의료 보험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보험료 부담을 힘겨워 한다. 그래서 기업 경영자들 역시 공공부문이 의료보험을 책임지면서 모든 이에게 혜택을 주는 보편적 의료보험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업체들의 요구는 이 대목에서 오바마 당선인의 공약과 겹친다.

다만, 보편적 의료보험이 언제쯤 도입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당선인 주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 자동차 시장, 이미 개방돼 있다…"한국, 미국차 비방보다 차분히 대응해야"
▲ 한미FTA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하는 현수막 ⓒ로이터=뉴시스

프레시안 : 한국은 오바마 당선인의 자동차 산업에 대한 관심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처지다. 오바마 당선인은 후보 시절 "한국은 미국에 수십만 대의 차를 파는데, 미국은 한국에 겨우 5000대를 판다"고 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을 정조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정이 나쁜 한국 자동차 업계가 떨고 있는 게 당연하다.

임원혁 : 오바마 당선인의 발언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사실 관계와는 동떨어진 발언이다. 미국 내 한국 자동차 공장, GM대우처럼 미국이 지분을 갖고 있는 한국 내 자동차 공장 등에서 생산한 양을 반영하지 않은 발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바마의 말은 정치적 계산에 따른 발언으로 보는 게 옳다.

한국 자동차 시장은 이미 개방된 상태다. 독일차, 일본차는 지난 5년 동안 수입이 급증했다. 미국차 수입이 적은 이유는 무역 장벽이 아니라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산 자동차의 품질이 형편없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정부 당국자가 공공연히 할 필요는 없다.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할 뿐이다. 한국이 미국 자동차를 시장에서 차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미국 측에 사실 위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공정무역과 균형성장, 새로운 무역질서의 키워드…"'제2플라자 합의', 가능성 낮다"

프레시안 : 자동차 수출만 불안한 게 아니다. 오바마 당선인은 공화당 정부에 비해 강력한 통상정책을 쓸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렇게 될 경우, 한국 제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원혁 : 오바마 당선인은 한미FTA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공정무역'을 내세웠다. "자유무역을 지지한다. 하지만 노동·환경 관련 기준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무역을 확대할 때 피해를 입는 이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오바마 당선인이 강조한 게 '균형성장'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제 내수도 신경 쓸 때가 됐다. 모든 나라가 수출에만 힘을 쏟으면, 자유무역 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 각국이 수출과 수입이 균형을 이루는 경제를 추구해애 자유무역 질서가 유지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보호무역 지지'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미국이 급작스럽게 보호무역으로 돌아섰다가 세계 무역 규모가 줄어들면서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을 오바마 당선인 측은 잘 알고 있다. 기존에 체결된 FTA, 이미 작동하고 있는 다자간 무역체제를 수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관세를 갑자기 올릴 가능성 역시 없다.

반대로, 오바마 당선인이 새로운 FTA를 추진할 가능성 역시 낮다. 경제 개방의 수준을 현 상태로 유지하려 할 듯하다.

다만, 중국과 무역마찰이 빚어질 가능성은 있다. 멜라민 파동 등을 계기로 식품 관련 규제를 강화해서 중국 수출품에 '불량품' 꼬리표를 달수도 있다. 또 노동, 환경 관련 기준을 강화해서 중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 이밖에도 곳곳에 뇌관이 있다. 하지만, 이런 마찰 가능성을 너무 과장해서도 안 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WTO 체제 안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혼자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개발도상국들과 발을 맞춰가야 한다. 다자간 무역 체제를 흔들면서까지 미국이 중국에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낮다.

물론, 중국과 미국이 마찰을 빚을 때 우려스러운 대목도 있다. 2007년 미국 무역수지 적자가 8000억 달러를 넘겼다. 적자 상대국 1위가 중국이고, 2위가 일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한국이 동북아시아 3국으로 묶여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다. 중국, 일본에 쏟아지는 압력을 함께 받게 되는 상황이다.

대책은 별 게 없다. 사실 관계에 충실하면 된다. 한국은 적자 상대국 순위가 15위다. 중국, 일본과 다른 처지다. 게다가 한국은 1990년대 이후 미국과 무역 마찰을 빚은 사례가 거의 없다. 1980년대 말에 미국과 쌍방교역을 하면서 잠시 문제가 생긴 적이 있지만, 오래 전에 지난 일이다. 이런 사실을 기초로 미국과 차분하게 대화를 이끌어 가야한다.

프레시안 :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이 무역 마찰을 빚을 가능성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2의 플라자 합의'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무역 및 재정에서 미국이 짊어진 적자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임원혁 : 가능성 낮은 주장이라고 본다. 미국이 엔화 가치를 강제로 끌어올렸던 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게다가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후, 극심한 부작용을 겪었다. 이런 사례를 뻔히 아는데, 누가 동의하겠나. 미국은 지금 어떤 나라를 상대로건 이런 식의 조치를 밀어붙일 수 없는 처지다.

"'석유 덜 쓰는 경제', 대외 전략 변화로 연결하기는 무리다"

프레시안 : 오바마 당선인은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석유에 덜 의존하는 경제로 이행한다는 징후로도 볼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미국의 대외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까.

임원혁 : 미국은 기후 변화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석유 등 탄소연료와 기후 변화 사이의 관계는 이미 과학적으로 명백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계속 핑계를 대면서, 대응을 미룬다면 미국의 대외적 평판에 심각한 손상이 생긴다. 이런 손상을 계속 방치하면 위험하다. 오히려 미국이 지구적 문제에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취해야 국제사회에서 주도적 위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공감대가 이미 마련돼 있다. 공화당 메케인 후보조차 신재생에너지 관련 공약을 냈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미국의 에너지 정책과 지정학적 전략을 기계적으로 연결하는 논리는 잘못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논객은 미국이 석유 의존도가 높아서 이슬람 지역 독재 정권을 사실상 뒷받침해준다고 진단한다. 비약이 심한 논리다. 미국이 에너지를 자급한다고 해서, 미국이 이슬람 지역에 개입하지 않을까? 그럴 리 없다.

물론 변화가 전혀 없으리라고 볼 수는 없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런 부분에서는 변화가 있으리라고 본다. 오바마 행정부는 테러주의의 온상으로 지목돼 온 이슬람 지역에 군사적인 접근만 하지는 않을 게다. 이들 지역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바꾸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추진했던 마셜플랜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ODA 자금을 늘리고, 안보동반자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등 여러 대책을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와 석유에 덜 의존하는 경제를 기계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다.

프레시안 : 미국은 석유 소비량이 매우 높은 경제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약한 상태다. 관련 기술 연구 역시 미진하다. 반면,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은 이런 분야에서 미국보다 앞선 경쟁력을 갖고 있다. 미국은 선발주자와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려 할까.

임원혁 : 역시 단순논리로 접근하면 안 된다. 미국 내에서도 주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다. 이를테면 캘리포니아 주는 다른 주보다 훨씬 환경친화적이다. 물론,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미국이 풍력,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뒤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연구개발(R&D) 능력을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여전히 미국은 과학기술 강국이다. 미국 정부가 이들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다면, 선발주자를 따라잡는 게 어렵지 않다.

"IT, 과학기술 혁신 강조는 기정 사실"
▲ 오바마 당선인과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로이터=뉴시스

프레시안 : 미국의 기술 혁신 역량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침, 오바마 당선인을 지지한 경제인 명단에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등 정보통신 벤처기업 경영자가 많이 눈에 띈다.

임원혁 : 오바마 공약집을 보면, 기술 및 혁신(Techmology and Innovation)이라는 장이 있다. 여기서 정보통신 기술을 비롯한 과학기술 분야를 아주 강조했다. 기술 혁신을 지금보다 훨씬 강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오바마 당선인 주변에서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클링턴 행정부처럼 오바마 행정부 역시 정보 통신 기술을 상당히 강조할 것이다. 기정사실로 받아들여도 좋다고 본다.

프레시안 : 클린턴 대통령 시절, 닷컴버블(정보통신 벤처기업 관련 거품)이 심각했다.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도 오바마 행정부가 벤처 육성책을 펼까.

임원혁 : 오바마 당선인 주위에서 닷컴 열풍을 꼭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같지는 않다. 폐해도 있었지만, 신규 창업한 기업에 많은 기회를 제공한 것도 사실 아닌가. 또 사회적으로 혁신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닷컴 열풍으로 널리 보급된 인터넷은 민주주의 확대에도 기여했다. 적어도, 금융이나 부동산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이미지가 훨씬 낫다.

공화당이 금융과 에너지를 강조하는 반면, 민주당은 과학기술 혁신을 강조한다. 그래서 벤처 경영자들에게 지지를 받는다. 오바마 당선인이 이런 상황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정보통신, 친환경 에너지 등 분야에서 신규 창업을 독려하는 정책을 취할 것이다.

지금보다는 산업정책 기능이 강화될 것이다. 물론, WTO 체제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가 단위 연구개발 사업을 활성화하는 것, 벤처 캐피탈을 활성화 하는 것 정도가 오바마 행정부의 산업정책이 될 듯하다.

중산층 구제가 최우선 과제…"그러나, 문제는 재정"

프레시안 :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오바마 당선인이 정책적 변화를 도모하는데 한계가 있을 듯하다. 그런데 오바마 당선인은 중산층에 대한 감세를 공약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임원혁 : 중산층 감세 공약은 두 가지 맥락에서 나왔다. 하나는 공화당 프레임을 깨기 위한 것이다. "민주당은 세금 늘리는 정당, 공화당은 세금에서 구제해주는 정당"이라는 프레임이다.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이런 프레임에 걸려 넘어졌다. 그래서 오바마 당선인은 "감세를 하더라도, 중산층 먼저 하겠다"라고 공약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다른 측면은 중산층 소비 촉진이다. 적은 돈이나마 당장 소비할 여력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지금 경제 상황이 워낙 나쁘기 때문에 이런 면이 필요하다. 오바마 당선인 측으로선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프레시안 : 중산층에게서 세금을 더 거두지 않으면, 재정적자가 더 악화되는 것 아닌가. 재정적자를 계속 누적되면, 달러화 가치를 유지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텐데.

임원혁 : 그게 문제다. 현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달러화가 기축통화로 유지되기 어렵다. 과거처럼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할 수도 없다. 피할 수는 없는 문제다.

현재 진행 중인 금융 위기가 해소되고,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가 만들어진다면 지금과는 다른 구도가 생겨나리라고 보는 것도 그래서다. 다른 나라는 돈만 내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구조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게다.

프레시안 : 오바마 당선인 측 경제정책에서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임원혁 : 가장 급한 것은 중산층 구제다. 공화당 정권을 거치면서 중산층 생활수준이 실질 기준으로 크게 악화됐다. 공화당의 감세 정책은 부유층에만 혜택을 줬을 뿐이다. 또 급격히 진행된 세계화 과정에서 타격을 입은 이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공화단 정부는 이들에게 해준 게 없다.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 대표적인 게 보편적 의료보험 도입이다.

오바마 당선인 주변 정책 전문가들은 재정 지출을 통해 사회복지 기반을 마련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경제 공약에도 선명하게 명시돼 있다.

"보편적 의보 도입, 사회간접시설 투자에 밀릴 듯"

프레시안 : 다시 재정 문제를 꺼낼 수밖에 없다.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에 비해 복지 지출을 늘리려 애쓰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명백한 한계가 있다. 우선순위가 궁금한 것도 그래서다.

임원혁 : 중산층에 대한 조세 감면,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추진하리라고 본다. 여기에는 당선인 주변에서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보편적 의료보험 도입은 시기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다. 사회간접시설 투자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도 할 수 있다.

의사협회 및 보험업계의 반발이 워낙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클링턴 행정부 초기, 힐러리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였지만 결국 실패했던 것도 그래서다.

게다가 이념 논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의사협회 등 기득권층은 의료보험 개혁에 대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선인 주변 일각에서는 정권 초기에 이런 논쟁을 겪는 게 위험하다고 본다. 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정권 초기에 개혁을 밀어붙이지 않으면, 보편적 의료보험 도입은 영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주로 온라인 공간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올해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역시 이런 주장에 동조한다.

"북핵 문제, 최상급은 못 돼도 상급 이슈는 된다"

프레시안 : 한반도 문제로 넘어가 보자.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을 '불량국가'로 계속 두면서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한 미국의 기본적인 동북아 전략이 있는 한 오바마 행정부도 북미관계 정상화에 근본적인 회의를 갖지 않을까?

임원혁 : 북한을 비교적 나쁜 나라로 둬서 중국으로부터 지원받는 나라니까 중국도 나쁘다는 논리를 펼 수는 있는데, 미국이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달라진다.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북한을 교두보로 삼는 게 중국 견제에 훨씬 더 효과적이다.

클린턴 행정부 초기에는 북한에 무관심 비슷하게 갔던 적이 있었는데, 페리 프로세스를 채택하고 나서는 미국도 '북한 교두보' 논리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 1999~2000년에는 미국이 더 빠르게 관계 개선을 주도하는 상황이었고, 2000년 북미 공동코뮈니케에 반영됐다.

프레시안 : 오바마 당선인의 한반도팀 성향은 어떠한가?

임원혁 : 실질적인 경험을 상당히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북한과 실제로 접촉했거나 협상했던 경험이 꽤 있는 사람들이다. 프랭크 자누지 한반도 팀장은 북한에 다녀왔고, 조엘 위트 북핵팀장은 북핵 문제에 정통하다. 실사구시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건 반확산·비확산 차원에서 북한에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지역 현실을 인식하고 실무적인 접근을 통해 일을 풀어 갈 것이라는 의미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건 분명한데, 부시 행정부 때의 '민주평화론'식으로, 이상적으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결합해 민주주의를 이식하겠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또, 양자접근뿐만 아니라 다자접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부시 행정부와 상당히 다른 점이고, 6자회담을 동북아 평화안보기구로 만드는 문제에서 적극적인 특징이 있다.

프레시안 : 북한 인권 문제를 강조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임원혁 :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방법이 뭐냐는 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확성기에 대고 북한 정권은 포악하다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북한에 인권문제가 있는 것 다 아는데, 실질적으로 어떻게 개선할까 생각해 보자'는 식으로 접근한다. 즉, 접촉을 통한 변화 쪽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잘 아는 사람들이다.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랑 잘 맞을지 모르겠다. 김영삼 정부 때처럼 한미가 부딪히지 않을까?

임원혁 : 이명박 대통령은 기질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과 다른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은 본인의 마음에 안 들면 재를 확 뿌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대통령은 상황만 되면 얼마든지 타협이 가능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화해·협력에도 그리 부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북핵 문제의 구도 같은 문제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듣기 민망하긴 했지만 본인과 오바마가 닮은 점이 많다고 한 걸 보면 어깃장을 놓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얼마든지 조율 가능하다.

국내정치에서도 북한과의 화해·협력이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됐으면 됐지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시절은 지났고, 한나라당 내에서도 큰 갈등이 없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치고 나가는 걸 보면 그 상황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뉴라이트 세력이 '인(人)의 병풍'을 치면서 대통령의 인식을 흐리는 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어찌 보면 부시 대통령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본인 스스로 확고한 생각이 없어서 언제는 파월 얘기 듣다가, 또 언제는 체니 얘기 듣다가...그렇게 오락가락 하다가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 전체 구도가 드러나면서 정리됐듯, 이 대통령도 그렇게 가지 않을까 싶다.

프레시안 : 오바마 캠프의 대북정책을 보면 "지속적이고, 직접적이며, 적극적인 외교"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북핵 문제가 오바마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얘기도 있다.

임원혁 : 지속적인 외교란 건 가다서다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떤 로드맵과 틀을 만들면 거기에 맞춰 꾸준히 관계를 개선하고 비핵화로 가겠다는 것이다. 직접적이란 건 부시 행정부 때처럼 직접 대화 자체가 북한에 보상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직접대화를 해야 상대의 의견을 알 수 있고, 적국이든 우방이든 직접대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적극적인 외교란 미국이 수세적으로 몰려서 반응하는 형태로 외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목표를 가지고 거길 향해 가겠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표현은 아주 핵심적인 얘기다.

우선순위서 밀린다는 건 이라크, 이란, 아프간 문제가 워낙 중요하니까...북핵은 분명 그 정도로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북한 문제를 놔뒀을 때 핵시설을 재가동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냥 방치하진 않을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고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을 찾으면 얼마든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이고, 이란이나 '가상 적국'과의 관계 개선의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다. 최상급은 아니어도 상급은 충분히 된다.

프레시안 : 이라크 병력을 빼서 아프간에 배치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장소만 바꾼 테러와의 전쟁 아닌가?

임원혁 :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과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실제로 아프간은 미국에 테러를 가하려는 테러리스트들의 소굴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이라크는 몰라도 아프간에 대해서는 우방국들의 지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프간에 병력을 투입해 평정하고, 정치사회적인 기반을 바뀌겠다는 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 테러문제는 그렇게 푸는 것 외에 방법을 모르겠다. 부시는 정치사회적인 기반을 바꾸는 노력도 없었고, 군사적으로 평정하기에도 적은 병력을 아프간에 뒀다. 2차 대전 후 독일·일본에 주둔한 미군의 병력 밀도를 보면 아프간에는 평정에 필요한 병력이 없고 어정쩡했다. 국민들의 마음을 살 프로그램도 없었다. 따라서 오바마의 구상은 단순한 병력이동은 아니다. 물론 그런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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