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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큰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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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큰 나라'인가? [권혁태의 '일본읽기']〈25〉 '작다 이데올르기'의 재생산
우리들은 일본을 말할 때 흔히들 자원도 없고 국토도 작은 동양의 자그마한 섬나라가 부지런하고 단결 잘 하는 사람 덕택에 대국이 될 수 있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또 일본에서도 "일본은 섬나라이니까, 혹은 일본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가진 것이라고는 역시 사람 밖에 없다" 등등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리적으로는 닫혀 있는 작은 나라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의 노력과 단결 덕분에 경제적 대국이 될 수 있었다, 이런 뜻일 게다.

물리적으로 작다는 것은 일본인은 키가 작다, 국토면적이 작다, 집이 작다, 혹은 일본인은 적게 먹는다, 고기를 거의 안 먹는다 등등의 뜻일 게다.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왜놈'이라는 일종의 차별어는 한편에서는 작은 나라에 대한 경멸감과 함께, 작으면서도 화려하게 성공한 이웃 사회에 대한 질투나 콤플렉스가 동시에 숨어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렇지도 않지만 19세기 말 조선을 관찰한 서양인의 눈에는 체구가 작은 일본인이 골격이 큰 조선 사람을 학대하는 장면을 불가사의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본은 작다'는 '신화'

작다, 혹은 크다는 것은 물론 상대적인 개념이다. 작은 나라를 기준으로 보면, 일본은 아주 큰 나라일 것이고, 큰 나라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아주 작은 나라이다. 즉 보는 사람의 입장이나 각도에 따라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과 같이 큰 나라에서 보면 일본은 너무나 작은 나라이지만, 타이완이나 싱가포르 같은 작은 나라에서 보면 일본은 아주 큰 나라이다.

일본 사람들이 사는 집을 보고 일반적으로 '토기집'(ウサギ小屋)라고 한다. 일본을 경험한 한국사람 들 중에도 일본 사람들은 정말 작은 집에 산다고 곧잘 표현한다. 한국에서 30평 이상 되는 비교적 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볼 때, 도쿄의 아파트는 작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국에서 적은 사글세방에 살 던 사람에게는 도쿄의 작은 집도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즉 크기는 국가간 비교의 문제임과 동시에 보는 사람의 계급적인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이 상대적인 개념이 왜 절대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가다. 즉, '작다 이데올로기'가 언제 어떻게 생겨나서 일본 사회의 구성원의 자국인식과 타국인식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그리고 이와 같은 '소국론'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들어와서 재생산되었는가, 혹은 일본 사회 소국론이 우리 사회의 '일본 읽기'에 어떤 규정성을 담보해 왔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을 주의 깊게 본 사람은 깨끗하다, 친절하다, 정돈되어 있다는 인상과 함께, 의외로 크다는 말을 자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의외로'라는 부사이다. '예상과는 달리'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부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일본 인식의 한 부분에 다다르게 된다.

굳이 한국과 비교하면, 일본은 큰 나라이다. 아주 큰 나라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인구상으로는 남한의 3배이며 남북한을 다 합쳐도 거의 2배이다. 남한 크기는 홋카이도와 비슷하다. 면적은 프랑스의 2/3이지만, 독일과 비슷하며, 영국보다는 1.5배나 크다. 더구나 배타적 경제수역을 포함한 해역의 크기를 보면, 미국, 호주,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캐나다에 이어 세계 6위이며, 구 소련의 해역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 같이 큰 나라를 왜 작은 나라라고 생각해왔을까? 그리고 어느새 우리 사회에 일본은 작은 나라라는 의식이 생기게 되었을까?

'작다' 이데올로기의 대표격에 '토끼집'이라는 표현이 있다. 일본 사람들의 거주 환경이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작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국제일본연구센터의 카시오카(柏岡富英) 교수에 따르면, 본디 '토끼집(rabbit hutch)'이라는 표현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의 뉴욕 교외 현장에 노동자 거주용으로 만들어진 '동일규격 판매용 주택'을 주위 사람들이 인간이 살기에는 너무 작다는 '경멸'을 뜻을 담아서 표현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사업주의 이름을 빌려서 '래빗 타운'이라 불렀다. 토끼집은 미국 태생의 계급적인 차별 표현인 셈이다. 따라서 '토끼집'이란 반드시 규모가 작은 주택이 아니라, 같은 모양을 한 집단 거주 주택을 뜻한다.

이런 표현이 일본에 본격적으로 '수입'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경제대국화에 따른 무역마찰이었다. 1979년 3월에 밝혀진 유럽 공동체 비밀문서 『대일경제전략보고서』에서 "일본은 서양인이 보기에, 토끼집보다 조금 큰 집에 살며, 일 중독자들의 나라"라고 일본인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적 성공이 일본 노동자들의 '희생'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기업은 부강한데, 그 기업에서 생활하는 일본인은 너무 열악하게 생활하니, 기업의 성공은 노동자들의 희생 덕이다, 이런 뜻이다.

이런 다소 경멸적인 표현에 대해, 일본의 건설성은 반론을 전개했지만, 일본 사회 내부에서는 '멀고 비싸며, 좁은' 일본의 주택 사정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 1호당 면적을 보면 미국, 이탈리아, 구 서독, 프랑스는 100평방미터를 넘지만, 90평방 이하로는 호주, 영국, 일본, 스웨덴의 순이다. 더구나 1인당 주거면적을 봐도 일본은 한국보다 크다. 특히 농촌(물론 전업농가는 거의 없다)에 가면, 농가주택의 크기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채식과 소식에 대한 '신화'도 마찬가지이다. 벌써 한 20여 년 전인 1980년대 중후반의 일이다. 당시 옆집에 살던 일본인 주부는 내가 한국에서 왔음을 밝히자, '집에서 불고기 식당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즉각 해왔다. 한국에서 '화교'하면 '중국집'이라는 일종의 '자동변환장치'와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지금은 물론 이 같은 질문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10년 전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하루 세끼는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모두 건강하고 크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한국 사람=육식, 대식', '일본 사람=채식, 소식'의 이미지에는 큰 변화는 없는 듯하다.

물론 이런 이미지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재일조선인들이 생활의 방편으로 '불고기집(焼肉屋)'을 경영했고, 일본 사람들이 지금은 일상적으로 먹는 고기 내장을 일본에 처음 소개한 것도 재일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오사카 사투리로 '먹지 않고 버린다'는 뜻을 담은 '호르몬'이라는 소고기 내장을 일본에 소개한 것도 재일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의 잡지 중에 '호르몬 문화'라는 것이 등장한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일본 사람들이 소고기나 집돼지를 먹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이고, 그 전에는 육식은 사슴고기, 멧돼지 고기, 말고기를 뜻했다.

19세기 일본의 시사만화에는 중국 사람들이나 조선 사람들을 경멸의 뜻을 담아 '집돼지'로 형용하는 경우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멍청함'을 형용하는 서양의 '집돼지' 이미지를 '수입'한 결과일 뿐, 일본의 '전통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일본에는 지금도 '멧돼지 띠'는 있어도 '돼지띠'는 없다. 따라서 '육식=조선', '채식=일본'의 이미지는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식이나 채식도 일종의 '신화'에 불과하다. 문화는 변하는 것이고, 문화의 독자성은 변화 속에서 담보되는 것이다. 사실 1인당 고기 소비량을 보면, 한국의 고기 소비량이 일본의 그것에 근접하는 것은 최근의 일일 뿐, 1980년대 후반까지는 일본의 1인당 고기 소비량은 한국의 2배 수준이다. 과일 소비량도 일본이 한국보다 많다. 김치 탓인지, 채소 소비량만 한국이 일본보다 많을 뿐이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외식을 할 경우에, 사실 육식을 피하기 쉽지 않다. 생선 요리도 거의 '튀김' 종류가 많으니, 육식을 즐겨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본 외식은 '고통'이다. 따라서 '소식', '토끼집', '채식'이라는 일본에 대한 대표적인 '표상'은 '거짓'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반드시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서양 중심의 계급적인 표현을 한국 사회가 '수입'해서 사용한 셈이다.

'작다 이데올로기'의 지속되는 진화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일본 사회에서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작다'고 표현하는 현상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것에는 이유가 있다. 스스로를 '작다'고 표현하는 것은 물론 서양에 대해서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새로운 국가 건설 과정에서 일본이 '탈아입구'를 내걸었고 이것이 서양에 대한 '동경'과 아시아에 대한 '멸시'를 낳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탈아입구'는 그 정당성 여부를 논외로 하면, 근대화의 길을 걷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많은 지역에서도 시간적인 거리를 두고 발견된다. '탈아입구'는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비서구 지역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목표로 삼는 서양을 기준으로 다수의 '잣대'가 사용되는데(이 잣대는 곧잘 '비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잣대'가 서구 사회에서 발전한 이상, 서양과의 비교에서 얻어지는 결론은 항상 스스로가 '작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작다'는 '큰 것'을 지향하는 것일 뿐, 스스로를 절망적으로 규정하는 표현은 아닌 셈이다. 일본에서 스스로를 '작다'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강자에 대한 강한 지향을 위한 조건 규정이고, 구성원에게 끊임없이 '긴장'을 환기시키는 장치로 작용한 것이다. 서양으로부터의 위기와 서양에로의 지향을 동시에 담고 있었던 19세기 일본에서 '작다 이데올로기'는 이런 이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19세기 말에 '태양(太陽)"이라는 잡지를 주재한 우키타 가즈다미(浮田和民)가 '윤리적 제국주의'(군사대국화의 길을 포기하고 경제적, 윤리적으로 번성하는 국가)를 주장하거나, 같은 시기 일본의 루소로 불렸던 나카에 쵸민(中江兆民)이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번성하는 길'을 주장한 것은 당시의 '작다 이데올르기'가 군사적, 영토적 확장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우려한 탓일 것이다. 오히려 우키타나 나카에의 '꿈'은 전쟁이 끝난 뒤에 실현된다.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번성하는 길을 택한 일본의 전후 사회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다 이데올로기'가 소멸된 것은 아니다. 고도성장 기를 거치면서 '작다 이데올로기'는 군사적, 영토적인 '잣대'에서 경제적인 '잣대'로 변화했을 뿐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원동력은 서양과의 비교에서 얻어진 '작다'는 결론이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경제적 성공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고도성장 기의 '작다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일본의 경제적 성취도를 서양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1980년대의 일본에선 '작다 이데올로기'는 다시 한 번 변형한다. 이미 국민총생산 규모에서 세계에서 2위 수준까지 도달한 상태에선 경제규모라는 양적인 지표로 스스로를 '작다'고 규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때 등장한 것인 질적인 규모, 다시 말하면 '경제대국, 생활 소국'이라는 개념을 통한 '작다 이데올로기'의 변형이다.

'기업과 나라는 부강한데, 사람은 가난하고 생활은 질은 아주 낮은 생활 소국'이 바로 그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이후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택문제를 해결하고 여유 있는 생활을 보장하는 각종의 개혁에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선 이 같은 '작다 이데올로기'가 지금까지의 경제적 개념을 벗어나 19세기 말에 사용되었던 '작다 이데올로기'로 다시 한 번 변형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경제적으로 성공했어도 이를 지켜줄 수 있는 군사적 외교적 힘이 없는 일본은 '안보소국'이다, 이런 뜻일 것이다. 특히 중국,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공포감이 일본 사회에서 '실체'로 감지되기 시작한 최근에 이 경향은 아주 눈에 띄게 감지된다.

따라서 최근 미디어에서 사용되는 일본이 '작다'는 것은 서양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에 대해서도 무방비한 상태에 있는 일본 사회의 '허약함'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으로는 컸지만, 군사적, 외교적, 정치적으로는 '작다'는 것이고, 군사적, 정치적, 외교적으로 크지 않으면, 경제적 성공까지도 위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묘한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최근 일본 미디어에는 한국의 징병제나 군인에 대한 소개가 가끔 등장한다. 휴전선 부근에 근무하는 '씩씩한' 한국의 젊은 군인을 소개하기도 하고, 혹은 일본의 한심한 젊은이를 한국의 민간 해병대 캠프에 합숙시키는 이른바 '극기훈련' 프로그램도 등장한다. 과거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반공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신음'하는 표상기호로서 한국의 군인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 젊은이의 '한심함'을 한국 젊은이의 '씩씩함'과 대비시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만화가인 고바야시 요시노리 조차도 한국 군인의 '애국심'을 들어 일본 젊은이를 질타하고 일본에 징병제 도입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헌법개정 논의에서도 이는 발견된다. 헌법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의 논거도 '작다 이데올르기'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군사력이 약하니 일본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선 헌법을 개정해서 스스로 무장하거나, 아니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식이다.

물론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변형된 '작다 이데올르기'가 19세기 같이 일본을 '야만'의 시대로 몰아 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웃 주민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일본은 이미 군사소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을 개정해서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는 것은 '군사소국'에서 '군사대국'이 아니라 '군사대국'에서 '군사 초강대국'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의 헌법개정 논의는 여전히 '작다 이데올르기'에서 머물러 있는 듯하다.

<참고문헌>

권혁태, 「2006년 일본 우경화 기행」, 황해문화, 2007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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