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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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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147>
봄이 오면 들은 많은 꽃을 피웁니다. 그 언덕에 크고 작은 많은 꽃들이 피게 합니다. 냉이꽃, 꽃다지, 제비꽃, 할미꽃, 노랑민들레가 다투어 피어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꽃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내어 줍니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꽃들이 다시 피고 지는 동안 들은 그 꽃들을 마음껏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소유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강물은 흘러오는 만큼 흘려보냅니다. 그래서 늘 새롭고 신선할 수 있습니다. 제 것으로 가두어 두려는 욕심이 앞서면 물은 썩게 됩니다. 강물은 제 속에 많은 물고기들이 모여 살게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게 할 뿐 소유하지 않습니다.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그늘로 찾아와 둥지를 틀고 깃들어 살게 할 뿐 소유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산은 늘 풍요롭습니다. 산짐승들이 모여들고 온갖 나무들이 거기에 뿌리를 내리게 합니다. 그것들이 모여와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산이 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새들이 마음껏 날개 치게 하는 하늘은 더욱 그렇습니다. 수많은 철새들의 길이 되어주고 자유로운 삶터가 되어 줄 뿐 단 한 마리도 제 것으로 묶어 두지 않습니다. 새들의 발자국 하나 훔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더욱 넓고 푸릅니다.

'생이불유(生而不有)' 『노자』에서는 이런 모습을 "천지와 자연은 만물을 활동하게 하고도 그 노고를 사양하지 않으며, 만물을 생육하게 하고도 소유하지 않는다" 하여 '생이불유(生而不有)' 라 합니다.

진흙을 이겨서 질그릇을 만들지만 그 안을 비워두기 때문에 그릇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릇의 안이 진흙으로 꽉 차 있다면 그 그릇은 아무것도 담을 수 없고 이미 그릇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진흙덩어리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그릇이 커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큰 그릇이 될 사람이다.' 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도량이 크고 마음이 넓다는 뜻인데 다른 사람을 품어 안고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넓으려면 마음이 비어 있어야 합니다.

집을 짓고 방을 만들 때 그 내부를 비워둠으로 해서 방으로 쓸 수 있는 것처럼 비워둠으로 해서 비로소 가득 차게 할 수 있는 이 진리. 이 무한한 크기. 사람의 마음도 삶도 비울 줄 알 때 진정으로 크게 채워지는 것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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