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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프튼 코트의 은밀한 승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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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프튼 코트의 은밀한 승자는 누구일까? [정혜윤의 날아다니는 여행기] 런던에서 점퍼가, 햄프튼 코트
헨리 8세의 유언은 '왕국의 왕위를 에드워드 왕자에게 물려주며, 그가 죽으면 진심으로 사랑하는 캐서린 왕비(여섯번째 아내)가 낳을지도 모를 자녀들이 후계자가 된다. 만약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 메리 공주와 그녀의 자손들, 이어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자손들이 왕위를 잇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의 여동생인 메리의 자손들에게…' 그 때 그의 나이 쉰다섯이었다.

어려서도 자주 앓았던 에드워드 왕자는 왕위에 올라 얼마 안 가 열다섯 살 나이에 병으로 죽고 그 뒤를 이은 수줍고 고집센 노처녀 메리는 카톨릭 스페인의 펠리페 2세를 사랑하고 여론을 져버리고 그와 결혼해 아기를 낳고 싶어 했지만 임신은 두 번의 상상 임신소동으로 끝나버리고 미남 펠리페는 곧 돌아오겠다 말하고는 스페인으로 떠나 다시 아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중엔 볼록 나온 배 속에 있는 것이 아기가 아니라 혹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결국 그녀는 5년간의 통치 끝에 블러디 메리(신교도들을 화형시키는 잔인한 박해로 얻은 별명이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만을 안고 죽게 된다.

▲ 메리의 영혼에 대해 앙드레 모로아는 애정과 고집과 절대 권력의 혼합으로 생기는 혼란의 한 예라고 말했다.
그녀의 영혼에 대해 앙드레 모로아는 애정과 고집과 절대 권력의 혼합으로 생기는 혼란의 한 예라고 말했는데 어머니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함께 어린 시절에 겪은 불행과 고독을 오로지 신앙의 힘만으로 견뎌낸 걸 생각하면 사람의 영혼이 어떤 과정을 통해 위험해지는지 좀 보이는 것도 같다. 아마 그녀는 이 햄프튼 코트에서 펠리페 2세와의 혼사를 성립시키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뛰는 가슴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지탱해준 신앙적 동지와의 이상적 결합을 꿈꾸며 뒤늦은 행복의 예감에 몸을 떨며 얼굴을 붉혔을 수도 있다.

처녀왕의 전설을 낳은 엘리자베스 역시 어머니 앤 블린의 최후를 보면서 결혼 자체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되었단 이야기와 함께 실은 자궁이 기형이어서 애를 낳지 못할뿐 아니라 성관계 자체가 불가능하단 소문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늘 젋고 잘생기고 출중한 몸놀림을 보이는 남자들을 곁에 많이 두었고 그들의 질투심을 이용했고 그녀 스스로도 불같이 질투를 했고 성적인 농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렸다. 스탕달은 연애에 관한한 엘리자베스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그는 연애론에서 그녀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두 사람의 엘리자베스, 난폭한 아버지를 둔 두 여성을 비교해보자
어느 쪽이 문명국 혹은 야만국의 군주였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두 사람 모두 엘리자베스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표트르의 딸은 전제적이었지만 경쟁자와 적을 용서했다.
그런데 영국의 엘리자베스는 메리 스튜어트의 왕위에 대한 욕구와 매력을 용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녀가 보호를 바라고 있을 때 도량 좁게도 그녀를 투옥했다.
엘리자베스는 크든 작든 자기의 질투심 때문에 전제권 혹은 법률의 승인 없이 많은 사람을 처형했다. 그런데 이 엘리자베스는 자기의 굳은 정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찬미를 받기 위해 온갖 우스꽝스러운 교태를 부렸고 자기 쪽에서 눈짓을 던져 놓고도 연인들이 접근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이리하여 결국 자기의 욕망도 그들의 야심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스탕달의 의견에 반대한다. 나는 솔직히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많이 끌린다. 그녀는 나보다 책을 많이 독파한 학자는 거의 없다고 자랑했으며 죽는 날까지 키케로나 플루타르크 번역을 소일거리로 삼았고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스물여섯 시간 동안 내리 <철학의 위안>이란 책의 번역에 매달릴 정도로 학문을 사랑했으며 영어로 프랑스어로 이탈리아어로 그리스어와 라틴어, 에스파냐와 스코틀랜드와 네델란드어로 말을 할 줄 알았다. 노골적으로 불경한 욕설을 날릴 배포가 있었고 사냥한 동물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부류의 여자가 아니었고 짖궂은 장난을 좋아했다.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기 위해 극단적인 몸부림을 치며 나이 들어갔고 그녀가 궁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란 말을 끝없이 듣고 싶어서 시녀들이 자신보다 예쁜 옷을 입는 걸 참지 못했다. 노년에도 목이 깊게 팬 드레스를 입었고 아침에 몸치장을 하는데 두 시간씩을 바쳤고 걸어다니는게 신기할 정도의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한꺼번에 몸에 걸쳤고 보석에 집착했다. 그녀의 보석 컬렉션은 당대 유럽 최고 수준이란 말을 들었는데 보석들에는 그녀의 좌우명인 셈페르 에어뎀 (semper eadem, 항상 같다)을 새겼고 최상급 진주 장신구를 처녀성의 상징으로 자주 활용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남자 없이 살 수는 없는 여자답게 남자 궁정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해야 직성이 풀렸다. (이들 남자 궁정인들의 역할은 감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고귀한 여인을 그저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쓰라린 한숨과 불면의 밤을 보내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가 누구의 딸인지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헨리 8세 초상화 밑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곤 했는데 그녀는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줄도 알았고 받은 사랑을 유지할 줄도 아는 여자였다. 특히 그녀는 언니와 달리 종교적인 광신도가 아니었고 원래 개인의 내면 깊은 곳은 함부로 들여다봐선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어머니 앤 블린의 죽음과 자기 스스로 런던탑에 갇혀 본 경험 때문에 그녀는 속마음을 말하지 않기, 사기 치기, 위선, 기만, 모략에 있어서 대가의 경지에 올라 있었는데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 통치자라면 반드시 가져야할 덕목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왕위에 어렵게 오르자 신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이유는 어머니가 자식을 살피듯 나라 구석구석을 보살피란 뜻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여자라면 다른 식의 연애는 못한다. 사랑 하나 보고 불같이 뛰어들 정열 따위는 생길 수 없다. 나는 그녀 최후의 영혼이 외로움 속에 후들거리며 손가락에 갖가지 반지를 끼고 드레스를 끌고 런던의 진창길을 걸어가는 것을 결코 싸늘하게 바라볼 수 없다.

▲ 진주로 치장한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 그녀는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줄도 알았고 받은 사랑을 유지할 줄도 아는 여자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어린 시절 햄프튼 코트에서 천연두를 앓아서 이곳을 좋아하진 않았다고 한다. 대신 부활절, 성령강림절, 크리스마스 무렵에 대대적인 연회를 열었고 외국사절들과 왕족을 위한 호사스런 잔치를 자주 열어서 그녀 시절의 햄프튼 코트는 벽마다 금과 은이 눈부시게 빛나는, 명화와 악기와 황금빛 샹들리에로 화려하게 장식된 잉글랜드 전역을 통틀어 가장 정교한 궁전이란 평을 들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이곳 정원에서 월터 롤리경이 신대륙에서 들여온 담배와 감자를 길러 보기도 했으리라. 그 시절엔 런던에 나가면 세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이 있었을 것이고 그리니치에선 먼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선단들의 출정식이 있었을 것이다. 또 그 시절엔 배 한척으로 단 한차례 원정만으로도 엘리자베스 여왕의 일 년치 수입보다 더 많은 값나가는 화물을 싣고 돌아왔다는 모험 소설 속 주인공 같은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있었다. 그는 그 유명한 골든 하인드호를 타고 스페인의 황금 상자를 빼앗는 해적질을 거침없이 자행했고, 여왕은 골이 난 스페인의 왕에게 사과하는 척하면서 드레이크에게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스페인은 너를 해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일어나시오, 프랜시스경이라고 한다" 그녀는 해적에게 기사작위를 줘 버린건데 (한 발 더 나아가 그에게 투자를 해서 막대한 개인적 이득도 올렸다)여러모로 스페인과 영국 사이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 전쟁은 그녀에게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줬다. 그녀는 스페인과의 전쟁 현장에 은빛 갑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영국은 화공선을 이용해 전쟁을 치렀지만 그보다는 개신교 바람이라는 남풍과 거센 풍랑이 포탄보다 더 치명적인 피해를 스페인의 배에 입혀 무적함대는 대부분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신께서 바람을 보내시어 그들이 뿔뿔이 흩어졌더라'라는 그 전쟁 이후에 엘리자베스의 별명은 위풍당당 일라이자였다. 어쨌든 영불해협에서 15세기부터 유명했다던 영국의 해적 행위는 그녀의 시기에 오면 애국 활동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런던은 메르쿠리우스(로마 신화속의 상업의 신)에게 바쳐진 도시가 된다. 엘리자베스 시절 대륙에서 들여온 또 하나 중요한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 바퀴벌레. (나는 묵던 호텔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책으로 내려쳐 없애려다가 관뒀다. 네 조상들의 항해가 너를 구했도다!)

▲ 헨리 8세의 네번째 아내 안느 클래브스. 나는 그녀를 햄프튼 코트의 은밀한 승자로 손 들어주고 싶다.
헨리 8세의 여섯 아내와 자손 중 햄프튼 코트의 은밀한 승자는 누구일까? 아들을 낳은 제인 시모어? 훌륭한 자녀 교육의 귀감 캐서린 파? 나는 네 번째 아내 안느 클래브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녀는 어지럽게 변화하는 권력의 한가운데서 홀로 조용히 있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남편이 이제부터 여동생으로 불러주마 라고 말하며 다섯 번째 여섯 번째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 자신의 남편이 죽는 것, 에드워드 6세의 건강이 악화되어 열다섯 살 나이로 죽는 것, 노섬버랜드 경이 제인 그레이와 함께 잉글랜드 땅에 신교를 뿌리 내리겠다는 명분으로 왕권을 탐한 것, 9일 여왕이었던 열여섯 명민한 제인 그레이가 사라지는 것, 메리가 카톨릭의 국가를 세우려 했던 것, 메리가 가톨릭 신봉자인 펠리페와 결혼하기로 하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들뜨던 것, 메리가 스미스필드에서 신교도를 화형시키는 것, 메리 여왕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아이의 징후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자궁 종양이었던 것을 알고 절규하던 것…. 그런 것들을 그녀는 고향 네델란드로 돌아가지 않고 잉글랜드 땅에 남아 다 지켜봤다. 그녀의 장례식은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서 열렸는데 그녀의 뒤를 이어 곧바로 죽은 메리 1세는 안느의 무덤에서 멀지 않은 헨리 7세 옆의 자그마한 예배당에 묻혔다. 그녀가 햄프튼 코트의 은밀한 승자일 수 있는 이유? 다름 아닌 그녀의 궁이야말로 다툼이나 중상모략, 사악한 음모가 없는 당시 런던의 유일한 궁이었기 때문일 것 같아서이다. 헨리 8세와 아내들이 이곳 햄프튼 코트에서 꽃을 따며, 템즈강까지 이어졌단 수로의 물소릴 들으며, 류트 음악을 들으며, 갤리반드나 파반춤을 추며, 사냥터로 떠나며 동경해봤을 그런 삶.

'어느 알량한 인생이 그녀를 깨트릴까 겁이나서,사용하지 않고
조심스런 진열장 안으로 치워버렸다.

거기 그녀는 꾸어온 물건처럼 낯설게 서서
그저 늙어갔고 눈멀어 갔다
그리고 귀중하지도 진귀하지도 않았다.' (릴케의 어느 여인의 운명)


그러나 내 눈에 그녀는 적어도 헨리 8세 시절엔 혼자였기 때문에 존경받고 행복했던 사람으로 기억될-영원한 주변인이었다.

이 성 저 성을,이 저택,저 저택을 옮겨 다니며 살았던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의 튜더 왕조를 생각하면 칼비노의 도시 이야기중 하나가 떠오른다. 에르실리아라는 도시의 주민들은 도시의 삶을 지탱해주는 관계들을 설정하기 위해 집 모퉁이에 흰색, 회색, 검은색 같은 실들을 걸어두어 혈연관계, 거래, 권력관계를 표시했다. 그런데 나중에 실들이 너무 많이 걸려 그 사이로 걸어다니는 게 힘들게 되자 결국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다른 곳에 에르실리아를 또 건설하고 또 실을 걸어두기 시작한다. 그러면 도시는 또 똑같이 유사한 형태를 띄게 된다.그러면 또 도시를 버린다. 그래서 먼 훗날 에르실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폐허 속에서 복잡하게 뒤엉켜있는 실을 보고 도시는 다름아닌 관계들의 망이란 걸 알게 되었다. 햄프튼 코트나 윈저 성에 실을 걸어놓고 실만 놔두고 건물을 태워버리고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는 상상을 한번 해본다. 어떤 반복적인 패턴이 읽히지 않을까?

튜더 왕조 이후로도 햄프튼 코트의 역사 역시 언제고 영국 역사랑 실처럼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엘리자베스의 승계자 스코틀랜드 출신 제임스 1세는 햄프튼 코트에서 당시 소수였지만 아주 엄격했던 청교도들과 협상을 망쳐 종교분쟁을 정치 분쟁으로 만들어 버렸고 청교도 목사 300명을 교회에서 추방해버렸다. 청교도들을 태운 메이 플라워호가 신대륙을 향해 떠나게 된 건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참수당한 최초의 왕인 찰스 1세의 비극적 최후는 이 햄프튼 코트를 둘러보면 더 착잡하게 다가오는데 찰스 1세는 이곳에 줄리어스 시저가 승리하는 그림을 열성적으로 사 모았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명화에 파묻혀 살았던 그는 햄프튼 코트에서 열린 올리버 크롬웰 군대와의 협상에 진심으로 응하지 않았다가 결국은 이곳에 감금 되었고 의회와 의회가 대표하는 국민에 대한 전쟁 도발 책임으로 처형되었다. 나중에 올리버 크롬웰은 의회에게 햄프튼 코트를 선물받기도 한다.

▲햄프턴코트의 화려한 내부 전경. 나는 이 화려한 궁궐 뒤 존재의 화려함만큼이나 고통들이 느껴진다.

퀸스 아파트나 킹스 아파트, 정원, 접견실, 침대, 그림, 천장,등을 둘러보면서 당시의 왕궁을 상상해보면 헨리 8세가 제인 시모어가 아이를 낳을 방을 장식할 테피스트리(이곳의 테피스트리는 거의 헨리 8세의 수집품이다)를 고르는 것이며 하노버 출신의 무심하고 수줍은 왕 조지 1세가 아주 짧게나마 사람들의 호감을 끌어보려고 ball룸에서 연회를 열지만 그런 와중에도 언제까지나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하고 라틴어로 외마디 내뱉는 것, 열일곱명이나 되는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잃은 앤 여왕이 비탄에 잠기는 것, 위대한 왕의 생애 속에 끼어들고 싶어 시저나 알렉산더의 그림을 사 모으는 허영 많은 왕들의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나는 이 화려한 궁궐 뒤 존재의 화려함만큼이나 고통들이 좀 느껴진다. 버나드 쇼는 일찍이 존재의 고통은 생의 권태로만 대체될 수 있다고 했다. 삶은 권태롭거나 고통스럽거나 둘 중 하나일까? 아직도 화려한 햄프튼 코트를 보면서 그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보게 된다. 권태와 고통 둘 중에 무얼 먼저 피해가야 할까? 앙드레 말로는 인생의 모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모험은 삶에 직면하여 스스로 느끼는 놀라움이다' 나는 권태든 고통이든 앙드레 말로식의 모험으로 해석해내고 싶다. 떨고 있는 사람은 무료함을 느끼지 않는다.

모험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돌아와 아내의 형편없는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아내 페넬로페를 되찾은 다음에 그녀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주고 나서, 또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바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기에 그의 손에 들린 노를 삽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만날 때까지 앞으로도 도시들과 나라들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야 하는 예언을 받았으며 그런 사람들을 만난 다음에야 그의 삶의 순례가 끝난다고. 그래서 그는 구혼자들이 죽인 가축을 벌충하기 위해 가축을 약탈하는 일로 자신의 모험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무시무시한 모험을 끝내도 여전히 죽을 때까지 모험을 그렇게 계속해야하는 것이 삶이 라면 나는 차라리 토마스 모어의 시 한 구절을 외우며 봇짐 싸고 길을 떠나겠다. "나는 새로운 것이 갖고 싶다. 이 세상에 그런 것이 없어졌다 해도"

베르사이유를 연상시키는 햄프튼 코트 정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이제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하나는 황도 12궁이 그려있는 정교한 시계. 또 하나는 아주 오래되었다는 포도나무, 또 하나는 미로. 햄프튼 코트의 시계 속에서 해는 아직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그 시계를 배경으로 한 풍경 속에서 헨리 8세는 한밤중에 토마스 모어를 깨워 지붕에 올라가 정원의 시계를 보면서 별과 혜성의 운행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그리고 배를 타고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템즈강의 만조 시간을 알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로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붙잡히길 바라는 엉큼한 발자욱 소리, 웃음소리. 후다닥 사라지는 옷자락의 한 부분..저 아이들은 상륙 지점을 모르는 아직 순풍에 돛달고 있는 배이다.한창때는 2000송이가 열리기도 했다는 오래된 포도나무를 보니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난다.'감기지 않으면 시들어 버린다.'

▲ 햄프튼 코트의 오래된 포도나무. "감기지 않으면 시들어 버린다"

사포가 에리나에게 바친 릴케의 시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내 너에게 불안과 근심이 넘치게 하리라
너 포도넝쿨 휘감긴 장대여,내 너를 요동시키리라
죽는 것처럼 내 너를 꿰뚫어버리리라
그리고 무덤처럼 너를 넘겨주리라
온 우주에다,이 모든 것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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