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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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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김민웅의 세상읽기 <263> 꽁트
"그런데 말이다."
  산신령님이 무겁게 입을 다시 열었습니다.
  
  엄마 두꺼비는 산신령님이
  그 은단이 들어 있는 호리병을
  자기에게 빨리 주셨으면 했지만,
  선뜻 그렇게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산신령님은 그런 엄마 두꺼비를 보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이 은단은 아주 독하단다.
  이걸 먹으면
  너의 그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가
  아주 흉칙해질 수도 있고
  게다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엄마 두꺼비는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습니다.
  장차 세상에 나올 아기 두꺼비를
  저 무서운 독사로부터 지켜낼 수 있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날 이후,
  엄마 두꺼비의
  그 곱던 피부와 늘씬했던 허리는
  거칠고 부풀어 올라
  무슨 통나무처럼 되어버렸고
  목소리마저 자신이 들어도 이상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길에서 바로 그 독사와 딱 마주쳤습니다.
  
  독사가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독사는 엄마 두꺼비의 변해버린 모습에
  내심 당황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엄마 두꺼비는
  독사 앞에서 아주 얌전하게 가만히 있었습니다.
  도망가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독사는 몸이 커다랗게 변해버린 엄마 두꺼비를
  턱이 부셔져라 온갖 용을 쓰면서
  결국 삼키고 말았습니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든 언론 매체가
  이 기이한 사건을
  일제히 보도하느라고 법석을 떠는 바람에
  온 세상이 다 알게 되었지요.
  
  이런 일이 있고나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라는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기 두꺼비들도
  마치 군가처럼 이 노래를 따라 불렀고,
  이 노래만 부르면
  당장에라도 새 집이 생길 듯한 기세로
  이들 아기 두꺼비들은 여기 저기 몰려다녔습니다.
  아이들도 이들 두꺼비들과 함께 신이 나게 놀았습니다.
  
  한동안 독사들은 이들 두꺼비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습니다.
  엄마 두꺼비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고
  아기 두꺼비들도
  자라나면서 모양새는 점점 엄마 두꺼비처럼 되어갔습니다.
  
  이들 아기 두꺼비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새 듬직한 청년이 되자
  연못은 이들 두꺼비들이 온통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도 전에
  이들 두꺼비들은 늘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했습니다.
  
  우두머리 두꺼비도
  제법 기갈이 대단했습니다.
  그땐 참 믿음직해 보였습니다.
  
  이런 두꺼비들 앞에서
  과연 독사도 무서워서 만일 발이 있었다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냅다 도망을 갈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연못에서 사건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뜸했던 독사가 다시 출몰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희생자도 생겼습니다.
  
  연못의 주민 곤충과 주민 개구리와 주민 붕어와
  주민 아무개와 주민 머시기와
  주민 거시기와 주민 모씨와 주민 K씨와
  주민 등록증 없는 주민 비슷하게 생긴 주민들까지 포함하여
  모두가 다 두꺼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무언가 대처방안이 있겠지 하고 기대했던 겁니다.
  이들은 모두 엄마 두꺼비의 전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 두꺼비들이
  전설대로 위력 있는 대응을 할 것으로 당연히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밤이면 연못에서 두꺼비들이 흥겹게 합창하던 소리가
  뚝 끊어졌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독사들은
  더욱 기세가 등등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두꺼비들의 그 커다랗던 몸집은 점점 오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연못의 주민들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변신하는 두꺼비인가?" 하고 서로 물었습니다.
  
  반면에 아이들은 아직도
  "두껍아, 두껍아"하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 노래 소리만 나오면
  그리도 좋아하고 춤을 추던 두꺼비들이
  이제는 귀를 막고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솔직히 아이들이
  이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우두머리 두꺼비와 우두머리 밑의 두꺼비와 그 밑의 두꺼비와
  또 그 밑의 밀의 두꺼비와 아주 밀의 두꺼비까지
  "아, 자꾸 그 옛날 노래 부를껴?
  시대가 어느 시댄데?"하고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갑자기 어이가 없어졌습니다.
  "뭐 이런 두꺼비들이 다 있어?" 하고
  슬그머니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두꺼비들은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니, 본래 얼굴색 변해봐야 잘 드러나지도 않지만
  "그건 우리 엄마 때 노래야," 하고
  아이들을 타이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슬슬 피하기도 하고
  까짓 거 새집 준다니까 하고 은근히 눈을 부라리기도 했습니다.
  
  연못의 주민들은 그제야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음, 무늬만 두꺼비도 있구나." 하고.
  
  그러는 중에 독사들은 연못에 서서히 창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뻔히 보면서도 두꺼비들은 저희들끼리 모여서,
  은단이 이제는 약효가 떨어졌다느니
  산신령님도 아마 지금쯤은 많이 늙으셨을거야, 라느니
  독사의 목에 방울을 달아 보자느니 둥의 토론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런데 이들 두꺼비들이
  미처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두꺼비들의 숫자가 점점 적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수가 적어진 두꺼비를 어쩌다 발견하면
  뒤를 쫓아가서 큰 소리로 노래했습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두꺼비는 그만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리고는 엉겁결에,
  "나 두꺼비 아니거든."하고 불쌍하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엄마보다 못한 두꺼비들이지만
  언젠가는 이 노래를 다시 기억하고
  힘찬 두꺼비들로 다시 일어설 것을 희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 노래가 자신들에 대한
  응원가요 희망가인지도 모르는 두꺼비들은
  오늘도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소리만 나오면
  도망가기가 바쁘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연못에서
  진짜 두꺼비를 점점 볼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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