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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솎아내는 재미가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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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솎아내는 재미가 선거다! [기고] 거짓이 판치는 정치, '진실'이 곧 진보다
요 며칠 전 그리 가까운 관계는 아니지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동네의 목사님께 여쭤 볼 게 있어서 전화를 했다. 선거운동에 '아마추어적'으로 몰두했는지 목이 쉬어 제대로 된 통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가 어찌 뚜렷한 기표에 의해서만 가능하겠는가. 무사히 물을 건 묻고 답할 건 답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분의 '아마추어적'인 열정과 맑아 보이는 눈빛이 언제나 마음에 들었다.

그 날도 전화를 끊고 난 다음 뒤돌아서서 하다 만 설거지를 하면서 자꾸 웃음이 나는 것이었다. 대체 현실정치에서 무슨 이상을 이루겠다고 그리 열정적인지 갑자기 마음이 싸해져서 웃음 사이로 묘한 슬픔이 새어나오기까지 했다. 안 되겠다 싶어, '8표 모아놨습니다. 힘내십시오'하고 문자를 보냈는데, 사실은 그것은 거짓이었다. 뭐 나름대로 도울 힘도 없고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라도 해서 쉬어버린 성대가 잠깐이나마 박하사탕을 문 것처럼 시원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 곧바로 든 생각은 괜한 거짓말을 했나, 하는 것이었다. 거짓이 어디 사실의 문제던가 하는 마음으로 다시 수도꼭지의 물을 켜 설거지를 마저 끝냈다.

그러고 난 다음날, 조간신문에서 나는 역겨운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여의도에 무역항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항만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놓고 선거 때문에 쉬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만사가 이런 식이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는지도 기가 찰 노릇이지만 누가 봐도 이것은 4대강 사업과 연동되는 토건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시치미 떼는 실력은 이성적인 반대 및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최소한 나에게는 말이다.

여의도에 무역항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반대를 하면 똑똑한 전문가적인 답변이 나올까? 단지 상식의 힘으로만 대꾸하는 나에게 온갖 전문가적인 데이터와 논리를 구사한다면 형식으로는 내가 필패겠지만, 정작 진실은 그따위 논리에 있지 않다. 때로 진실은 직관에 의해 백일하에 드러나기도 한다. 직관은 투박해 보여도 꾸밈을 모르니 적어도 거짓은 없지만 잘 짜진 논리와 형식은 그 틈서리에 거짓의 유혹이 늘 도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자는 희언자연(希言自然), 즉 말은 적은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이에 대한 왕필의 주석은 더더욱 새길 만하다.

"맛도 없고 들을 만하지도 못한 말이 바로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완벽한 말이다."

이명박 정부 2년 반 동안 나는 저들의 희언(戱言)에 지쳤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말 바꾸기다.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을 경박하다고 비난했으나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의 말은 언어의 타락을 그 극단까지 보여준다. 게다가 불리하면 마냥 모른 체다. 떠들고 싶으면 떠들어라, 난 안 듣는다! 이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의 기본이다. 이게 언론에 대한 근본 철학이다. 명진 스님의 반박에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안상수 의원을 보라! 청와대 대변인은 툭하면 '마사지'다. 이게 프레스 프렌들리의 본래면목이다.

미안하지만 저들에게는 언어가 그냥 한 번 뱉었다가 주워 담을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어는 어떻게든 그 사람의 삶을 반영한다. 사람은 언어로 사유하고 언어로 자연에서 의미를 포착한다. 그래서 과학의 언어는 객관적이고 지성적이며 시인의 언어는 주관적이되 직관적이다. 왜냐면 사람은 언어로 삶을 구성하는 존재이니까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언어를 통해 개관해 보면, 결국 자신들의 앞뒤가 안 맞는 삶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저들의 언어 사용이 대한민국의 언어 수준을 다함께 떨어뜨린다는 점이며, 국민들마저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기망하는 허위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현실 정치권의 언어가 상당히 낮은 수준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언어 자체에 환멸을 느끼기는 처음이다. 물론 이렇게 타락한 언어를 회복시키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먼저 사실에 입각한 언어를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일이 첫째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는 자신마저 속이고 만다는 것을 뼈저리게 자각하는 일이다. 여기까지만 하면 된다. (정치인들에게 언어와 삶에 대한 강론을 펼치는 일에는, 미안하지만, 좀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정치인들은 따로 연락주길 바란다.)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으니, 제발, 거짓말 하는 습관부터 고치길 바란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들은 잔소리를 나보다 연배가 높은 경륜가(?)들에게 해야 하는 것이 희극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 정치인들의 거짓말 수준은 상상 외다. 우리 사회에 진보정치가 힘든 것은 최소한의 사실과 진정에 입각한 언어관이 아직도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마저 거짓과 마타도어를 껌 씹듯 하고 있으니 굳이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다행인 것은 거짓말 잘 하는 정치인들을 한 번씩 솎아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선거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목전에 두고 있다. 사실과 진실만한 진보를 나는 아직,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발견하질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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