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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성사됐더라면…

민가 포격, 용납할 수 없어

또 다시 서해에서 아까운 청춘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민간인 2명까지 희생을 당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민간인이 희생된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남한이 지정학적으로 취약한 것은 서해 5도 일대에서 오랫동안 충돌이 있었다는 점과 수도권이 휴전선과 가깝다는 점 두 가지다.

북한이 이번에 연평도를 포격한 것은 서해5도라는 남한의 취약한 점을 자극해서 이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분쟁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서해 5도 일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배경으로 서해 5도 일대가 한반도의 화약고인데다, 남북정상이 10.4 선언에서 추진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이 이명박 정부 들어 부정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연평도에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겪고나서 2007년 남북의 정상이 합의한 10.4 선언에서 약속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한민국정책포털 '공감코리아'

서해 갈등의 해결책은 평화협력특별지대

2007년 10.4 선언 3항과 5항에서 남북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이 지역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며 경제협력을 실시하기로 약속했다.

3항 :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 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5항 :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7년 10월 8~11일 경제전문가 378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조사한 결과 가장 기대되는 1순위 사업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36%)가 꼽혔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군사적 긴장완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86%에 이르렀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서해 5도 일대의 안보불안을, 경제협력을 통해서 해결하자는 구상에서 비롯됐다.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가 발전하면 안보불안을 해소하고 평화 정착에 기여할 것이고, 이는 다시 경제협력을 발전시키는 경제와 평화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해 5도 일대의 한반도의 화약고가 된 것은 1953년 체결한 정전협정에서 서해에서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전협정 2조 13항에서는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서해 5도를 유엔군 관할로 명기하고 있지만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지 않았다. 정전협정에서 서해의 해상분계선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이유는 지상에서와는 달리 한국전쟁 종결 당시 서해와 동해의 섬들을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는 전투가 발생한 군사접촉선을 중심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설정할 수 있었다.

정전협정에서 서해 해상경계선을 설정하지 않아

하지만 해상에서 군사접촉선을 중심으로 분계선을 설정할 경우 서해와 동해의 대부분의 섬들이 유엔군에 소속되기 때문에 협상과정에서 분계선이 없이 서해 5도만 유엔군 소속으로 명기한 것이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는 남한 영토에서 멀리 떨어져서 북한의 장산곶에 가까이 있다. 연평도도 북한의 서해사령부가 있는 해주쪽에 가까이 있다. 서해 5도 일대가 안보취약지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정전협정 체결 직후 유엔군은 1954년 8월 서해에 북방한계선(NLL)과 동해에 북방경계선(NBL)을 설정했다. 유엔군이 서해에 북방한계선을 설정한 것은 이승만 정부의 북진을 막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유엔군은 당시 북방한계선을 북한에 통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방한계선의 법적 효력이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것이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진행된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남북 불가침선에 대해 협상할 때 북측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을 서쪽으로 연장한 선을 불가침선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이 경우 인천 앞바다까지 북한의 해상에 속하게 된다. 남북은 당시 협상을 통해서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합의한다"고 약속했다. 북한은 이를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계속 논의할 것을 제안했다.

남북합의서에서 불가침 경계선으로 명시한 '쌍방 관할 구역'이 '북방한계선'을 명시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북방한계선'이라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모호하게 '쌍방관할구역'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즉 서해 5도 일대의 해상분계선은 남북이 합의해 새로운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는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국방부도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법적 효력이 없다고 인정

서해 5도 일대에서 남북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북한이 1973년 12월 1일 군사정전위에서 "서해5도 도서 주변수역은 북한의 관할 수역이며, 이들 도서 자체가 정전협정에 명기된 대로 유엔군 통제하에 있음을 인정하나 그 주변수역을 통제하는 북한의 사전승인을 받아서 통항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

이후 북한은 북방한계선을 월선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서해사태'라고 한다. 북한은 1973년 서해사태 이후 매년 수십 차례씩 북방한계선을 월선해 왔다. 이 과정에서 남북은 1999년, 2002년, 2009년 등 세 차례의 군사적 충돌을 비롯해 수많은 갈등을 빚어온 것이다.

북방한계선의 효력에 대해 국회에서 진행된 논란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국방부도 북방한계선의 모호한 성격에 대해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1996년 4월부터 7월까지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월선한 것을 계기로 국회에서 북방한계선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북한이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을 월선한 것을 문제삼지 않은 것에 대해 이양호 당시 국방부 장관은 1996년 7월 16일 "북한함정이 북방한계선을 월선해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고 밝혔다. 다음날 국방부는 "북방한계선이 정전협정상 법적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일 뿐 북한 함정이 이를 월선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며 이 장관의 말을 해명했다.

국방부의 이같은 논리에 비춰 보더라도 정전협정에서 북방한계선의 성격은 대단히 모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해에서 해상분계선을 설정하는 것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쉽게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이전에는 경제적인 노력을 통해 이 지역의 갈등과 충돌을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의 취지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서해일대의 충돌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개성공단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개성공단 개발을 위해 북측은 개성 지역에 주둔하던 북한군 6사단과 64사단을 북서쪽 약 10㎞ 후방으로 후퇴시켰다. 북한 군부대가 개성 후방으로 이동한 것은 그만큼 서울에 대한 기습공격 시간이 늦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가 안보불안을 해결한 한 사례다.

북한의 서해함대를 후방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서해평화협력지대가 실현되면 해주에 경제특구를 개설하고 민간선박이 해주 직항로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개성의 사례와 비슷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해주항에는 북측 해군 서해함대의 60% 가까운 전력이 배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주는 개성 북서쪽 75㎞에 위치하는데, 현대가 경제특구 후보지로 관심을 보였으나 북한 해군의 주력 부대인 서해함대가 배치된 군사적 요충지라는 이유로 좌절되었던 곳이다. 이후 북쪽과 협의과정에서 경제특구는 해주에서 개성으로 바뀌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해주항 개발을 북한과 합의한 것은 북한의 서해함대를 후방으로 이동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한 시점에서 서해평화협력지대가 재조명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정부는 서해일대에 군사력을 대폭 강화시킬 계획이다. "대포가 쌓이면 저절로 터진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사력 강화는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서해 5도 일대의 군사태세를 점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안보와 평화는 군사전력 강화라는 한 가지 수단에 의해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군사전력 강화만을 추구하는 것은 서해에서 남북한 군비경쟁의 강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는 서해 5도 일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최적의 방안이 아니다. 군비경쟁 강화는 한반도의 화약고인 서해 5도 일대에 화약을 추가로 쏟아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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