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투입이 임박해지면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국제 평화운동가들은 정부와 군 당국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의원은 해군기지 반대 주민과 활동가들을 "종북 세력", "김정일의 꼭두각시" 등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색깔론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적지 않은 국민들도 강정마을 생태환경의 훼손과 주민들의 평화적 거주권 침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가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제주 해군기지는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정말 도움이 되는 사업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주 해군기지는 우리에게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부담'이 될 공산이 대단히 높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가시화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및 미일동맹과 중화권 사이의 해양 패권 경쟁, 미국의 군사 전략 변화 및 한미동맹의 구조적 종속성, 동아시아 차원의 세력전이(power shift), 한국의 해양수송로 안전 확보의 중요성 등과 종합적으로 연관시켜 분석해본다면, 자칫 제주 해군기지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을 초래해 대한민국 안보와 경제에 치명적인 위험과 딜레마를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해군력을 거론하면서 이들 나라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이들 나라가 제주도를 포함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지 반문하게 된다. 건국 이후 제주도 및 그 남방 해역에 대한 외부의 심각한 군사적 위협이 존재한 적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과거와 현재에 위협이 없다고 해서 미래에도 위협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할 경우, 오히려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들 우려는 없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네 차례에 걸쳐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의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제주 해군기지의 미군 이용 가능성, 미사일방어체제(MD)와의 연관성, 그리고 미-중 갈등에 한국이 휘말릴 가능성을 분석하고,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해군측의 수요 제기를 일부 수용할 수 있는 '윈-윈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 지난 2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힘내라 강정 시민평화 행진'에 참석한 강정마을 주민들. ⓒ프레시안(최형락) |
김관진 국방장관 "올 수 있으면 오겠지만…"
제주 해군기지가 전략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가장 먼저 검토돼야 할 사안은 '미국의 이용 가능성'이다. 이 문제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제주 해군기지와 미국 MD 체계와의 연관성 및 미-중 무력 갈등시 한국의 안보 딜레마 격화에 관한 근본 전제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군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에는 미군을 위한 예산이 단 1원도 책정되지 않았다. 또 한미동맹을 위한 미 군함 출입항 기지는 부산과 진해에 이미 마련돼 있다"며 미국과의 연관성을 부인해왔다.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미국 예산이 투입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곧 미국과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실제 사례로도 뒷받침된다. 일례로 부산항은 미국 예산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미 해군의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또한 부산과 진해에 미 군함의 출입항이 이미 있기 때문에 제주 기지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제주 기지를 미국이 이용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했던 해군이 6월 23일 국회 공청회에서 제주 해군기지가 미군 '기항지'로 사용될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또한 김관진 국방장관은 지난 20일 "올 수 있으면 오겠지만 미국 항모가 (제주기지에) 들어올 것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군 당국은 미군의 기항 목적이 장병들의 휴식이나 정비와 같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한 반박에 앞서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를 상세히 따져보기로 하자.
첫째, 한미동맹의 법적·제도적 문제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에는 "미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한국은 허여(許與)하고 미국은 수락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조약에 따라 체결된 주한미군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에게 사용을 타진할 수 있는 '시설과 구역'은 "소재의 여하를 불문"(제2조.1.가)한다고 되어 있으며, "(미국의) 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나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제10조.1)고도 명시되어 있다.
제10조 2항에서는 주한미군 기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항구 또는 비행장 간을 이동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아울러 합의의사록 제10조 3항에는 "'적절한 통고'의 면제는, 이러한 통고가 미합중국 군대의 안전을 위하거나 또는 이에 유사한 이유 때문에 요구되는 비정상적인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했는데, 이는 미국이 필요에 따라 '적절한 통고' 없이 대한민국의 비행장이나 항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전략동맹' 대상에 중국도 포함
둘째, 노무현 정부 때 한미간에 합의된 '전략적 유연성'과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한미 전략동맹'은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 해군의 기지로도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부채질한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의 해외 차출, 해외 주둔 미군의 한국으로의 유입 및 경유를 위한 것으로 그 핵심 목적은 한국 방어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국군에게 넘기고 미군은 양안사태 등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기 위한 것에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 한미 '전략동맹'이 합의되고 그 목적 가운데 하나가 중국 견제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미동맹 강화'를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내세워온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 전략동맹을 선언했고, 그 이면에는 북한뿐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한미 전략동맹'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건설적이 될 수도 있고, 파괴적이 될 수도 있다"며 "중국 문제가 한미 양국이 건설적인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21세기 동맹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21세기 한미관계를 '전략동맹'으로 격상하는 것을 추진한 핵심적인 이유가 중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견제론'은 미국 측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전직 고위 관료들과 한반도 전문가들로 구성된 '새로운 시작 모임'(New Beginning Group)은 2008년 2월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한 외교안보 참모들을 면담하고 한미동맹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외교안보 참모들이 "중국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피력하면서 한미동맹의 강화와 주한미군의 주둔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필요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한미 전략동맹의 이면에는 한미 양국 사이에 중국에 대한 견제 심리가 강하게 깔려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가 '평화의 섬' 제주도에 들어올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프레시안(최형락) |
미 국방장관 "미군은 아시아에서 기항지를 늘릴 것"
셋째, "태평양 세력"을 자임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 전략 변화이다. 전략적 중심축을 대서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기기로 한 미국은 해군력의 60%를 아-태 지역에 집중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서태평양(아시아권 해양을 의미함)에 추가적인 기지와 시설을 확보하고 접근과 사용이 어려웠던 지역에 대해 접근성을 강화해 미 해군의 신속성과 기동성을 대폭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지역해양안보구상(RMSI)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을 주도하면서 동맹·우방국들을 미국의 해양 전략에 포섭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2011년 6월 11일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이 "앞으로 미군은 아시아에서 기항지를 늘리고 다수 국가와의 다국적 훈련도 확대할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또 하나는 미국의 전쟁 수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항공모함 전단도 신속대응체제로 재편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4년부터 함대 대응 계획(Fleet Response Plan)에 착수한 미국은 30일 이내에 무려 6개의 항모전단을 원하는 지역에 배치한다는 계획인데, 이 계획의 핵심적인 대상은 북한과 중국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끝으로 MD의 핵심을 이지스함에 SM-3 계열의 미사일을 장착하는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까지 20척의 이지스함을 MD용으로 개량한 미국은 2016년까지 이 함정의 숫자를 41척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미국이 아-태 지역에 해군력을 증강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해군기지의 수요도 커질 것임을 예고해준다.
오키나와가 있으니 제주도에는 올 필요가 없다고?
넷째, 제주도가 지니고 있는 지리군사적 특징이다. 한국 해군은 "미국은 이미 대만으로부터 330해리 떨어진 일본의 오키나와(沖繩)에 기지를 확보하고 있고, 제주에서 대만까지 560해리임을 고려할 때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오키나와에는 대부분 공군기지와 해병대 기지가 있지, 제주에 건설 중인 대규모의 해군기지는 부족한 상황이다. 오키나와 서남부에 위치한 나하(那覇)항에는 3000톤 이상의 선박을 정박시킬 수 없고 이마저도 미국은 2005년 10월 미군 재배치 합의에 따라 일본에게 돌려주기로 돼있다. 쉽게 말해 오키나와에는 항공모함은 물론이고 이지스함도 정박시키기 어렵다.
반면 제주 해군기지는 이지스함 등 대형 함정 20척 및 15만 톤 급 크루즈 2척의 동시 계류가 가능한 규모로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제주 기지가 건설되면 미국은 중국 및 대만해협에서 가깝고도 규모가 큰 이 해군기지를 이용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고, 현행 한미상호방위조약 및 SOFA,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 등 한미동맹의 비대칭성을 고려할 때 한국이 이를 거부하기도 힘들게 될 것이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김관진 국방장관도 미국 항공모함을 비롯한 함정들이 제주 해군기지에 올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곧 제주 해군기지가 미군의 기항지, 혹은 전초기지나 중간기지로 이용될 경우 그것이 한-중 관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정세에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검토도 없이 이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다음에 이어질 글은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 주도의 MD와 무관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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