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철군은 2012년 대선을 앞둔 오바마 행정부가 경제 위기를 겪고 있어 막대한 주둔비가 드는 해외 파병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중동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풍부한 석유가 묻혀 있는 이라크를 미국이 완전히 포기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는 "전투 병력을 모두 철수한다는 것이 상징적인 발언이긴 하지만 미국은 이라크에 대규모 군사기지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완전 철군은 있을 수 없고 어느 수준까지는 병력을 남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200명 내외의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 경호병력 외에도 이라크군의 훈련을 맡을 일부 병력이 남게 될 것이라고 전했지만 그 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알 말리키 총리와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도 '훈련 교관'(trainer)은 남아 있어도 좋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로이터>와 <AFP> 등이 전했다.
김재명 성공회대 교수도 "전투부대만 뺀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군사기지와 이라크군‧경찰 훈련 병력 등 미군을 유지한다고 봐야 한다"면서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은 미군의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보이는 민간 군사업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표적인 민간 군사업체 '블랙워터'가 2007년 9월 민간인 학살을 저질러 지난해 이라크 당국이 블랙워터 관련자 250명을 추방한 사건을 언급하며 "이라크 군과 경찰이 치안을 맡는 와중에 (유전 등) 미국의 이익에 중요한 곳은 민간 군사기업이 지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중동 특파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나단 스틸은 23일(현지시간) 칼럼에서 "이라크 사태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이슬람 국가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서방의 군대가 개입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점"이라고 경고했다.
스틸은 오바마의 철군 발표는 결국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보수파 '네오콘'들의 이라크 침공 판단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도 완전히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 <편집자>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이라크 주둔 미군이 2011년 말까지 모두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로이터=뉴시스 |
마침내 끝난 이라크전, 네오콘들의 완전한 패배
이라크전은 끝났다. 리비아의 카다피 사망 소식에 묻혀버리긴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모든 미군 병력이 올해 안으로 이라크를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오바마는 용기있는 결단을 내린 양 이로써 전쟁을 끝나겠다는 자신의 대선 공약을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 이라크에 미군 기지와 및 수천 명 규모의 병력을 영구히 유지하기 위해 이라크 정부와 협상하려 했던 국방부의 노력을 지지해 왔으면서 말이다.
미국과 이라크 간의 협상이 실패한 것은 이라크 국회의원들 중 시아파 지도자 무크타다 알 사드르를 지지하는 의원들과 민족주의 성향의 의원들이 이라크 주둔 미군도 현지법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주둔하는 모든 나라에서 치외법권을 주장하며 미군이 단순한 외국인으로 취급되기를 거부해 왔다.
특히 이라크에서 이 문제는 유난히 민감하다. 미군이 저지른 수없이 많은 민간인 살해와 수감자에 대한 성폭력이 자행됐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사건 때문이다. 미국 사법 및 군 당국은 혐의자들을 무죄 방면하거나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벌했다.
이라크 철군은 부시의 이라크 프로젝트가 완전히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네오콘들의 웅대한 계획은 2003년 침공을 이용해 이라크를 안보가 튼튼한 친서방 민주국가로 만들고 시리아와 이란을 압박하기 위한 전전기지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이라크를 중동의 민주주의 모델로 만들겠다는 네오콘들의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미군이 야기한 불안정과 유혈 참극은 아랍 국가들로 하여금 이라크를 배워야 할 사례가 아니라 피해야 할 사례로 느끼게 만들었다. 올해 이집트와 튀지니 등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혁명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한 어떤 행동보다도 더 역내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독재정권을 위협했다.
'아랍의 봄'의 동이 터왔을 때 이라크 정부는 바그다드와 남부 바스라 등지의 시위대들에 의해 수세에 처했다. 이라크 시위대들은 알 말리키 정부의 권위주의와 미국의 지지 하에 이뤄진 이라크 당국의 노조 활동 탄압에 대해 항의했다. 알 말리키는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고 있는 바사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거부했고 시리아 정부에서 온 사절단들을 접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네오콘들의 가장 뼈아픈 실패는 조지 W. 부시가 이란의 가장 큰 적인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 준 덕분에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 측면에서 이란이 미국을 능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란이 직접 이라크 상황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이라크를 겁낼 필요가 없게 됐다. 이라크 정부를 시아파 정권이 맡고 있고 집권당을 구성하는 인물들은 후세인 시절 이란으로 망명했던 인물들이거나 무크타다 알 사드르처럼 최근까지도 이란에 살았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미 공화당은 이란이 원하는 바대로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고 있다고 오바마를 비난하고 있다. 거의 반사적으로 터져나온 이같은 반응은 그들이 내세운 구호들이 파산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이란 정부에 전략적 기회를 열어준 사람도, 2011년까지 철군하겠다는 안에 서명한 사람도 부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오바마의 발표에 대해 "중동에 있는 우리의 전략적 적들, 특히 미군의 완전한 이라크 철군을 위해 노력해온 이란 정권의 승리"라고 평가한 것만은 옳다. 불쌍하게도 매케인은 이 모든 상황을 불러온 부시(그리고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비판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부시와 블레어의 회고록은 역사에 길이 남을 악평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무 교훈도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미국, 영국 정부는 교훈을 얻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나토(NATO)의 비교적 성공적인 리비아 작전은 이미 지난 과거사를 덮어 버리려 하고 있다. 실제로 예기치 않은 카다피 사망 소식은 언론의 관심을 이라크 미군 철수에서 완전히 돌려 버렸다.
하지만 과거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라크 사태가 주는 핵심적인 교훈은 해외, 특히 이슬람 국가의 전쟁에 서방 군대가 발을 들여놓은 것은 미친 짓이라는 것이다. 지난 3월 미국, 영국, 프랑스 당국이 리비아에 대한 지상군 파견이나 점령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태도는 마치 이 교훈을 배운 것처럼 보였다.
이 교훈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오바마는 '아프간전은 이라크전과는 달리 필요한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구별은 허구다. 지금 문제는 오바마가 과연 2014년까지 모든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킬 것인가다.
이라크와의 실패한 협상 전례로 미뤄볼 때, 오바마 정부 당국자들은 '전투 병력'이 철군한 후에도 훈련 교관이나 고문 등으로 불릴 수천 명의 병력과 미군 기지를 영구히 유지하기 위해 아프간의 카르자이 정부와 협상 중일 것이다. 이는 아프간의 오랜 내전에 기름을 붓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알카에다가 아프간에서 궁지에 몰린 지금, 미국 정부는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지지해야 한다.
이라크가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지난 15개월 간 미군 전투병력이 상대적으로 없는 듯 지내는 동안 그나마 불안한 평화가 조성됐다. 아프간의 평화 협상이 진지하게 추진된다면 아프간도 외국군 병력이 떠난 후 비슷한 길을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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