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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

[황재옥의 '북한 인권을 생각한다'] 북한인권, 영유아 식량지원부터

지난 4월 마지막 주, 미국에서'북한자유주간'행사가 열렸다. 올해로 10년째 열리는 행사다. 2004년 미국에서 40여 개 북한인권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된 이 행사는, 그 첫해에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도록 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했다. 6월부터는 지난 2월 말 제22차 유엔인권이사회 결의로 설립된'북한인권실태조사위원회(COI)'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조사위원회가 직접 북한에 들어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북한 인권문제에 다시 한 번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이러한 최근 국제동향 때문인지 지난 4월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인권과 관련된 크고 작은 행사나 연구발표가 많이 열렸다. 아마도 우리 국회가 올해는 북한인권법을 처리하지 않고 넘어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현재 19대 국회에는 이미 6개의 북한인권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 지난 2011년 머시코(Mercy Corps)를 비롯한 미국의 대북 지원 NGO 단체들이 공개한 굶주린 북한 아이들. ⓒAP=연합뉴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 경제난의 인구학적 영향과 경제적 함의에 관한 분석 보고서는 우리의 관심을 끈다. 1998년 11월에 유럽연합(EU)과 유니세프(UNICEF), 세계식량계획(WFP)이 공동으로 조사한'북한의 영양실태 조사(Nutrition Survey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가 그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식량난은 북한주민의 체격을 바꿔 놓았다.

식량난이 북한주민의 체격을 바꿔 놓았다.

1995년, 북한이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호소하자 당시 북한 주민들의'굶주림'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같은 동포로서 우리의 마음도 아팠다. 지속되는 국제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식량난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1990년대 말부터는'꽃제비'로 불리는 북한 어린이 거지들이 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동영상에 비춰진 북한 주민들의 행색은 6·25전쟁 전후 빛바랜 사진을 통해 보는 우리 부모님 세대를 생각나게 했다.

1995년에 시작되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북한의 식량난은 경제·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최근 배가 고파서 비무장지대 철책선을 넘어온 북한군 병사의 나이는 21세, 키 154㎝, 몸무게 47㎏이었다. 당시 언론은'굶주림이 북한 인종을 바꿨다'는 제목으로 소식을 전했다. 이 북한군 병사는 식량난이 심각했던 1990년대 후반에 영유아기를 보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남쪽으로 넘어온 북한군 병사는 그나마 일반주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학생 정도의 체격이었다.

필자가 2012년 8월 북중 접경지역에서 봤던 북한군 병사도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당시 북중 국경을 이루는 다리 중간지점에 마주 앉아있는 북한군 병사와 중국군 병사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마치 중학생과 대학생이 마주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북한에서는 17세에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는데, 대학에 가지 못하는 졸업생은 협동농장이나 공장, 군대에 배치된다. 최근 정보에 의하면, 북한은 2013년 3월 말부터 징집되는 북한군 신병의 키 하한 기준을 142㎝로 낮추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145㎝였다. 고등중학교 졸업 후 협동농장이나 공장보다 배급이 상대적으로 나은 군대에 갈 수 있는 키가 142㎝라면, 그건 남한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만 10세) 평균키(140.2㎝) 보다 조금 큰 수준이다. 남한 20대 남성의 평균 신장이 174㎝, 몸무게 69㎏, 그리고 일반 북한주민들의 평균 신장도 158㎝∼164㎝(탈북 주민 조사)로 추정되는데, 오늘날 북한군 병사들은 이에도 한참 못 미치는 체격을 갖고 있다. 우리 남한에서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의 키가 부모보다 큰데 북한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세대보다 작은 셈이다.

1998년 여름 필자가 북중 접경지역을 답사했던 당시, 북한에는 극심한 식량난을 겪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중국 창바이(長白)시 건너편 혜산시는 북한의 양강도 도청 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밤에 불빛 한 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의 도시였다. 낮이면 사람들은 퀭한 눈으로 강 건너 중국 측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넋 나간 사람들처럼 보였다. 접경지역 북한 마을은 마치 SF영화에 가끔 나오는'정지된 마을'바로 그것이었다. 뜨거운 8월의 태양이 내리쪼이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음습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당시 2살짜리 아기들이 142cm 키의 북한군 신병으로 입대를 하게 된 것이다.

식량난이 심각했던 시기에 영유아기를 보낸 아이들이 이제 청년이 되었지만, 체격이 청년 체격이 아니고 몸무게가 청년 몸무게가 아니다. 오늘날 20대 남북 청년들의 체격이나 신장, 몸무게를 비교하면 언론에서 지적한 대로 남북의 인종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1990년대 중후반 식량난의 후유증이랄까 영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링컨은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고 했다

1998년 북한 영유아들의 영양 상태는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열악한 영양결핍국가인 인도나 방글라데시 수준이었다. 급성영양장애 수준인 18%에 근접했었던 것이다. 1990년대에 비해 북한의 식량사정이 최근 조금 나아졌다는 보고도 있지만, 탈북자나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의 영양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북한 주민은 여전히 굶주림에 노출되어 있고 영유아들의 영양상태는 아직도 매우 심각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북한 전체인구 2400만 명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120만 명이 결핵환자이고, 이 중 30만 명의 어린이가 결핵환자이거나 보균자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FAO 자료에 의하면 2010년과 2011년 북한의 식량수입은 늘었지만 국제사회의 지원이 급감하여 식량의 절대 부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세계식량계획(WFP)은 2013년 1분기(1∼3월) 대북사업 평가보고서에서 북한 10가구 중 8가구가 영양부족이라고 밝혔다. 또한 같은 기간 86개의 소아 병동을 방문했는데, 해당 병원에 입원한 5세 미만 어린이 중 14%가 중증 영양실조를 앓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열악한 사회경제 환경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취약계층은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들이다. 이들의 건강상태는 지적능력 저하와 신체발달 저하로 이어져 북한의 경제활동 인구 변화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북한 영유아와 어린이들의 건강상태는 통일 후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민족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이들의 건강상태가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주민 전체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북한의 영유아와 어린이들에 대한 식량지원과 결핵치료약품 등 보건의료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계속되어야 한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1809∼1865)은 일찍이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고 했다.

6월부터 유엔 북한인권실태조사위원회(COI) 활동이 시작되면 북한 주민들의 인권침해 실상 전반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식량권과 관련된 조사 결과도 나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9대 국회에서 북한인권법 제정 문제가 또다시 표류해서는 안 된다. 국회에 발의된 6개나 되는 복수의 북한인권법안들이 심의되고 조율되는 과정에서 식량을 포함한 인도적 지원 문제도 자연히 검토의 대상이 될 것이다. 제안자와 정당의 입장에 따라 정도와 내용에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한 북한의 영유아와 어린이들에 대한 식량지원만큼은 북한인권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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