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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구럼비를 파괴해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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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구럼비를 파괴해도 괜찮은가?"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32>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을 지키기 위해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 연재 글을 모은 책 <그대, 강정>(북멘토 펴냄)이 출간되었습니다. 4.3 항쟁을 염두에 두고 4월 3일 출간한 <그대, 강정>은 '43인의 작가'와 '7인의 사진가'가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강정을 향해 쓴 연애편지 모음집인 <그대, 강정>의 인세 전액은 '제주 팸플릿 운동'과 강정 평화 활동에 쓰이게 됩니다.

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필자 주

당신은 괜찮을 거예요…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을 지키기 위하여

구럼비 바위를 지켜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논쟁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게 생태적 가치나 문화재적 가치입니다. 제주도에서 희귀한 바위냐 아니냐, 생태계의 보고냐 아니냐를 가지고 갑론을박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정작 강정 마을 주민들에게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구럼비 바위가 파괴될 때 주민들이 울부짖는 이유는 자신들의 삶이 바위와 함께 파괴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요?

정부와 군대, 전문가들은 "왜 구럼비를 파괴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연구보고서를 보여 주며 과학적인 평가를 제시합니다. 심지어 "왜 구럼비를 파괴하면 안 되는가?"에 대한 대답도 비록 생태와 환경을 언급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학적인 담론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정 마을의 주민들은 그 질문들에 과학적 담론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 기억, 역사를 제시합니다. 이때 과학적 담론에 비해 주민들의 답은 언제나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하죠. 소위 과학적인 근거와 안보와 경제라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제주군사기지건설 계획은 주민들의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이해 관심에 가해지는 피해를 소위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논란은 부수적 피해의 규모를 어느 정도로 정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정도입니다. 제임스 C. 스콧은 이와 같은 국가 주도의 계획과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지식의 비대칭성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한 계획을 창시한 사람들은 실제 이상으로 자신을 똑똑하고 예측력 뛰어난 존재로 생각한 반면, 계획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실제 이상으로 똑똑하지 않거나 무능한 존재로 간주했다. (중략) 계획의 대상으로 삼은 인구집단이… (중략) 계획의 추진이라는 목적을 위해 특정한 성별이나 취향, 역사, 가치, 의견 또는 원래의 생각, 전통, 차별적 개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특정 인구 집단에 대해서도 응당 기대할 수 있는 특수하고 상황적이고 또한 맥락적인 속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우리는 그런 속성이 당연히 엘리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C. 스콧, <국가처럼 보기>(전상인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지역적 지식(local knowledge)과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에 의존하지 않은 개발, "계획가들의 역량 바깥에 있는 수많은 우연성"과 "모델 바깥에 존재하는 인간적 혹은 자연적 사건들"(위의 책)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은 역사적으로 실패해 왔다는 것이 스콧의 주장입니다. 스콧에 따르면 우리가 결단코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구상에 의거하여 추진되는 모든 계획과 개발은 본질적으로 '부실'합니다. 또한 그것을 추진하는 국가와 엘리트 조직은 능력 있고 합리적이기는 고사하고 본질적으로 '무식'하고 '위험'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미래를 전망하며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려 할 때 필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확실성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삶에 대한 조금 더 많은 '배려', 미래에 대한 약간의 헐거운 기대, 예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조금 더 많은 관용과 더불어 약간 더 적은 희망적 사고."(Alberto O. Hirschman, "The Search for Paradigms as a Hindrance to Understanding", 위의 책에서 재인용), 결국 지엽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야말로 중심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재정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강정 마을 주민들이 구럼비 바위 위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의 삶의 형태를 가꿔 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바위의 폭파는 중지되어야 하고 군사기지 건설은 재고되어야 합니다. 안보와 경제라는 이름의 계획,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실한 담론이 구럼비 바위 위의 삶, 주민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유구하게 생성하고 작동하고 있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일거에 폭력적으로 덮어 버리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심보선

시인.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펴냄),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펴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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