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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독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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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독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프레시안 books] 정병준의 <독도 1947>

1947년 독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니 독도 문제는 1947년에 시작된 것인가? 사실 "독도 1947"로 되어 있는 책의 제목부터 도발적이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그 옆에 붙은 부제, "전후 독도 문제와 한미일 관계"는 또 다른 의문을 갖도록 한다. 독도가 한일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여기에 '미국'은 왜 들어가는가?

<독도 1947>(정병준 지음, 돌베개 펴냄)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고, 너무나도 상징적인 독도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여기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독도 문제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독도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독도 문제를 풀기 위해 한국인과 일본인은 어떻게 노력하였는가? 그리고 왜 국제적으로 독도는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 분쟁 지역으로 되어 있는가?

이 많은 질문이 이 한 권의 책 안에 담겨 있다. 특히 마지막 질문은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만큼 이 책의 대부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도가 분쟁 지역이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은 1947년이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미군정 하에서 한국인이 독도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것도 1947년이고, 일본이 전후 처리 문제를 준비하면서 독도를 일본 땅으로 선전하기 시작한 것도 1947년이었으며, 미국 역시 일본에 대한 전후 정책을 준비하면서 1947년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독도 1947>(정병준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또 다른 우연의 일치는 1947년이라는 해가 냉전의 역사에 갖는 중요성이다.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1947년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루스벨트의 미소 협조 노선에서 벗어나 미국 행정부가 냉전 정책을 본격화했던 시기였다. 1947년 3월 트루만 독트린을 통해 미국은 그리스와 터키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확장을 정치, 군사적으로 봉쇄했고, 서유럽의 경제적 재건을 위한 마셜 플랜은 동년 6월 하버드 대학 졸업식장에서 발표되었다. 한반도에서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중단되고, 한국 문제가 유엔에 이관되면서 분단 정부 수립이 본격화되는 것이 1947년이었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독도는 동해의 울릉도 옆에 붙어 있는 두 개의 바위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섬이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저 새들의 고향일 뿐이다. 따라서 '제국의 시대' 이 섬은 어느 정부에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섬이었다. 독도는 울릉도나 대마도와는 다른 성격의 섬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시대에 독도의 중요성은 매우 높아졌다. 제국의 시대는 해양의 시대를 열었고, 바다 위에서 자국의 관할권을 둘러싼 다툼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나마 제국의 시대에는 무력으로 섬을 점령하면 되었기 때문에 그다지 분쟁이 될 만한 지역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냉전 시대에 들어서면서 영토나 해양권을 둘러싼 전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으며, 따라서 많은 지역이 분쟁 지역이 되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이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남사군도, 중국과 베트남 사이의 시사군도, 중국과 일본 사이의 어약도,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쿠릴 열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독도 역시 냉전 시기에 시작하여 탈냉전 시기까지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냉전 시대 포클랜드의 경우만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의 전쟁으로 해결되었다.

이렇게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역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이 관련된 분쟁이 많으며, 분쟁 지역의 대부분이 동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있는 카슈미르 역시 또 다른 분쟁 지역이지만, 이 지역의 분쟁은 섬을 둘러싼 분쟁과는 다른 종교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독 왜 동아시아 지역에서만 섬을 둘러싼 분쟁이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아시아에서 중국과 함께 한 축이 되어 있는 일본이 해양 세력으로서의 힘을 갖기 위해서는 대륙으로의 영토 확장보다는 보다 넓은 지역에 섬을 확보함으로써 해양에서의 세력권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륙의 힘을 대표하고 있지만, 제국주의의 시대가 아닌 이상 영향력의 확대를 위해서는 섬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게다가 최근 바다가 단지 어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의 보고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바다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 졌다.

다른 하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후 처리 문제이다. 이 점이 바로 <독도 1947>에서 분석하고자 한 것이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전쟁의 책임을 묻고, 피해 지역에 대해 배상을 하며, 전범 국가들이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전후 처리의 핵심적인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안들이 '냉전'이라는 국제적 구도 속에 묻혀버렸다.

전범 국가인 일본은 화려하게 부활했고, 전범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면죄부를 받았다.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는 일본이 독립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일본의 총리에 올랐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국민당이 전후 처리를 책임져야 했고, 1949년 등장한 공산 중국이 오랫동안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없었다는 것 역시 동아시아의 또 다른 문제였다. 이 과정은 결국 일본의 전후 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연결되었고, 이는 곧 독도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은 <독도 1947>을 통해 미국이 독도 문제에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전후 일본 처리 문제는 미국에 의해 주도되었다. 유럽과는 달리 태평양에서의 제2차 세계 대전은 미국과 일본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소련이나 서유럽 국가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처리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냉전으로 인해 미국은 전범 국가의 처리를 철저하게 진행할 수 없었다. 특히 중국의 공산화 이후 미국은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이는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독도 1947>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한국이 소외되었던 과정,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냉전 과정에서 일본이 면죄부를 받는 과정, 독도를 중심으로 한 영토 문제에 대해 의견이 변해가는 과정 등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한국, 일본, 미국이 전후 처리 문제를 준비해 가는 과정과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처리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하여 독도가 분쟁 지역이 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하였다.

전체 9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독도 문제의 출발점이 되었던 1947년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을 시작으로 하여, 1948년의 독도 폭격 사건, 그리고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미국의 전후 처리를 위한 정책이 변화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직후 독도 분쟁이 시작되는 시기 등을 고찰하였다. 전체 책을 분량을 보더라도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세밀하게 분석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물론 이 점은 저자의 전 저작들인 <우남 이승만 연구>,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은 전후 현재까지 논쟁이 되고 있는 독도에 대한 문제에 하나의 교과서이자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독도와 관련하여 이처럼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를 하나의 책 속에 엮어 놓은 예는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다. 다른 연구자들로 하여금 당분간 이 시기의 이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구하지 말도록 하는 위압감도 있지만, 이 책을 접하지 않고 독도 문제의 기원을 논의할 수 없도록 하는 권위도 느껴진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전후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것과 함께 냉전 시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문제가 동북아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전후 한반도 문제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한국 사회는 너무 무관심했다.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일부 연구자들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대해 접근하고자 했지만, 피상적인 접근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공헌은 저자가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는 '인물'에 대한 치밀한 접근이다. 이 역시 저자가 이전의 연구 성과에서 잘 보여주었던 특징이다. 결국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이며, 중요한 이슈에 관련된 '인간'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지 않고서는 사태의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다. 역사는 거대한 구조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상 역사적인 이슈에 접근해 보면 이는 다시 이슈를 만들어낸 인간들의 문제에 귀착되곤 한다.

문제는 다양한 인물들의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런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미 <역사비평>에 한 차례 투고된 적이 있지만, 일본에서 활동했던 미국인 시볼드에 대한 그의 접근은 독도 문제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일 정책, 일본 정부의 정책 등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고리가 된다.

이러한 공헌은 현재까지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미일 관계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부제에 "한미일 관계"를 넣었고, 앞에서 이종원의 동아시아 분석 방법의 중요성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 점은 독도 문제 뿐만 아니라 안보 문제, 경제 문제 등 냉전 시대 및 탈냉전 이후 현재까지의 모든 동북아시아의 문제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이다. 최근의 천안함 침몰만 하더라도 남북 사이의 문제뿐만 아니라 주일 미군의 후텐마(普天間) 기지 문제가 함께 거론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백미는 책의 맨 앞에 있는 기존의 독도 연구에 대한 지적이다. 저자는 기존 연구의 경향을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연구 중 잘못된 독해를 내리거나 정치적 의도로 사실을 가렸던 연구에 대해 철퇴를 내리고 있다. 특히 최근까지 한국학계에서 중요하게 이용되었던 츠카모토에 대한 그의 지적은 매우 날카롭다. 기존 연구 정리를 통해 '독도'의 어원을 밝히고, 예술 작품을 통한 '독도'의 새로운 형상화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쯤 되면 이제 이 책을 보지 않고서는 더 이상 독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명약관화해진다.

그러나 모든 책이 그렇듯이 책을 보면서 불만이 없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참고 문헌을 제외하고서도 95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보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책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한다.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사뭇 단순하게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내용에 들어가게 되면 한 줄도, 하나의 각주도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도록 만든다. 너무나 큰 자료들을 선물해 준 반면, 그 선물들이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 역시 적지 않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많은 자료들을 충실하게 분석하면서, 이 많은 자료들을 잘 엮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역사 연구의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할 것이다. 수많은 자료들은 책의 생명력을 길게 하지만, 책 자체를 통해서 독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문제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얻기는 힘들다. 역사적인 실증 없이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지만, 자료에 묻혀 전체적인 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중요한 한계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독도 문제를 통해서 한미일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위한 많은 자료들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이종원이 제시했던 시간적 공간적 지연, 빅터 차가 제시했던 유사 동맹과 같은 한미일 관계의 특수성을 규정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분명 저자가 의도적으로 그러한 시도를 피해나갔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독자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다.

이러한 아쉬움은 이 책의 마지막에 '결론'이 없다는 점에서 극대화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지막에서 저자의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하고 싶은 것이 모든 독자의 희망이다. 저자는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전체 내용을 보다보니 머리가 복잡해져 있는데, 무언가 한 마디를 날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저자의 문제로만 돌리고 싶지는 않다. 의미 있는 한 방보다는 앞에서 얘기했던 것을 다시 요약해서 반복하는 결론에 매몰되어 있는 한국 역사학계의 문제로 돌리고 싶다. 그나마 역사학자 중에서 이 책의 저자만큼 동북아 주변 상황을 동시에 해석하면서 넓은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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