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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화장실에 갇힌 그 '미녀'들을 구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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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화장실에 갇힌 그 '미녀'들을 구출하라! [홍성태의 '세상 읽기'] 참으로 괴이한 KT 화장실
8월 25일 오전에 서울 광화문의 KT 건물 앞에서 4대강 지키기 국민 행동 선포 기자 회견이 열리고 시민단체의 농성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다가 KT 건물에 관해 알리고 싶었던 것이 다시 생각났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지대 탈취극'을 막고자 광화문의 정부종합청사 뒤 보도에서 여름 내내 연좌 농성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의 여러 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주로 밥을 먹으러 다니는 것이었지만. 8월 초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은 데, 하루는 종로구청 옆에서 식사를 하고 KT 건물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소변이 마려워서 KT 건물로 들어갔다.

세종로의 KT 건물 쪽 길가에는 KT 건물을 비롯해서 불과 네 채의 건물밖에 없다. 북쪽으로부터 문화부, 미국 대사관, KT 건물, 교보생명의 순서로 들어서 있다. 문화부와 미국 대사관은 1950년대에 UNCTAD 자금을 들여와서 지은 사실상의 근대 건축물로서 잘 보존해야 하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KT 건물과 교보생명은 세종로의 경관을 크게 손상시킨 거대한 콘크리트 절벽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건물을 지배하는 정신은, 이것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면, '최대 이윤' 바로 그것이다. 두 건물의 높이를 반으로 낮추고, 너비를 반으로 줄인다면, 세종로는 한결 부드럽고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

이제 그렇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지만 여전히 건물의 외관과 이용방식을 개선할 여지는 있다. 교보생명은 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운 것이 아니라서 '최대 이윤'을 더욱 높이 실현했을 뿐만 아니라 노약자와 장애인의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이에 비해 KT 건물은 한국의 대다수 건물이 그렇듯이 불필요하게 높은 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운 것이어서 '최대 이윤'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노약자와 장애인의 접근성을 크게 낮췄다. 이 점에서 같은 콘크리트 절벽이라고 해도 교보생명이 KT 건물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외관의 세련미에서도 그렇다고 해야 하겠지만.

그런데 최근에 KT 건물이 크게 바뀌었다. 사실 이 건물은 KT만이 아니라 정보통신부가 함께 쓰던 것이다. 정보통신부가 폐지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신설되었으므로 이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이 건물을 KT와 함께 쓰고 있다. 이 건물은 보잘 것 없는 외관과는 달리 엄청난 곳이다.

공기업이었던 한국 최대의 통신 회사와 한국 최강의 통신 기관이 함께 쓰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건물이 단을 쌓은 권위적 구조와 무표정한 권위적 외관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최근에 KT 건물은 단과 1층을 크게 개조했다. 단에는 경사로가 설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녹지와 의자가 설치되어 누구나 편히 접근해서 이용할 수 있는 열린 휴게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작은 변화인 것 같지만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이 나라의 모든 건물이 모범으로 삼을 만한 중요한 변화이다.

KT는 1층을 아예 젊은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바꾸었다. 카페를 설치해서 음료를 즐길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공연장도 설치해서 흥미로운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지금 KT 건물 1층은 광화문 광장과 어우러진 중요한 문화 공간이 되었다. 늘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북적이고 있다.

물론 젊은이들만이 이곳을 찾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곳은 그야말로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들러서 쉴 수 있는 곳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이런 곳이 아니었다. 아마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일상과는 가장 먼 곳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곳은 관료와 권위의 인상을 풀풀 풍기며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모든 시민들의 접근을 거부했던 곳이다. 이런 점에서 KT 건물의 변화는 신선한 차원을 넘어서 놀랍다. 이곳의 변화는 정말 하나의 모범으로 여겨져야 한다.

KT 건물에 대한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자, 다시 앞으로 돌아가자. 나는 소변을 보기 위해 KT 건물 1층으로 들어갔다. 카페의 분위기와 공연장의 모습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소변이 급해서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을 가는 길도 흥미롭게 만들어졌다. 다소 조잡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길의 굴곡과 표지 등이 재미있게 만들어졌다.

▲ 서울 광화문 KT 건물 1층 화장실. ⓒ프레시안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이 길을 사진에 담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런 구경을 하며 발걸음을 서둘러 마침내 화장실에 이르렀다. 그러나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만 입을 벌리고 주춤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KT 건물 1층의 남성 화장실이 다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성기를 꺼내서 소변을 보는 소변기 앞에 아래쪽을 바라보는 아가씨의 상반신 사진이 붙어 있다. 모두 반라에 가까운 차림을 한 8등신대의 서양인 미녀들이다. 아가씨들의 머리 위쪽에는 영어 의성어가 한마디씩 적혀 있다. 가장 안쪽에 있는 아가씨의 머리 위에는 깜짝 놀란 것을 표시하는 폭발형 말풍선 속에 "olleh!"(올레)라고 적혀 있다.

잘 알다시피 '올레'는 hello를 뒤집어서 만든 KT의 선전 용어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KT는 이 용어를 아주 기쁠 때 내는 소리라고 선전한다. 그러니까 이 아가씨는 아래의 무엇인가를 보고 아주 기뻐서 순간적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드러낸 채 '올레'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아가씨의 머리 위에는 'MM'이라고 적혀 있다. '음음'이라는 뜻이다. 대체로 만족한다거나 괜찮다는 뜻을 은근히 표현하는 의성어이다. 그러니까 이 아가씨는 역시 아래의 무엇인가를 보고 대체로 만족한다며 '음음'이라고 나직이 소리 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아가씨의 머리 위에는 'WOW'(와우)라고 적혀 있다. 이 말은 아주 기쁠 때 자기도 모르게 내지르는 말로서 '올레'처럼 억지로 만든 말이 아니라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아가씨는 역시 아래의 무엇인가를 보고서 너무나 기뻐서 오른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와우'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아가씨는 왼 손에는 돋보기까지 들고 있다.

세 아가씨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소변을 보기 위해 남성이 꺼내는 성기일 것이다. 사진의 배치와 시선으로 봐서 당연히 그렇게 생각된다. 이 사진을 몇 명의 여성들에게 보였더니 대체로 수치를 넘어서 분노를 보였다. 심지어 남성이 소변을 배설하는 위치가 여성의 성기 부분에 해당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농락을 넘어서 심각한 성적 모독까지 느낀다는 것이다.

KT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통신 회사이다. KT 건물의 1층은 KT가 자신의 성격을 일신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써서 새롭게 만든 좋은 공간이다. 그런데 그 화장실은 대체 무엇인가? 단순히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문제가 크지 않은가? 이런 농담이 바로 성희롱이고 성폭력이 아닌가? KT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지 않는가?

KT 건물 1층의 남성 화장실은 민망한 수준을 훨씬 넘어서 괴이한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짐짓 농담의 탈을 쓰고 성희롱과 성폭력을 적극 조장하는 심각한 문제적 공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KT 건물 1층의 여성 화장실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8등신대의 잘 생긴 외국인 남성들이 반라의 차림으로 아래를 쳐다보며 '올레', '음음', '와우'라고 외쳐대는 사진들을 붙여 놓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사진의 주인공들에게 이 사진이 이런 식으로 쓰일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정식으로 계약을 해서 이 사진들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몹시 궁금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사진들은 저작권을 명백히 위배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격권을 심하게 침해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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