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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범 내각'은 피했지만 대통령의 약속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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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범 내각'은 피했지만 대통령의 약속은 과연… [홍성태의 '세상 읽기'] '공정한 사회'는 어디에 있을까?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앞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로 제시했다. 이 말은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통령은 잘 나가는 경제를 죽었다고 주장하며 '경제 살리기'를 전면에 내세워서 당선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경제 살리기'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이른바 '747'이라는 사실상 허무맹랑한 목표를 제시해서 성장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가슴을 한껏 설레게 하고 당선된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무조건 대규모 성장을 제시하고 나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뜻밖에도 무조건 대규모 성장과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공정한 사회'를 최고의 목표로 제시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사회가 '공정한 사회'일까? 여러 가지 복잡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최소한 부패와 불법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는 아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의 개각은 대단히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공정한 사회'에 혹시나 하고 기대를 품었던 사람들이 역시나 하고 기대를 접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한나라당에서도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정작 청와대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행히 김태호 총리 후보를 비롯한 몇 명의 후보자가 일요일 오전에 사퇴했다. 이로써, 아직 사퇴하거나 철회되어야 할 후보들이 더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이명박 대통령과 이 나라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의 개각은 후보들을 잘못 선정했기에 파행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후보들을 선정하는 잘못을 저질러 놓고는 완강히 잘못을 부정하고 강행하려고 했던 청와대의 능력과 태도였다. 잘못을 제대로 시정하기 위해 우리는 이 사실을 냉철히 검토해야 한다. 다음의 기사는 이 문제를 잘 보여주었다.

▲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를 비롯한 몇몇 장관 후보가 사퇴 의사를 밝히고 청와대로 이를 받아들였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 청문회 불출석 증인에 대한 검찰 고발을 결정했다. 25일 청문회에서 김 후보자의 말 바꾸기(위증죄) 등 8가지 실정법을 어겼다는 것이 민주당 측 주장이다. 기존에 제기해 온 은행법, 공금 횡령, 공직선거법 등 7개 항목 위반에 위증죄까지 포함된 8개 항목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대부분 후보들이 4대 필수 과목(위장 전입, 병역 비리,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1(논문 표절)에 중복으로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 청문 대상 가운데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인사들에 대해서는 부적격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여기에는 김(태호), 신(재민), 조(현오)+3이(이재훈, 이주호, 이현동) 후보자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된다.

(…)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두 명을 걸러낸다고 여론이 바뀌지 않는다"면서 "최악의 경우 일주일 정도 두드려 맞으면 국회 정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어 "결정적 흠이 있는 후보자가 없고, 다 고만고만한 잡범들인데 1~2명을 추려낼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 "김태호 고발, 김·신·조 부적격"…청와대 "바꾼다고 달라지나", <내일신문>, 2010년 8월 26일)

이 기사를 보고 우리는 청와대가 정말 '공정한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해 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사에서 인용하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발언은 기가 차는 정도를 넘어서서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후보자의 잘못이 아무리 크더라도 한두 명을 교체하는 것으로는 어차피 여론이 바뀌지 않을 테니 그냥 교체하지 않고 버티겠다는 것은 대체 무슨 배짱인가? 과연 이게 올바른 정권의 태도인가? 최악의 경우도 일주일 정도만 버티면 국회 정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니 국민과 국회를 너무나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 고만고만한 잡범들'이어서 한두 명을 교체할 수는 없다는 말은 우리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잡범들'이 총리와 장관을 맡아서 나라를 운영하도록 하는 정권이 정상적인 정권인가? 이 나라가 '잡범'들의 명령에 의해 운영되고, 국민들이 '잡범들'의 지시에 따라 살아야 하는가?

'잡범들'이 나라를 운영하도록 하자는 청와대의 인식 수준은 너무나 저열해서 깊이 따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후보자들이 과연 '잡범들'에 불과했던 것인가? 여기에서도 청와대의 인식 수준은 너무나 저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보자들에게 많은 문제들이 드러났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위장 전입, 탈세, 투기, 위증, 부패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들은 '잡범들'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큰 문제에 해당된다. 위장 전입은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고, 탈세는 국가의 근간인 세금의 의무를 위배하는 것이며, 투기는 망국적인 투기 사회의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이고, 위증은 국회를 비롯한 국가 기구를 농락하는 것이며, 부패는 나라를 근간에서 좀먹는 망국의 범죄이다. 이런 문제를 능동적으로 상습적으로 저질렀던 자들에게 나라를 운영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사 청문회에서 드러난 명확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 '강부자' 정권과 '고소영' 정권에 이어 '김신조' 정권이 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개각을 강행하는 것은 불신과 실패를 스스로 자초하는 것이었다. 잘못된 개각의 강행은 신선하게 다가왔던 '공정한 사회'라는 목표를 결국 부도덕한 정권의 그럴 듯한 수사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었다.

심지어 한나라당에서조차 '한나라당이 무슨 쓰레기 처리장이냐', '상을 잘 차려놓고 걸레 같은 행주로 식탁을 닦는 것이냐'는 식의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정말이지 이번의 잘못된 개각을 강행하는 것은 아예 쓰레기같이 상한 음식을 신선한 유기농 음식이라고 차려놓고는 걸레 같은 행주로 식탁을 닦는 격이 될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정권의 능력이 아니라 정당성 자체가 큰 의문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었다.

이번의 잘못된 개각을 강행하는 것은 정권을 넘어서 나라 전체의 차원에서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부패와 불법을 능력으로 오도하게 해서 나라 전체의 차원에서 부패와 불법이 창궐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위장 전입이라는 큰 범죄를 심지어 맹모삼천지교를 인용해서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맹모는 위장 전입을 한 적이 없다. 맹모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좋은 환경이 좋은 교육의 원천이 될 수 있으니 부모는 자식이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부패와 불법에 능한 사람들이라면 나라의 어디에서 살든지 누구나 그 사람들을 모범으로 삼아서 부패와 불법을 배우고 행하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의 잘못된 개각으로 나라 전체가 부패와 불법의 아수라장이 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과 모처럼 만났다. 두 사람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너무 은밀한 만남이어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인 보수 언론조차 정치적 소외감을 느끼고 강력히 반발했다. 가장 강력한 정적인 두 사람의 은밀한 만남이 성사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의 유지와 지속에 커다란 위기를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공약은 결코 실현될 수 없고, 황망한 '4대강 죽이기'에 이어 황당한 '상지대 탈취극'까지 벌어져서 국민의 공분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이런 와중에 단행한 광복절 특사는 아예 사면을 빙자한 특권층의 탈옥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의원과의 밀약으로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잘못된 정책을 잘못된 방식으로 강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잘못된 개각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더욱 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단 '공정한 사회'라는 좋은 말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말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들로 이 말을 실행하도록 하는 것은 결국 이 말을 나쁜 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말과 함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좋은 말도 나쁜 말이 되어 버린다. 말과 함이 다른 정권은 신뢰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망칠 수 있다.

불공정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공정한 사회'를 만들라고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잘못된 개각을 추진하게 되었던 것인지 정말 이명박 대통령의 능력에 새삼 깊은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청와대는 도덕과 능력을 구분하며 잘못된 개각을 강행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구분이야말로 사실 문제의 근원이다. 도덕은 능력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 핵심이며, '공정한 사회'는 도덕이 가장 우월한 능력인 사회이다.

많은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우요일'이 지겹게 계속 되고 있다. 세모와 네모의 '누가 이 비를 멈춰주려나'나 CCR의 'Who'll stop the rain'을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나날이다. 시원한 빗소리로 시작하는 실비 바르탕의 경쾌하고 나직한 'En Ecountant La Pluie'를 듣기에는 비가 너무 거칠게 퍼붓는다.

아무튼 날씨보다도 우리를 더욱 더 불편하고 불쾌하게 했던 것은 이번의 잘못된 개각이었다. 아직 모두 잘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크게 개선될 수 있게 된 것은 큰 다행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야당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여론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더욱 더 여론에 귀를 기울여서 인사 방식을 크게 개혁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책들을 적극 개선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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