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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국방'이라는 이름의 살인 도구를 내려놓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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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국방'이라는 이름의 살인 도구를 내려놓으라! [프레시안 books] 베르타 폰 주트너의 <무기를 내려놓으라!>
보통 사람은 살인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정상적인 인물이 자기를 방어하려다가 사람을 해쳤을지라도 경악하고, 상대방이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흔들어 본다.

그런데 살인이 숭고한 의무가 되는 단 하나의 경우가 있다. 전쟁이다. 또 전쟁은 하려고 해서 하지 않는다. '터진다.' 전쟁이라는 운명에 휘말린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군대가 되어 전쟁터에 나가 적을 궤멸시키고, 징발하고, 진지를 구축한다. 그러니 어째야 할까? 오, 하느님, 전쟁이 터지지 않게 우리를 보우하소서!

아니다, 라고 이 소설은 말한다. 여성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베르타 폰 주트너는 당대에 자신의 조국인 오스트리아와 그 나라가 속한 독일 연방이 치렀던 네 차례의 전쟁을 민간인으로서 겪고, 참전 군인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하고, 신문 기사와 협정문 등을 모으면서 전쟁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전쟁이라는 추상화 과정을 되돌려 놓았다. 살인으로, 약탈로, 파괴로.

▲ <무기를 내려놓으라!>(베르타 폰 주트너 지음, 정지인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뿌리와이파리
<무기를 내려놓으라!>(정지인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의 전쟁에 대한 묘사는 도대체 전쟁을 다룬 다른 많은 소설들은 왜 딴 소리를 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적나라하고 비통하기 그지없다. 전쟁은 범죄다. 인류가 개인들 간의 이해 충돌을 폭력으로 해결하지 않을 정도의 문명에는 도달했지만, 집단으로는 아직도 야만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전쟁은 벌어진다. 이것이 주인공들이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가며 깨닫는 바다. "뭐? 야만? 이렇게 세련된 문화를 지닌 우리가?"하고, 주인공의 친구들마저 웅성거린다. 이어지는 다음 대사는 이렇다. "19세기 말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소설은 120년 전에 출간됐다. 당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켜 반전 문학의 대표작이 되었고, 저자는 평화 운동의 선구자로서도 헌신했다. 저자가 죽은 이듬해에 그가 우려했던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졌다. 그이후로도 수없이. 그럴수록 이 소설은 낡을 새가 없었던 셈이다. 21세기 초에 사는 우리가 "뭐? 야만? 이렇게 고도의 과학기술 문명을 가졌는데?"라고 코웃음 친다면, 19세기 말보다 더한 착각이다. 책을 덮고 싶도록, 전쟁은 똑같다. 규모가 커졌을 뿐. 1870년에 독일 스트라스부르의 도서관에 4분에서 5분 사이에 19만3722발의 총알이 쏟아졌다고 한다. 오늘날 쏟아지는 것은 총알이 아니다.

모든 전쟁은 정당 방어이다. 어느 나라도 자기가 먼저 공격이나 침략을 했다고 하지 않는다. 다 방어만 했는데 전쟁이 일어나는, 이 수수께끼를 소설은 풍부한 역사적 자료로 파고든다. 알고 보니 정당 방어란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구나!

부당하고 폭력적인 적으로부터 조국을 방어하려면, 망설이다가 최적의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때론 먼저 선제공격해야 한다. 성경에도 나와 있듯이, 칼을 뽑아든 자들을 (아직은 달려들지 않더라도 이쪽에서 먼저 달려들어) 칼로써 죽게 하는 것이다. (463쪽)

전략적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전쟁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새를 (그것이 남의 땅에 있을지라도) 확보해두어야 한다. (550쪽)

실제로 19세기 말에 이런 이유로 자신을 정당하게 방어하려는 나라들이 다른 나라로 밀고 들어갔다. 최근에는 미국이 이라크로, 중국이 티베트로. 그런데 적이 얼마나 '부당'하고 '폭력'적인지, '최적'의 시기란 언제이고 '전략'적으로 그 요새가 '필수불가결'한지 어떤지를, 일반 국민들은 모른다. 전쟁은 통치자가 결정하며, 전쟁에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는 보안 사항이다. 설령 정당 방어를 위해 전 세계를 점령해야 한다고 할지언정, 국민들은 반박할 정보가 없다. 어쨌거나 전쟁이 개시되면 수행하는 건 국민이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정부의 말을 고스란히 믿은 것뿐. 그리고 지금은 이 불행을 누가 초래했는지 따지고 비난하며 흘려보낼 시간이 없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모든 힘과 모든 정신력을 동원해 그 침략을 막아내야 하고, 아니면 초연한 자기희생으로 함께 몰락해가는 수밖에 없소."(542쪽)

전쟁이 끝나고 한두 해만에, 전쟁이 시작될 때 모든 인구가 함께 느꼈던 증오와 흥분, 적대감과 승리의 희망 같은 감정은 다 씻겨 버린다. (283쪽)

인류 역사상 있었던 그 많은 전쟁의 이유를 누가 기억할까? 기억한다 한들 그게 정말 이유였다고 누가 믿을까? 전쟁의 이유야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 전쟁은 머리 위의 폭발물처럼 터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누군가가 준비하고, 누군가가 박수치며 분위기를 몰아가고, 누군가가 승인을 해서 생기는 일이다.

"놀라운 것은, 민중이 전쟁에 저항해 봉기하지 않는다는 사실, 사회 전체가 '전쟁'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선장이 난파를 피해야 할 의무가 있듯이, 모든 통치자는 전쟁을 피할 의무가 있다. (…) 국민들이 그런 사실을 이해한다면, 자신은 이유 없이 죽지 않겠다고 거부한다면, 전쟁도 사라질 것이다" (기 드 모파상) (533쪽)

19세기 말에 저자가 꿈꾸었던 '국제 중재 재판소'(국제형사재판소)와 유엔(UN)이 있는 오늘날에도,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단번에 법으로써 야만적인 무력을 영원히 대체'한다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꿈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지당하다. 전쟁 아닌 다른 방법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한다.

'상비군은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 (…) 다른 나라들을 자극하여 한계라고는 모르는 그 무장의 규모를 서로 능가하려고 겨루게 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평화를 위해 군비에 사용되는 비용이 끝도 없이 부담스럽게 늘어가고, 그것이 짧은 전쟁을 치르는 비용보다 더 부담스러울 지경이 되며, 상비군 자체가 그 비용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침략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칸트의 < 영구 평화를 위한 예비 조항들> 셋째 조항) (489쪽)

너무 이상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미국 군수 산업의 재고 적체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전혀 사용하지도 않을 그것들을 만드느라 그 모든 비용을 들인다는 건가요?"라고 이 소설은 묻고 있다. 무기 아닌 다른 수단을 찾아내려고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평화를 위한 전쟁 같은 형용모순 말고, 평화를 정착시켜서 전쟁을 막는 방안들.

흥미롭게도 저자는 전쟁 시에 사람들이 조국이든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몰입에서, 희망을 본다. 인간에게는 개인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확신하는 건, 우리 인류에게는 숭고한 사랑의 능력이 아주 많다는 것, 다만 그 능력을 해묵은 적의의 도랑에 쏟아 붓고 있다는 것." (542쪽)

개개인들 위에 조국이나 민족이라는 더 넓은 개념을 놓을 수 있다면, 그보다 한 단계 넓은 개념도 놓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인류. 인류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전쟁하는 쌍방이 형제고, 양쪽 다 훼손되어서는 안 될 문명이다.

연평도 포격으로 우린 매우 충격을 받았다.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다신 그런 사태가 벌어져서는 안 될 텐데, 최선의 방지책은 평소에 꾸준히 남북 간에 평화를 일구는 것이다.

우리 후손에게 가장 고맙고 자랑스러운 조상이 어떤 조상이겠는가? 전쟁을 물려주지 않는 조상 아닐까? TV에 자주 보이는 자주 국방의 당당한 무기들, 믿음직하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또한 무기, 살인의 도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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