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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맘의 고백 "가난한 주제에 교육은 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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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맘의 고백 "가난한 주제에 교육은 무슨… " [장정일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조너선 코졸의 <야만적 불평등>
교육은 부자나 가난한 자에게나 출발선을 같게 하여,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말해진다. 하지만 '가난한 수재'가 '뜨거운 아이스크림'과 같은 형용모순이 된 지 오래인 한국에서 그 말을 곧이들을 사람은 없다.

조너선 코졸의 <야만적 불평등>(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을 보면,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는 미국에서는 이런 사정이 한국보다 더 확고한 공식이 된 지 오래다. 코졸은 1964년부터 근 40여 년 동안 미국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교사와 교육 연구자 역할을 함께 했다. 특히 그는 이 책을 쓰고자 2년 동안 세인트루이스(일리노이), 시카고, 브롱크스(뉴욕), 캠던(뉴저지), 워싱턴 D.C., 샌안토니오(텍사스) 도심의 빈민 거주 구역을 직접 취재하고 다녔다.

▲ <야만적 불평등>(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문예출판사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천장에서 비가 새는 교실, 비가 오면 식당과 교실이 침수되거나 운동장이 아예 없는 학교, 책이 없는 학교 도서관, 휴지와 물이 나오지 않는 화장실, 실험 도구가 하나도 없는 과학실, VCR이 한 대도 없는데다가 책·잡지·테이프가 필요하면 교사가 직접 사야하는 학교, 선생이 사용할 분필이 바닥난 교실, 교과서가 없는 학생들, 학습 부진아로 가득한 교실, 한 학기 내내 교실에서 잠만 자는 교사, 돈을 절약하기 위해 고용한 임시 교사들, 50%도 채 졸업하지 못하는 도심의 공립 초·중·고등학교, 졸업생 가운데 겨우 2~3명만 대학에 진학하는 고등학교……. 어떻게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산다는 미국의 교육 현장일 수 있는가?

물론이다. 도심의 빈민 거주지가 아닌 부유층의 거주지나 교외의 사립학교는 사정이 다르다. 거기엔 대입에 필요한 학문적 과정은 물론이고 음악·미술·연극 등에 대한 강좌가 풍부하게 마련되어 있고, 라틴어 강좌를 비롯한 6개의 외국어 강좌가 있다. 이외의 선택 과목으로 문학·항공학·형사 재판·컴퓨터 언어 등이 있고, 미국 연방 통신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텔레비전 방송국도 운영한다. 도심의 가장 환경이 좋은 학교가 운이 좋아야 1만3000권의 책을 소장할 수 있다면, 이런 학교에서는 6만 권의 도서를 거뜬히 소장한다. 당연히 이런 학교의 중퇴율은 0%이고, 고등학교에서는 3%를 제외한 모든 졸업자가 대학에 진학한다……. 우리는 반문할 것이다. 이것이 진짜 미국이 아니냐고!

도심의 빈민 거주 지역 학교와 도심의 부유층 거주 지역 공립학교나 교외 사립학교 사이의 교육 불평등은 모두 돈의 문제다. 좀 길지만 아래의 인용을 보라.

이런 교육비 격차가 너무나 엄청나고 불평등하여 수많은 사려 깊은 시민들은 이 문제를 납득하지 못한다. 인접한 학군 간에 어떻게 이런 극심한 불평등이 있을 수 있을까.

그 부분적인 원인은 공교육 재정을 조달하는 불가해한 수단에 있다. 미국의 공립학교는 대체로 기초 재정을 그 지역 재산세에 의존한다. 주와 연방에서 지급되는 자금도 있긴 하지만 재산세가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소다. 재산세는 물론 그 지역에 있는 산업체와 주택의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주택가가 보통 40만 달러가 넘는 전형적인 부유층 교외 지역은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인 도시보다 학생 수 대비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아주 가난한 지역민들은 교육을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흔히 부유한 지역보다 몇 배나 높은 비율의 세금을 낸다. 이렇듯 이들은 부유한 지역보다 몇 배나 높은 비율의 세금을 내지만 이 지역 학교의 학생 한 명에게 돌아가는 교육비는 부유한 지역보다 훨씬 낮다.

연방정부는 재산세를 세금 공제 대상으로 간주하므로, 부유한 교외 지역의 주택 소유자들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자금을 제공하려고 지출하는 돈을 상당 부분 되돌려 받는다. 이것은 사실상 연방 정부의 보조금이며 교육 불평등을 불러온다. 가난한 지역의 주택 소유자들도 이런 보조금을 받지만, 이들이 내는 세금 총액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보조금 역시 더 적다. (91~92쪽)


교육 불평등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사람들은, 거두어들인 재산세를 공평하게 나누어 쓰자는 것이다. 그러면 앞서 나열했던 것과 같이, 유리창이 모두 깨어지고 천장에서 비가 새는 교실……과 같은 사태는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부유층으로 이루어진 보수주의자들은 교육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하는 교육비 재분배를 반대하며, 이 책에 나오는 몇 건의 '학교 평등화 관련 소송'에서 모두 승리했다. 교육 불평등을 시정하려는 원고들은 "지역 통제가 더 효율적이며 중앙 당국에 의해 집행되는 평등은 필연적으로 낭비와 부패를 낳게 된다"(329쪽)는 미국식 신성불가침 원칙의 벽을 넘지 못했는데, 보수주의자들의 승리에는 '자유'의 효율성이란 논리도 큰 몫을 했지만 결국엔 '지역'에서 거둔 세금은 자기 지역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지역 자치' 논리가 결정적이었다.

정치력과 경제력을 가진 보수주의자들은 빈민 지역의 학생들이 부유층 거주지의 공립학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임의대로 학군을 조정하거나, 압력을 행사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돈이 교육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란 말이다. 예컨대 조지 부시 1세는 교육 재정의 확대를 촉구하는 가난한 아이들의 학부모들에게 "돈을 숭배하는 사회는 위험한 사회입니다"(320쪽)고 했는데, 그렇다면 자신과 그의 아들인 조지 부시 2세는 왜 기숙사의 숙식비를 빼고도 1인당 연간 1만1000달러나 드는 사립학교가 필요했으며, 부자들은 왜 빈민들 보다 더 많은 교육비를 투자하는가?

코졸은 ①부유층이 자신의 자녀를 빈민층 자녀와 함께 공부시키려고 하지 않으려는 이유와 ②자신들이 낸 재산세를 빈민층을 위한 교육비로 균등하게 분배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딱 꼬집어 명시하고 있지 않다. ①과 ② 모두, 빈민층의 학력 향상과 상관있는데, 시카고 빈민가의 한 어머니는 부유층이 빈민층 자녀의 학력 향상을 반기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한다.

이들은 우리 아이들을 충실한 피고용인으로 기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기업에 더 많은 이익이 될 테니까요. 이들이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서 기업의 임원직을 빼앗는 것을 보고 싶어 할까요? 이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이 갖고 있는 것을 제공한다면 우리는 이들이 사는 동네로 이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130쪽)

날카롭지 않은가? 부유층이 빈민층 자녀의 학력 향상을 반기지 않는 것은 ①빈민 거주지의 아이들을 충직한 피고용인으로 훈련시키기 위해서고(실제로 빈민가에 위치한 학교에서는 학업 교육 보다 취업 교육에 몰두한다), ②자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미리 경쟁자를 낙오시키려는 생각에서다. 지은이의 생각도 다르지 않아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유한 지역들은 고매한 수준에서는 '자유'와 '지역 자치' 같은 근사한 추상 개념을 지키려고 투쟁하는 듯 보이지만 세속적 수준에서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우월한 역할을 물려주려고 싸우고 있다. (346쪽)

지금까지 이 독후감이 의도적으로 간과했던 사실은, 미국의 공교육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육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은 빈민층/부유층의 불평등한 재산세 집행 문제라기보다, 인종 분리와 더 상관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졸은 최초의 인용문에서 교육 불평등의 원인을 "재정 조달"에 모두 떠맡기지 않고 "부분적인 원인"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특수한 사정으로 빈민층/부유층이 같은 공립학교에 모이기 위해서는 흑인/백인이 함께 자리를 나눌 수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공공 시설에서의 인종 분리는 위헌이라는 1954년의 브라운 대(對) 교육위원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씌어진 1991년의 상황은 100년 전과 같았다. 미국 사회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공교육 내에서의 흑인/백인 간의 인종 분리가 완화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빈민층/부유층의 교육 불평등마저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데에 미국의 이중적인 고민이 있다.

그렇다면 인종 간의 교육 불평등이 없는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좋은 학군과 아파트 값이 비례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소위 명문 대학의 인기 학과가 강남 자녀 일색인데다가 대학이 강남 출신 지원자들을 우선 배려해 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또 어느 때 부터인가 학군을 놓고 빈부가 뚜렷한 지역 간의 교육 불평등이 뉴스를 타기 시작했다. 가까운 중학교가 코앞에 개교하는 데도, '명품 학교'를 만들겠다는 부자 아파트의 지역 이기주의가 가난한 아파트의 학생을 먼 학교로 보내는 불합리한 '학군 조정'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글의 서두에 말했듯이, 교육은 부자나 가난한 자에게나 출발선을 같게 하여,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한다. 여기서 사립학교는 열외로 하더라도, 과연 공립학교들끼리의 교육 평등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 책에도 나오듯이 풍족한 재정 지원과 더 많은 후원금을 확보한 부유층 지역의 공립학교와 빈민층 지역의 공립학교가 '기계적 평등' 원칙에 따라 똑같은 대수의 컴퓨터를 교육 부처로부터 지급받더라도, 학생 수가 과밀한 빈민층 지역의 공립학교는 적정 인원의 부유층 공립학교보다 더 적은 대수의 컴퓨터를 받은 것이나 같다. 이런 불평등한 사례가 진정 기회의 민주화를 옹호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보수주의자)들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일까?

특권 계급이 하층민과의 경쟁에서 국가의 비호와 지원을 받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자유 기업 사회에서 공립학교의 교육 환경을 차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경제적 경주를 할 때 문 앞에서 특정 참가자들의 두 발을 묶는 것-불리한 조건을 부여하는 정부 요원에 의해 두 발이 묶이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자유 기업 체제의 근본 원칙에 위배되는 이단적 개입에 해당한다. (324쪽)

국가나 지역 자치 단체가 공립학교에 균등하게 교육비를 배분하지 않고, 특화된 학교에 더 많은 재원을 지원하는 것은 공교육의 기반을 허물어 교육 불평등을 부추기는 일이다. 올바른 민주주의 사회는 부모의 재산이 자녀의 교육 성취 가능성이나 그것이 가져다주는 독점적인 부나 지위 취득과 전혀 연관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모의 출신이나 당성에 따라 자식의 진로가 정해져 있다는 공산주의 사회나, 태어나기 전부터 지배자 계급과 노예 계급이 조작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보다 우월하거나 다를 게 전혀 없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모두 장군이거나 병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 교육 패턴으로는 병졸의 자녀들은 병졸이 될 확률이 더 높고 장군의 자녀들에겐 최소한 장군이 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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