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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무지랭이 '도시녀', "농사 한번 도전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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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무지랭이 '도시녀', "농사 한번 도전해봐?"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백승권의 <행복한 어린이 농부 1~5>
서울에서 살아가는 직장인, 그리고 미혼이라면 자기 손으로 생명체를 기르는 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내 소유의 생명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 그게 현재 나의 삶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신도시와 서울을 오가며 살아온 나는 농사에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게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이 또한 도시의 삶이다.

그런 내게 음식이 주는 의미가 뭘까?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먹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음식은 타인의 손을 거쳐 만들어져 내게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마가 차려 주는 밥을 먹거나 돈을 주고 사 먹거나 둘 중 하나다. 물론 직접 해 먹는 경우도 있지만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100% 사 온 것들이다. 하루 세 끼, 매일 먹는 밥상에서 나는 먹는 일 외의 과정에서는 완전히 소외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 내게 농사 이야기라니, 그것도 어린이를 위한 농사 책이라니. 아무래도 편집자로서 자격미달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며 처음 읽은 원고는 날것인 만큼 생생하고 힘이 있었다. 실제 경험이 빼곡하게 담겨 있어 그런지 알아가는 재미가 컸다.

농사에 까막눈이자 시골에서 살아본 적 없는 자격미달 편집자인 나는 어린이 독자들과 눈높이가 똑같았다. 책을 만들면서 농사뿐 아니라 우리말과 표현에 대한 정도 깊어졌다. 마지기, 배미, 우케, 고갱이…. 뜻도 모르고 써 왔거나 생전 처음 듣는 낱말들이다.

이와 함께 두고두고 생각나는 문장들이 많다. 벼가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고 한다. 한여름 뜨거운 날씨에 벼가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벼가 쑥쑥 크는 소리에 놀라 개들이 짖는다는 말이다. 달 밝은 밤에 콩밭을 지나면 콩이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는 표현도 참 예쁘다. 밝은 달빛 아래 펼쳐진 콩밭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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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어린이 농부1>(백승권 지음, 정인성 그림, 이태근 감수, 다산어린이 펴냄). ⓒ다산어린이
한 권도 아니라 무려 다섯 권의 시리즈를 만드는 작업은 농사 못지않게 힘든 과정이었다. 첫 원고를 받은 지 2년 만에 원고가 완성되고 편집 기간까지 3년에 걸친 작업 끝에 나온 책은 농사보다도 훨씬 더 오랜 기다림과 인내, 끈기가 필요했다. 셀 수 없는 수정과 오랜 숙성을 거쳐 원고가 완성되었으나 처음 읽었던 원고 속에 담겨진 생명의 힘은 책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 사계절이 필요한 벼농사, 여름 한철 키우는 콩, 가을에 키우는 배추 이야기가 모두 책 속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농촌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어린이 책들과 달리 <행복한 어린이 농부>는 있는 그대로의 농촌과 실제 농사의 과정을 꾸밈없이 묘사한다. 실제 책을 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서를 만들고 싶은 저자의 바람으로 어린이 책들에서 다루는 농사의 정보와 양을 훨씬 뛰어넘어 어른들도 보고 배울 수 있는 책으로 기획되었다.

벼농사는 볍씨를 고르는 일부터 시작된다. 큰 통에 물을 담고 굵은 소금으로 농도를 맞추어 밑으로 가라앉는 볍씨들만 골라낸다. 차가운 물에 잠깐, 뜨거운 물에 잠깐 담갔다 따뜻한 아랫목에 두면 우윳빛 새싹이 돋아난다.

"쌀은 한자로 米(미)라고 써. 열 십(十) 자를 가운데 두고 여덟 팔(八) 자 두 개가 위아래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양이지. 풀어 보면 팔십팔(八十八)이란 숫자가 나온단다. 한 톨의 쌀을 얻기까지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이나 필요하다는 뜻이지. 일미칠근(一味七斤)이란 말도 있단다. 한 톨의 낟알을 얻기까지 농부는 일곱 근의 땀을 흘린다는 뜻이야.

아빠가 읽은 책 중에 장일순 할아버지가 쓴 <나락 한알 속의 우주>란 책이 있어. 한 알의 낟알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니,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니?" (<행복한 어린이 농부> 17쪽)


이 시리즈의 주제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김장용 배추와 무 농사는 여름에서 가을까지다. 8월에 배추씨와 무씨를 심고 버섯 재배를 마치고 남은 배지를 거름으로 뿌린다. 목화 껍질과 볏짚으로 만들어져 버섯 균에 의해 발효된 상태인 배지는 훌륭한 거름이 된다. 스무 날 정도 키운 배추 모종을 밭에 심으려면 우선 준비가 필요하다. 트랙터로 밭을 갈아 흙과 거름 덩이리가 잘 뒤섞이게 하고 관리기로 이랑을 만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긴 비닐을 이랑마다 씌우고 비닐 위에 구멍을 뚫고 모종을 간격 맞추어 심는다. 두 달 보름이 지나면 속이 꽉 찬 배추와 통통한 무를 만날 수 있다.

수돌이네 닭 이야기에선 할머니가 떠난 빈자리를 채워 주는 병아리 새벽이와의 우정이 감동적이다. 어미 닭과 병아리들이 나란히 서서 할머니를 태운 꽃상여가 눈비산 모롱이를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해진다. 할머니가 키우던 집짐승들이 귀찮고 싫었던 수돌이는 족제비에 잡혀 갈 뻔한 새벽이를 구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간다. 잘해 주고 싶어 몰래 과자를 먹여 새벽이의 건강이 나빠지게 만들 정도로 무지했던 수돌이는 닭똥 거름 사이에서 지렁이를 잡아다 먹이고 솣가루, 쌀겨, 황토, 흑설탕, 깻묵을 섞어 발효 사료를 만들어 먹이며 병든 새벽이를 회복시키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4월 초, 드디어 벼농사, 김치 이야기, 닭 이야기 3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봄이라 마침 시기가 맞았고 바른 먹을거리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가는 시기여서 그랬는지 <행복한 어린이 농부>는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한 초등학교에서 연락이 와 저자가 '어린이 농부'라는 주제로 한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한 강의를 준비 중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음식을 꼭 골라먹어야 할까요? 음식을 보면 두 가지 방법으로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어요. 원재료명으로 어떤 첨가물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고 영양성분표도 확인할 수있어요." 최근 한번쯤 보았을 바른 먹을거리 교육 광고다. 풀무원은 녹색소비자연대와 함께 '바른먹거리 확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올바른 식생활 문화가 정착되려면 우선 안전한 식품 선택에 대한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먹을거리를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바른 먹을거리를 골라 먹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MBC 스페셜 <세계, 먹거리 교육에 빠지다>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었다. 평생 가는 올바른 식습관은 어린 시절 조기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내용이다.

얼마 전 회사 근처의 한 건물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는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찾아보니 요즘 텃밭이며 정원을 가꾸어 먹을거리를 직접 길러 먹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이화여대의 텃밭 자율 강좌, 어린이 농부 학교 등 크고 작은 강의며 강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베란다 정원, 옥상 텃밭 등 관련 책들도 올해 들어 계속 출간되며 인기몰이 중이다.

지금은 한창 <행복한 어린이 농부 5-느티뫼 순봉이네 버섯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버섯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버섯을 키우고 싶어졌다. 책에 의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선 텃밭 가꾸기에 도전해야겠다. 요즘 도시인의 트렌드는 농사다. 나도 이제 머리로만 아는 편집자가 아니라 진짜 농사꾼이 되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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