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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석사에 89만 원 월급, 그래도 당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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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석사에 89만 원 월급, 그래도 당당해! [프레시안 books] 청년유니온의 <레알 청춘>
나는 친구가 많지 않다. 사실 별로 없다. 굳이 동갑만을 친구로 치는 한국 기준에 따르면 아마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도 없을 것이다.

서너 살 차이 안짝의 비슷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라면 조금 있다.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에 다니면서 누가 봐도 번듯한 성공 가도를 착착 밟아 나가는 언니도 있고, 억대 연봉을 벌면서 폼 나게 사는 멋진 언니도 있고,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만 들이고 자기 마음에 들게 손수 페인트칠을 한 조그만 옷가게를 꾸리는 언니도 있고, 10년째 영화감독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오빠도 있고, 낮에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칼 퇴근 후 바로 음악을 하는 친구도 있으며 몇 년 동안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모은 돈을 탈탈 털어 꼭 가보고 싶었던 남미로 훌쩍 떠난 친구도 있다. 하나같이 모두 재미있고 매력적인 사람들이지만, 어른들 기준에서 보면 어떤 친구는 대견하고 어떤 친구는 한심해 보일 것이다. 주로 그럴싸한 돈벌이 하고 있는 사람들은 높이 치고, 돈 안 되는 짓하는 사람은 무조건 낮게 보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기준이다.

청년이 청년에게 안부를 묻는다는 콘셉트로 쓰인 <레알 청춘>(삶이보이는창 펴냄)은, 그렇게 세상이 규정한 젊은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벗겨내고 진짜 눈으로 보는 '리얼한 청춘'을 그리려 한다. 세상이 규정한 젊은이들의 모습은 어딘가 나약하고, 좀비처럼 매일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 앞에서 'ㅋㅋ'거리며 쓸데없는 '악플'이나 달거나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나가서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하고, 아무런 꿈도 없고 희망도 없는 그런 칙칙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일쑤다.

▲ <레알 청춘>(청년유니온 지음, 삶이보이는창 펴냄). ⓒ삶이보이는창
하지만 청년유니온에서 만난 청년들은 그냥 보통 사람들이다. 보통이야말로 가장 리얼한 것이 아닌가. 특별히 엄청난 꿈을 품고 있지도 않고, 일확천금의 황당한 꿈을 꾸고 있지도 않고, 세상을 한 번 내 손 안에 넣고 호령해 보겠다는 식의 야망은 아니지만 꿈 하나씩 가슴에 품고서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들이다.

힘든 육체노동을 해서 월급 120만 원을 받으면서 월수입의 3분의 1을 이종격투기 개인 지도에 투자하며 무술가의 꿈을 꾸는 청년, 연애를 하고 싶어도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다 돈인 이 세상에서 녹록치 않은 것을 알고 마른 침을 삼키며 오늘도 남대문 시장 도매점에서 물건 배달을 하지만 간혹 할인점에서 할인할 때만 큰마음 먹고 산 와인 한 모금에 잠시 고뇌를 잊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꿈과 미래를 하나하나 세어 보는 청년,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되니까 꼭 연극배우가 되고 싶다는, 어른들이 정신 차리라고 야단치기 딱 좋은 꿈을 꾸고 있지만 어떻게든 먹고 살 길을 위해 요가 강사 자격증까지 따 놓고 계속 꿈을 꾸려고 노력하는 배우 지망생, 카이스트(KAIST) 석사 학위를 가지고도 한 달에 89만 원 받는 '엄친딸'….

그래서 청년유니온이, 이 책을 쓴 청춘들이, 다른 청춘들을 만나서 책 한 권 분량을 엮어낸 이유가 우리 너무 불쌍해요, 이렇게 살아요, 힘들게 살고 있어요, 하는 하소연인 걸까. 88만 원 세대 먹고 살기 너무 힘들어요, 고작 이 이야기나 하려고 <레알 청춘>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걸까. 그 정도로는 '레알'이 안 될 것이다. 결국 글 쓴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 털어 놓은 사람들은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요즘 애들 틀려먹었어, 20대 개새끼론,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 상황에서 그냥 우리도 당신들이랑 똑같아요, 그냥 별 일 없이 살아요, 꿈도 있고 희망도 있는데 받쳐 주는 건 좀 안 될 뿐이죠,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어요, 뭐 그런 이야기일 것이다.

모든 세대는 각 세대의 불행을 짊어진다. 한국 전쟁을 겪은 세대는 전쟁의 상흔이 있고 그 이후에는 독재 정권의 시련을 겪었고 지금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청춘들은 지구라는 행성의 막차를 탄 세대라는 불행이 있다. 이미 나올 직업은 다 나왔고, 부모의 자산 등급에 따라 시작점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최저 임금을 받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또 최근에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하면 (무슨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싶다거나 연봉이 몇 천만 원 정도 되는 차를 한 대 사야겠다거나 등의 얘기들이다) 자리마다 격차를 느낀다. 그러나 전자의 친구들보다 후자의 친구들이 특별히 불행해 보이지도 않고, 후자의 친구들이 돈 버는 만큼 대단히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는 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레알 청춘'이다. 그래서 <레알 청춘>은 그냥 담담하다. 이야기 한 사람들도, 받아 쓴 사람들도, 그냥 그렇게 담담히,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방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고모리도 일하기 싫어 꼼수 부리고 자기밖에 모르는 얌체도 다 누군가 만든 허상이다. 그 쓸데없는 허상을 벗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이 담담한 사람들이야말로 '레알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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