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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으로 돌아간 사내, 제일 먼저 한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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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으로 돌아간 사내, 제일 먼저 한 일은? [2011 가을, 금태섭의 선택] 켄 그림우드의 <다시 한 번 리플레이>
독자의 입장에서 '잘 쓴' 소설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소설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무엇보다 역시 재미와 즐거움 아닐까. 한 사람의 독자로서 나는, 미처 포착하지 못 했던 삶의 단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소설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 허구를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보다 더 잘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비전문가의 순전히 개인적인 분류지만, 여기서 소설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자연 법칙에 따를 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공상적인 상황을 전제하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 잠자의 이야기를 쓴 카프카의 <변신>이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필두로 한 마술적 사실주의 계열의 책이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로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현실 세계를 다룬 대부분의 소설이 여기에 속하고,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예를 들면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실패하고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 우리가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로 머물러있다고 가정하고 쓴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도 여기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것은 비현실적인 내용이 될 것 같은 전자가 오히려 현실감을 주기도 하고, 실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과 대단히 유사한 사건만 등장할 것 같은 두 번째 종류의 소설이 극적인 이질감을 주기도 한다. 두 가지 중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잘 쓴 소설은 독자에게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순전히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전자에 속하는 소설을 한 권 소개하려고 한다.

(후자에 속하는 책으로는 다니엘 페낙의 '말로센 시리즈', 특히 그 중에서도 네 번째 책인 <말로센 말로센>(전인혜 옮김, 책세상 펴냄)을 권하고 싶다. 프랑스 파리 외곽의 실제 지역 벨빌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소설 속에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상상하기 힘든 사건만 일어난다. 유쾌하고, 이런 곳에서 살고 싶은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다.)

▲ <다시 한 번 리플레이>(켄 그림우드 지음, 공보경 옮김, 노블마인 펴냄). ⓒ노블마인
켄 그림우드가 쓴 <리플레이(Replay)>. 1988년에 세계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한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1996년 이종인의 번역으로 출간된 일이 있고, 2009년 공보경 번역으로 <다시 한 번 리플레이>(노블마인 펴냄)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소설에서 '공상'에 해당하는 부분은 단 하나다. 주인공인 제프 윈스턴이 죽은 후에 다시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인생을 되풀이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조그만 라디오 방송국에서 뉴스 디렉터로 일하는 43세의 제프는 1988년 10월 18일 오후 1시 6분 사무실에서 아내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는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제프는 다음 순간 대학을 다닐 때 살던 기숙사 방에서 깨어난다. 어리둥절해진 상태로 사방을 둘러보면서 꿈을 꾼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점차 상황은 분명해진다. 제프는 25년 전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룸메이트가 방으로 들어오고, 조금 후에는 옛 애인과도 재회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 즉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는 것만 제외하면 소설의 나머지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과거로 간 제프는 무슨 일을 할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모두 기억한 채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는 공상은 아마도 누구나 몇 번은 해봤을 것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까. 당신이 공상 속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제프도 당신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다. 그는 주식 투자를 한다.

대학을 다니던 제프는 저금을 다 털고 차를 팔아서 밑천을 만든다. 이미 승부를 알고 있는 켄터키더비나 월드 시리즈 도박에서 그 돈을 불린 다음 아이비엠(IBM), 맥도널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주식을 사서 큰돈을 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는 우리의 귀에도 익숙한 이름의 두 명의 젊은이, 차고 안에 중고 전자 부품을 잔뜩 늘어놓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50만 달러를 투자한다. 그들이 무엇을 만들어내든 그 물건에 '애플'이라는 이름을 붙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새로 탄생할 회사의 지분 49퍼센트를 인수한다. 이제 제프는 세계적인 거부가 된다.

평생 다 쓸 수도 없는 재산, 아름다운 여인과의 연애, 상류층 출신의 아내, 사랑스런 딸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제프에게 어느새 전생(?)에서 죽음을 맞았던 1988년 10월 18일이 다가온다. 별 생각 없이 산책을 하던 그는 순간적으로 가슴에 강한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그는 다시 죽음을 맞고,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

이제 상황은 분명해졌다. 그는 다시 한 번 25년의 세월을 살아야하고, 1988년이 되면 다시 죽어서 젊은 시절로 되돌아와야 한다. 누구나 공상에 잠길 때 한 번씩 꿈꾸는 일, 즉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살아보는 것이 제프에게는 헤어날 수 없는 지옥이 된 것이다. 다만 매번 다시 사는 인생에는 조금씩 변화가 있다. 깨어나는 시기가 점점 늦춰지는 것이다. 처음 죽었을 때는 1963년 5월 6일로 돌아가지만, 두 번째는 그로부터 석 달 후, 세 번째는 다시 그로부터 1년 후, 이렇게 다시 살아야하는 기간이 조금씩 줄어든다.

윤회를 믿건 믿지 않건 지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평범한 인간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이 소설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첫 번째 삶에서 부를 꿈꿨던 제프는 다음 생에서는 적당하게 돈을 벌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보려고 한다. 대학 시절의 여자 친구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던 그는 죽음이 예정된 날 병원에 입원해서 의사의 진료를 받아가며 운명을 피해보려 하지만(의사는 그가 너무나 건강하다고 한다!), 어김없이 심장마비가 찾아오고 과거로 돌아간다. 당신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다음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렇다. 제프는 이번에는 삶에 모든 희망을 잃고 은둔 생활을 한다.

저주처럼 끝없이 다시 찾아오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생애를 한 번씩 다 살아본다. 어떤 인생에서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보려고도 하고, 또 다른 삶에서는 전 세계를 상대로 장래 일어날 사건을 예언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밝히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찾아보려고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작가는 공상의 세계에서조차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을 보여주고, 독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을 통해서 미처 인식하지 못 했던 일상의 단면을 바라보게 되는 예기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동서양의 문화가 충돌하는 터키라는 배경이 없이 그토록 깊이 있는 글이 나올 수 있을까 의문이 든 적이 있다. 인도 출신의 살만 루슈디가 카슈미르를 소재로 쓴 책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캔 그림우드의 <다시 한 번 리플레이>는 좋은 소설이 나오기 위해서 반드시 소재가 필수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랜 역사와 문화가 있어야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잘 쓴 이야기는 어떤 시대와 장소를 배경으로 한, 어떤 사건을 통해서든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통찰이라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어떤 공통의 기억이 있기 때문일까. 인식하고 있지 못할 뿐이지 누구나 무수히 많은 삶을 되풀이해서 살며, 그 과정에서 서로 한 번쯤은 만나기 때문일까. 그림우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사실은 그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소설 첫머리에 인용한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은 그런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아르쥬나여, 그대와 나는 많은 삶을 거듭했노라. 나는 그 삶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만 그대는 기억하지 못 하느니…."

거듭되어온 삶을 기억하는 사람과 기억하지 못 하는 사람은 정말 다르게 살아가게 될까.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유한한가를 끊임없이 일깨워주면서도 동시에 그 세계가 얼마나 끝없이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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