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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 없었다면 한국전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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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탄 없었다면 한국전쟁도 없었다!"

[프레시안 books] 정욱식의 <핵의 세계사>

"거대한 군사 집단과 대규모 무기 산업이 결탁하여 행사하는 영향력은 미국의 새로운 경험입니다. (…) 우리는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 정부 각 위원회에서 군산복합체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퇴임사에 있는 유명한 어구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급등한 국방비를 줄이기 위해 핵무기를 이용한 '대량 보복 전략'을 추진했던 아이젠하워의 이 말은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기(1953~1960년)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핵전력의 강화에 들어간 시기였다.

미국의 핵전력 강화는 소련의 핵전력 강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소련은 1957년 대륙 간 탄도 미사일과 위성을 동시에 개발했다. 한반도에 처음으로 핵무기가 배치된 것도 1958년이었다. 정확한 통계 자료도 없이 '미사일 갭'을 외쳤던 케네디가 뚜렷한 검증도 없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기 핵전쟁의 위협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이젠하워는 핵전쟁 위협을 고양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전략을 통해 미국의 군사복합체가 성장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했던 것이다. 군사 정책을 중심으로 한 일방통행 식 대외 정책을 강행했던 조지 W. 부시의 참모들이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와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아이젠하워는 1961년의 시점에서 이미 4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았던 것이다.

또 다른 역설은 핵의 위험을 가장 먼저 경고한 것이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가 먼저 핵무기를 갖는 것에 염려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핵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경고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주었듯이 핵이라는 불을 인류에게 선사해 준 오펜하이머는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 '수소폭탄 개발의 반대자'로 돌아섰다.

오펜하이머는 1953년 초 한 강연에서 "우리는 유리병 속에 든 두 마리의 전갈과 같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러려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지요"라고 말했다. 결국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오펜하이머를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인물로 낙인찍었고, 그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핵개발로부터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크렘린의 중심에는 고르바초프가 있었다. 크렘린의 사람들은 냉전 시대를 통해 미국과 함께 핵전쟁의 위협을 고조시킨 주범들이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핵 확산 금지 조약(NPT)의 출범과 데탕트 체제는 인간이 그렇게 '비이성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레이건 행정부에서 다시 시작된 신 냉전과 핵전쟁 위협의 고조에서 소련의 책임도 적지 않았다. 신 냉전의 뒤에는 군산복합체의 또 다른 이해관계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신 냉전의 중심에 있었던 고르바초프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는 전향적으로 중거리 마사일 폐기에 나섰다. 그는 신냉전 시대의 안보가 '공포의 균형'에 기반을 두었다면, 이제 새로운 시대는 '상대방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나도 안전함을 느낀다'는 공동 안보의 정신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냉전 체제를 붕괴시켰다.

▲ <핵의 세계사>(정욱식 지음, 아카이브 펴냄). ⓒ아카이브
정욱식의 <핵의 세계사>(아카이브 펴냄)는 몇 가지 중요한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세계를 핵 공포로 몰고 간 당사자들이 결국에는 스스로 핵 폐기를 위한 전도사들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핵무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하는 한 인류는 언제든지 한 방에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돌릴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핵무기를 만든 사람도, 핵미사일 경쟁의 시대를 연 사람도, 신 냉전 시대에 소련의 지도자로 있었던 사람도 모두 핵무기가 없어야만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핵의 세계사>가 보여주는 또 다른 미덕은 세계 현대사를 '핵'이라는 화두를 통해 풀어갔다는 것이다. 현대사에서는 핵과 관련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있다. 뉴멕시코 사막에서 있었던 세계 최초의 핵실험,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대한 전무후무한 핵폭탄 투하, 소련의 핵개발과 한국전쟁의 발발, 쿠바 미사일 위기, NPT 조약과 미소 간의 핵무기 감축 협상의 시작, 체르노빌 사고 그리고 미사일 방어망 전략에 이르기까지 '핵' 문제는 현대 세계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핵 문제를 통시대적으로 조망한 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핵 문제는 한 시대의 여러 이슈 중 하나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핵의 세계사>는 핵 문제를 세계 현대사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로 보았다. 핵 문제는 단지 전쟁 전략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사 전략적 문제이면서, 냉전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문제이다. 또 경제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생활의 문제이며, 인류 생존의 문제이다. 핵무기가 '절대 무기'라고 불린 것은 이것이 인류 역사에서 '절대적' 위치를 점하는 변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세계사의 모든 시기에 '핵' 문제에 대한 고려는 다른 문제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며, 핵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대 세계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핵 문제는 통시대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냉전 시대에 핵은 '공포의 균형'이라는 명제 하에서 그 존재가 합리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시작된 핵은 '반인륜적' 무기로서의 오명을 벗지 못했다. 1950년대 시작된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제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 평화적 이용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그리고 그 파장은 2011년 한반도 인근의 후쿠시마를 덮쳤다. 그리고 이제 '핵' 문제는 미국의 힘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국가들의 무기가 되었고, 테러의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마저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탈냉전 시대 새롭게 대두된 두 개의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와 핵발전소의 안전성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전쟁 시기 핵 문제의 최전선에 있었던 한반도가 전쟁으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 또 다시 핵 문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은 이제 핵발전소를 수출하고 있으며, 북한 핵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 핵 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핵을 두려워하면서도 스스로 핵 위기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저자 정욱식이 독자에게 하고자 한 말인지도 모른다.

아울러 이 책의 곳곳에서 새로운 세계사 인식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해 준다. 소련에게 과시하기 위해 핵을 사용한 미국이 소련의 참전을 재촉했으며, 이는 소련의 중재에 의해 핵 사용 없이도 태평양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는 기회를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핵이 사용되지 않았다면 한반도도 분단되지 않았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맥아더의 해임은 핵 문제와 전쟁 전략을 둘러싼 트루먼과 맥아더의 갈등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기실 그 안에는 핵무기 사용에 맥아더보다 더 신중했던 리지웨이로 하여금 한국전쟁을 지휘하도록 하는 트루만의 고도의 전술이 숨어 있었다. 아울러 한국전쟁을 '예방 전쟁'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전쟁 개전의 배경으로 언급되는 애치슨 라인의 숨은 뜻은 핵전략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간과되어 왔던 냉전 시대 핵무기와 아시아의 문제 역시 정면으로 건드렸다. 지금까지 냉전사는 핵전쟁의 문제를 미소 간의 문제로만 그려왔다. 그러나 핵무기를 사용하였거나, 그 사용이 심각하게 고려된 곳은 아시아 지역뿐이었다는 사실, 이로 인해 한국전쟁 시 핵 사용을 고려할 때 유엔에서 아시아 지역의 대표들이 강력하게 항의했었다는 사실, 1963년 중국의 핵실험이 미국의 베트남 전쟁 전략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 그리고 지금 북핵 문제가 미국 대외 전략의 핵심 문제 중 하나가 되어 있다는 사실 등에 주목하고 있다. 핵이 없어도 죽은 후세인, 핵을 포기해도 죽은 카다피, 핵 문제로 세계적 인물이 된 아마디네자드와 김정일 등에 대한 서술도 아시아 문제와 함께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사실 이 책의 백미는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이미 경제학과 사회과학에서 전면적인 비판이 있었던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비판이다. 인간은 합리적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적지 않다. 이론적으로 보면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사야 하지만, 인간들은 고급 브랜드에 빠져든다. TV에서 명품과 일반 제품의 품질을 비교하면서 차이가 별로 없다는 보도를 해도 명품 브랜드에 대한 열기는 식지 않는다. 그만큼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들에게 핵무기의 통제를 맡긴다는 것은 결코 훌륭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위험성'에 대해서도 대처해야 한다. 잘못 작동된 컴퓨터에 의해 핵전쟁 직전까지 갔었던 1980년과 1995년 핵전쟁의 위험은 그 대표적 경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자연의 힘에 의한 강진과 쓰나미는 인간의 의도가 아니며, 인간이 의도적으로 막을 수도 없는 문제이다. 결국 이러한 점으로 인해서 '핵'은 어느 상황에서나 결코 '안전한' 또는 '평화적'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핵 문제와 현대 세계사를 다루다 보니 하나의 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울러 전반부는 통사의 형식으로 서술되다가 뒷부분에 가면 이슈 중심의 서술로 인해 글의 핵심을 놓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신문에 연재된 글을 책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난 점이겠지만, 책으로서의 완결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슈 중심으로 갈 것인지 통사 서술로 갈 것인가를 결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일관되게 통사적으로 서술되었으면 더 많은 통찰력과 정보를 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 문제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은 중요한 경고를 주고 있다. 핵 문제가 전쟁의 문제만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의 문제라는 점, 지금 핵 문제는 한국 사회에 가장 핵심적 문제의 하나라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또 다른 안타까움을 주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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