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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강탈자의 습격 "남편이 진짜 남편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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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강탈자의 습격 "남편이 진짜 남편이 아니에요!" [김용언의 '잠 도둑'] 잭 피니의 <바디 스내처>
아주 오래전, 인간 사이에 뭔가 이종(異種)이 섞여 있다는 느낌을 어떤 식으로 표출했는가. 집에 틀어박혀서 이상한 주문을 외운다거나 신비스런 약초로 사람들의 병을 곧잘 낫게 해주는 기이한 존재는 당장 마녀라 불렸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혼자 주문을 외우거나 춤을 추는 이는 꼬리와 뿔이 달린 악마로 여겨졌다. 혹은 낮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데 밤에만 활동적으로 돌아다니는 창백한 이는 뱀파이어라 불렸다. 사람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 각자 자신들의 취향과 기호와 사회적 관습에 부합하지 않는 것에 특정한 이름을 붙이고 비정상적인 존재로 낙인찍었다.

그런데 혹시나, 마녀나 악마나 뱀파이어, 늑대인간처럼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어떤 특징이 없다면, 우리 사이에 스며든 이종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그에 대한 가장 공포스러운 대답은 아이라 레빈의 소설이자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로즈마리의 아기>, 월터 모슬리의 소설이자 칼 프랭클린의 영화 <블루 데빌>, 조지 로메로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잭 피니의 1955년작 소설 <바디 스내처>다. (이 작품 역시 1956년 돈 시겔의 <우주의 침입자>, 1978년 필립 카우프만의 <우주의 침입자>, 1993년 아벨 페라라의 <보디 에일리언>, 2007년 제임스 맥티그의 <인베이전>으로 각각 영화화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1976년 10월 28일 목요일 저녁 6시부터다. 20대 후반의 의사 마일즈 베넬은 나고 자란 마을, 캘리포니아 주 밀 밸리에서 개업했다. 목요일 저녁 그의 진료실에 고등학교 시절 여자 친구 베키가 나타난다. 그녀의 하소연인즉슨, 사촌 윌마가 "아이라 삼촌이 진짜 삼촌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마일즈는 베키와 함께 아이라 삼촌을 찾아가지만, "머리카락 한 올, 주름 하나, 말 하나까지, 동작과 생각하는 것 모두 본인"이라고 확신하며 윌마의 정신 상태를 의심한다. 곧 윌마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속출한다. 자신의 엄마가, 학교 선생님이, 남편이, 누나가 '진짜 그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병원을 드나든다. 그리고 며칠 후, 마일즈는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실물의 증거를 보게 된다. 친구인 소설가 잭의 집 지하실에 어떤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 <바디 스내처>(잭 피니 지음, 강수백 옮김, 너머 펴냄). ⓒ너머
그건 시체라기보다 "한 번도 살아 있던 적이 없는 공백과도 같은 시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았다. "튼튼하고 건강한 몸인 데다가, 근육도 탄탄하잖아. 하지만 이건 결코 풋볼이나 하키를 해본 적이 없고, 시멘트 층계에서 굴러 떨어진 적도, 뼈가 부러진 적도 없는 몸이야. 마치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듯한…." 다시 말해, "공백이고, 미완성이고, 마지막 압인이 찍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시체가 잭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완전한 복제 상태에 이르기 전의 일종의 잔인한 패러디, 러프 스케치 같은 바탕그림으로서의 '나'.

흥미롭게도 잭은 마일즈가 그 사실을 지적하기까지 시체와 자신과의 유사성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시체가 잭의 체격과 이목구비까지 똑같이 닮았으되 잭의 인생 경험이 쌓인 얼굴의 표정까지는 '아직까진' 갖지 못했다는 의미이자, 혹은 거울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오히려 자기 자신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심리 상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한다.

이윽고 마일즈와 베키, 잭과 잭의 아내 시오도라는 마을 곳곳의 지하실에 그 같은 시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층계 아래에는 작은 붙박이장이 하나 있어. 빈 공간을 베니어판으로 막아서 창고로 쓰고 있는 거지. 들어 있는 것의 반은 낡은 잡동사니야. 판지 상자에 넣어둔 헌옷, 퓨즈가 나간 전기 제품, 오래된 진공청소기, 다리미, 갓전등… 뭐 그런 것들이지. 거의 열어보는 일이 없어. 그것 말고도 오래된 책들이 좀 들어있어. 시체는 거기서 찾았어."

심지어 그 시체는 마일즈와 잭의 경악한 시선 앞에서 점점 그 집 주인의 얼굴로 변해가기까지 한다. 너무 유명하지만, 카프카의 <시골 의사>의 그 문장을 다시 빌려오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니까요."

정신분석의 매니는 마일즈와 잭의 증언에 회의적으로 반응한다. 그는 이것이 광학적 착각, 집단 히스테리, 자기 암시와 비슷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기대하던 걸 똑똑히 보았던 거야! 행여나 보게 되지는 않을까 죽도록 두려워하던 걸 말이야! 그 상황에서 자신이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던 걸 보았던 거야."

하지만 잭은 이성을 가장한 표피적 설명에 수긍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과 잘 들어맞지 않는 다른 기묘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세계로부터 잊히고 무시"되는 것들 중 대부분은 사실 거짓말이거나 착각이겠으나 극히 일부, 특히 밀 밸리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은 그렇지 않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 마일즈의 집 지하실에서 어떤 알 수 없는 식물의 꼬투리처럼 보이는 것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 꼬투리로부터 흘러나온 물질은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의 형체로 바뀌어간다. 시체, 그리고 곧 마을 사람들과 똑같은 복제인간으로 변형될 존재는 이 꼬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알 수 없는 힘으로부터 가공할 만한 침입이 일어난다. 바디 스내처, 신체 강탈자.

<바디 스내처>가 1955년 잡지 <콜리에스>에 연재될 때 독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굶주린 늑대'처럼 게걸스러웠다고 한다. 그리고 곧이어 돈 시겔의 영화가 등장했고, 영화에서 묘사된 냉엄하고 소름끼치는 소외의 분위기는 직전 매카시즘의 광풍 한복판에 있었던 미국 관객들에게 피부로 스며드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정작 원작자 잭 피니 자신은 1950년대의 냉전 분위기라든가 반공산주의 혹은 반매카시즘 어느 쪽도 의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냥 재밌게 잘 읽힐 얘깃거리"를 의도했다고 시종일관 부인했다.

작가의 의도가 '순수'하다고 해서 '아, 이 이야기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없구나'라고 순수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바디 스내처>가 주는 진정한 공포, 그러니까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공간과 가까운 사람들이 일순간 미묘하게 일그러진 느낌이 들 때, 제정신으로 남아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극심한 압박감에 대한 선명한 묘사는 사실 매우 보편적이다. 그 분위기가 매카시즘의 시대에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뿐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군중 속의 남자>를 떠올려 본다. 이 작품의 화자는 별다른 특징을 읽어낼 수 없는 어떤 남자가 기를 쓰고 군중 속에 머무르려 하고, 군중이 사라지면 안절부절 못하며 밤새도록 열에 들뜬 사람처럼 거리를 헤매다가 아침 해가 밝으면 그제야 환희에 찬 얼굴로 다시금 광장으로 달려 나오는 걸 지켜본다. 처음엔 악마 혹은 범죄자의 전형이라고 생각하던 남자의 행로를 추적하다가 화자는 끝내 "그에 대해서, 그의 행동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며 인식적 공포의 충격에 사로잡힌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영화 <블루 데빌>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은 또 어떤가. 여기서 악령은 사람들의 가벼운 접촉만으로 숙주를 옮겨 다닌다. 그 정체를 깨달은 주인공 형사가 악령에 쓰인 사람을 좇아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고, 대도시 거리를 가득 채운 무수한 인파 속에서 악령은 손쉽게 이 사람 저 사람을 옮겨 다니며(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들과 어깨와 손을 부딪친 다음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채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는지!) 그때마다 조롱하듯 형사를 돌아보는 시퀀스다. 비슷비슷한 옷차림에, 딱히 구분할 수 없는 아주 평범한 직장인들의 인파 속에서 단 한명씩 나를 돌아보며 냉혹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그리고 그 얼굴이 계속 바뀐다는 공포.

알지 못하는 존재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얼굴로 나타났을 때, 혹은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자부하던 대상이 순식간에 꿰뚫어볼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될 때의 언캐니한 감정은 공포 소설에서 유용하게 써먹는 가장 기본적이며 절대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바디 스내처>는 외계로부터의 침입이라는 과학소설 전제에 이 같은 호러 소설 장치를 솜씨 좋게 결합시킴으로써, 정확한 과학적 베이스보다는 현대 사회 속에서 느끼는 보편적인 끈질긴 공포와 더 넓은 표면적을 맞대게 된다. <바니 스내처>에서 마일즈는 뭔가 기이하게 변해버린 마을의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한다.

"만약 내가 화가라면 (…) 우리가 지나쳤던 집들의 창문을 일부러 일그러지게 그렸을 것이다. 반쯤 올려진 블라인드에 달린 제일 아래쪽 날의 양쪽 끄트머리를 밑으로 구부려서, 마치 두터운 눈꺼풀을 가진 눈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 초피와 층계 난간이 오래된 집을 지키려는 듯이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서 자신을 감추기 위한 음울한 노력의 일환이다. 내가 그린 집들은 마치 몸을 움츠리고,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질적이고, 내성적이고, 분노를 내포한 이 사악한 집들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악의에 찬 눈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두 인간을 응시하고 있다. (…) 그리고 나는 모든 사물에 실물과는 약간 어긋난 색을 칠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옛 친구들의 눈과 얼굴과 몸짓과 걸음걸이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자들" 모두가 적으로 돌진해 들어오며, 주인공들을 제외하고 광장에 모인 (변형된) 사람들은 모두 배지를 달고 있다. 원래 마트 바겐세일 때 모두 부착하는 붉은 바탕에 흰 글자 배지가 아니라 파란색 바탕에 노란 글자의 배지다. 너무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비교 대상은 나치 시절 유태인, 동성애자, 종교인들에게 각각 다른 색깔의 배지를 부착시킴으로써 타인과 구별시켰던 행태다. 그러니까 그전까지 구별되지 않는 존재들이 한순간에 구별되는, 이름 없던 것들이 이름이 부여되고 이웃의 얼굴이 흉포한 적의 얼굴로 돌변하는 스펙터클이 안겨다주는 이질감과 공포.

<바디 스내처>에서 또 하나의 진짜/가짜 경계를 넘나드는 서브 플롯은 마일즈와 베키의 러브스토리다. 둘은 각각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금방 이혼한 전력이 있다. 마일즈는 예기치 않은 사건 앞에서 베키와 다시 감정적으로 깊숙이 얽히는 것, 유혹받는 상황에 처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향해 "문제는 계속 결혼 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거야. (…) 기본적으로 안정감이 결여되어 있어. 겉은 어른이라도 속으로는 손가락을 빠는 어린애에 불과해. 미성숙함이 극에 달한 나머지, 책임 있는 어른이 될 자격도 없는 아이야. 넌 의심의 여지가 없는 돌팔이인데다가 돈 후안 뺨치는 바람둥이야. 진짜가 아닌 엉터리"라고 읊조리다가 "이런 말들이 재미있다기보다는 사실에 가깝지 않나 하는 거북한 느낌을 맛보며 면도를 끝냈다." 마일즈는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과 베키와의 관계를 동시에 경험하며 진짜 '나'로 거듭나야만 한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튀어나오는 자신의 감정과 행동, 윤리의 수준을 모두 시험당한 다음에야, 그는 진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시적인 당혹감, 타인의 시선을 경유하여 겉으로 보여지는 나/마음 속으로 그려보는 나 사이의 불일치라는 아주 가벼운 수준의 경이로움을 서서히 극대화시킴으로써 뛰어난 SF 호러소설 <바디 스내처>가 완성되었다. <바디 스내처>가 이후 발표된 후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고두고 어떤 레퍼런스로 기능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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