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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소설, 한 번 읽고 버리는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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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소설, 한 번 읽고 버리는 '쓰레기'? [김용언의 '잠 도둑'] 왜 '범죄 소설'인가?
'프레시안 books'에 '장르 소설' 기명 칼럼 '잠 도둑'을 연재해온 김용언 씨가 최근 <범죄 소설>(강 펴냄)을 펴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셜록 홈즈'로 상징되는 고전 추리 소설부터 '필립 말로'로 상징되는 하드보일드 소설까지 '범죄 소설'의 역사를 19세기에 출현한 자본주의 도시의 일상과의 관계 속에서 살핍니다.

그간 '잠 도둑'에 실린 여러 서평을 꿰뚫는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이 책의 머리말을 김용언 씨의 동의를 얻어 발췌·게재합니다. <편집자>

이미 결말을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연속해서 백번쯤 읽는 건 '반전' 강박증으로부터 탈출하게 되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처음 읽었을 땐 발견하지 못했던 디테일을 찾아내고, 그러다 싫증나면 내 스스로가 그 안으로 들어가 전혀 다른 결말을 꾸며대며 새로운 버전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내 도서관을 발견하면서 신세계가 펼쳐졌다.

가장 먼저 아르센 뤼팽이었다. 로맨틱한 괴도가 펼치는 밤의 모험담은, 물론 아동용으로 고쳐쓴 탓도 있었겠지만 동화책의 연장선상에서 쉽게 읽혔다. 도서관에 있는 뤼팽 책을 모조리 읽은 다음, 그 옆 칸에 꽂혀있던 셜록 홈즈 시리즈로 넘어갔다. 처음으로 물리적인 '죽음'을 접했다. 과거의 원한, 탐욕, 애증, 살의. 이 모든 것이 홈즈 앞에 펼쳐지는 죽음의 이유들이었다. 범죄의 수수께끼 풀이 자체도 흥미진진했지만, 나는 처음 접하는 인간의 어두운 면에 홀딱 사로잡혀버렸다. 홈즈 다음으로는 당연하게도 애거서 크리스티였고, 그 다음엔 에드거 앨런 포였고, 그 다음엔 앨러리 퀸과 코넬 울리치였고 그리고 또….

추리 소설을 접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진화를 겪는 과정에는 각자의 히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증언에 귀기울여보면, 그렇게 어린 시절 추리 소설을 한동안 읽다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면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왜 그럴까. 한국에서 추리 소설이 아직까지도, 여전히 마이너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걸까.

반전 강박증 때문일까? 이 소설에서의 범인을 이미 알아버렸으니 그 책을 다시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추리소설은 '구입'하지 않고 '대출'해서 한 번 읽는 책쯤으로 여기는 것 아닐까? 혹은 '누가 범인인가'에 관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은 두고두고 옆에 두고 인생의 벗으로 삼을 만한 양서가 아니기 때문일까? 혹시 추리 소설 자체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하여 이 장르를 연구할 만한 문학 갈래로, 진지한 텍스트로 바라본 이들은 단 한 명도 없는 걸까?

순전히 호기심에서 추리 소설 이론서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엔 전혀 번역되지 않은 무수한 저서와 논문들이 영어권에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밤마다 그 자료들을 찾아보느라 웹 구석구석을 헤맸고 낮에는 도서관에서 누구도 대출해보지 않은 것이 분명한 새 책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많이 읽는 곳에선 많은 자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영미권에선 추리 소설이 황금기를 맞이했던 1930~40년대부터 거대한 범죄 소설 세계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그 내적 원리와 동력, 이데올로기적 측면 등 다양한 관점의 연구를 지속해왔다. 범죄 소설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에르네스트 만델의 <즐거운 살인>), 기호학적 측면(움베르토 에코의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 독자 수용적 측면(에린 스미스의 <하드보일드 : 노동 계급 독자와 펄프 잡지>, 마이클 데닝의 <기술자 말투 : 미국의 다임 노블과 노동 계급 문화>), 타 학문과의 상호 연관성(로널드 토머스의 <탐정 소설과 법의학의 발달>) 등이 대표적인 연구 사례들이다.

이 연구서들을 찾아 읽으면서 특히 19세기 영국에서 출현한 절대적인 영웅 셜록 홈즈,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등장한 하드보일드 탐정 아이콘 필립 말로와 샘 스페이드가 주요한 대상으로 다뤄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두 개의 시기, 두 가지 인물형은 범죄 소설의 질적 변환을 대표하는 가장 좋은 예이기 때문이다.

이 중 에르네스트 만델과 프랑코 모레티 등은, 범죄 소설이 범죄를 환원 가능한 수수께끼의 차원으로 떨어뜨리고 이 수수께끼를 한 치의 오차 없이 해결하는 탐정을 영웅시한다는 점에서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에 뿌리깊이 연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편, 마이클 데닝이나 에린 스미스 등은 미국의 '다임 노블'(19세기 미국에서 발생한 싸구려 센세이셔널 픽션을 통칭하는 용어)과 범죄 소설에 열광했던 독자층과 사회적 콘텍스트를 함께 아우름으로써 그 시대의 문화 정치학을 읽어내려 한다.

발터 벤야민과 다나 브랜드로 대표되는 일군의 학자들은 도시 문학으로서의 범죄 소설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이들 연구 중 대부분은 저자의 국적이나 전공에 따라 필연적으로 한 시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약점을 피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에드거 앨런 포가 추리 소설을 쓰기 시작한 19세기 중반의 미국(다나 브랜드의 <19세기 미국 문학 속 구경꾼과 도시)), 코난 도일과 에드거 앨런 포가 활동한 빅토리안 시기(로렌스 프랭크의 <빅토리아 시대 탐정 소설과 증거의 본질>), 대공황과 뉴딜 정책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의 하드보일드 소설(션 맥컨의 <미국의 탐정 :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과 뉴딜 자유주의의 흥망성쇠>) 등으로 한정시키는 식이다.

그 때문에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질적 변환을 겪은 범죄 소설의 전체 구도를 조망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19세기 혹은 20세기 어느 한 쪽에 속하는 범죄 소설의 부분적 특성이 마치 범죄 소설의 전체인 양 받아들이게 되는 오류를 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게 아니라면, 다양한 시기에 관한 다양한 저자들의 에세이들을 한 책 안에 합쳐버림으로써 이미 장르를 통달해버린 팬들만을 위한 앤솔로지 기능에 그치는 경우도 잦았다. 어느 경우든, 범죄 소설의 기원에 대해 총괄적으로 서술하는 시야의 확장과 적절한 집중도를 동시에 만족시키진 못했다. 오히려 그 힌트는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읽던 중 찾아왔다.

19세기 중반, 에드거 앨런 포는 단편 '군중 속의 남자'(1840년)와 '모르그 가의 살인'(1841년)을 발표했다. 전자에서는 대도시의 군중을 꿰뚫어볼 수 있다 자신했던 화자가 정체불명의 남자를 밤새도록 추적한 끝에 자신의 통찰력에 회의를 느낀다. 후자에서는 당시 '세계의 수도' 파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을 초인적인 능력과 논리로 무장한 탐정 오귀스트 뒤팽이 깨끗하게 해결한다. 이 선구자적인 단편들에는 이후 범죄 소설의 두 가지 원형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19세기 말부터 1920년대까지 영국에서 융성했던 추리 소설과 '모르그 가의 살인' 그리고 1930년대 이후 미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하드보일드 소설과 '군중 속의 남자'를 비교해 읽어본다면 이 말 뜻을 이해할 것이다. 시작이 이미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던 셈이다.

후세 독자들은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들을 읽으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19세기에 출현한 공간 대도시와 그 속에서 경험하는 새로운 감각과 세계관과 시스템 모두가 범죄 소설의 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음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다. 즉 범죄 소설 자체가 대도시에서 탄생한, 그리고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의 갈등을 형상화한 현대적 도시 문학이라는 전제,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모더니티와 시공간을 비춰 보이는 하나의 거대한 모나드라는 가설을 세워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뒤늦게 말해두자면, 이 책 <범죄 소설>에서는 '범죄 소설'과 '추리 소설', '하드보일드 소설'이라는 용어를 구분하여 사용할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에서 시작되어 19세기 말 영국을 중심으로 1920년대까지 융성했던 '누가 살인을 저질렀는가(whodunit)'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장르에 대해서는 '추리 소설', '왜 살인이 벌어졌는가(whydunit)'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192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창작되었던 장르에 대해서는 '하드보일드 소설'이라 부를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을 총체적으로 통칭하는 용어로 '범죄 소설'을 택하려고 한다.

▲ <범죄 소설>(김용언 지음, 강 펴냄). ⓒ강
(…) 셜록 홈즈로부터 샘 스페이드, 필립 말로로 이어지는 이 간략한 계보학은 결국 범죄 소설을 '도시 문학'의 한 종류로 탐구해야 하며,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도시에서의 신경증적 삶이 범죄 소설을 통해서만이 그 어떤 장르보다도 투명하게 반영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발버둥이다. 물론 문화사와 그 재현의 방식은 역사적 맥락과 사회사, 경제사, 사상사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순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다소 어지러울 만큼의 정보들의 융단 폭격 속에서 어떤 질서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면, 범죄 소설을 백안시하고 진부한 비난만 되풀이하는 외부의 시선을 받아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한다.

다시 한 번 단순한 고백. 나는 범죄 소설의 열렬한 독자로서, 대체 나를 사로잡는 이 매혹적인 장르가 어떻게 해서 발현되고 발전하였는가를 추적하는 또 하나의 '탐정'이 되겠다는 욕망, 혹은 각 토대에서 탄생한 독자적인 존재인 셜록 홈즈, 콘티넨털 옵, 샘 스페이드, 필립 말로를 뒤쫓는 탐정이 되겠다는 욕망으로부터 이 책을 시작할 것이다.

프랑코 모레티가 19세기 문학 시장 연구에 관한 저서 <그래프, 지도, 나무 : 문학사의 추상적 모델들>에서 잽싸게 선취한 것처럼, "우리는 '재현하는 개인'을 선택하여, 그를 통해 장르를 전체로 정의해볼 것이다. 말하자면 셜록 홈즈와 추리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와 '교양 소설(Bildungsroman)'처럼 말이다. (…) 유형학적 사고에 있어서는 진짜 대상과 지식의 대상 사이에 아무런 갭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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