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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애플인 줄 알았는데 아이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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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철수, 애플인 줄 알았는데 아이폰이 없다" [인터뷰]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 "安, 단순해져라!"
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50일도 채 안 남았다. 애초 '1987년 체제'를 대신할 '2013년 체제'가 예고되기도 했었던 대통령 선거는 예상 외로 지리멸렬하다. 빈부 격차, 세대 갈등 등을 놓고서 한국 사회를 뒤흔들 대논쟁이 벌어지기는커녕 세 후보 모두 감동을 주지 못한 채 굼뜬 걸음이다.

이 와중에 그나마 대중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단일화 움직임이다. 민주통합당 문 후보가 계속해서 단일화를 촉구하는 반면에, 무소속 안 후보는 상대적으로 서두르지 않는 모양새다. 겉만 보면, 문 후보가 조급하고 안 후보는 느긋하다. 하지만 속사정도 그럴까?

'안철수 현상'의 후폭풍으로 대통령에 도전한 안철수 후보의 속도 타들어간다. 왜냐하면, "국민의 뜻에 따라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는 했는데, 생각만큼 '안철수 바람'이 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자 구도는커녕 2자 구도에서도 안 후보의 당선을 100퍼센트 자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 후보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선거를 50일 앞두고 정치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이 시점에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정치의 몰락>(민음사 펴냄) 저자)를 만났다. 박 대표는 지금 안철수 후보는 '여덟 개의 문' 앞에 있다며, 어떤 문을 열지에 따라서 안 후보의 정치적 운명은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과연 어떤 문이 '천국'으로 가는 것이고, 또 어떤 문이 '지옥'으로 가는 것일까? 10월 30일 여의도에서 박성민 대표를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


▲ 박성민 '정치 컨설팅 민' 대표. ⓒ프레시안

2012년, '1987년의 악몽'은 없다?

프레시안 : 12월 19일 대선이 이제 50일 남았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큰 화두는 야권 후보 단일화입니다. 현재까지는 아무래도 안철수 후보가 열쇠를 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 과연 단일화를 할까요? 단일화를 한다면 누구로 할까요?

박성민 : 그 질문에 답을 하려면 안철수 후보에게 어떤 정치적 선택지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지금 안철수 후보 앞에는 여덟 개의 문이 있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길이 나타날 텐데 어떤 길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고 어떤 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겠지요. 또 어떤 문은 당장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길로 연결되지 않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길로 안내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길도 험난한 길과 순탄한 길로 갈리겠지만요.

프레시안 : 문이 여덟 개나 됩니까? (웃음) 우선 ①(단일화 성사 후) 양자 구도에서 안철수 후보가 승리하는 경우②(단일화 실패 후) 삼자 구도에서 승리하는 경우, 이렇게 두 가지가 있군요. 안철수 후보와 그 지지자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문입니다. 일단 이 문들부터 얘기해볼까요?

박성민 : 그 두 문은 논외로 합시다. 그 경우에는 논평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안 후보가 기대에 부응해서 대통령을 잘하길 바랄 수밖에 없으니까요. ③3자 구도에서 안철수 후보가 3등으로 낙선하는 경우도 논외로 합시다. 대체로 역대 선거에서 제3후보 대부분은 이 길을 걸었지요. 정주영(1992년), 이인제(1997년), 이회창·문국현(2007년) 등….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이 경우에 안철수 후보의 정치적인 미래는 아주 어두워지겠죠. 명분과 실리 모두 잃는 경우니까요.

프레시안 : 나머지 다섯 가지 문은 어떤 게 있을까요? 기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결국 단일화가 실패해서 3자 구도로 선거를 치르는 경우부터 살펴볼까요. 안철수 후보가 3자 구도에서 3등이 아닌 2등으로 낙선하는 경우는 어떤가요? 여론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꽤 큰데요.

박성민 : 그것도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봐야 해요. ④3자 구도에서 안철수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근소한 차로 뒤져서 2등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 안 후보는 대통령이 되는 문을 연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순탄한 길로 가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갖게 되겠지요. 비록 대통령으로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정권 교체 실패의 비난은 안 후보가 아니라 문재인 후보에게 쏟아질 테니까요. 그렇지 않겠어요?

이 경우 대중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건 안철수 후보입니다. 만약 문재인 후보가 막판에 안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출마를 포기한다면 정권 교체가 가능했을 테니까요. 결국, 이 경우에 안 후보는 비록 낙선하지만, 한국 정치의 실력자로 부상할 겁니다. '무소속 대통령' 당선이 거의 실현될 뻔 했으니까요.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이자, 안 후보가 의지만 있다면 제3정당을 만들 수도 있을 거예요.

프레시안 : 그런데 만약 결과가 현재의 여론 조사 결과처럼 나오면 어떻습니까? ⑤3자 구도에서 안철수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 경합을 벌이기는커녕 문재인 후보 쪽에 치우쳐서 2등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1987년 대선 때가 그랬지요. 노태우 36.6퍼센트, 김영삼 28.0퍼센트, 김대중 27.1퍼센트.

박성민 : 지금 3자 구도를 가정한 여론 조사 결과가 1987년 그 때와 비슷합니다. 박근혜 후보는 30퍼센트 후반에서 40퍼센트 초반 정도의 지지율이 나옵니다. 하지만 안철수 후보, 문재인 후보는 20퍼센트에서 경합을 벌이는 상황입니다. 물론 안 후보가 조금 더 높게 나오고 있지만요.

똑같은 2등이지만, 이렇게 될 경우에는 안철수 후보가 큰 정치적 부담을 안아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3자 구도에서 3등으로 떨어지는 경우(③)보다 더 큰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③의 경우는 그를 정치권으로 불러낸(!) 대중의 배신(?)일 가능성도 있지만 ⑤의 경우는 '안철수 현상'에 투영된 대중의 열망을 안철수 개인이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거든요.

이 경우에는 안철수 후보가 선거 후에 야권의 구심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안 후보의 경쟁력이 별 거 아니라는 게 확인됐는데 누가 그를 따르겠어요. 대중은 안 후보 대신 새로운 신상(품)을 찾아서 떠날 테고, 정치인도 그에 대한 기대를 접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정권 교체 실패에 대한 비판도 문재인 후보와 같이 감당해야 할 테고요.

프레시안 : 그런데 현재의 여론 조사 결과는 ⑤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선거에서는 어떨까요? 한쪽 지지자, 예를 들자면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들이 투표장에서 안철수 후보에게 전략적으로 표를 주는 상황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안 후보의 지지자 중에는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는 이들도 있는 듯해요.

박성민 : 합리적인 가정입니다. 이번 대선이 3자 구도로 가더라도 1987년의 재연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당시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는 영남, 호남의 지역 기반과 같은 절대 지지층이 있었어요. 그러니 한쪽 지지층이 다른 쪽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일 따위는 애초에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그렇지 않아요. 일단 출신 지역이 부산으로 겹칩니다. 또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성향, 구체적인 정책, 지지층의 선호도 상당히 겹쳐요. 즉 문재인 후보 지지자가 당장 안철수 후보에게 표를 준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3자 구도에서도 한 쪽 후보로 표가 쏠리는 '전략 투표' 가능성이 꽤 큰 편이죠. 물론 두 사람에게 실망한 유권자가 투표 불참으로 이탈할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만, 여론 조사에 나타난 숫자를 보면 그건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질문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답은 분명히 '정권 교체' 쪽이거든요.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재입니다. 1997년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이인제 후보의 출마였어요. 당시 후보가 19.2퍼센트를 얻었습니다. 매번 선거 때마다 그랬지만, 1997년도에도 'DJ(김대중) 비토' 분위기가 상당했어요. 그런데 여권 지지층 중 상당수가 '김대중 당선'을 도울 수 있는 '이인제 지지'를 선택합니다.

프레시안 : 왜 그랬나요?

박성민 : 김영삼 전 대통령 때문이었어요. 당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가 막판에는 김 전 대통령과 그 측근을 만신창이로 만들어요. 심지어는 화형식도 하고 그랬어요. 전통적인 김 전 대통령 지지층 입장에서는 "저러다 昌(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면 YS(김영삼)가 옥살이를 할 수도 있겠다" 이런 공포가 있었습니다. 그런 YS 지지층의 표가 상당수 이인제 후보에게 간 거예요.

사실 2002년에 호남이 노무현 후보에게 몰표를 준 데도 'DJ 변수'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습니다. 남북 정상 회담을 둘러싼 잡음, 아들 비리 등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좋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김 전 대통령이 꽤나 수난을 당할 게 점쳐졌어요.

호남 사람이 영남 후보인 노무현 후보에게 몰표를 준 데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거예요. '노무현 당신이 예전에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우면서 호남 그리고 김대중과 갈등도 있었던 건 알아. 하지만 김대중이 키운 민주당 후보잖아. 적극 지지해줄 테니, 민주당은 깨지 마, 특히 선생님 등에 칼은 꽂지 마.'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 후 대북 송금 특검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이런 기대를 깨버렸지만요.

프레시안 : 그런데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없다?

박성민 : 맞아요. 만약 이명박 정부 5년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계속 시달리고 그런 상황이 계속되었다면, 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문재인 후보로 똘똘 뭉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안철수 후보도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니까요. 자기들의 힘으로 노 전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구심점 역할을 할 노 전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선택을 바꾼다 해도 이상할 게 없지요.

안철수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양보'!

프레시안 : 다시 안철수 후보의 선택으로 얘기를 돌아봅시다. 우선 ⑥안철수 후보로 단일화가 되었지만 패배하는 경우가 있겠군요.

박성민 : 네, 그 경우에도 안철수 후보의 정치적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아요. 물론 문재인 후보나 민주통합당이 얼마나 지원을 적극적으로 했는지 등이 논란이 있겠지요. 하지만 결국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는 후보로 모든 게 집중되는 판입니다. 즉, 패배의 책임도 고스란히 후보가 안아야 할 몫이에요. 더군다나 민주당이 2010년 경기도지사, 2011년 서울시장, 2012년 대통령 선거 모두 후보를 내지 못하고 '선거 대행사'라는 조롱을 당하면서 밀어준 결과일 테니까요.

아까도 언급했듯이 안철수 현상에 나타난 대중의 열망을 안기에는 안 후보가 부족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일이거든요. 결국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한 것이지 '안철수'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는 것일 테니까요.

덧붙이자면, 저는 안철수 현상을 한국 정치의 '블랙 스완(검은 백조)'으로 봅니다.

프레시안 : <블랙 스완>(차익종 옮김, 동녘사이언스 펴냄)을 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블랙 스완을 '극단적 사건'으로 봤잖아요?

박성민 : 네, 그런데 저는 그런 탈레브의 정의가 불만스럽습니다. 반면에 <커런시 워>(신승미 옮김, 더난출판사 펴냄)의 저자 제임스 리카즈는 블랙 스완을 "일상적 사건의 극단적 결과"로 봤어요. 제3후보,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논의는 선거 때마다 있었어요. 안철수 효과 그리고 최근 안철수 후보를 둘러싼 난리법석은 그런 점에서 일상적 사건의 극단적 결과죠.

아무튼 안철수 후보가 양자 대결에서 패배할 경우, 안 후보 하기에 따라서 기회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험난할 게 확실합니다. 당장 정부, 국회를 장악한 새누리당이 안 후보에게 그런 기회를 주겠어요? 아마도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안 후보를 만신창이로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그 새 대중의 관심도 다른 곳으로 옮겨 갈 테고요. 어쩌면 '희망'이 순식간에 '환멸'로 바뀔 가능성도 있어요.

프레시안 : 이제 안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를 하는 경우가 있나요? 그것도 두 가지 경우가 있겠군요. ⑦문재인 후보로 단일화가 되어 문 후보가 승리하는 경우 ⑧문재인 후보로 단일화가 되어 문 후보가 패배하는 경우. 두 경우 모두 안철수 후보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 아닌가요?

박성민 : 맞아요. 두 경우 모두 안철수 후보 입장에서는 잃을 게 없는 상황입니다. 우선 ⑦이 되면, 문재인 정부에서 안 후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후보가 가졌던 것보다 위상이 더 높아져요. 사실상 '킹메이커' 아닙니까? 새로 만들어지는 당의 대표든 아니면 위상이 높아진 총리든 (총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 않을 것입니다만) 대통령과 긴장 관계를 가지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협조하고 현안에 따라서는 비주류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긴장 관계를 유지해도 손해될 것은 없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졌다(⑧) 해도 안철수 후보는 새로운 희망의 구심이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문 후보와 민주통합당 즉 정통 야권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줬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거예요. 그렇다면, 자연히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키를 안 후보가 쥐게 될 거예요. 안 후보의 야권에서의 위상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패배한 문재인 후보가 야권의 구심점이 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프레시안 : 지금까지 안철수 후보가 선택할 수 있는, 특히 지금 시점에서 의미가 있는 다섯 가지 선택지를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안 후보는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박성민 : 일단 문재인 후보가 양보하기는 어렵습니다. 100만 명이 넘는 선거인단 등이 참여해 선택한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입니다. 후보가 결단한다고 해서 양보를 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어요. 그러니 단일화의 열쇠는 문 후보가 아니라 안철수 후보가 쥐고 있어요. 강 기자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프레시안 : 앞에서 살펴봤지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하는 거잖아요. 문 후보가 이기든, 지든 안 후보는 이번 대선을 딛고 한 계단 더 도약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에 3자 구도든 2자 구도든 자신이 후보로 나선다면,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건 도박을 할 수밖에 없고요.

박성민 : 맞아요. 그래서 안철수 후보와 그 지지자의 고민이 깊어질 겁니다. 지금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정권 교체'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정치'를 선택할 것인가? 국민이 동의하는 혁신 없이 단지 정권 교체만을 위한 단일화는 '새로운 정치'가 아니니까요. 고민이 깊어질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단순한 생각이 좋아요. 사실 현실을 10분의 1로 단순화시키는 것이 정치고, 정치를 다시 10분의 1로 줄이는 것이 선거거든요. 그러니까 현실을 100분의 1로 줄이는 기술이거든요. 지금 안철수 후보는 단순한 생각, 단순한 행동, 단순한 말이 필요합니다. 하여간 생각이 복잡해지면 안 됩니다. (웃음)

안철수 앞에 펼쳐진 여덟 개의 문

① 양자 구도 안철수 승 / ② 3자 구도 안철수 승

③ 3자 구도 안철수 3등

④ 3자 구도 안철수 2등(경합) / ⑤ 3자 구도 안철수 2등(열세)

⑥ 양자 구도 안철수 패

⑦ 안철수 양보 후 양자 구도 문재인 승 / ⑧ 안철수 양보 후 양자 구도 문재인 패

안철수, 애플인줄 알았는데 '아이폰'이 없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더 큰 문제는 안철수 후보가 출마하고 나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못한 데 있어요. 예를 들어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 이런 건 예상 밖의 악수입니다.

박성민 :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안철수 현상에서 사람들이 개인 안철수에게 기대하는 건 '애플'입니다. 그런데 아이폰이 없어요. 아이폰 없는 애플이 무슨 애플입니까? 한 휴대전화 광고에서 나오는 문구처럼 "혁신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걸 보여줘야 하는데 현재까지 안 후보가 그런 걸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 이런 건 어떻습니까?

박성민 : 그날 안철수 후보가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면서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헌법에 200인 이상이라고 되어 있으니…." 그러니까 마음 같아서는 더 줄이고 싶지만 헌법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 200인으로 줄이자, 이런 얘기잖아요? 평소 안 후보가 국회 또 그곳에서 이뤄지는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더 놀란 건 그렇게 국회의원을 줄이면 "돈이 절약되고 그 돈을…"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갑자기 누구와 오버랩이 되어서…. 이렇게 '효율'과 '비용'을 따지다 보면 정치를 할 수 없어요. 정치는 즉 민주주의는 효율적이지 않아요. 그 과정에서 비용도 많이 들어요. 인내심이 필요한 지난한 설득과 타협의 과정,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사실 효율과 비용만 놓고 따져 보면 제일 좋은 게 독재 체제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많은 후발국들이 독재 때문에 이득을 본 점이 있어요. 왜냐하면, 효율과 비용만 따지고 보면 독재가 가장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효과적인 체제니까요. 그런데 안철수 현상은 또 안 후보는 바로 그런 '박정희 패러다임'을 극복하는 게 최우선의 과제 아닌가요?

그렇다면, 효율과 비용을 이유로 정치를 '축소'할 게 아니라,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정치를 '복원'하는 혁신을 이뤄야지요. 그게 바로 애플의 아이폰과 같은 혁신 아닙니까? 아니 혁신을 핑계로 아이폰에서 전화 기능을 빼버리면 그게 어떻게 혁신입니까? 그러니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지 못하는 거예요.

좋은 정치는 '희망'이 아니라 '방법'입니다. 좋은 정치는 '의지'도 아니고 '실행'입니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계속 '희망'이나 '의지'를 얘기하면서, 그것을 뒷받침할 '방법'과 '실행'을 말하지 못합니다. 희망과 의지는 전략이 아니거든요, 방법과 실행이 전략이지. 안철수 현상에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꿈틀거림을 느꼈던 대중들은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프레시안 : 방금 정치의 '축소'가 아닌 '복원'을 얘기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입니까?

박성민 : 정치가 망가지면서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이들이 누군가요? 행정 권력(관료), 사법 권력(법원, 검찰) 또 이들과 유착된 기업 권력. 그리고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는 언론의 전횡. 이들이 사실상 대한민국을 지배합니다. 이들의 특징이 뭔가요? 모두 시민으로부터 선택받지 않은 '비(非)선출 권력'이에요.

이들의 막강한 힘을 감독할 시민이 선출한 권력이 바로 국회입니다. 그런데 국회의 권한을 더 축소하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제왕적 사법부'가 판단하고 관료들이 집행하는 그런 나라로 전락하겠지요. 안철수 후보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이런 것이었나요?

그렇다면, 새로운 정치를 말하는 안철수 후보가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일은, 바로 국회가 어떻게 이런 비선출 권력을 견제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이에요. 예를 들어 행정부를 견제하려면, 안 후보와는 반대로 더 많은 국회의원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지금의 일곱 명에 더해서 국회의원 보좌진을 최소 여섯 명은 더 늘려야 합니다.

그러면 변호사 두 명, 회계사 두 명, 정보 보안 전문가 두 명을 더 고용할 수 있어요. 이 정도는 되어야 국회의원 한 명이 부처의 국 정도라도 제대로 감시할 수 있어요. 변호사, 회계사가 없으니 국민의 세금이 도대체 어떻게 쓰이는지 국회의원이 꼼꼼히 검토할 도리가 없어요. 그냥 관료, 공무원이 얘기하는 대로 고개만 끄덕일 뿐입니다.

슬쩍 '0' 하나가 더 붙었는데도 모르고 넘어갑니다. 반면에 앞에서 얘기한 대로 국회의원의 역량을 강화하면, 그들이 국민의 세금이 엉뚱한 곳에 쓰이지 않도록 감시를 하는 것만으로도 쥐도 새도 모르게 새는 혈세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이야말로 시민의 권력이 강화되는 정치 개혁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시민의 상당수도 안철수 후보의 국회의원 축소 방안을 지지합니다.

박성민 : 밥값 못하니까 밥통을 아예 뺏자, 이런 발상이잖아요? 물론 국회를 혁신하는 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방향이 '축소'는 아니라는 거예요. 우선 이곳에도 부패에 취약한 독점 구도가 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의회 권력을 독점해온 양당(새누리당, 민주통합당)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 양당을 해체하는 방법을 찾아야지요? 방법도 있어요. 비례 대표 제도, 중대선거구 제도 등을 도입하면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가 도입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런데 정작 정치 개혁 논의의 전면에서 얘기되어야 할 이런 선거 제도를 둘러싼 얘기는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국회의원이 시민의 눈치를 안 본다고요? 그럼 시민의 눈치를 보도록 제도를 설계하면 됩니다. 국회의원 임기를 2년으로 줄이면 어떨까요? 지금 미국 하원 의원의 임기가 2년이에요. 임기 2년이라고 미국 의원이 한국 의원보다 질이 더 떨어집니까? 그 반대입니다. 2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나서 다선 의원 되면 되죠.

프레시안 : 지금 여야는 투표 시간 연장을 놓고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만….

박성민 : 안철수 후보나 문재인 후보 입장에서 투표 시간 연장보다 더 중요한 게 결선 투표제 아닌가요? 안 후보가 왜 결선 투표제 같은 걸 먼저 목소리 높이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결선 투표제가 도입되면 지금 이런 단일화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 자체가 의미가 없어요. '결과를 위한 연대'가 아니라 '결과에 의한 연대'를 하면 되니까요.

이렇게 핑계를 대겠지요. "결선 투표제 얘기를 꺼내면 박근혜 후보나 새누리당이 반응을 보이겠느냐?" 그럼, 투표 시간 연장이나 의원 수 줄이는 방안은 박 후보나 새누리당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 같아서 내놓은 건가요? 결선 투표제는 단순히 정략적인 제안이 아니라 한국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입니다.

1987년 이후 어떤 대통령도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적이 없어요. 노태우 전 대통령 36.6퍼센트, 김영삼 전 대통령 42.0퍼센트, 김대중 전 대통령 40.3퍼센트, 노무현 전 대통령 48.9퍼센트, 이명박 대통령 48.7퍼센트. 모두 반쪽짜리 대통령이었습니다. 이렇게 대통령의 정통성의 기반이 약하다 보니 국정 운영을 안정적으로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결선 투표제는 과반수 지지를 얻는 대통령을 만들 수 있습니다. 최소한 60퍼센트가 지지하는 '너희 대통령'이 아닌 '우리 대통령'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가 결선 투표제입니다. "국민 통합"을 외치는 박근혜 후보 입장에서도 마냥 거부만 할 수는 없는 제도예요. 왜 이런 제도를 '혁신'을 외치는 안철수 후보가 공세적으로 제기하지 못하나요.

프레시안 : 덧붙이자면, 지금 안철수 후보가 얘기하는 '정치부터 힘을 빼자'는 주문이 사실 새로운 게 아니에요.

박성민 : 맞아요. 지난 10년간 언론, 시민 단체 등이 계속해서 정치권의 기득권 포기를 압박했어요. 그 결과 지구당 폐지, 이른바 '오세훈 법' 그리고 최근에는 불체포 특권 폐지 얘기까지 나왔어요. 안철수 후보에게 한 번 물어봅시다. 그 결과가 어땠나요? 지난 10년간 정치가 나아졌나요? 그렇게 정치가 약해진 사이에 가장 이득을 본 세력이 누군가요?

안철수 후보가 지금 '정치권부터 특권을 포기하자' 이렇게 주장할 때 그 선한 의도는 알겠어요. 하지만 선한 의도가 꼭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정치가 약해졌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확인을 했다면, 이제는 좀 다른 방향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특히 '혁신'을 강조하는 대통령 후보라면 더욱더 그래야 합니다.

역발상으로 '정치 강화'를 얘기할 수는 없을까요. 사실 군사 독재가 무너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양김(김대중, 김영삼)으로 대표되는 제도권 야당의 강한 구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왜 안철수 후보가 이런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정치의 몰락>에서도 강조했듯이 사회 문제의 해결은 사회적 합의의 토대를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토대를 만드는 일이 정치고, 그 과정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이런 부분을 안철수 후보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선한 의도가 꼭 선한 결과 더 나아가 선한 사회를 만드는 건 아니에요.

'혁신' 아닌 '개선'에 머무른 안철수, 시민의 선택은?

프레시안 : 안철수 후보가 아이폰과 같은 혁신적인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려면 어떤 지점을 공략해야 할까요? 사실 안 후보가 앞에서 살펴본 여덟 개의 문 중에서 좀 더 안전한 방안을 택할지(양보),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 승부수를 던질지(출마)를 가늠하는 기준도 바로 이런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있습니다.

박성민 : 사실 이번 대선은 안철수 후보에게 유리하게 판이 짜여 있어요. 이번 대선의 대립 구도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기득권 대 반(反) 기득권, 과거 대 미래, 분열 대 통합, 낡음 대 새로움.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이 네 가지 전선에서 모두 유리한 포지션입니다. 반면에 박근혜 후보는 모두 불리한 포지션이고요.

기득권 대 반 기득권. 기득권을 가진 세력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자꾸 '너희가 변해라!' 이렇게 외치는 건 기득권이에요. 반 기득권 즉 혁신을 말하는 세력은 '자신을 바꿔요.' 한국 사회의 진보, 보수는 서로 상대를 향해서 '바꿔라' 이렇게 말해요. 하지만 안철수 후보는 이 두 기득권으로부터 물러나 있어요.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셈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의 안철수 후보의 행보는 약간 우려스럽군요. 자꾸 '바꿔라' 이렇게 주문을 하잖아요.

박성민 : 그래서 아이폰 없는 애플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자신이 그런 기득권 세력과 어떻게 다른지를 확실히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안철수 현상에 열망을 투사했던 대중 상당수가 안철수 후보까지 기득권으로 싸잡아서 비판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프레시안 : 분열 대 통합은 어떻습니까? 사실 앞에서도 잠깐 얘기가 나왔지만 "통합"을 제일 외치는 쪽은 박근혜 후보입니다.

박성민 : 지금 분열의 책임은 과거 정치 세력의 책임이 크거든요. 계층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모두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같은 과거 정치 세력의 탓입니다. 여기서도 안철수 후보는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유리한 포지션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도 안 후보는 '희망', '의지'를 뒷받침할 '방법', '실행'을 말하지 못하고 있어요.

박근혜 후보는 지역 갈등에 신경을 쓰는 모양입니다만, 지금 가장 큰 갈등 요인은 세대 문제입니다. 세대 문제는 또 계층 문제와 결합되어 있잖아요? 청년들이 일할 질 좋은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대기업은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데 인색하고, 유일한 기회인 자영업도 골목 상권이 무너지면서 위기에 봉착했고….

이런 세대 갈등, 계층 갈등이 겹쳐서 40대 심지어 50대 초반까지 반 새누리당, 반 박근혜 정서가 팽배한 게 지금의 분위기입니다. 안철수 후보가 이 부분을 공략한다면 단숨에 2002년에 버금가는 '바꾸자' 이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안 후보는 이런 유리한 포지션을 현재까지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낡음 대 새로움, 과거 대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과거의 패러다임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얘기하잖아요. 후보 중 누구보다도 과거 아닌 미래를 얘기하는 후보입니다. 사실 그게 바로 안철수 현상을 통해서 나타난 대중의 열망이었고요. 그런데 안 후보는 그런 열망을 끌어안아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요.

프레시안 : 사실 이번 대선이 지리멸렬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담대한 제안'을 하는 후보가 없어서인 것 같아요.

박성민 : 맞아요. 1987년에 군인 출신도 6·29 선언을 내놓았어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인들이 다시는 정치판에 못 기웃대게 했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 평화 체제의 문을 여는 혁신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안철수 후보를 비롯한 세 후보 누구도 그런 담대한 제안을 해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아요.

'혁신의 화신'이라고 생각했던 안철수 후보도 현재까지는 '개선'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개선도 아니고 자칫하면 '개악'으로 흘러갈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이런 형편에 안 후보가 과연 위험을 감수하고 3자 구도 혹은 양자 구도에서 출마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안 후보의 고민이 깊을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오늘은 박성민 대표가 비유한 '아이폰 없는 애플' 같은 안철수 후보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박 대표는 박근혜 후보를 '시대에 둔감한 노키아' 또 문재인 후보를 애플을 따라잡으려 하지만 '옴니아 수준 밖에 내놓지 못한 삼성'에 비유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박 후보나 문 후보의 고민도 짚어보면 좋겠어요.

박성민 : 대선 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계속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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