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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자본도, 구좌파도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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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자본도, 구좌파도 믿을 수 없다! [프레시안 books]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의 <위기·반란·대안>
캐논변주곡의 가야금판, 무크 <위기·반란·대안>

<위기·반란·대안>(책세상 펴냄)이라는 제목을 달고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가 엮은 작은 부정기 간행물(mook)은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를 주제로 하나의 변주곡(變奏曲)을 펼친다. 저자의 입장에서 책은 쓰는 것이고 독자의 입장에서 책은 읽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권의 책도 저자에게는 연주가 될 수 있고 독자에게는 감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쓰는 행위와 읽는 행위, 연주와 감상은 행위의 이질성을 추상한다면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결국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까막귀'라 불릴 정도로 음악에 문외한인 필자도 조지 윈스턴(Goerge Winston)이 연주하는 '캐논 변주곡'을 들으면 공감을 느낀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 무슨 일을 겪고 있지 모르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위기, 반란, 대안이라는 변주를 통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작은 통로를 열어준다. 그 속에서 독자들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지금 이곳의 우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현재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전체 맥락과 배경 속에서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공감한다.(20쪽)

그런데 이 책은 조지 윈스턴의 '캐논변주곡'이 아니라 가야금으로 연주한 캐논변주곡과 같은 느낌을 전달해 준다. 지구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를 우리의 시각(더 정확하게는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의 시각)에서 읽을거리를 선정하고 번역의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윈스턴의 연주와 가야금 연주의 캐논변주곡을 들어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의 시각에서 엄선한 텍스트에서 풍겨나는 간결하면서도 절박한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위기: 국민에게 전가된 부담

▲ <위기·반란·대안>(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엮음, 책세상 펴냄). ⓒ책세상
변주곡의 첫 부분은 위기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두 편의 글에서 제시된 위기에 대한 분석은 일반적 분석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현재의 모순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적 지침의 노릇은 충분히 하고 있다. 일종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복기 차원으로 읽으면 될 것이다.

2008년 9월 중순 리먼 브라더스(Leman Brothers)가 파산한 날로부터 벌써 4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이 거대한 투자은행의 파산으로 세계금융은 시스템 붕괴라는 현실적 위협에 직면했다. 미국의 재무부장관 헨리 폴슨(Henry Paulson)이 자조적으로 읊조렸듯이 정말 두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리먼 파산 이후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에이아이지( AIG)가 파산했고 한 달이 지나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은행도산으로 기록된 워싱턴 뮤추얼(Washington Mutual)이 파산하고 그 다음에는 와코비아 은행(Wachovia Bank)이 구제 요청을 해왔다. 이후 유럽 은행들의 파산 물결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자본주의는 시계제로의 상태에 놓였다.

잘 알려져 있듯이 리먼 사태는 2000년대 초 미국의 부동산 거품과 관련이 있다. 소득도 일자리도 자산도 없는 "NINJA(No Income No Job or Asset)에 대한 무분별한 대출," "'사기에 가까워진' 증권화"로 발생한 대폭발은 금융권과 실물부분에까지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리먼의 파산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1막"의 절정에 해당한다. 이 사태로 자본주의가 붕괴하지는 않았지만, "금융계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모습까지 크게 바꾸어 놓았다."(21쪽, 24~25쪽)

그렇다면 세계를 흔든 이 대폭발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월스트리트는 다시 활력을 찾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알맹이 없는' 월가 개혁은 소리만 요란했지 별 다른 소득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적인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월가는 죽지 않았으며,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의 구제는 원했지만 규제는 원하지 않았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는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27쪽)

그리고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제2막'인 유럽의 재정위기와 유로존 붕괴 혹은 재편의 상황으로 전환했다. 스페인의 위기를 분석한 오스카르 구티에레스(Óscar Gutiérrez)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유럽은 "EU의 지시대로 GDP 3퍼센트 이내로 재정적자를 감축하기 위한 가위질로 고통 받고 있다."(47쪽) 긴축으로 경제 불황이 심화되어 실업률이 크게 증가하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남미로 이주하며 사람들은 보건 의료와 교육 등 복지 부문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이로 인해 구티에레스가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듯이 나라 전체가 활력을 잃고 사람들에게서 미소가 사라지고 있다. 다음의 인용문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이야기할 때 흔히 수치에 주목하지만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사람들에게서 활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유럽에 닥친 불황이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를 강타할 때만 해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스페인 사람들이 돌연 최근 몇 달 사이에 비관주의에 빠진 것이다. 복싱에 비유하자면 스페인은 아직 녹다운되지는 않았지만 연타를 당해 휘청거리고 있다."(44쪽)

이 책에서 위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설명하는 문장 가운데서 필자의 마음에 직접 와 닿는 말은, 금융위기로 인한 연타로 민중들은 활력을 잃고 비관주의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민중들의 얼굴에서 미소는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현재진행형인 위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절대 다수의 민중의 삶을 나락으로 빠뜨린 현재의 상태 말이다.

반란: 미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분노의 표출

그렇다면 미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체념한 채 자신들에게 처한 현실에 그대로 순응하고 있을까? 물론 아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93세 노투사인 고(故) 스테판 에셀(Séphane Hessel)의 육성이 담긴 책 <분노하라>(임희근 옮김, 돌베개 펴냄)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나아가 사람들은 이 책의 표제처럼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반란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의 점거운동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세계로 확산된 'Indignad@s 운동', 영국의 예산 삭감과 세금 면제에 대항하는 직접행동 'Uncut'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에 분노하며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외친다. "긴축에 반대한다", "부자에게 세금을",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금!" 등. 이들의 외침은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억압당하던 사람들의 분노이며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화하는 금융자본에 대한 분노이자 1퍼센트 부자만이 행복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위기·반란·대안>은 이러한 분노의 반란이 소수의 부자와 금융자본에 대한 공격일 뿐만 아니라 기존의 전통 좌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고 전한다. "젊은 사람들, 젊은 실업자들, 어찌해볼 수 없는 젊은 연인들 등"인 분노한 사람들은 부자와 금융자본 공세에 맞서며 직접행동을 펼친다. 나아가 이들은 "유럽의 모든 곳에서 사회적 최저선과 공공서비스를 축소해 공공부채를 줄이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회주의 정당과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반대하거나 비판하고 소환해 낸다.(59~61쪽)

"현재의 경제적·금융적 위기의 폭발과 해법 모색에 전통 좌파 세력이 보인 무능에 대한 질타로 이해"(66~67쪽)할 수 있는 이들의 직접행동은 행동양식에서도, 의사결정 절차에서도, 그리고 노동자 운동과 생태주의 운동에서 나오는 두 가지 전통을 가로지르는 데서도 전통 좌파와 다른 양태를 보인다.

그러나 분노한 사람들의 직접행동은 아직까지 시스템 자체의 전환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으는 데까지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의 행동 자체가 아직까지는 미시정치 수준에서의 실천에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실천이 거시적 정치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이를 통해 기존의 좌파들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의 문제는 결국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대안: 상상하라! 토론하라! 그리고 행동하라!

정절에 이른 변주곡은 유로존의 위기와 유럽 좌파의 대안에 대한 특집으로 나아간다. 이 기획이 나온 이유는 "다른 대륙에 비해 좌파의 전통(사회민주주의부터 녹색당, 급진 좌파에 이르기까지)이 강한 유럽에서 제출되고 있는 대안이 풍부하게 소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11쪽) 나아가 현재 세계적 위기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곳이 유럽이고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안 논의가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장하는 내용에는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공존하지만, 이 책에서 묶은 5편의 글을 관통하는 기본 주장은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유로존 위기는 유로통화체계의 모순과 관련이 있다. 한국의 주류 언론에서 소개된 것처럼 그리스의 국가부도위기는 그리스인들의 방만한 행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인은 게으르다", "그리스에는 휴일이 너무 많다", "그리스는 우리 돈으로 명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리스인은 사리사욕이 심했다", "그리스인은 분수에 넘치게 살았다" 등 그리스인들의 행태가 이번 위기를 야기한 것은 아니다(90~97쪽).

오히려 유로존 위기는 유로통화체계의 구조적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이 구조적 불균형은 물론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은행에 대한 막대한 구제금융이 재정위기를 촉발했다. 그리고 단일통화체제를 사용하면서도 부채에 대한 최종 부담을 각 국 정부가 지기 때문에 발생한 금리격차로 재정 상태는 더 악화되었다. 나아가 경쟁력, 투자, 단위노동비용 등에서 나타난 생산력 격차로 국제수지 불균형이 나타났는데도, 단일통화체제로 인한 자국 통화평가 절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문제는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둘째, 긴축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긴축으로 유로존 전체는 시체처럼 뻣뻣하게 경직되고 있다. 긴축에 따른 공공부문의 정리해고, 임금삭감과 노동조합의 약화, 퇴직연금의 감소와 퇴직연령의 증가, 공공 투자의 급격한 감소, 소비세 인상, 노동시장의 유연화 증대, 국부의 사유화 등 유럽에서는 '죽음의 한 방'이라 불리는 구타가 진행 중이다. 또한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자산 소유자들의 강도질이 긴축 정책의 도움을 받아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133쪽) 특히 은행들은 공적 구제금융, 금리격차를 이용한 돈벌이로 배를 불리고 있다. 나아가 긴축은 경제성장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셋째,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금융자본이 이번 위기의 주범임에도 이들은 막대한 구재금융을 통해 국민전체의 부를 사유화하고 있다. 이번 위기는 "은행, 펀드 및 거대 부동산업자의 이익을 도모하고 계산서를 예삭 삭감 패키지라는 형태로 일반 공중에서 발부되는 구제금융 패키지로 극복"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116~117쪽)

따라서 금융시장은 다시 통제되어야 하며 채권자들이 보유한 채무도 투명한 방식으로 탕감되어야 한다. 그리고 단일은행지구를 창출하고 회원국의 부채를 유럽중앙은행 부채로 전환하며 회원국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도입되어야 한다.

넷째, 대안적 경제사회 모형이 필요하다. "단순히 과거체제의 붕괴를 막거나 복구하는 것만으로는 노동 대중의 이익을 지키고 권리를 보장할 수가 없다. 이는 새로운 발전 모델, 새로운 사회모델, 새로운 노동 모델을 바탕으로 달성될 수 있다."(183쪽) 한마디로 긴축과 성장에 대한 대안은 '탈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 할 수 있다.

유로존의 위기가 아직 해결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에서 제시되고 있는 대안은 유럽의 '겨울'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법을 구상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세계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파산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위기의 해법이 여전히 신자유주의적이라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다. 민중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자본과 기득권 세력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관철시키기 위해 쟁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자본주의 자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적 강령과 프로그램의 창출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분노만으로 미소를 되찾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를 주제로 한 변주곡을 들으며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열정으로 연대를 형성하며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출발은 상상하고 토론하고 행동하는 데서 이루어질 것이다.

무크의 귀환, 더 풍부한 현재성을 갖추길

최근 들어 무크를 표방하며 진보적 의제를 해명하는 책들이 발간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엮어낸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밈 펴냄)이나 '레프트 대구 편집위원회'가 출판하고 있는 <레프트 대구>(메이데이 펴냄) 등은 진보적 의제를 설정한 무크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위기·반란·대안>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무크라는 말은 어원상 잡지를 뜻하는 'magazine'과 책을 뜻하는 'book'의 합성어다. 필자의 생각으로 무크는 잡지가 가진 시사성과 시의성을 충족시키면서도 책이 가진 풍부한 논리와 설명력을 잘 조합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을 충실히 구현하고 무크의 생명력을 얻으려면 무엇보다도 주제에 대한 풍부한 현재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위기·반란·대안>이라는 제목을 단 이 무크가 앞으로 더 많은 주제를 제때에 적절하게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풍부한 현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장을 열어나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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