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윌리스가 쓴 <학교와 계급재생산>(김찬호 외 옮김, 이매진 펴냄)은 영국의 한 노동자 도시의 학교에 다니는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의 하위문화를 다룬 책이다. 왜 노동자 계급의 자식들이 학교와 학교가 제공하는 지식을 거부하고 '사나이 문화'라는 하위문화를 형성하며 다시 노동자 계급으로 재생산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은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과 같은 학교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 또 이론이라는 학교의 지식을 실제적이지 못하다고 평가절하하며 교사의 권위에 반항하는 것을 과시하는 '반학교 문화'를 형성한다. 저자 윌리스는 노동자 계급의 학생들이 그들의 문화적 자원을 학교가 아닌 주변의 '남성 육체 노동자'들에게서 찾으며 이런 반학교 문화를 통해 학교가 제공하는 지식에 반하여 '노동'의 본질과 처지를 통찰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을 가지고 학생들과 한국의 일진 등과 같은 하위문화를 다루다가 꽤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의 노동 계급 출신 자식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와 비슷한, 성차별적이고 학교에 반항하는 '사나이 문화'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차별적인 요소나 반학교적인 부분, 선배와 후배 사이의 절대적인 위계와 교율 등등 한국의 반학교 문화는 학교에 대해서는 반권위주의적인 모습을 가지지만 자신들 내부에서는 훨씬 더 위계적이고 권위적이다. 이런 한국 학교의 '사나이 문화'는 노동 계급에서 온 문화적 자원이 아니다. 이 문화의 역할 모델은 조폭에 훨씬 가깝다.

또한 학교의 지식을 평가절하하는 것도 비슷하긴 하지만 앞으로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그림에서 영국의 경우와는 아주 다르다. 영국의 경우가 자신이 노동 계급이 될 것을 알고 그들의 문화를 미리 당겨서 부분적으로 선취하는 것이라면 한국의 노동 계급의 자식들은 자신들이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학교에 반항적인 아이들의 경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다 '장사', 즉 '자영업'을 하겠다고 말한다. 여학생들의 경우에는 인터넷 쇼핑몰을 하겠다는 친구들이 제법 많으며, 남학생들의 경우에도 야심찬 재벌에의 꿈에서부터 식당까지 거개는 다 사업을 하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미래가 노동자라고 생각하기는커녕 노동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에서부터 바로 취업에 이르는 경우까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다음에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노동을 어떻게 조직하는지, 그 조직된 노동에서 나의 위치와 할 일은 무엇인지, 내 노동은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지에 대해 거의 감이 없는 채 노동의 세계에 진입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막연하게 생각하던 "자아실현=노동"과 실제 노동조직 안에서의 노동에 엄청난 괴리를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 바람에 노동자가 된 다음에 처음 하는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내가 이 일을 하러 여기 온 것이 아니다"거나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는 말이다.

▲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류동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주류 경제학의) 교육 현장의 교과서에서는 노동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노동을 대단히 소극적으로 다룬다. 대신 경제는 생산과 소비로만 이루어진 세계로 묘사한다. 노동자는 없고 소비자만 등장한다. 노동은 "소득과 여가라는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아내는 노동 공급자의 선택 과정의 부산물 또는 잔여항"(<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류동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11쪽)으로만 취급된다. 그 결과 노동자는 생산에서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라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되고 교과서에서 침묵된다. 노동자가 될 학생들에게 "노동의 권리에 관해, 노동 강도에 관해, 노동과 자본의 대립에 관해, 결국 노동 그 자체에 관해" 거의 아무 말도 안 하고 침묵하는 것이 '경제' 교과서다. 노동에 대해 모르거나, 혹은 알바나 인턴을 하면서 몸으로 때우며 배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경제학이 노동을 경시하거나 침묵해 버리는 현실에서 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책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 노동의 문제를 대학교 1학년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상적인 사례를 통해 말하기는 더욱 어렵다.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되어 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기는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을 다룬 책들은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매뉴얼화 되어 있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일이란 무엇이고 왜 그런 취급을 받는지를 누구나 생각해 보고 경험해 봤을만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풀어낸 책을 발견하는 것은,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무척 기쁜 일이다. 류동민의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이 바로 이런 일을 해낸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처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을 교과서적으로 가르쳐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의 처지와 현실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쉬운 말로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다룬다는 점에서 보다 더 적극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이 한국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불길한(자본주의는 늘 불길하지만 더욱 불길한) 모양새로 바뀌었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 알바나 인턴 등을 하는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무엇으로 표현해야하는지에 대해 감을 잡기가 어려웠던 터였기에 더욱 반갑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 불길한 자본주의를 류동민은 이 책에서 "유흥주점형 경제 모델"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유흥주점형 경제 모델은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쏠리는" 경제 모델이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한국의 택배 시스템이 노동자에게 가혹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특히 당일 택배 등의 서비스가 생김으로써 노동자들이 느끼는 강도는 살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택배 노동자가 형식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택배 한 건에 2500원이면 한 건에서 노동자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550원인데 택배 포장 위에 붙이는 운송장 가격이 100원이고 이걸 택배 노동자가 부담한다. 결국 그에게 택배 한 건당 떨어지는 돈은 450원이며 하루 150군데를 돌아다녀야 7만 5000원을 벌 수 있다. 한 달에 25일을 노동하면 200만원이 소득이다. 하지만 택배 노동자는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름 값에서부터 감가상각, 나아가 '고객'이 운송장을 잘못 써서 다시 쓴다고 찢어버릴 경우의 비용도 자신이 감당해야한다.

이런 식으로 노동에서 발생하는 비용이나 문제는 아래의 노동자가 가져가고 이익은 위에서 가져가는 것이 그가 말하는 유흥주점식 경제 모델이다.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은 개인"(143쪽)이며 "물류는 물론 생산에 이르는 경제의 모든 영역을 위에서는 대자본 몇 개가 장악하고 피라미드의 말단부는 이른바 유연한 형태의 노동, 자영업자의 외관을 띤 노동에게 맡기는 구조"이다. 마치 유흥주점에서 "업주-웨이터-마담-접대부로 이루어지는 위계"가 "모두 고용-피고용 관계가 아니라 개인 간 거래관계라는 외형"(144쪽)을 띠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런 피라미드 조직은 "각 단계마다 중간 고리에 해당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서로가 서로를 직접 지배하지 않는 방식, 심지어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방식"(144쪽)으로 위계화되어 있다. 결국 직접 부딪치는 사이는 폭력적으로 격렬하게 부딪치고 서로를 쥐어 짜내지만 한 고리만 건너뛰면 서로 책임질 일도 없는 사이가 된다.

▲ <비행운>(김애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이런 피라미드형 경제 구조가 어떻게 위험을 아래로 보내면서 사람의 삶과 관계를 결국 파국에 몰아놓고 있는지는 이미 김애란이 그의 소설 '서른'(<비행운>(문학과지성사 펴냄) 중)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가. (이하 스포일러 성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으면 건너뛰기를 바란다.) 주인공은 어느 날 헤어진 남자친구에게서 전화를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다. 그 자리에서 전 애인은 "살아보니 사람이 제일 큰 재산인 것 같더라"(<비행운> 301쪽)라는 말을 하며 주인공을 다단계판매 회사로 끌어들인다. 처음엔 '이거 다단계 아니냐'며 저항도 해보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던 주인공은 결국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거마 대학생' 사건으로 잘 알려진 것처럼 주인공은 휴대전화도 압수당하고 화장실도 같이 다니는 합숙 생활을 하다가 전에 다니던 학원에서 자기를 제법 따르던 학생 하나를 자기 대신 그 회사에 '밀어 넣고' 나오게 된다. 그 후 그 학생은 주인공에게 몇 번 문자를 보내며 자신을 빼내달라고 하지만 주인공은 외면한다. 결국 그 학생은 다단계 때문에 지게 된 빚과 파탄 난 인간관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을 감행하게 되고, 목숨은 건지지만 식물인간이 되어 병실에 누워있게 된다.

류동민이 말하는 유흥주점형 경제 모델과 김애란의 '서른'이 만나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노동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이 책에서 류동민은 전기 자본주의 혹은 산업화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 모델에서 필요로 한 노동자의 능력이자 덕목은 지루함을 견디는 힘이라고 말한다. "공장이나 회사의 규격화된 노동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 33쪽)이 필요하고 그 지루함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곳이 사실은 학교였다는 말이다. 학교에서 '관동별곡'을 외우게 하고 그걸로 성적을 매긴 것도 지루함을 견디는 힘을 측정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고 류동민은 농담한다. 결국 졸업장은 "이 종이를 받은 사람은 50분 지루함을 참고 10분 숨을 돌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증하는 증명서였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 지루함을 잘 참을 수 있도록 길들여진 노동력"(33~34쪽)은 이 유흥주점형 경제 모델에서는 크게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서른'의 주인공 전 남자친구가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재산임을 알아야 한다. 물론 이 때의 재산은 그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사회 자본'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내가 얼마나 '팔아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 이 유흥주점형 경제 모델에서는 핵심이 된다. 당신에게는 당신이 짊어져야할 위험을 떠넘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산업자본주의 모델에는 자본이 짊어져야할 위험을 친구에게 떠넘기는 것이 연대 보증과 같은 '부수'적인 현상(연대 보증이 어떻게 무연 사회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무연 사회>(NHK 무연 사회 프로젝트 팀 지음, 김범수 옮김, 용오름 펴냄)라는 책에 나오는 한 사례에 잘 나타나 있다)이었다면, 유흥주점형 경제 모델은 아예 그것을 중심으로 경제 조직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유흥주점형 모델에서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단 하나의 덕목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능력이다. 나아가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전가하는 능력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학교는 지금 좌파와 우파 모두가 개탄하는 것처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공간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왕따와 학교 폭력이 벌어질 때마다 학생들이, 아니 학교 구성원 전체가 훈련하는 것이 바로 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능력'이 아닌가.

내 친구의 고통에 동참하는 순간 나도 왕따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왕따가 되기 않기 위해서는 어제까지 친했던 친구도 배신해야 한다. 왕따가 된 친구의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왕따는 나쁘지만 당한 친구도 원인을 제공했다"며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으며 자신의 침묵과 외면을 합리화해야 한다. 왕따와 학교 폭력, 이것은 학교가 제 구실을 못해서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의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학교가 제 구실을 못해서 벌어지는 '부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주작용'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 밖에도 이 책은 노동의 세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한 좋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경제적 거래가 가지는 인적 속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물적 속성 사이의 관계"(265쪽)로 바뀌는 양상이라든가 몇 달 전 '라면 상무'의 사례에서도 문제가 된 '감정 노동'의 확산은, 사실 서비스 산업의 확산을 의미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소비 자본주의는 '소비자'라는 '갑'이 '노동자'라는 '을'을 자기 착취하도록 유도하면서 자본은 그 뒤로 모습을 감춰버린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지적 등, 류동민의 책은 그동안 파편적으로 느끼던 것을 '노동/일'을 중심으로 해서 엮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이야기를 누구나 다 경험해 보았을 일상적인 사례를 통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좌파에, 특히 경제학에, 이런 이야기꾼은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