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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앞둔 미혼녀, 사랑은 모험 아닌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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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앞둔 미혼녀, 사랑은 모험 아닌 보험! [프레시안 books] 정아은의 <모던 하트>
셰익스피어는 <한여름밤의 꿈>에서 이렇게 읊었다. '이성과 사랑은 요즘 함께 사는 날이 거의 없다지.'

사랑을 할 때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길 원할 때 우리는 머리를 쓸까? 그러니까 사랑에 이성이 필요할까? 대부분의 경우 사랑에 있어서 이성은 묘하게 작동한다. 이성은 늙었고 사랑은 젊다는 말이 있다. 이성은 주로 사랑을 타박한다.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거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거나 눈이 멀었다거나 철모르는 시절의 이야기라거나 사랑이 밥 먹여주냐, 라고. 즉 사랑에 넋이 나간 사람은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간주된다.

사랑을 두고 충고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성의 이름으로 한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 즉 부(富)를 보장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건강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일로 간주된다. 우리도 사랑을 할 때 이성의 이름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한다. 그래서 사랑을 선택하는 기준들이 비슷해졌다. 이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하고 유일무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말할 수 없이 낯설어져 버렸다.

정아은의 소설 <모던 하트>(한겨레출판 펴냄)의 여주인공 김미연은 서른일곱 살이고 헤드 헌터이며 코를 세운 적이 있다. 소설 초입에서 그녀는 예쁜 콧날을 가진 여자를 보고 코를 세운 건지 안 세운 건지 속으로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 된다. 그녀는 이제 얼마 안 가 마흔이란 생각에 시달리는 한편, 직장에서 성공적인 프로필을 갖길 꿈꾼다. <모던 하트>에서 이성은 이렇게 작동한다.

-착한 남자란?
착한 프로필을 가진 남자. 얼굴 잘생기고 '스펙' 빵빵한 남자.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 연봉 얼마짜리 직장에 다니느냐가 관건

-착한 남자랑 같이 있어서 좋은 점은?
'그런 남자와 대화를 나누자 내 주가가 상승했는지 그 후부터 사람들이 내게 호의를 보이며 먼저 다가온다.'

-여자 나이 마흔이면?
'인화 언니가 아무리 예쁘다 해도 올해 나이가 몇인데, 마흔 아니야. 그 나이면 선도 재취 자리만 들어온다는데 흐물 오빠 같은 총각이면 과분하지.'
'그 나이에 동갑내기 의사랑 결혼하면 완전 성공이지. 우리 나이가 몇이냐. 이제 좀 있으면 마흔이야 마흔. 우리 이제 결혼해도 애도 잘 안 생길 걸. 운이 좋아서 임신에 성공한다 해도 정상적인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 못해.'

-보험 들기
'흐물이 좋은 게 아니라 보험에 들어놓고 싶은 거 아닐까? 나이는 드는데 옆구리는 허전하니 비상용 남자나 하나 구비해놓자 뭐 그런 거.'

▲ <모던 하트>(정아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김미연과 친구들의 이런 생각들은 최근의 동안 열풍, '미친 몸매' 열풍과도 연결된다. 동안 열풍, '미친 몸매' 열풍은 현대 여성이 얼마나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다. 여성은 최대한 오래 젊은 얼굴과 성적 매력을 유지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여성성은 나이, 그리고 몸의 문제가 되어간다. 게다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앞날의 경제적·사회적 생존과 연결되어 사랑을 안전한 보험 들기처럼 만든다.

그녀는 자신도 사이버대학을 나왔지만(그래서 자신을 비천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흐물이란 남자에 대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지방대를 나와 겨우 공사에 들어간 놈이 감히 나를. 내 아무리 외롭게 나이 들어가는 처지라고 해도 너 같은 놈에게 갈쏘냐. 차라리 혼자 늙어죽고 말겠다." 그런데도 그녀가 흐물을 만나는 이유는 밥값, 차값, 택시비 등 일체의 비용을 그가 지불하는 사정이 한몫을 한다. (흐물은 그녀와의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적금을 깨고 마이너스 통장까지 쓴다. 돈 없으면 연애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혹은 지방대 학벌을 경제적 능력으로 상쇄하려는 것처럼.) 그녀는 흐물 대신 스펙 좋고 '착한 ' 직업(외국계 휴대폰 업체에서 일하는)을 가진 태환을 남친이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 김미연의 엄마는 태환을 본적도 없으면서 그가 명문대학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호감을 갖고, 은근히 김미연이 그와 결혼하기를 바란다. 이 소설에서 결혼한 부부의 처지도 비슷하다. 합심해서 재테크에 뛰어들고 미래의 꿈은 그 재테크에 달려있다.

이 소설에는 이성이 구박할 사랑도 없다. 즉 이성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열정적인 사랑도 없다. 두 사람이 공모해서 합리의 가면을 쓴 불합리와 싸우는 사랑의 모습은 그 누구도 보여주지 않는다. 왜 사랑을 하고 싶어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려 하는가? 진정으로 한 사람을 한 세계로 받아들이기를 원해서라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고, 나이든 싱글여성으로 사는 게 억울해서라거나 대오에서 이탈하게 될까 두려워서,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듯 흘려보내고 홀로 삶을 견디는 게 두려워서라는 이유들이 등장한다. '결혼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결혼이나 해버릴까'다.

사랑에도 이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이성이 필요하다. 이 사랑이 어떤 쓸모가 있느냐를 따지는 이성이 아니라 이 사랑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이성이 필요하다. 사랑은 이성보다 더 나은 어떤 가치를 포함한다는 말이 있다. 사랑 고유의 이성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 사랑이 얼마나 사소하고 시시할 수 있는가를 이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미연은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쓸쓸함과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자신에게도 언젠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이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아무런 계산 없이 타인에게 홀딱 빠져서, 그 타인에서 출발하여 삶을 다시 살아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시간과 싸우는, 시간을 다시 경험하는, 눈부신 시간을 창조하는 길이 아닐까? 로맹 가리가 말했듯이, 사랑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 "세상은 아직 우리가 함께 해야 할 모든 일들의 시작일 뿐"이다. 사랑은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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